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09화
16. Journey to crime(11)
정선규는 강력계뿐 아니라 안산단원경찰서의 모든 형사들을 동원해 자신이 정보원으로 쓰고 있거나, 한 번 이상 검거, 혹은 벌금형을 받은 장물업자 명단을 모두 넘겼다.
장물업자의 수는 총 다섯. 연주는 지도를 펼쳐 그들이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들을 표기한 뒤 말했다.
“JTC(Journey to Crime) 분석을 해보면 범죄 발생 영역 안의 모든 위치에서 장물아비가 있는 거리에 따른 확률을 계산할 수 있어요. 거점이 존재할 확률과 대조해 보면 다문화 거리 반경 5㎞로 제한되고요.”
오진규가 물었다.
“범인이 차가 없다고 가정해 도보로 이동 가능한 구간을 계산한 건가?”
“네, 선배님.”
“좋아, 몇 군데야?”
“한 군데입니다.”
“오, 좋아. 어디야?”
“주소 찍어드리죠.”
연주가 핸드폰 단체 문자로 주소를 찍어준다. 관우가 멀뚱한 눈으로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다 연주에게 조용히 묻는다.
“JCT가…… 뭐였지?”
연주가 한심한 눈으로 힐끔 관우를 쏘아본다.
“경찰 간부 시험 어떻게 통과했냐? 그거 모르는 경위는 너밖에 없을 거야.”
“……아니, 뭐. 들었던 거 같은데 생각이 안 나서.”
관우가 연주의 지도를 살피고 있는 날 힐끔 보며 속삭인다.
“과장님도 다 알아들으신 거겠지?”
“어, 너 빼고 다 알아.”
“…….”
“그리고 과장님이 인마, 너 같은 녀석인 줄 알아? 경찰대 수석 졸업자가 그걸 모를 리가 있냐?”
“후, 간부시험 때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좀 지나니까 다 잊었네.”
나는 관우 녀석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실소를 지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범행원 이론, 거리 감퇴 함수, 버퍼 존 이론. 이 셋을 합쳐 내리는 결론이 JCT다.”
관우는 어느 정도 기억이 나는지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범행원 이론! 그건 기억납니다.”
나는 지도에 시선을 놓고 눈웃음을 지었다.
“말해봐.”
관우가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모든 범행 장소들 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두 점을 잇는 선분을 지름으로 하는 원을 만들면 범죄자의 거점은 그 원 안에 있을 확률이 높다!”
오진규가 관우의 어깨를 툭 친 후 엄지를 들어준다. 조금 전까지 혼자 모른다는 사실에 시무룩하던 녀석이 금세 빙긋 웃고 있다.
나는 지도를 체크하며 말했다.
“그래, 맞다. 버퍼 존(Buffer zone) 이론은 범죄자가 자신의 신분 노출 위험성으로 인해 거주지와 너무 가까운 지역에서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
관우는 연주를 힐끔 보며 말했다.
“근데 좀 전에 연주가 거리 감퇴 함수 이론으로 보면…… 범행 지역 5㎞ 내에 장물 취급 아지트가 있다고 했는데 그건…….”
나는 관우를 돌아보며 웃었다.
“Decay Function(거리 감퇴 함수)의 원리는 범죄자들이 자신의 활동 공간에서 멀어질수록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낮다는 뜻이다. 서울 사는 놈이 굳이 대구나 부산까지 내려가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지.”
오진규가 관우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범죄로 얻는 이익보다 우선 내가 들여야 하는 노력을 최소화하려는 범죄자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관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건 이해했는데…… 장물 취급하는 놈 위치와 범죄자 행동심리 사이에 무슨 연관이…….”
연주가 볼펜으로 관우 이마를 톡 때리며 말했다.
“장물 취급도 범죄야, 인마.”
관우가 이마를 문지르다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범인 새끼가 장물 처리도 범죄로 보고 JCT 분석 영역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네요!”
연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 추가로 범인은 항상 도보로 이동했다는 점을 들어 차량 소지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도 있고.”
오진규가 끼어든다.
“범죄 12건 총액 백만 원을 못 넘었다. 푼돈 노리고 범죄 저지르는 놈이 차가 있을 리 없고. 외국인이면 차량 등록도 까다로워. 이 새끼는 딱 두 부류 안의 놈이야.”
관우가 오진규를 보며 말했다.
“하나는 직업을 못 구해서 돈이 없는 놈. 하나는 직업이 있는데 유흥비로 탕진하고 다녀서 빚을 진 놈?”
“그렇지.”
나는 연주가 보내준 주소를 지도에 표기한 뒤 턱을 쓸었다.
“연주 말처럼 장물아비의 거래 장소가 버퍼 존 안에 있다. 여기 뭐 하는 곳이야?”
연주가 노트북에 앉아 빠르게 검색을 마치고 말했다.
“해당 주소로 발급된 전당포 영업허가증이 있습니다.”
전당포. 물건들이 다수 존재하니 장물취급 단속을 피해갈 좋은 구실이 있는 곳이다. 역시 범죄자들 대가리 굴리는 거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한다.
나는 함께 지도를 노려보고 있는 오진규에게 물었다.
“오 선배님.”
“예, 과장님.”
“GeoPros 기억하십니까?”
“…….”
오진규는 내 말에 다시 지도를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의 지리적 요소를 넣은 프로파일링 시스템입니다.”
“군집 분석도 기억하십니까?”
이 중에 경찰대 출신은 나밖에 없다. 하지만 경험 많은 오진규라면 이러한 분석 방법을 단독으로 배웠을 확률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오진규가 턱을 쓸며 말했다.
“예, 실제 연쇄 사건을 대상으로 군집 분석을 검토해 본 결과 우리나라는 평균 2~3개의 군집이 도출됐습니다.”
역시 내 기대에 맞는 사람이다. 나는 다시 지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 프로그램의 군집 분석 방법에 따르면 예측 군집에서 범인의 실제 거점까지의 오차 거리는…….”
오진규가 지도를 노려보며 말했다.
“270m입니다.”
연주도 이 사실은 몰랐는지 일전에 버퍼 존을 분석해 다문화 거리 중앙공원이 범인의 사냥터임을 찾아냈던 지도가 걸린 벽으로 뛰어간다.
장물아비가 운영하는 전당포에 핀을 꽂은 연주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모든 범행 지역을 원으로 그렸을 때 그 중앙에 전당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관우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연주의 지도 옆에 선다.
“그럼…….”
연주가 주먹으로 전당포에 표기된 핀 옆을 쿵 때리며 말했다.
“여기야. 여기를 기점으로 반경 270m 안에 범인이 있어.”
나는 두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고민했다. 언뜻 사건의 범위가 무척 좁아진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그건 오산이다.
기점을 중심으로 반경 270m의 원. 그건 반지름을 가리킨다. 지름으로 540m나 되는 거대한 원. 빌라촌이라면 그 안에 천 명은 넘게 거주하고 있을 것이다.
어설프게 경찰 병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검문을 한다면 오히려 범인을 자극해 도주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범위를 좁혔을 때는 최대한 은밀하고 침착하게 움직여야 한다.
나는 보고 있던 지도를 내려놓은 후 말했다.
“일단 전당포부터 턴다. 증거물 발견이 우선이야.”
흩어져 있던 팀원들이 긴급 출동한다.
* * *
차를 운전해 원시동에 있는 전당포에 도착한 관우가 주차를 하자마자 제일 먼저 뛰어내려 빌딩으로 들어간다.
연주가 뒤를 쫓는 것을 지켜보며 차에서 내린 나는 주변에 도주로가 없는지 파악한 뒤 다시 오진규가 기다리는 건물 입구로 돌아왔다.
오진규가 건물을 올려보며 말했다.
“6층 건물에 5층이 전당포군요. 단독으로 한 층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매우 낡은 건물. 지은 지 50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은 외벽의 칠이 다 벗겨져 있으며 입주되어 있는 상가들의 업종도 주류 업종이 아닌 곳이다.
“일단 가보죠.”
5층으로 올라가자 철창 안에 동그란 구멍으로 머리를 밀어 넣고 있는 관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 아저씨! 다 알고 왔어,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연주가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주변을 살피다 우리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우측 천장을 눈짓한다.
“사설 CCTV가 있는 걸로 봐서 안에 있는 주인이 저걸로 우릴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진규가 바지춤을 끌어 올리며 물었다.
“반응 없어?”
“네, 초인종 눌러도 반응이 없습니다.”
“경찰 뜬 거 눈치챈 거지, 뭐.”
나는 철창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고함을 치는 관우를 툭툭 쳤다.
“나와봐.”
관우가 나오자 안의 모습이 보인다.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창구가 있고, 뒤에 꼬리표가 붙은 물건들이 정리되어 보관된 곳이다.
오른쪽 끝에 또 다른 문이 있는데 그 뒤에 더 큰 창고와 주인의 생활공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분명히 내부에 불이 켜져 있는데 반응이 없는 걸 보아선 연주 말처럼 CCTV로 우릴 지켜보고 있을 공산이 크다. 어떻게 해야 될까?
그때 오진규가 뒤에서 소화기를 번쩍 들어 올린다. 관우가 놀라며 말했다.
“어어! 선배님! 뭐 하시는 겁니까!”
오진규는 말없이 소화기를 들어 창구 옆에 있는 철문의 문고리를 부숴버린다. 관우가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나자 씩 웃은 오진규가 윙크를 한다.
“장물아비인 거 세상이 다 아는데 뭐. 압수수색영장은 어차피 청구하자마자 나올 건데 굳이 시간 낭비할 거 없지.”
무대뽀 같은 면도 있는 사람이었구나. 물론 경험 많은 형사이니 아마 행동하기 전에 계산을 하고 움직인 것이리라. 오진규가 부서진 철문을 발로 밀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휘파람을 분다.
“여, 또 뭘 부숴줄까? 안 나오면 여기 있는 물건 다 부순다?”
오진규가 마실 나온 아저씨처럼 창구 안을 들쑤시며 돌아보다 연주를 보며 슬쩍 묻는다.
“장물아비 새끼 이름이 뭐라고 했지?”
연주가 속삭인다.
“임진택이요.”
오진규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손을 펄럭이며 말했다.
“진택아~ 진택아, 형 왔다. 숨어 봐야 소용없어. 밖으로 뛰어내리지 말어라, 여기 5층이다? 여기서 뛰면 대가리 터진다고.”
건들거리며 너스레를 떠는 오진규 덕분에 난 겨우 웃음을 참았고, 관우와 연주는 혹시 징계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침을 꿀꺽 삼키고 있다.
오진규가 싸구려로 보이는 도자기를 툭 건드리자, 하얀 도자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난다. 오진규가 펄쩍 뛰며 말한다.
“어이쿠! 실수를 했네. 이거 이러다가 여기 물건 다 부서지겠네. 진택이가 빨리 와야 할 텐데 말이야. 이야, 이건 좀 비싸 보인다, 그렇지?”
오진규가 철제 창고 안에 보관된 물건들을 힐끔거리다 발로 철제 창고를 툭툭 찬다.
“이거 쓰러지면 얼마 날아갈까? 한 천만 원은 되겠지? 진택아? 진택아~ 이거 다 부서지면 골 아플 텐데. 괜찮겠어?”
오진규는 힐끔 창구 쪽 천장에 있는 CCTV를 본 뒤 벽에 등을 대고 철제 창고를 발로 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창구 옆쪽 문이 벌컥 열리며 코를 벌름거리는 남자가 러닝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뛰어 나온다.
“지금 뭐 하는 거요!”
오진규가 발로 철제 창고를 밀다 말고 고개를 돌린다.
“진택이?”
남자가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삿대질을 한다.
“뭐 하는 거냐고!”
오진규가 다시 발로 철제 창고를 밀기 시작한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창고. 오진규가 다시 그를 보며 물었다.
“진택이 맞아?”
“아! 씨X놈아! 그래, 내가 맞다! 발 안 떼?”
오진규가 씩 웃으며 발을 뗀다. 손가락을 풀며 남자에게 간 오진규가 싱긋 웃으며 신분증을 보여준다.
“반갑다, 진택아. 우리 이야기 좀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