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06화 (205/328)

살인의 기억 206화

16. Journey to crime(8)

잔뜩 얼어 있는 치안센터 순경들.

관우가 CCTV 위치를 잘 아는 순경 한 명을 데리고 가고, 연주는 외국어에 능통한 경사 한 명을 데리고 주변을 탐문하러 간다.

나는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정복 경찰을 보며 물었다.

“담당자 되십니까?”

“경위 한동철! 지구대 소장입니다!”

“편하게 말씀해도 됩니다.”

“이게 편합니다!”

음, 오십은 넘어 보이는 양반인데. 이건 좀. 내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히죽 웃은 오진규가 속삭인다.

“계급과 직책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겠습니다, 과장님.”

“…….”

“총경 계급에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과장 명함이면 지구대 소장 정도는 하루아침에 날려 버릴 파워가 있으니까 저러는 것도 이해합시다.”

누가 누굴 날려? 내가 왜 멀쩡하게 근무 잘하고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을 날려 버려? 실수 좀 하면 어때? 실수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계급으로 갑질이나 하고 있을 생각은 전혀 없던 나는 한동철 소장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항상 수고 많습니다.”

“…….”

“이 동네 순찰 현황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아, 편하게 계세요. 너무 굳은 자세로 계시네요.”

한동철은 자꾸 오진규의 눈치를 본다. 이래도 되는 건지 눈으로 묻는 모양이지만 오진규는 말없이 웃기만 하고 있다.

나는 슬슬 추워지는 날씨에 나이 지긋한 소장을 세워두는 것이 미안해 주변의 카페를 찾았다.

따뜻한 차를 시켜놓고 마주 앉은 소장. 앉은 자세에서도 정자세를 하고 있는 것을 본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꾸 이러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저는 이게 편합니다!”

“제가 불편해서 그럽니다.”

“…….”

소장이 다시 오진규를 힐끔거린다. 오진규도 더는 장난치지 않고 손사래를 친다.

“편하게 앉아요. 괜찮습니다. 몇 년생입니까?”

“예…… 저 70입니다.”

“70이면 나랑 동갑이네.”

“그, 그렇습니까?”

“계급장 떼긴 뭐한 상황이니 그냥 마음만 편하게 먹고 갑시다. 여기서 한 말로 문제 삼지 않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이번에는 내 눈치를 보는 한동철. 나는 기회다 싶어 나섰다.

“네, 저도 약속합니다.”

“…….”

침울 꿀꺽 삼키는 한동철. 오진규가 벌떡 일어나 꼿꼿하게 앉은 한동철의 허리를 직접 굽혀준다.

“자자, 이렇게 편하게. 차도 한 모금 마시고.”

“그, 그게…….”

“우리 과장님이 언제까지 이런 쓸모없는 소모전을 하고 있어야 됩니까? 이게 진짜 실수라고, 이 양반아.”

“헙! 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허리 굽히고, 차 마시고.”

오진규의 말에 얼른 차를 들이켜는 한동철. 뜨거운 차를 잘도 마신 그가 최대한 편한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연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불편한 자세로 굳어 있는 것보다 낫다 싶었던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이 동네 전과자 데이터 가지고 계시죠?”

한동철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워낙 여러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많아서…… 국가에서 관리되고 있는 중범죄자는 어차피 입국도 안 되기 때문에 잔범들까지는 모릅니다.”

“한국에서 전과 쌓은 인간들은 추방됩니까?”

“가벼운 경범죄는 괜찮습니다만, 중대범죄를 저지르면 수감되거나, 국외 추방됩니다.”

“그럼 결국 지구대에서 관리하고 있는 자들은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란 뜻이군요?”

“예, 맞습니다. 특별히 관리 대상도 아닌 것이…… 노상 방뇨나 고성방가 같은 경범죄라 관리할 것도 없습니다…….”

대상을 좁힐 방법이 없구나. 좀 더 머리를 굴려봐야 할 것 같다.

오진규가 핸드폰에 저장해 둔 범인의 CCTV 스크린샷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동네 애들 잘 알죠? 여기 이놈과 비슷한 놈 본 적 있습니까?”

“…….”

저건 오진규 본인도 수확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보여준 것이리라.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밤에 찍힌 CCTV의 스크린샷은 내 가족이라고 해도 알아보기 힘든 화질이다. 게다가 안산단원경찰서 형사들도 몇 번이나 물어봤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오진규도 예상한 답변이었는지 바로 다음 질문을 던진다.

“그럼 여기 일하는 애들 중에 신장 170㎝에 날렵한 몸매 가진 놈들 있습니까?”

“…….”

한동철이 곤란한 얼굴로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 여기서 일하는 애들이 보통 다 그 체격이라.”

음, 그도 그럴 것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이나 일본, 미얀마나 파키스탄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 체격이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상 눈은 봤다고 했습니다. 파키스탄 사람같이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인물은 아닐 겁니다. 눈만 보고서는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모르는 사람들. 중국이나 일본, 넓게 잡아 동남아시아까지 인물 중에 추려도 많을까요?”

“예…… 뚱뚱하거나 키가 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쪽 미국인 거리에 가면 모를까.”

미국인일 리가 없다. 그랬다면 생존자들이 바로 외국인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눈동자 색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안산경찰서 형사들이 수사에 난항을 겪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범죄가 벌어지면 범죄자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추려 수사망을 좁혀야 하는데 여긴 그럴 수가 없다.

게다가 손님들까지 대부분이 외국인인 상황. 범인이 여기서 일하는 사람인지 뜨내기 외국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때 한동철의 어깨에 찬 무전기가 급히 울린다.

-순 하나, 순 하나!

한동철이 얼른 소리를 죽이려 무전기를 잡았지만 오진규가 그의 팔을 낚아챈다. 그러자 무전기가 다시 울린다.

-순 하나입니다.

-지구대로 신고접수, 어젯밤 11시경 잠자리 공원 공중 화장실에서 27세 여성이 습격당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 안산경찰서로 보고 중이니 순 하나는 즉시 공중 화장실로 출동해 KCSI 도착 전까지 현장통제 바람.

-알겠습니다.

오진규가 벌떡 일어났다.

“젠장, 또 사건이다.”

나 역시 일어나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일단 병원으로 후송된 것이 어제였다는 것과 사망자 발생이 아닌 신고 접수라는 무전의 내용상 피해자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나는 당황하고 있는 한동철을 보며 물었다.

“잠자리 공원이 어디 있습니까?”

한동철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바라본다.

“이 길로 쭉 가면 신길로가 나오는데 거길 지나면 바로 공원이 나옵니다.”

“가까운 큰 건물 없습니까?”

“대형마트가 있긴 한데.”

대형마트? 나는 순간적으로 이영주를 떠올렸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원곡 공원에서 습격을 당했다.

“혹시 그 마트가 국내 대기업에서 하는 프랜차이즈 마트입니까?”

“예, 맞습니다. Z 마트라고 아시죠?”

나는 오진규와 눈을 맞췄다. 어쩌면 범인은 마트 직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른 일어나며 말했다.

“잠자리 공원이란 곳으로 갑시다!”

* * *

천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갈대 습지. 잠자리 공원이란 이름은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라 그런지 잠자리들 수백 마리가 날아다니는 이곳. 어젯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르고 엄마 손을 잡고 마실 나온 어린이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무전 내용처럼 지구대에서 연락을 취했는지 KCSI 대원들이 나와 있는 공중화장실. 주민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기웃거리는 것을 본 한동철 소장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고함을 지른다.

“야! 주민들 통제부터 해!”

한동철을 본 순경들이 얼른 뛰어 주민들을 밀어내고 폴리스라인이 설치된다. 나와 오진규는 처음 보는 KCSI 대원들 사이를 걸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별것 없어 보이는 화장실. 여자 화장실 문 앞에 혈흔이 보인다. 오진규가 쪼그리고 앉아 혈흔을 자세히 본 뒤 말했다.

“이 정도면…… 출혈량 40㏄ 미만이겠네.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겁니다.”

오진규의 말을 들은 KCSI 대원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걸 어찌 알았냐는 얼굴. 하긴 오진규만큼 경험 많은 형사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을 것이다.

오진규는 장갑을 착용 후 혈흔 앞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별거 없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현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세면대가 있는 곳이다. 나는 천천히 뒤로 돌아 화장실 입구를 보았다.

생존자 인터뷰상 범인은 화장실을 가는 여성이 안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는 것을 기다린 후 화장실로 들어온다. 그리고 세면대 앞에서 망치, 혹은 돌을 들고 기다렸다.

그 후에 칸 안에서 여성이 나올 때를 노려 금품을 갈취한 뒤 돌이나 망치로 공격하는 것이다. 놈의 패턴을 다시 정리해 보자.

1. 심야

2. 혼자 귀가하는 여성 타겟

3. 뒤따라 감

4. 인적 없는 골목이나 공원

5. 길가의 돌 사용

6. 소지품 갈취

7. 망치나 돌을 사용해 공격

8. 옷을 벗겨 성추행

6, 7번과 8번의 순서가 중요하다. 범인의 목적이 단순히 돈이었다면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뒷머리를 공격 후 소지품을 갈취하고 도주하거나 옷을 벗긴 후 추행하는 것이 적합한 순서이다.

하지만 이놈은 돈을 다 빼앗은 후에 공격을 했다. 돈이 목적이라면 그것을 얻은 후 따로 공격할 이유가 없다.

혹여 자신이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해 공격을 했다면 상대를 죽일 이유까진 없다.

하지만 그는 공격한 상대가 사망하면 옷을 벗기고 추행을 저지른다. 이렇게 보면 그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돈, 나머지 하나는 추행이다.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루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우두커니 화장실 입구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 있던 때 한동철 소장이 뒤늦게 들어오며 말했다.

“과장님, 신고 내용 좀 확인하느라 늦었습니다.”

“예, 괜찮습니다. 피해자는 좀 어떻습니까?”

“후두부에 출혈이 있고 두개골에 약한 골절이 있습니다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답니다.”

“다행이군요.”

나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며 물었다.

“사건 시각은 몇 시였습니까?”

“밤 11시 40분입니다.”

“피해자 직업은요?”

“1인 사진관을 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사진관 위치는 어디입니까?”

“화랑로에 위치한 사진관입니다.”

나는 펜을 꺼내 지도에 표기했다. 그러고는 이곳 잠자리 공원까지 일직선을 그은 후 중얼거렸다.

“또 다문화 거리를 지나는 동선이다.”

한동철 소장은 수사 상황을 공유받을 위치가 아니었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눈만 깜빡이고 있다. 나는 지도를 노려보며 말했다.

“빼앗긴 금품은 무엇입니까?”

“아, 예.”

한동철 소장이 외우지 못했는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며 말했다.

“현금 4만 9천 원입니다.”

“…….”

나는 이를 악물었다. 개새끼가 겨우 오만 원도 안 되는 돈 빼앗으려고 사람을 병원에 실려가게 해?

오진규가 화장실 안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나오며 한숨을 쉰다.

“이 새끼 아직도 총액이 백만 원을 못 넘고 있네. 이 정도면 범죄에 소질이 없는 놈이라고 해야 되나, 돈 있는 사람 찍을 줄 모르는 놈이라고 해야 되나? 건드려도 꼭 힘없는 여성들만 노리고. 이러니 남자들이 전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지, 개 같은 놈.”

오진규가 KCSI 대원을 보며 물었다.

“뭐 나온 거 있습니까?”

KCSI 대원이 수집되고 있는 증거물을 눈짓하며 말했다.

“아직 모릅니다, 다 긁어가고 있으니 조사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후, 미치겠군. 어이 소장님. 생존자 지금 의식 있답니까?”

“예, 아침에 정신 차렸답니다. 신고자는 부모이고.”

“병원에 가 봅시다.”

“예, 안내하겠습니다.”

오진규와 한동철이 먼저 나선다. 나는 가만히 화장실을 노려보다 그들을 따라 화장실 입구 쪽으로 걸었다.

세면대에 걸려 있는 동그란 거울 두 개. 범인은 저 거울 앞에 서서 안에 들어간 여성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희열에 넘쳐 가슴이 두근거렸을까?

긴장감 때문에 손이 차가워지고 손이 떨렸을까?

빼앗은 돈으로 무얼 할지 고민하고 있었을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거울을 노려보았다.

‘잡히기만 해라, 짐승 새끼야.’

공원 공중 화장실 거울이 점점 흑백으로 물들고 주변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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