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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03화 (202/328)

살인의 기억 203화

16. Journey to crime(5)

안산단원경찰서.

국가수사본부 인력들이 경찰서에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인력 몇이 차에 대고 경례를 하고 있다.

국가수사본부의 명성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상태에다 내 총경 진급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연주 말로는 사상 최연소 총경 부임에 대한 소문이 경찰청 내에 자자하다고 한다. 뭐, 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진급은 강혁 아저씨가 해준 거지, 진짜 내 능력으로 따낸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물론 맡는 사건마다 해결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진급을 했겠지만 이렇게 빠르게 올라온 건 아저씨 덕분이다.

우리가 관우의 SUV 차량에서 내리자 빠르게 달려온 형사가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과장님.”

나는 나보다 한참 선배 같아 보이는 남자에게 목례를 취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오진규가 웃으며 나선다.

“이야, 선규야. 오랜만이다?”

선규라고 불린 남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음, 역시 발 넓은 오진규다. 어디를 가나 아는 사람이 한 명은 있구나. 덕분에 편해지는 일들이 많다. 오진규가 형사를 눈짓하며 말했다.

“정선규라고. 제 2년 후배이고, 현재 안산단원경찰서 강력계 계장입니다.”

나는 정선규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현도경입니다.”

정선규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악수를 한다.

“영광입니다.”

“…….”

좀 부담스럽다. 오진규 경감 2년 후배면 나보다 적어도 여덟 살은 많을 텐데. 아무리 계급이 깡패라도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닌데.

눈치 빠른 오진규가 정선규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생존자들 다 불러놨지?”

“예, 형님.”

“좋아, 수고했다.”

오진규가 날 힐끔 본 뒤 연주와 관우에게 말했다.

“생존자 수가 총 아홉인데 어떻게 나눌까?”

오진규가 마지막으로 날 보며 물었다.

“과장님도 직접 인터뷰하실 겁니까?”

정선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계장인 자신도 범죄자를 직접 신문하거나, 목격자 진술을 따지 않는데 국가수사본부 과장이 직접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놀란 모양이다.

나는 그런 정선규의 눈빛을 가뿐히 무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하겠습니다.”

“예, 그럼 제가 셋, 나머지가 두 명씩 맡는 걸로 하죠.”

오진규는 항상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업무 분담을 할 때도 항상 자신이 가장 큰 덩어리를 맡는 사람이다. 그의 이런 성정은 연주나 관우가 나이 많은 오진규를 꼰대 취급 하지 않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도 한다.

오진규가 놀란 정선규를 어깨로 툭 밀며 말했다.

“뭐 해? 과장님 계속 세워둘 거야? 안내해.”

정선규가 화들짝 놀라며 뛰기 시작한다.

“다들 들었지? 둘씩 삼 조, 나머지 셋은 한 방으로 넣어! 빨리들 움직여!”

정선규의 말을 들은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 하자, 오진규가 먼저 나선다.

“선규야.”

“예?”

“생존자 개인정보 보호는 어따 팔아먹었냐, 이놈의 자식아.”

“아!”

정선규는 원래 이 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나 때문에 긴장해 실수를 했는지 내 눈치를 보며 허리를 숙여 보인 후 다시 지시를 내린다.

“생존자끼리 마주치는 일 없게 하고, 각자 다른 대기실에 대기시켜.”

“예!”

계장이나 되는 양반이 기본적인 걸 몰랐을 리는 없으니 진짜 실수일 것이다. 나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하고 있는 오진규를 바라보았다. 역시 이 사람이 옆에 있으면 여러모로 편하다. 내 선택은 옳았다.

우리는 각자 방 하나씩을 배정받았다. 원래 취조실로 쓰이는 곳인지 위압적인 분위기였지만 다들 경험 많은 형사들이니 생존자들이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해 줄 것이다.

나는 일부러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올 생존자로 하여금 자신이 죄를 지은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고 여경이 생존자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과장님, 왔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안색이 하얗게 질린 20대 중반의 여성이 머뭇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일부러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자, 편히 앉으세요.”

“…….”

“괜찮습니다, 여기 경찰서입니다. 누구도 당신을 괴롭힐 수 없어요.”

여성은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긴장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인다.

“고맙습니다…….”

여성은 잔뜩 기가 죽은 모습으로 들어온다. 뒤에서 문 닫히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 돌아보는 여성. 나는 여성에게 먼저 자리를 권한 뒤 물었다.

“따뜻한 차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나는 최대한 여성이 놀라지 않게 천천히 움직여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정선규의 부하 형사들이 미리 방마다 들어올 생존자들을 정해놓고 그들의 신상명세와 1차 진술서가 기록된 파일을 열어둔 것이 보인다.

나는 노트북을 보며 물었다.

“이선희 씨 맞습니까?”

“네…….”

“2025년 10월 29일 밤 11시경, 와동 화정로에서 습격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당일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모두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이선희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힘든 기색으로 양손을 맞잡는다. 언뜻 보니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저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

그건 이미 신상명세에 기록되어 있다.

“네, 계속하세요.”

“그날 일이 끝나고 잠깐 친구를 만났어요. 식사를 하고 가볍게 맥주를 한잔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댁이 어디십니까?”

“와동 방죽 공원 뒤 빌라요.”

“걸어오신 겁니까?”

“네, 보통 걸어 다녀요.”

나는 지도를 펼쳐놓고 물었다.

“직장 위치는 어디입니까?”

“관산 꿈 동산공원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이요.”

“도보로 다니시기엔 꽤 먼 거리인데.”

이선희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게, 제가 살이 좀 쪘었는데 1년 전부터 걸어 다니기 시작한 뒤로 살도 잘 빠지고 해서…… 운동할 시간을 따로 낼 형편이 아니라 걷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하고 있어요.”

음, 마른 체형 같아 보이는데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인가 보다.

“식사는 어디에서 하셨습니까?”

“원곡로 다문화 거리요.”

“실례지만 어느 식당에서 드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자주 가는 곳인데 양 꼬치 파는 집이에요.”

이선희는 백을 뒤져 명함을 꺼내 내민다. 양 꼬치 집 명함을 확인한 나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네.”

“감사합니다. 친구분과 함께 계셨다고 하셨는데 어디서 헤어지셨습니까?”

“다이아몬드 공원 근처에서 헤어졌어요.”

“혹시 그때 수상한 사람이 따라오진 않았습니까?”

이선희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친구와 수다 떠느라 주변을 살피지 않아서.”

“식당에서는 어땠습니까? 주변에 자꾸 눈이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

“네?”

이선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원래 여자 둘이 다니면 남자들이 많이 봐요. 말 거는 사람도 있고.”

음, 그런 사람이 많은 모양이구나. 난 한 번도 안 그래봐서 그런 심리는 모르는데. 어떻게 한잔하고 꼬셔보려는 수작인 걸까?

“그날도 그랬습니까?”

“네, 양 꼬치 집에서 한 명이 말을 걸었어요.”

“뭐라고 말을 걸었습니까?”

“테이블 계산 다 해줄 테니까 같이 술 한잔하자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거절했어요. 전 그런 거 질색이라서. 게다가 거긴 어린이 집 근처 식당인데 괜히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학부모님들이 뭐라고 하실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선희 씨를 공격한 사람과 식당에서 말을 건 사람이 같은 인물은 아니었습니까?”

이선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달라요. 말을 건 사람은 키가 180은 넘어 보였어요.”

“공격한 사람은 작았습니까?”

“네, 한 170㎝ 정도요.”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이선희가 침을 꿀꺽 삼킨 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거기가…… 안산 외국인 인권센터 근처를 지날 때였어요. 뒤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들렸어요. 누가 뛰나 보다 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 그, 그 사람이…… 돌로 저를 내려쳤어요…….”

“돌이 확실합니까?”

이선희의 얼굴에는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다. 오른쪽 관자놀이 앞쪽에 남은 상처. 조금만 더 관자놀이 쪽에 가까운 곳에 맞았다면 이 사람도 내 앞에 앉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선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확실해요. 처음 한 대를 맞으면서 고개를 돌려서 피했어요. 그래도 맞긴 했는데 빗맞았고…… 두 번째 내려칠 때 제가 그 사람 손을 막았거든요. 그때 돌을 봤어요.”

“어떻게 생긴 돌이었습니까?”

“네?”

“특이하게 생긴 돌은 아니었습니까? 예를 들면 쇠구슬 같은.”

“아니요, 그냥 돌이었어요. 옆에 보면 바윗돌 쌓아 만든 구조물들 있는데 거기 보면 그런 돌들이 많아요.”

음, 정말 현장의 물건을 사용했구나.

“그다음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사람 손을 막고 난 다음에…… 비명을 질렀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제 핸드백을 빼앗으려고 했어요.”

“빼앗겼습니까?”

“안 뺏기려고 꽉 잡았지만 끈이 끊어졌어요.”

“범인이 가져간 겁니까?”

“네…….”

“소지품이 뭐였습니까?”

“카드 지갑, 립 밤, 파운데이션…… 그리고 그날 어린이 집 아기가 준 손편지요.”

“카드 지갑에 현금은 없었습니까?”

“네, 전 평소 현금을 안 가지고 다녀요.”

“남자가 아무 말도 안 했습니까? 예를 들면 핸드백을 빼앗으면서 ‘내놔!’라고 했거나.”

“아뇨, 힘쓰면서 끙끙거린 거 말고는 말 안 했어요.”

“핸드백을 빼앗은 후에 바로 도주했습니까?”

“아뇨, 다시 돌로 내려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외국인 인권센터 사무실 불이 켜졌거든요. 그걸 보더니 바로 도망갔어요.”

“거기서 누가 나왔습니까?”

“제 비명 소리 듣고 경비 아저씨가 나오셨어요. 신고도 그분이 해주셨고.”

음, 여기까지. 이 사람의 진술은 이것이 전부이다. 그녀는 전에 범인을 마주친 적이 없거나, 마주치고도 몰랐을 확률이 높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진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더 생각나시는 것이 있으시면 전화 주세요.”

이선희에게 명함을 주고 내보내자, 곧 여경이 다른 생존자를 데려온다. 나는 이선희를 맞이할 때와 같이 일어나서 그녀를 맞았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나는 웃으며 자리를 권한 뒤 노트북에 떠오른 신상명세를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사람은 공원의 화장실에서 공격당한 여성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일단 명함을 먼저 보여주고 안심시킨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1차 진술서를 자세히 본 뒤 물었다.

“범인이…… 망치로 공격을 했다고 진술하셨는데. 맞습니까?”

두 번째 생존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망치가…… 확실합니까?”

그녀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연쇄사건의 범인이 중간에 무기를 바꾸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설마 동시에 두 명의 범인이 활동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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