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05화 (204/328)

살인의 기억 205화

16. Journey to crime(7)

연주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공통점. 그녀 말처럼 모든 선이 원곡로를 지나고 있다.

당장 내가 인터뷰한 이선희 씨도 거기서 친구와 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고, 이영주는 대형마트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 원곡로를 지나야 한다. 분명히 여기 뭔가 있다.

관우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외친다.

“연주 나이스!”

오진규가 연주의 어깨를 두들겨 주는 것을 보던 나는 팔짱을 끼고 물었다.

“이 동네에 대해 아는 사람 있어?”

모두 조용하다. 안산에 자주 놀러 왔던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오진규가 잠시 팀원들을 둘러보다 일어난다.

“아는 녀석을 데려오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여긴 안산단원경찰서. 이 동네 지도를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는 형사들이 즐비하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던 나는 오진규가 데려온 사람을 보고 놀랐다.

“어……?”

말단 형사를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정선규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강력계 계장인데 이런 허드렛일을 시키는 건 미안하다. 오진규를 힐끔 보니 괜찮다며 눈을 찡긋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일단 정선규에게 정중히 말했다.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계장님.”

정선규는 무슨 말이냐는 듯 손사래를 친다.

“아이고, 아닙니다. 과장님!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원곡동에 대해 궁금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정선규가 손바닥을 비비며 자리를 권한다.

“앉아 계시면 바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오진규를 힐끔 보며 자리에 앉았다. 오진규가 내 옆에 앉으며 짧게 중얼거린다.

“감히 과장님이 직접 오셨는데 지가 안 움직이고 배기겠습니까?”

“…….”

말단 형사들의 공조 협조도 아니고, 자기 선배인 오진규가 왔기에 들어온 줄 알았더니 나 때문이었구나. 정선규가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에…… 설명하겠습니다. 일명 안산 다문화 거리, 안산 외국인 거리, 원곡동 골목 등으로 불리는 이곳은 안산역 1번 출구에서 지하상가를 건너면 나오는 곳입니다. 예전부터 매우 유명했던 곳이고, 외국인이 많아 먹자 골목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오진규가 볼펜을 든 손을 불쑥 들어 보이며 말했다.

“유흥가 밀집 지역이란 뜻인가?”

“아…… 유흥가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식당이 많습니다. 술도 팔긴 합니다만, 많은 먹거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에 없는 식재료들로 만든 요리가 주를 이루고 신기한 요리들도 많이 팝니다. 예를 들면 소 혓바닥이나 힘줄, 돼지 내장들 같은.”

오진규가 잠시 생각해 보다 물었다.

“식재료 나열하는 걸 보니 중국인 거리 같은데. 차이나 타운이 아니라 외국인 거리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나?”

“예, 물론입니다. 두리안이나 망고 스틱 같은 이국적인 먹거리도 있고, 인도나 터키, 중동 아시아 음식들도 팝니다.”

“그럼 주로 중앙 아시아 쪽?”

“아뇨, 미국, 미얀마, 파키스탄,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에 나이지리아 토속 음식점도 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고?”

“아뇨, 대부분 한국에 정착한 본토인입니다.”

오진규가 머리를 긁으며 날 힐끔 본다.

“이거…… 범인이 외국인이면 골치 아프겠는데요. 어느 나라 놈인지도 모르니.”

음, 오진규의 말이 옳다. 범인은 지금껏 11건의 범행을 하며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왜? CCTV를 피해가듯 자신에 대한 정보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니다. 안산경찰서의 지원으로 CCTV에 잡힌 범인 모습을 이미 보았다. 그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CCTV를 피해가는 치밀함은 보이지 않았다.

한 곳에서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걷다가 CCTV를 힐끔 보곤 고개를 더 숙이고 지나간 경우도 있었다.

오진규가 펜으로 자신이 체크한 수사기록을 살펴보며 중얼거린다.

“아무리 봐도 범인 새끼가 그리 똑똑한 놈은 아닌 것 같고, 말을 안 한 것도 수상하고. 외국인 쪽으로 가닥을 잡는 쪽이 타당하겠죠?”

내 생각도 그렇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정선규를 보며 물었다.

“이쪽 형사님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정선규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습관적으로 되묻는다.

“예?”

“이쪽 형사님들도 외국인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셨냐 묻는 겁니다.”

“…….”

정선규의 얼굴이 빨개진다. 내 옆에 있던 연주가 조용히 머리를 숙이며 속삭인다.

“과장님. 여기 형사들은 범인의 사냥터가 원곡동이란 걸 몰라요.”

아, 그렇구나. 이건 연주가 발견해 낸 것이었지.

“미안합니다, 넘어가죠. 계속하세요.”

정선규가 민망한 얼굴로 헛기침을 한다.

“어험, 예…….”

정선규가 다시 설명하기 전에 오진규가 다시 손을 든다.

“아까 골목이란 단어를 쓰던데.”

정선규는 비교적 편하게 상대할 수 있는 오진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예, 원곡동 골목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골목 크기가 어때?”

“음, 그리 좁은 골목은 아닙니다만, 가판을 깔아놔서 좁게 보이긴 합니다. 사람 세 명 정도는 동시에 지나갈 수 있고요.”

“차량 진입은?”

“안 됩니다.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 대고 들어가야 되고, 배달 오토바이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식당 주인들은 식자재 공급을 어떻게 받고?”

“새벽에 사람이 없고 가판이 깔리기 전 시간에만 트럭이 들어와 공급하는 것으로 압니다.”

오진규가 날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범인이 차 안에 잠복한 채로 사냥감을 물색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음, 그렇네요.”

정선규가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시장 상인 사이에 유대가 좋은 편이라 중앙공원에서 족구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하는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공원? 또 공원이 나왔다. 안산에는 정말 공원이 많은 모양이다. 내가 손을 슬쩍 들자 정선규가 과장된 몸짓으로 차려 자세를 하며 말했다.

“예, 과장님.”

“중앙공원 규모가 어느 정도입니까?”

“아, 예! 말이 공원이지 실은 놀이터 수준입니다.”

“위치는 어떻습니까? 이름처럼 정말 시장 중앙에 있습니까?”

“네, 맞습니다.”

“공원에 서 있으면 거리들이 다 보이는 겁니까?”

“예, 네 방면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다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관우를 바라보았다. 눈치 빠른 관우는 벌써 CCTV 수거 지역 1순위로 중앙공원을 기록하고 있다. 정선규가 본능적으로 이곳이 중요 지역임을 눈치채고 말했다.

“범인이 정말 외국인일까요?”

나는 정선규를 바라보았다. 답답한 얼굴의 계장. 그의 마음은 백번 이해가 된다. 누구나 자기 새끼들은 소중하다. 두 달간 무려 아홉 명의 부상자와 두 명의 사망자가 생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계장의 속이 얼마나 썩어 들어갈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아직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범인이 그곳에서 사냥감을 물색하는 것 같습니다.”

정선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예?”

나는 천천히 일어나 말했다.

“피해자 동선을 보면 거기서 밥을 먹었거나, 혹은 그곳을 지나 어딘가로 가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열 한 명의 피해자 전부 말입니다.”

정선규의 눈이 더 커진다. 그러다 문득 사납게 휘어지는 눈매. 나는 저 반응이 어떤 것인지 안다.

이제 정선규가 이곳을 나가면 안산단원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국수본이 몇 시간 만에 발견한 단서를 두 달이나 발견하지 못했으니 속이 터지겠지.

나는 괜히 고생하는 일선 형사들이 혼이 날까 그를 다독였다.

“저희도 우연히 알게 된 겁니다. 밑에 형사들 너무 깨지 마세요.”

“…….”

“계장님?”

내가 다시 정선규를 부르자,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그.

“예…… 알겠습니다, 과장님.”

말은 저리해도 나가자마자 난리를 치겠지. 그래도 내 말로 인해 조금이라도 불호령이 감해진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정선규의 표정을 살피며 화제를 돌렸다.

“다문화 거리이면 치안센터가 있죠?”

“예, 있습니다.”

나는 오진규를 눈짓하며 말했다.

“오 선배님께 주소 좀 보내주세요.”

“예, 과장님. 바로 보내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 우린 그만 현장으로 나갑시다.”

팀원들이 밖으로 나간다. 가장 마지막에 나온 오진규가 실소를 지으며 정선규의 어깨를 툭 친다.

“야, 애들 괴롭히지 마라. 나도 못 알아챘던 거야.”

정선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선배가 아니었습니까? 과장님도 아니고…… 그럼 누가?”

“어, 연주라고. 경위 있어.”

“아, 그 여형사요?”

“어.”

“어쩐지 국수본에 있다 했더니 꽤 능력 있나 봅니다.”

“낄낄, 능력 없는 놈이 여기 말뚝 박고 있을 리가 있냐? 창단 멤버인데.”

“헉, 그래요?”

오진규가 씩 웃으며 정선규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 있을 때 협조 잘 좀 부탁한다. 괜히 과장님 눈 밖에 나지 말고. 저 양반 여기서 멈출 사람이 아니다. 훨씬 더 높게 올라갈 거야.”

정선규가 침을 꿀꺽 삼킨다.

“사, 삼십 대에 총경인데…… 여기서 더…….”

“하하, 삼십 대에 총경까지 단 양반이 아직도 한계에 안 부딪혔다 이 말씀이지. 그러니까 잘해.”

오진규가 정선규의 등을 강하게 내려치고 나간다. 혼자 남은 정선규가 침을 꿀꺽 삼키다 급히 전화를 든다.

“나다! 빨리 원곡동 치안센터 연락해서 관리자급 대기하라고 해! 그래! 국수본에서 중대범죄과 과장님이 직접 나오셨어! 실수라도 하면 그 새끼 내가 죽여 버린다고 꼭 전하고!”

* * *

안산 다문화 거리.

“Jual stik mangga!”

“Bún ngon.”

“とんかつとうどん!”

각기 다른 언어로 호객을 하는 소리들이 들리는 이곳.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많아 마치 해외여행을 온 기분이 드는 곳이다.

CCTV를 가지고 갈 커다란 가방을 멘 관우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여기저기 구경을 다닌다.

“우와! 여기 진짜 한국 맞습니까?”

관우가 가판에 쪼그리고 앉아 파는 물건을 보더니 오만상을 찌푸리며 돌아본다.

“설마 이거 오리 혓바닥 아니겠죠?”

연주가 코를 막고 인상을 쓴다.

“옆에 곤 달걀 아니야, 그거?”

관우가 다시 가판을 돌아보며 멀쩡해 보이는 계란을 가리킨다.

“이거?”

연주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린다.

“으…….”

곤 달걀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는 연주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보양식을 발견한 하이에나로 변신한 오진규가 달걀 하나를 사 깨 먹는 걸 보고 바로 눈치챘다.

저건 부화하기 직전의 다 자란 병아리가 든 계란을 통째로 삶은 요리다. TV에서만 봤는데 실제로 저런 걸 파는구나.

그건 그렇고 저런 걸 왜 먹나 모르겠다. 보기만 해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

아직 빛도 보지 못한 병아리를 고소하다는 듯 씹어 먹던 오진규가 나와 눈이 마주치곤 배시시 웃는다.

“아, 과장님. 비위가 안 좋으셨지, 참. 죄송합니다. 제가 이걸 좋아해서. 아직 다 자라지 않아서 그런지 뼈까지 부드럽게 씹히거든요. 아주 고소해요, 이놈이.”

연주가 더 못 참겠는지 구석으로 뛰어간다.

“우웩!”

오진규가 반쯤 먹은 달걀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여, 남이 먹는 거 보고 그러는 거 아니다? 이거 엄연히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기인 음식이라고.”

그런 거 따위 몰라요, 제발 내 앞에서 당장 그것 좀 치워요. 토할 것 같으니까. 내 표정을 살핀 오진규가 얼른 입에 남은 음식을 욱여넣은 후 손바닥을 털며 화제를 돌린다.

“바로 수사 시작하시죠. 저기 치안센터 애들 나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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