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02화
16. Journey to crime(4)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 회의실.
불이 꺼진 회의실에서 빔 프로젝터를 켠 연주가 사건에 대해 브리핑 중이다.
연주는 화면을 조작해 주택가 골목길 전봇대 사진을 보여준다. 바닥에 사람 모양의 하얀 스티커가 붙어 있고 검붉은 핏자국들이 번져 있다.
“두 달 전인 9월 28일 안산시 선부1동 빌라촌 근처의 전봇대 앞입니다. 사망자는 24세 여성인 남지현 씨. 상록구에 있는 가구 회사에 재직 중이었습니다.”
연주가 부검 중에 찍은 시신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사망 추정 시각은 밤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 집 근처 50미터를 남겨두고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후두부와 안면에 각기 2회씩 둔기에 의한 공격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진규가 삐딱하게 앉아 펜을 손가락으로 돌리며 물었다.
“현장 즉사야?”
“아뇨, 과다 출혈에 의한 쇼크사입니다.”
“음, 일찍 발견했으면 살았을 수도 있다는 거네.”
“네, 안타깝게도 지나는 행인이 남지현 씨를 발견한 것은 10시 40분경으로 사망 추정 시간에서 최대 1시간 10분이 지난 후였답니다. 119에 신고가 접수되고 대원들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고 합니다.”
“둔기는 밝혀졌고?”
연주가 다시 화면을 조작해 상처 부위를 확대한 사진을 보여준다. 살점이 짓이겨져 있는 거북한 사진이 화면을 채운다.
“KCSI 부검에서 시판되고 있는 둔기는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담당자는 아마 돌로 내려친 것 같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음, 결국 흉기 판정을 못 했다는 거네?”
“네.”
당연하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로 내려쳤는데 무슨 수로 흉기를 특정하겠는가? 돌멩이는 모두 다르게 생겼으니 당연한 결과다.
연주가 화면을 조작하자, 아홉 명의 여성 사진들이 순서대로 지나간다. 모두 눈두덩이나 광대뼈 근처, 후두부에 큰 멍이 들거나 파열되어 있다.
“두 달간 아홉 명이 더 공격받았습니다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삼 일 전에 다시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화면이 바뀌고, 주유소 앞의 대로변 사진이 나온다. 은밀한 범행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주유소들은 차들의 진입이 쉽도록 대로에서 가깝고 차량 통행이 많은 곳에 짓는다. 사진 속의 주유소도 그렇다.
연주가 말을 잇는다.
“사망자는 41세 신정연 씨이고 새벽기도를 다녀오는 길에 공격당했습니다.”
관우가 주유소 사진을 빤히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시간이라 사람이나 차가 없는 시간을 노렸구나.”
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신 사진을 보여준다.
“사망 추정 시간은 새벽 5시 40분부터 6시 20분 사이. 신정연 씨가 다니는 교회에 확인 결과 새벽기도 1부 예배가 5시 50분에 끝났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해당 주유소까지 도보로 이동했을 때 약 15분 거리로 추정. 사망 시각은 6시 5분에서 10분 사이로 좁혀졌습니다.”
연주가 상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 둔기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며, KCSI는 여전히 둔기를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돌멩이가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오진규가 물었다.
“생존자들 진술은? 무기 못 봤을 리가 없잖아.”
“망치로 위협했답니다.”
오진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망치?”
“네.”
오진규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날 바라본다.
“이건 좀 이상하네요.”
나도 이상한 점을 느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손에 망치라는 둔기가 있는데 살인을 할 때는 굳이 돌멩이를 들었다?”
오진규가 볼펜을 빠르게 굴리며 연주를 보았다.
“현장에서 돌멩이 발견됐어?”
연주가 고개를 저었다.
“현장 주변 2㎞ 전체를 수색했습니다만 혈흔이 묻은 돌멩이는 안 나왔습니다. 이 때문에 안산경찰서 소속 전원이 한 달이나 돌멩이를 찾고 다녔답니다.”
오진규가 화면을 바라보다 눈짓한다.
“안산시 지도 좀 보여줘.”
연주가 버튼을 조작하자, 안산시 지도가 나온다. 붉은색 동그라미를 그려둔 것을 보니 범행이 발생한 지역을 브리핑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지도로 보인다.
오진규가 지도를 물끄러미 보며 한 곳을 가리켰다.
“저거 뭐야? 저수지야?”
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화랑지라고. 경기도 미술관 뒤편 화랑유원지에 속해 있는 저수지입니다.”
오진규가 볼펜을 놓으며 한숨을 쉰다.
“저기에 던져서 증거를 없앴을 확률이 높네.”
음, 이래서 안산경찰서 형사들이 애를 먹었던 거구나. 저수지는 돌멩이 천지다. 게다가 물에 던졌으면 혈흔도 지워졌을 것이다. 저수지 속 돌멩이를 다 건져서 상처와 대조할 순 없다.
관우가 물었다.
“이번에도 쇼크사?”
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사건 추정 시각에서 15분이 지난 시각에 행인이 발견. 119에 신고해 대원이 도착했을 때까지는 생존했지만 이송 중에 사망한 케이스.”
“후.”
오진규가 물었다.
“퍽치기라고 들었는데. 피해 현금 액수가 어떻게 돼?”
연주가 수첩을 넘기며 말했다.
“약 100만 원 상당입니다.”
오진규가 팔짱을 끼고 혀를 찬다.
“새벽기도 가는 분이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들고 다녔어? 전부 현금이야?”
“…….”
“어? 연주야, 왜 그래?”
연주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했다.
“저…… 그게 아니라 11건의 사건에서 나온 피해 액수 총합이…… 100만 원입니다.”
오진규가 놀라며 팔짱을 푼다.
“뭐……? 사람 둘 죽이고 아홉이나 부상을 입혔는데 피해 액수가 고작 100만 원? 그 돈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네…….”
“하…… 미친 새끼 아냐, 이거?”
사건이 일어난 후에 브리핑을 들으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범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다르다. 퍽치기라는 범죄는 상대에게 돈이 얼마 있는지 모르고 뒤에서 덮치는 범죄이다. 공격을 하긴 했는데 상대에게 현금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범죄라는 뜻이다.
나는 연주를 향해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계속하라는 뜻이다.
연주가 다시 화면을 조작하자 검은 그림자로 처리된 범인의 실루엣과 프로파일이 기재되어 있다.
관우가 프로파일을 보며 물었다.
“누가 분석한 거야?”
“안산경찰서 측에서 한 분석이야.”
오진규가 프로파일을 보며 중얼거린다.
“20대 남성에 날렵한 몸매. 성적 이상욕구가 강하고, 소득 수준이 낮은 자로 일정한 직업이 없으며 학력이 낮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
안산경찰서가 올린 프로파일은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범인이 남긴 흔적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최대한의 프로파일이다.
소득 수준이 높은 자가 퍽치기와 같은 범죄를 저지를 리는 없다. 게다가 11건의 범죄로 인해 범인이 벌어들인 수익은 100만 원이다. 일정한 직업이 있는 자라면 작은 돈 때문에 이런 큰일을 벌일 리가 없다. 낮은 학력이란 프로파일 역시 일정한 직업이 없어 범죄로 연명하는 자이기에 나온 프로파일이다.
오진규가 눈짓하며 물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다고 판단한 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선배님. 생존자 아홉 명의 진술이 모두 동일합니다. 범인은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답니다.”
“음, 좋아. 그런데 말이야. 성적 이상욕구가 강하다는 건 무슨 이야기야? 이거 퍽치기 범죄 아니야?”
“…….”
연주는 입맛이 쓴 표정을 짓는다. 잠시 머뭇거리던 연주가 노트북 버튼을 누르고 화면이 전환되어 떠오르는 사진. 나와 관우, 오진규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진다. 관우는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눈을 질끈 감는다.
“하, 개새끼가.”
화면 속. 사망한 여성 피해자의 성기에 피 묻은 나뭇가지가 꽂혀 있는 것이 보인다. 단순히 돈을 노린 강도가 아니었던가? 나는 이를 갈며 물었다.
“두 번째 사망자는?”
연주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분도 성기에 나뭇가지가 삽입되어 있는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
오진규가 주먹을 꽉 쥐고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나뭇가지에서 지문 안 나왔어?”
“네, 나뭇가지도 주변에 있던 나무에서 꺾은 걸 썼답니다. 시신 발견지점 10미터 안에서 가지가 부러진 나무가 있는 것을 발견한 KCSI가 현장에서 발견된 나무와 동일한 성분의 흉기임을 밝혀냈습니다.”
“하…… 길가에 있는 돌로 사람을 죽이고, 나뭇가지를 꺾어서 저 짓을 하는 놈이라고?”
“네, 거기에 장갑까지 착용하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11건의 현장 전체에서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하…….”
오진규는 다시 한번 화면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성……폭행 흔적은?”
묻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할 수 없다. 우리는 사건을 해결해야 할 형사이니까. 연주가 답한다.
“성폭행은 없었고, 추행 흔적만 있습니다.”
모두가 한숨을 쉰다. 피해자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차라리 성폭행이 일어났다면 범인의 DNA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성적 추행만 이루어질 경우에는 범인을 잡기 더 힘들다.
관우가 속이 안 좋아진다는 얼굴로 말했다.
“범인 새끼가 고자인 거 아닐까요?”
음, 성기능적 문제가 있다는 가정. 그것도 일리가 있다. 많은 범죄 사례에서 성폭행이 아닌 추행만 남은 경우 검거된 범인에게 성기능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발견된 바 있다.
나는 몸을 내밀며 물었다.
“KCSI에서 뭐래? 사망 전에 저런 거야, 사망 후에 저런 거야?”
연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신체 반응으로 추정해 본 결과 사망 후에 그런 것 같답니다.”
“시간(屍姦)…….”
시체를 간음하는 것으로 이미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행위이다. 사체영득죄 및 시체 훼손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법적으로는 사체 등 오욕죄에 해당할 뿐 시체 훼손이라 할 수는 없다.
나는 연주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지도 다시 보여줘.”
연주가 화면을 조작하자, 사건 발생 지역이 표기된 지도가 나온다. 붉은 점으로 표기된 사건 지역.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선부1동, 2동, 3동, 와동, 신길동, 백운동…….”
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지막 사건은 원곡동입니다.”
방금 나열한 동네 이름들. 동네들은 모두 행정구역이 서로 바짝 붙어 있다. 결국 비슷한 곳에서 연쇄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버퍼 존(Buffer zone)…….”
범죄자의 위치를 찾으려는 행동은 범죄 분석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일상 활동 이론에 따르면 범죄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범죄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범죄의 공간적 형태는 범죄 정보 분석에 중요한 키가 된다.
범죄자는 최소한의 노력을 통해 범죄를 성공시키길 원한다. 그러므로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범죄를 하려고 하는 반면, 자신의 거주 지역 근처에서 주목받기를 원치 않음으로 거주 지역 근처에서 범죄를 하지 않으려는 결정을 내린다. 이를 거리 부패와 버퍼 존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중 범인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범인은 언급된 동네 중 하나에 살고 있을 수 있고, 혹은 이 동네를 제외한 가까운 어느 동네에 살고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오진규가 굴리던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행동 패턴 분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안산시 어딘가 놈이 살고 있는 겁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안산에 대해 잘 아시는 사람 있습니까?”
모두 조용해진다. 가까운 곳이긴 하지만 살아봤거나 자주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는 팀원들의 답을 기다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안산으로 갑시다. 생존자들부터 만나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