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08화
16. Journey to crime(10)
땅이 움직이고 속이 울렁거린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파도가 일렁이는 듯하다. 가만히 화장실에 서 있다 갑자기 비틀거리는 날 보고 내 뒤를 스쳐 가던 KCSI 대원 한 명이 급히 부축을 한다.
“어? 괜찮으십니까?”
“…….”
“정신 차려 보세요. 어디 아프십니까?”
나는 내 겨드랑이에 손을 파고 부축하는 대원을 힐끔 보았다. 여전히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보일 수는 없다. 이마를 부여잡은 나는 비틀거리며 한 손으로 벽을 붙잡았다.
“아, 괜찮습니다. 잠깐 어지러워서.”
KCSI 대원은 날 가만히 관찰했다. 혹시 상태가 나쁘면 조치를 취해주기 위해서이다. 나는 대원에게 괜찮다고 손짓하다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았다.
“저기.”
“예?”
“그런 카메라. 얼마나 합니까?”
대원이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말한다.
“이거는…… 별로 안 좋은 모델이라 얼마 안 합니다.”
기억 속 피해자는 카메라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했다.
카메라 가방에 브랜드가 써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이쪽에 문외한이라 어떤 브랜드인지는 모르지만 영어는 읽을 수 있으니까.
“L……e……ica라고 써 있는 카메라가 있습니까?”
대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카메라 동호회 활동 하시나요?”
“아닙니다만.”
“그런데 그런 카메라를 아세요? 전문 동호회인이나 사진 쪽 종사자가 쓰는 카메라인데.”
피해자는 1인 사진관을 하는 여성이었다.
“비싼 겁니까?”
“엄청 비싸죠. 1923년 모델인 O 시리즈는 6억도 넘습니다.”
헐, 카메라가 6억이라고? 물론 1인 사진관 하는 사람이 그렇게 비싼 카메라를 가졌을 리는 없지만.
“제일 비싼 거 말고. 일반 제품도 있죠?”
“예, 물론이죠. 양산형이라고 하긴 뭣 하지만 그래도 현실성 있는 가격 제품도 있습니다.”
“보통 얼마나 합니까?”
“음, 프리미엄 카메라라 싸도 700만 원은 할걸요?”
700만 원. 얼마 전에 우연히 지나다 본 일본제 카메라 가격이 150만 원인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는데 700만 원짜리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구나.
아, 피해자 직업이 사진기사면 그게 자기 먹고사는 수단이니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나는 다시 한번 대원의 카메라를 바라본 뒤 고개를 돌려 라디에이터를 보았다.
“저기 저거 검사했습니까?”
대원이 창문 아래에 있는 라디에이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최초 발견자 진술에 생존자 발견 시 창문이 열려 있었다는 진술이 있다고 해서 족적 확인했습니다. 전부는 아니고 신발 앞 부분이 찍히긴 했는데 국내 생산 제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대조 돌리는 중이고요.”
노련한 KCSI 대원들이 그런 부분을 놓칠 리가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을 풀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방금 나간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대원인지 화장실에는 나 혼자 남겨졌다.
세면대에 가 세수를 하고 거울을 바라본 나는 눈만 드러냈던 범인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다. 남의 기억을 읽을 때 그가 거울을 보는 장면을 본 것은.
나는 항상 범인의 기억을 읽었을 때 스스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의 기억을 읽다 거울을 본 것은. 물론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눈밖에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며 오진규의 얼굴이 불쑥 들어온다.
“과장님.”
나는 얼굴에 묻은 물기를 손으로 닦아 털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네.”
“관우가 CCTV에서 범인으로 보이는 놈을 발견했답니다.”
역시 관우. 빠르기도 하다.
“가죠.”
* * *
안산단원경찰서 임시 수사본부.
나와 오진규가 도착하자, 모니터 앞에 앉은 관우가 손을 든다.
“여기요.”
오진규가 아우터를 벗어 던지며 관우 옆에 앉는다.
“어디야?”
“중앙공원이요.”
오진규의 반대편 자리에 앉은 나는 중앙공원 가로등 아래에 기대선 범인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너무 멀어 제대로 식별되지 않는다.
기억 속의 범인은 CCTV 바로 아래 서 있었다. 다음 CCTV는 5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으니 관우가 발견한 영상은 50미터 밖에서 찍힌 영상일 것이다.
오진규가 손가락을 돌리며 말했다.
“확대할 수 있어?”
“이미 해놨습니다.”
CCTV를 확대 후 화질 개선한 상태의 스크린샷을 보여주는 관우.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내가 거울로 봤던 범인이 맞는지 확인했다.
“이놈이다.”
오진규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
말없이 모니터만 바라보는 날 한참 바라보던 오진규가 관우에게 물었다.
“이놈 언제부터 여기 서 있었어?”
“사건 발생일 저녁 7시 13분에 도착했습니다. 11시경 움직였고.”
“다음에 찍힌 곳은?’
“잠자리 공원에서 찍혔습니다.”
“봐.”
관우가 미리 편집해 둔 영상을 재생하자, 잠자리 공원으로 내려가는 육교 다리에서 한 번, 자전거 도로를 걷고 있는 모습 한 번이 더 찍혀 있다.
오진규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혼자 있는데?”
나는 관우를 눈짓하며 말했다.
“1분 전 같은 지역 영상 확인해.”
관우가 영상을 뒤로 돌리자, 놈이 나타나기 한참 전에 이곳을 지난 여성이 보인다. 기억 속에서 본 그대로 청바지에 스포츠 브랜드 아우터를 입고 있다.
관우가 얼른 수사보고서를 확인 후 말했다.
“병원에 입원 중인 여성의 차림새와 같습니다. 이 사람이 생존자 맞아요.”
오진규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예상처럼 중앙공원에서 사람 물색하고 멀찍이 떨어진 채로 따라가서 인적이 드문 곳에 다다르면 공격을 한다는 거네.”
“예, 맞습니다.”
오진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단정해선 안 된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오진규가 관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다른 사건 날짜 영상 확인해.”
관우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다른 사건일에 중앙공원이요?”
“응.”
“11건 다 찾으려면 시간 좀 걸리는데.”
“기다리마.”
오진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간다. 관우 옆에서 기다리던 나도 그의 옆에 서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연주가 돌아와 문을 연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연주를 힐끔 본 뒤 물었다.
“상인들 인터뷰에서 뭐 좀 건졌어?”
연주가 수첩을 들고 어깨를 으쓱한다.
“아뇨, 외국인들이 한둘도 아니고. 이건 뭐 이태원보다 외국인이 더 많으니 좁힐 수가 없네요.”
수첩을 던져놓은 연주가 커피 한 잔을 타서 나와 오진규 곁에 선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네 주민이 있길래 이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물었더니. 글쎄 자기 아들이 요 앞에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전교생이 한 오백 명쯤 되는 학교에 한국 국적 가진 사람이 자기 아들뿐이래요.”
오진규가 눈썹을 꿈틀하며 물었다.
“한국 초등학교에 한국인이 한 명이라고?”
연주가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인다.
“거의 한국 속에 있는 외국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미치겠군.”
그때 관우가 손을 든다.
“과장님.”
나와 오진규, 연주가 관우 자리로 가 화면을 본다. 12분할로 쪼개놓은 영상이 보인다.
오진규가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밀고 물었다.
“사건 날짜 영상 맞아? 중앙공원에 없는 적도 있지?”
“예, 맞습니다. 어제 사건까지 총 12건의 사건 중 5개 사건에만 중앙공원에서 사냥감을 물색하는 놈의 모습이 찍혔습니다.”
“다섯 건이라. 그럼 나머지 일곱 건은 다른 곳이라는 건데.”
오진규가 머리를 긁는다. 잠복을 해야 하는데 잠복 지역이 분산되면 아무래도 검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화면을 보다 관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범인이 어딘가 있을 거다. 여기서 자기가 공격할 사람을 물색하고 있다. 찾아내야 된다, 관우야.”
“…….”
“할 수 있지?”
관우가 고개를 돌려 씩 웃는다. 가슴을 툭툭 친 녀석이 활기차게 말했다.
“햄버거 열 개만 부탁드립니다.”
믿음직한 녀석. 연주가 관우의 등을 때리며 말했다.
“햄버거만 먹으면 소화 안 돼. 콜라도 콜?”
“콜!”
역시 관우와 연주는 실과 바늘 같은 사이다. 나는 오진규에게 말했다.
“선배님.”
“예, 과장님.”
“정선규 계장 좀 불러주세요.”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오진규는 직접 움직이지 않고 전화를 걸어 정선규를 불러낸다. 조금 전에 실수한 부분도 있고, 선배의 부름이라 그런지 오 분도 안 되어 뛰어온 정선규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과장님.”
얼마나 뛰어왔길래 저 꼴로 온 걸까? 저렇게 뛰진 않아도 되는데.
“밑에 형사들 중에 장물처리 쪽 잘 아는 사람 있습니까?”
정선규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장물이요?”
“예, 있죠?”
“아, 물론 있습니다만.”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놈이 몇인지, 접선하려면 어디로 가야 되는지 알아봐 주세요.”
정선규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된다. 오진규나 다른 팀원들도 내 지시가 이해되지 않는 얼굴들이다.
나는 팀원들을 위해 관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제 사건 영상 다시 재생해 봐.”
관우가 영상을 재생하자 정선규와 팀원들이 모니터 앞에 모인다.
“범인 영상 말고, 피해자 걷는 모습으로.”
관우가 다시 영상을 찾아 재생한다.
“스톱. 여기.”
나는 생존자의 어깨에 걸린 가방을 손가락으로 툭툭 때렸다. 그러자 연주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가방 같은데.”
오진규가 얼른 정선규에게 물었다.
“생존자 소지품 중에 가방 있어?”
정선규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 아직 생존자 의식이 안 돌아와서 인터뷰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어제 119가 신고받고 출동한 뒤 병원에 이송되고 아침에 잠깐 의식이 돌아왔었는데 옆에서 간호하던 부모님들이 상황을 듣고 경찰에 신고한 겁니다. 저희가 찾아갔을 때 생존자는 다시 의식을 잃었습니다. 현재 형사 한 명이 깨어날 때까지 보호 중이고.”
오진규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인마, 내가 그거 물었어? 생존자 소지품!”
정선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눈치를 본다.
“다,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정선규가 얼른 전화기를 들고 구석으로 간다. 한심한 눈으로 후배를 보는 오진규가 다시 화면을 자세히 보며 말했다.
“이거 카메라 가방같이 생겼지?”
연주도 화면이 뚫어져라 살피며 말했다.
“네, 생존자 직업도 사진 기사이니 아마 맞을 거예요.”
오진규가 놀란 얼굴로 날 돌아본다.
“눈이 아주 좋으신 모양입니다, 과장님.”
“…….”
“전 전혀 몰랐습니다. 이 먼 거리에서 그걸 어떻게 보신 겁니까?”
관우도 날 돌아보며 엄지를 든다.
“매번 CCTV 분석하는 저도 너무 멀어서 놓친 건데. 역시 우리 과장님.”
음, 그게 아니야, 이 사람들아. 나 시력 1.0밖에 안 돼.
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과장님, 최고인 건 원래 아는데. 문제는 카메라 브랜드를 모른다는 건데. 장물 관련 수사 해봤는데 디카나 명품 백, 지갑이나 핸드폰, 귀금속이 제일 많아요. 그냥 최근에 디카 취급한 놈 찾는다고 하면 고생 좀 하겠는데.”
응, 미안. 나 카메라 브랜드도 알아. 하지만 지금 말하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잠시 어떻게 수사해야 할지 고민하며 다시 기억을 떠올렸다. 범인이 카메라 말고 또 뭘 가져갔을까? 현금과 카메라 가방……. 이것 뿐인가?
순간 녀석의 생각이 떠올랐다. 여자를 지켜보며 생각했던 것.
‘핸드폰도 아주 좋은 모델이다. 한국 모델이 아니라 미국 모델인 저 핸드폰은 중고가가 잘 떨어지지 않아 장물 처리가 아주 쉽고 돈도 잘 쳐준다.’
그래, 핸드폰이다. 나는 연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피해자 부모님께 전화해서 피해자 핸드폰 발견됐는지 확인해.”
“핸드폰이요?”
“만약 안 나왔으면 핸드폰 브랜드 확인해. 이 자식은 외국인일 확률이 높아. 알고 지내는 장물 전문업자가 여러 명일 리가 없다. 정확한 핸드폰 기종과 카메라를 함께 거래한 놈을 찾는 거야.”
오진규가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오! 전화해, 빨리.”
연주가 전화를 거는 대신 구석에서 통화 중인 정선규에게 외쳤다.
“계장님! 생존자 핸드폰 발견했는지 물어봐 주세요! 없으면 기종도 알아봐 주시고.”
구석에 있던 정선규가 움찔 놀라며 알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잠시 후 정선규가 돌아와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카메라 가방은 없었습니다, 부모님께 여쭤보니 딸이 가진 카메라가 여러 대고 자신들은 카메라에 대해 몰라서 어떤 브랜드인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핸드폰 역시 없었답니다.”
오진규가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
“핸드폰 기종은?”
“미국에서 출시한 최신 핸드폰입니다.”
“좋아! 바로 장물업자들 수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