살인의 기억 201화
16. Journey to crime(3)
“다시 말해보쇼.”
강혁 아저씨의 무서운 눈빛. 상대를 잡아먹기 직전의 호랑이 같은 눈빛이다.
하지만 상대는 능구렁이의 끝판왕인 청와대 민정수석. 그런 위치에 있는 이가 상대의 반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다.
만약 눈치 없이 상대의 면면을 파악하지 못하고 미친 망아지처럼 굴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민정수석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조민석은 강혁 아저씨의 변화를 관찰하며 양 손바닥을 보인다.
“아, 오해는 마십시오. 은퇴 후 삶을 보장할 테니 청와대의 명령에 따라달라는 건 아니니까.”
강혁 아저씨는 여전히 조민석 민정수석을 노려보고 있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당장 물어뜯을 기세다.
조민석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깍지를 낀다. 잠시 우리를 살피던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습니다, 실수했습니다. 인정합니다.”
어? 청와대 인사가 이렇게 쉽게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고? 정치와 연관된 이들은 보통 중간에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 해도 절대 인정하지 않던데. 강혁 아저씨와 장영훈 본부장님도 의외라는 얼굴이 된다.
조민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딱 까놓고 말해서 총선도 얼마 안 남았고, 청와대 입장에서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동일한 현 시국의 정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허?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거야? 설마 이거 몰래 카메라 아니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어떤 간 부은 놈이 청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한단 말이야?
조민석이 말을 잇는다.
“지하철 괴담 사건이 해결됐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아마 대한민국 역사상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70%를 돌파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장영훈 본부장님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인다. 음, 그게 그렇게 큰일이었나? 하긴 뉴스에서 거의 한 달을 떠들어대긴 했었다.
조민석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과장님.”
“…….”
그는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 그것이 우리 공무원들의 할 일 아니겠습니까?”
음, 맞는 말이다. 조민석이 다시 말했다.
“밖에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살인마가 돌아다닙니다. 기존 관할서 형사들은 두 달이 넘게 범인을 못 잡아서 또 다른 피해자를 냈습니다.”
조민석이 강혁 아저씨를 힐끔 보며 말했다.
“물론 관할은 안산경찰서이지만 국민들이 그런 상황에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범인을 못 잡는 경찰. 그건 안산경찰서에 국한되지 않고 경찰 전체를 향한 비난이 되어 돌아올 겁니다.”
음, 그것도 그렇지. 조민석이 다시 날 보며 말했다.
“안산경찰서장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다음으로 나설 팀이 어디입니까? 경기광역수사대. 예, 거기입니다. 그런데 광역수사대 투입 후에 해결을 못 하고 또다시 피해자가 나온다면? 피해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만약 부상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망자가 나와 버린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뭐, 그때는 진짜 국가수사본부에 사건이 배당되겠지. 조민석이 내 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산경찰서 형사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여기 오기 전에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수사보고서를 확인하고 왔습니다. 범인은 CCTV가 없는 사각지대를 노렸고 피해자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으며, 장갑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어 모발이나 지문을 포함한 DNA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범인은 지능범일까? 아니, 지능범의 프로파일은 아니다. 진짜 지능범이었다면 범행을 11건이나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11건의 범행을 했다면 그중 많으면 두 건 정도에 대해 꼬리를 잡혔을 것이고 수사 중에 나머지 범행이 드러났을 것이다.
게다가 11명 중 9명이나 살아남았다. 머리 좋은 범인이라면 반드시 대상을 죽여 혹시 모를 목격자 진술의 여지를 없앴을 확률이 높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를 관찰하던 조민석이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우리는 어차피 해당 사건이 국수본으로 이관될 사건이라 판단한 겁니다. 괜한 절차를 밟아 또 시간을 질질 끌고 그로 인해 국민 원성이 커지는 것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음, 옳은 이야기이다. 내 정신이 조민석의 꿀 바른 혓바닥에 서서히 넘어가고 있는 바로 그때. 강혁 아저씨가 끼어든다.
“하하, 미친 소리 하고 있네.”
강혁 아저씨의 막말. 어어, 아저씨 이 사람 민정수석인데 그런 언행은 좀. 조민석이 자신을 돌아보자 삐딱한 얼굴의 강혁 아저씨가 턱을 괴고 말했다.
“상황은 이해가 되는데. 그럼 내게 와서 상황이 이러니 국수본을 바로 투입해 달라 요청을 할 것이지 기자들 앞에서 먼저 발표해 버리는 건 어느 나라 법도요?”
오, 맞아. 문제는 그거였지. 역시 정치인이다. 나도 모르게 입바른 소리에 홀랑 넘어갈 뻔했구나.
조민석은 입맛을 다신 후 잠시 강혁 아저씨를 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일어나 옷을 바로 한 뒤 허리를 굽힌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나는 민정수석이 허리를 숙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를 딱지 쳐서 딴 사람이 아니구나. 짧은 찰나에 강혁 아저씨를 제대로 파악했다. 변명을 하기보다는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사과하면 기회를 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강혁 아저씨이다.
내 생각처럼 표정이 약간 풀어진 강혁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고. 국수본이 투입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 현 과장, 장 본부장과 상의 후에 청와대에 통보하겠습니다. 그만 돌아가세요.”
우와, 아저씨 진짜 멋지다. 청와대에 알리는 것도 아니고 통보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결정하고 통보할 테니 처분을 기다리라는 뜻이다.
이야, 드라마나 영화 보면 청장은 상부에 손 비비며 자리 보전하느라 바쁘던데. 강혁 아저씨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조민석은 강혁 아저씨의 단어 선택이 마음에 걸린 얼굴이었지만 곧 표정을 바꾸고 웃음을 지으며 내게 악수를 청한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응? 아저씨도 있고 장영훈 본부장님도 계신데 굳이 나랑 악수를 해? 나는 얼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조민석은 믿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아저씨와 본부장님께 허리를 숙여 보인 후 자리를 벗어난다.
하하, 지금 이게 현실인가? 민정수석이 허리를 굽히고 나가는데 청장과 본부장이 그냥 앉아 있다. 보통 건물 밖까지 배웅하지 않나?
간 큰 두 아저씨를 다시 바라보는 나. 강혁 아저씨야 워낙 막무가내이니 그렇다 치지만 장영훈 본부장님까지 저리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 몰랐다.
장영훈 본부장은 조민석이 나가자마자 몸을 강혁 아저씨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경기남부 애들과 북부 애들 다 투입하면 됩니다.”
“…….”
“남부 애들 중에 두 개 팀이 지금 도박 사건에 투입되어 있습니다. 일단 그거 미루고 이쪽으로 뺄 수 있습니다. 북부 애들은 강력사건 맡은 애들 빼고 한 개 팀 더 뺄 수 있습니다. 총 세 개 팀을 투입하면 됩니다.”
강혁 아저씨가 본부장님을 지그시 바라보며 턱을 괸다.
“그럼 몇 명이지?”
“형사만 스물다섯이 넘습니다.”
강혁 아저씨가 유일하게 서서 조민석을 배웅한 날 힐끔 올려본다.
“음…….”
뭘 고민하고 그래요? 형사 스물다섯이면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팀은 나 포함해서 달랑 넷인데. 네 명 투입하는 편이 훨씬 낫지.
나는 아저씨를 설득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장영훈 본부장님이 날 보며 말했다.
“넌 가만 있어. 아직 안 돼.”
“…….”
“너 이 자식. 치료도 이제 두 번째 받았다며? 그런 놈이 어디를 나서. 안 돼.”
“본부장님.”
“입 다물어, 인마.”
무서운 얼굴의 본부장님. 하지만 나는 안다. 어린 시절부터 날 봐왔던 건 강혁 아저씨만이 아니다. 그때 그 사건에서 날 알게 된 여러 형사님들이 날 지켜봐 왔고, 본부장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지금 이 질책 속엔 나에 대한 걱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는 본부장님 대신 강혁 아저씨를 보았다. 누가 생각해도 우리 쪽이 투입되는 것이 맞지만 아저씨는 고민하고 있다. 아마 내 상태에 대해 고려하고 계신 것이리라.
“청장님, 아니, 아저씨.”
강혁 아저씨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본부장님을 본다. 둘이 있는 자리가 아닌 곳에서 아저씨라는 호칭을 쓰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장영훈 본부장님은 평소 내가 그런 호칭을 쓰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놀란 얼굴이 아니지만 오히려 아저씨 쪽에서 눈치를 본다.
“뭐, 인마.”
나는 아저씨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위험할까 싶어 그러신 거죠? 본부장님도.”
“…….”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문다. 나는 가만히 날 보는 강혁 아저씨를 직시하며 말했다.
“중학교 때 보육원 놀이터에 찾아온 아저씨가 저에게 했던 말. 기억하세요?”
“…….”
무슨 말을 했더라? 하고 기억을 캐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저씨. 나는 빙긋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의사, 간호사, 소방관, 승무원, 그리고 경찰.”
장영훈 본부장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음?”
나는 손가락을 내리며 말했다.
“모두 제복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강혁 아저씨는 이제야 자신이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쉰다. 나는 궁금한 얼굴이 되어 있는 본부장님을 보며 빙긋 웃었다.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복을 입은 자는 위험 상황에서 도망칠 권리가 없다.”
장영훈 본부장님이 감탄한 얼굴로 강혁 아저씨를 바라본다. 얼굴을 감싸 쥔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건 인마…….”
“저는 지금 위험한 상황인가요?”
“…….”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 제복 입은 놈이 위험에 처한 국민들을 두고 자기가 위험할지 몰라서 몸을 사린다고요? 그게 제복 입은 자가 할 짓입니까?”
“…….”
나는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강혁 아저씨를 보았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 키웠다. 당신이 해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내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으로 눈에 힘을 주었다.
강혁 아저씨는 내 눈빛을 보고 다시 한숨을 쉰다. 잠시 고민하던 아저씨가 마지못해 입을 연다.
“본부장.”
“예, 청장님.”
“도경이 쪽으로 사건 배정해.”
“…….”
말을 잃은 본부장님. 강혁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두 눈을 누르며 골치 아프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래, 이 어린놈 말이 백번 옳지. 제복 입은 놈은 위험에서 도망칠 권리가 없다. 내가 한 말이 맞아.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다.”
강혁 아저씨가 눈에서 손을 떼고 약간 붉어진 눈빛으로 날 노려본다.
“그러니까, 이 새끼야.”
나와 강혁 아저씨의 강렬한 눈빛이 공중에서 엉킨다. 아저씨가 날 보며 말했다.
“내가 계속 그런 생각으로 살 수 있게 해줘라.”
자신이 계속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 빙빙 돌려 말했지만 결국 다치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잘못되면 자신이 계속 그런 신념을 가지고 살 수가 없다는 따뜻한 말이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청장님.”
강혁 아저씨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제야 청장이냐? 나쁜 새끼. 사무실로 꺼져,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