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07화
16. Journey to crime(9)
‘他們賣雞蛋!’
‘bún gạo! bún gạo!’
‘おいしい、おいしい’
시끌벅적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울리는 공원.
나는 공원 가로등 아래 한쪽 어깨를 기대고 팔짱을 끼고 있다. 짝다리를 짚고 한쪽 다리를 슬쩍 꼬아 사람들 구경을 하는 중이다.
슬쩍 올려 보니 가로등 위에 CCTV가 있는 것이 보인다. 주변을 보니 다음 CCTV는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CCTV 바로 아래 있는 편이 가장 안전한 것 같아 이곳을 택했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본다. 아주 낡은 싸구려 가죽 시계의 시간이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살짝 아파온다. 몇 시간이나 서 있었을까? 나는 육체의 고통을 아스라이 느끼면서도 사람들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다.
혼자 있는 여자, 혹은 둘이 있는 여자가 우선이다. 둘은 언젠가 헤어진다.
키가 너무 크거나 덩치가 크면 안 따라간다. 제압하기 힘드니까.
남자가 곁에 있는 여자는 처음부터 보지 않는다.
여기 서 있는 동안 조건에 부합하는 여성이 열 명 정도 지나갔다. 처음 셋은 너무 이른 시간에 발견해 버렸다.
식당이 많은 곳이라 혼자 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운이 나쁜 날엔 몇 시간씩 서 있어야 겨우 한 명을 발견하곤 하지만 오늘따라 조건에 맞는 여자가 많다.
오늘은 파티를 하는 날이다. 내가 사람을 고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를 놓친 후 금방 또 하나가 온다는 보장은 없으니 대충 돈 좀 있다 싶으면 따라갈 거다.
그때, 젊어 보이는 여자가 꽤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거리를 구경하며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누군가를 찾거나, 기다리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이 동네가 매우 익숙한 듯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상인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걷는 여자.
나는 여러 번 실패했다. 돈이 있어 보여 접근했는데 주머니에 현금이 하나도 없는 여자도 있었다.
신용카드밖에 없다며 덜덜 떠는 손으로 카드를 내미는 여자들. 하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카드를 쓸 리는 없다. 저 여자는 돈이 좀 있을까?
나는 모자를 한번 눌러쓰고 CCTV가 비추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 여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청바지를 입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 엉덩이 부분에 브랜드 명이 있다. 많이 본 브랜드이다. 꽤 비싼 청바지라고 들었다. 상의는 스포츠 브랜드 외투 안에 남방을 입었다. 여기까지 보면 아주 평범한 여자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에 아주 비싸 보이는 카메라 가방이 걸려 있다. 저걸 장물로 처리하면 웬만한 현금보다 나을 것이다.
나는 약 50미터 이상 떨어져 그녀를 쫓아간다. 제발 저 여자가 내가 공격할 수 있는 곳을 지나기를.
어제 따라갔던 여자는 갑자기 사람 많은 곳에서 버스를 타버렸다. 그래서 난 다시 계획을 세워야 했다. 동네가 익숙해 보이는 여자로. 그런 사람은 인근에 살 확률이 높다.
걸어 다닐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나름의 계획이 부디 맞아떨어지기를.
여자는 상점 거리를 지나 인적이 드문 길가로 나온다. 하지만 여긴 차가 너무 많다. 도로 옆길을 따라 걷던 그녀가 육교 아래로 내려가는 걸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걸린 웃음을 참았다.
저 여자가 내려가는 곳. 그곳은 내가 가장 선호하는 공원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할까? 사람이 없는 다리 밑? 인적이 드문 갈대숲?
그때 걸어가던 여자가 문득 뒤를 돌아본다. 나는 상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걸었다. 고개는 너무 숙이지 않는다.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가 고개까지 숙이고 걸으면 도망가는 여자가 있다.
나는 그것을 경험해 보았기에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오십 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 그런지 날 힐끔 보았던 여자가 다시 길을 걷는다.
여자가 앞을 보자마자 다시 걸음걸이를 천천히 가져간다. 어디로 가는지 충분히 확인하고 대응할 수 있는 거리가 바로 이쯤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주머니에서 무선 이어폰을 꺼내 귀에 착용하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튼다.
핸드폰도 아주 좋은 모델이다. 한국 모델이 아니라 미국 모델인 저 핸드폰은 중고가가 잘 떨어지지 않아 장물 처리가 아주 쉽고 돈도 잘 쳐준다.
사실 얼마 전까지 이런 사실을 모르고 현금만 빼앗았다. 하지만 우연히 얻은 명품지갑을 그냥 버리기도 뭣해서 좀 알아보니 이런 물건을 매입해 주는 녀석이 있었다.
한 놈과 흥정하는 건 내가 좀 손해 같지만 그래도 여러 놈에게 내 얼굴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그때 여자가 공중화장실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보인다. 그래! 거기로 가. 그쪽 방면에는 공원 출구가 없으니 당연히 화장실로 가는 거지? 그래! 좋아, 거기로 가는 거야!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여자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요즘 공중 화장실이 좋아져서 안에 사람이 없으면 불이 자동으로 꺼진다. 여자가 들어가고 나서 안에 불이 켜졌다는 건 원래 안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상황 파악에 아주 좋은 시스템이다.
나는 조금 빠르게 걸어 화장실 앞에 도착 후 주변을 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이쪽으로 오는 연인들이 보인다. 혹시 화장실에 들어올 수 있으니 잠시 남자 화장실 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두 사람이 화장실 앞을 지나자마자 장갑을 끼고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냄새가 없는 화장실. 조용한 화장실 맨 끝 칸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나는 빙긋 웃으며 주머니를 뒤졌다. 아까 여자가 공원으로 내려올 때 주변에서 주운 돌멩이.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어쩐지 오늘은 좋은 운이 따를 것 같다.
나는 동그란 두 개의 거울 앞에 섰다. 안에 있는 여자가 의심하지 않도록 물도 틀었다.
빨간 휘발성 물질이 손바닥 면에 발라져 있는 장갑으로 거울을 쓱쓱 닦은 후 내 모습을 보았다.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마스크를 점검해 본다. 눈만 보이는 거울 속의 나는 꽤 잘생겨 보인다. 이런데 왜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걸까?
뭐, 당연히 돈이 없어 그런 것이겠지. 인물은 이만하면 괜찮지.
그때 화장실 안쪽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장 설레는 시간이 왔다.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돌과 망치를 들고 자신을 기다리는 날 마주치는 그 순간. 심장이 내려앉을 듯한 표정을 짓는 그 순간이 제일 좋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돌멩이를 꽉 쥐고 다른 손을 바지 뒤 춤에 넣었다. 손에 자루가 잡힌다. 벨트에 걸려 잘 빠지지 않는 그것을 억지로 꺼내느라 꼬리뼈가 조금 아프다.
자루에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 있는 나무망치. 꽤 오래 사용한 흔적이 보이는 나무망치를 오른손에 들고 한 손은 주머니 속 돌멩이를 꽉 쥐고 있다. 그리고 문의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여자의 도주로를 막아선 뒤 망치를 축 떨궜다.
문이 열리고 여전히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는지 아무 생각 없이 나오던 여자가 날 보고는 펄쩍 뛰며 소리를 지른다.
‘꺄아아아아악!!!!!!!!!!’
이제 익숙하다. 원래 나는 화장실에서 여자가 볼일을 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변태 같은 짓은 하지 않았었다. 그냥 인적이 드문 곳에서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돈을 빼앗은 후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즐기다 자리를 떴었다.
하지만 우연히 이 짓을 해본 뒤에 이렇게 놀라는 여자의 얼굴이 얼마나 섹시한지 느꼈다.
그리고 그 후부터 가장 선호하는 장소가 화장실이 되었다. 여자가 마구 뒤로 물러나며 소리친다.
‘누, 누구세요! 왜 이래요? 다, 다가오지 마요! 소리 지를 거예요!’
‘…….’
나는 말없이 망치를 들어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내 손에 망치가 있는 것을 보고는 더 놀란 얼굴로 소리를 치려 한다.
내가 망치로 내 입을 가리키며 지퍼를 닫는 시늉을 하자, 여자는 자기 손으로 입을 막으며 필사적으로 소리를 참는다.
다행이다, 똘똘한 여자라서. 여러 번 이 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자이니 오늘은 좀 더 색다른 짓을 해줘도 좋을 것 같다.
나는 망치로 여자의 카메라 가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여자는 카메라 가방을 품에 꼭 끌어안고 말을 더듬는다.
‘이, 이건 안 돼요. 제가 제일 아끼는 거예요…….’
여자는 얼른 상의 주머니를 뒤져 카드 지갑을 꺼낸다. 그 안에 접어서 넣어둔 현금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내미는 여자.
‘이, 이거 가져가요. 이게 전부예요.’
여자 손을 보니 척 봐도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현금이다.
나는 망치로 아래를 가리켰다. 여자는 침을 꼴깍 삼킨 후 천천히 현금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내가 발로 돈을 차는 시늉을 하자 똘똘한 여자가 자기 발로 현금을 내 쪽으로 찬다.
나는 여자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난 여러 번 봐서 알지. 내가 돈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넌 날 밀치고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지를 거야, 그렇지? 하지만 난 바보가 아니라고. 아, 물론 바보였던 적이 있어서 그런 짓을 당해보긴 했지만 이젠 아니야.
나는 다시 망치로 그녀의 카메라 가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여자는 더욱 강하게 가방을 끌어안고 빈다.
‘제발, 제발 이것만은 가져가지 말아요. 저 이거 없으면 장사 못 해요, 아저씨.’
똘똘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말귀를 못 알아먹나? 아님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걸까? 뭐, 괜찮다. 너무 고분고분한 여자보단 반항하는 쪽이 더 좋으니까.
나는 손안에서 망치를 굴리며 히죽 웃었다. 오늘은 나뭇가지가 없으니 이걸 써 볼까? 음, 이건 너무 큰가?
내가 물끄러미 망치를 바라보자, 여자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로 말했다.
‘저, 저기! 요기서 조금만 더 가면 은행 CD기가 있어요. 제가 현금이 좀 더 있는데 거기 가서 뽑아서 드리면 안 될까요?’
이 여자가 누굴 바보로 아나. 거기 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꺾고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가 내 손을 주시하고 있다. 나는 마스크 안에서 히죽 웃으며 돌멩이를 꺼냈다. 손에 착 감기는 야구공만 한 돌멩이. 이 여자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
네가 주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가져오면 되니까.
나는 순간적으로 스프링처럼 몸을 튕겨 달려나갔다. 여자가 반사적으로 다리를 들어 올린다.
나는 다른 손에 들린 망치로 여자의 다리를 때리려 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여자가 다리를 내리고 옆에 있던 화장실 문을 밀어버린다.
망치를 든 내 팔이 화장실 문에 걸린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도 계산해 뒀다. 다른 손에 든 돌멩이를 휘두르자, 머리 옆면을 맞고 쓰러지는 여자.
관자놀이 앞부분에서 피가 흐르고 여자는 정신이 없는지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다.
하하, 그래. 오늘은 역시 운수 좋은 날이다. 모든 것이 내 계획 안에 있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여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피를 흘리며 감기는 눈을 겨우 뜨고 날 끝까지 바라보는 여자.
머리를 맞는 바람에 이마를 바닥에서 떼지도 못하고 엉덩이만 들썩거리는 여자가 너무 섹시해 보인다.
나는 다른 손에 든 망치를 빙글 돌리며 여자의 바지를 바라보았다. 청바지라 좀 아쉽다. 이건 벗기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린다.
‘자기야, 잠깐만 기다려.’
‘아, 좀. 아까 지나갈 때 말하지. 꼭 지난 다음에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 빨리 갔다 와.’
‘근데 좀 무섭다.’
‘뭐가 무서워, 내가 밖에 있으면 되지.’
‘딴 데 갈까?’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여자의 입을 막은 후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에이, 그럼 계단 올라가야 돼. 자전거 들고 어떻게 올라가? 이거 빌린 자전거인데 괜히 잃어버리면 돈 물어야 돼.’
‘아, 진짜 무서운데.’
‘내가 같이 가줘?’
‘뭐? 변태야! 여자 화장실에 남자가 왜 들어와!’
‘하하, 그러니까 다녀와. 내가 지키고 있을게.’
‘꼭 여기 있어, 알았지? 내가 부르면 대답해 줘.’
‘알았다니까.’
젠장, 들어오는구나. 아까 자전거 타고 지났던 연인들이 돌아온 모양이다.
나는 급히 카메라 가방을 챙기고, 밖을 보았다. 문 앞에 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있다. 지금 화장실 문으로 나갈 순 없다. 나는 라디에이터를 밟고 화장실 창문을 연 후 밖으로 뛰어내렸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허리를 숙인 후 화장실 뒤쪽을 빠져나가 무작정 뛰었다. 묵직한 카메라 가방 때문에 몸이 무겁다. 그리고 곧 뒤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이게 뭐야! 자기야! 자기야!’
‘뭐, 뭐야! 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