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10화 (209/328)

살인의 기억 210화

16. Journey to crime(12)

“겨, 경찰이면 다야? 영장은? 어? 아, 압수수색영장 그거! 가져왔어?”

오진규가 빈 주머니를 뒤집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한다.

“없는데.”

임진택이 삿대질을 하며 외친다.

“너 이 새끼! 내가 가만있나 봐! 기자 불러서 인터뷰할 거야!”

오진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 할 건데?”

“뭐라고 하기는! 있는 그대로 말할 거다! 경찰이란 놈들이 영장도 없이 치고 들어와서 남의 영업장 기물 파손한 거!”

임진택이 CCTV를 가리킨 후 오진규가 깬 도자기를 본다.

“너 이 새끼. 저기 다 찍혀 있어, 증거도 확실해!”

오진규가 씩 웃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임진택의 어깨동무를 한 오진규가 속삭였다.

“어이, 내가 친구처럼 친근하게 말하니까 진짜 네 친구 같아?”

“…….”

“껍데기 다 벗겨서 다문화 거리 돼지 껍데기 가게에 걸어줄까?”

“…….”

오진규가 어깨동무를 한 채로 놈을 돌려 내 쪽을 본다.

“저기 젊은 형사님 보이지? 나보다 젊어도 내 상관이거든? 근데 저분 계급이 여기 안산단원경찰서장과 동급이야.”

“…….”

임진택이 놀란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일선 경찰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오진규가 놈의 목을 꽉 조르며 말했다.

“근데 그냥 서장급이 아니고, 국가수사본부에서 나온 분이지. 너 같은 놈은 쥐도 새도 모르게 빵에 처넣고 평생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넣을 수 있는 사람.”

임진택이 침을 꿀꺽 삼킨다. 장물이나 취급하는 잡범이니 이런 압박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고…….”

겁을 주던 오진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 넌 그냥 장물죄(贓物罪)지. 연주야, 장물죄 현행법률 어떻게 되지?”

연주가 임진택을 째려보며 말했다.

“장물을 취득, 양여, 운반 또는 보관하거나 행위를 알선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오진규가 임진택의 목을 조르며 말했다.

“들었지? 7년이다, 7년.”

“…….”

오진규가 임진택을 돌려세우며 자신과 마주 보게 한 뒤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살인사건까지 연루되면 몇 년 받을까?”

임진택의 눈이 커지며 말을 더듬는다.

“사, 사, 사, 살인?”

임진택이 우리 팀원들을 두리번거리다 내가 제일 높은 사람이란 것이 생각났는지 오진규를 뿌리치고 달려와 내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사, 살인이라니! 전 그런 짓 못 합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인간이고, 담배도 하루 두 갑 싹 꼬박 태워서 세금도 잘 내는 선량한 시민입니다!”

응? 담배 많이 태우면 세금 잘 내는 건가? 음, 담배는 국가생산 사업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임진택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와 눈을 맞췄다.

“미국산 핸드폰과 카메라 가방. 그거 맡긴 놈 있지? 아마 그놈은 한 달쯤 전부터 널 찾아와서 장물처리를 했을 거야.”

“…….”

“그거 가져온 놈만 불어.”

“카, 카메라 맡기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핸드폰과 카메라 동시에 맡긴 놈. 그리고 전당포 말고 장물로 처리 부탁한 놈을 말하는 거다. 내 말이 이해하기 어렵나?”

“…….”

관우는 어느새 창구 서랍에서 열쇠를 찾아 철제 창고를 열어 안을 뒤지는 중이다.

“우와, 핸드폰 봐. 백 개도 넘겠네. 너 폰 팔이냐?”

임진택이 관우 쪽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킨다. 관우가 핸드폰을 모아둔 박스를 낑낑대며 꺼낸 후 한숨을 쉰다.

“과장님, 우리가 찾는 핸드폰과 비슷한 기종이 꽤 많은데. 이거 다 분석해서 생존자 핸드폰인지 확인할까요?”

언뜻 봐도 몇십 개는 나오는 동일 기종 핸드폰. 저걸 다 분석하면 나오긴 할 거다. 시간이 오래 걸려 그렇지. 나는 내게 묻는 관우 쪽을 보다 녀석의 뒤쪽에 있는 카메라 가방들을 보았다.

나는 임진택을 두고 철제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카메라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가방들. 나는 그중 하나의 가방을 움켜쥐었다. 범인의 기억에 있던 카메라 브랜드와 동일한 가방이다.

가방을 들고 임진택을 돌아보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는 놈의 얼굴이 보인다. 놈은 얼른 무릎으로 뛰듯이 기어와 내 바지를 붙잡는다.

“혀, 형사님!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쥔 채로 녀석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같은 브랜드 가방이 이거 하나인가?”

“…….”

“상황 파악이 안 돼?”

“아닙니다! 하, 하나 더 있는데 그건…….”

“그건?”

“과, 관계가 없을 겁니다! 맡긴 사람이 아줌마였는데 장물처리도 아니고 전당포에 맡기고 22만 원 가져간 겁니다. 내달 초에 찾으러 온다고 했습니다!”

말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말할 작정인가 보다. 나는 가방을 관우에게 던져준 뒤 핸드폰 박스를 발로 툭 차며 말했다.

“핸드폰 어떤 거야?”

임진택이 박스 안으로 기어들어 갈 듯 뒤져 꼬리표가 붙은 하얀색 핸드폰을 꺼낸다.

“여, 여기! 아, 그, 그리고!”

임진택은 관우에게 핸드폰을 준 뒤 다시 철제 창고 한구석을 뒤져 아주 작은 기계 하나를 꺼내 관우에게 내민다.

“이것도.”

관우가 물건을 받으며 물었다.

“무선 이어폰?”

“예, 그것도 같이 처리했습니다.”

기억 속에 있던 물건들이 맞다. 핸드폰과 그녀가 끼고 있던 무선 이어폰. 저것들 모두 꽤 비싸게 거래되는 것들이다. 나는 임진택에게 한쪽에 있는 테이블을 눈짓했다.

“가서 앉아.”

“예!”

임진택이 얼른 일어나 달려가 정자세로 앉는다. 그 모습을 본 오진규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럴 땐 나보다 더 경험 많은 분 같다니까.”

연주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나는 관우에게 전당포 CCTV 하드를 떼 오라고 지시한 뒤 임진택의 앞에 앉았다.

“총 얼마 줬어?”

임진택은 벌떡 일어나 창구 앞에 있는 책상 서랍장을 열어 수첩을 꺼낸다. 내 앞으로 돌아와 수첩을 마구 넘긴 녀석이 기록을 찾은 후 말했다.

“카메라가 70만 원, 핸드폰 12만 원, 이어폰 3만 원입니다.”

응? 700만 원이나 하는 카메라를 10분의 1 가격에 후려쳐?

“그 가격에 군소리 없이 받아가던가?”

임진택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원래 장물이란 게…… 운송비, 보관비, 유통비 다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장사라.”

총 85만 원. 12건의 범행에서 현금 백만 원을 해 먹은 놈이 한 방에 85만 원을 벌었으니 꽤 크게 한탕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임진택을 보며 말했다.

“저게 무슨 물건인지는 알고?”

“그게…… 장물은 원래 어디서 난 물건인지 안 물어보는 것이 원칙이라.”

음,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일단 태도를 보니 공범의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사실 이놈이 외국인 놈을 꼬드겨 범행을 지시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봤기 때문에 한 질문이다.

나는 임진택의 수첩을 끌어오며 말했다.

“여기 위에 있는 목록은?”

“아, 그건 다른 사람이…….”

“동일한 놈이 처리한 물건만 추려.”

“예! 바로 하겠습니다!”

임진택이 볼펜을 가져와 열심히 체크한다. 사람별로 정리한 노트가 아닌 모양인지 꽤 앞부분부터 수첩을 마구 넘기며 쓰고 있다. 나는 가만히 기다리다 관우에게 말했다.

“CCTV 하드 뜯어 왔어?”

“예, 과장님.”

“카메라 가방, 핸드폰, 이어폰. 전부 KCSI로 넘겨. 지문 떠보자.”

“예, 그런데 외국인이라 지문 등록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네요. 불법 밀입국자가 아니길 기도하자고요.”

임진택이 수첩 맨 끝에 물건 목록을 표기한 뒤 내민다.

“여기! 다 했습니다!”

금방 한 걸 보니 몇 개 안 되는 모양이다. 녀석이 정리한 목록을 보니 명품 지갑 두 개와 핸드백 하나가 더 있다.

“가져와.”

임진택이 머리를 긁었다.

“그게…… 어디 뒀는지 기억이.”

오진규가 임진택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이 새끼가. 그 물건 중에 죽은 사람 물건이 있어, 이 자식아!”

“힉! 아, 알겠습니다! 찾아오겠습니다!”

임진택이 벌떡 일어났다가 문득 날 돌아보며 침을 삼킨다.

“저, 저기…… 형사님.”

나는 앉아 있다 녀석을 올려보았다. 무슨 말을 할지는 뻔하다.

“10분 준다. 그 안에 목록에 있는 물건 다 찾으면 넌 사건에서 빼준다.”

임진택의 얼굴이 확 밝아지며 창고로 뛰어간다.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임진택은 바람처럼 달려갔다. 꽤 급했는지 안쪽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몇 번 난다. 약 5분이 지나자 명품 핸드백과 지갑 두 개를 찾아온 놈이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오진규가 장갑을 낀 손으로 임진택의 뒤통수를 다시 후려친다.

“증거품이라고, 이 새끼야. 지문 지워지게 맨손으로 만지고.”

“헉, 죄송합니다!”

오진규가 조심스럽게 백과 지갑 끝을 잡고 봉투에 넣는 것을 본 나는 임진택을 보며 눈짓했다.

“앉아.”

“예!”

임진택이 슬쩍 시간을 확인한다. 자신이 10분 안에 찾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놈이었나?”

임진택은 순간 무슨 질문인지 파악하지 못하다 장물을 처리한 놈에 대한 질문임을 뒤늦게 파악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모르는 놈이었습니다.”

“동네에서도 못 봤고?”

“예, 처음 보는 놈입니다.”

“너 이 동네에 얼마나 살았어?”

“저 토박이입니다. 35년 살았습니다.”

안산은 깡 시골이 아니다. 꽤 대도시에 가까운 곳이라 35년을 살았다고 모든 동네 사람을 다 알고 지낼 곳은 아니라는 뜻이다.

“외국인이야?”

“예, 한국말을 하긴 하는데 억양을 봐서는 조선족이 아닐까 싶던데.”

“이 동네 조선족이 많나?”

“많습니다. 제일 많은 게 중국 놈들인데 거기 섞여서 삽니다. 보통 식당 하는 놈들이고요.”

나는 연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연주야, 몽타주 따.”

“네, 과장님.”

연주가 스케치북을 들고 온다. 연주는 다방면에 재주가 많은 녀석이다. 내가 연주와 자리를 바꾸려 하자, 임진택이 얼른 말했다.

“저기 형사님!”

“음?”

“저, 확실히 빼주시는 거죠?”

“하는 거 봐서. 몽타주 제대로 나오면.”

임진택은 잠시 고민하다 머뭇거리며 말했다.

“제가…… 수사에 도움을 좀 드리면 확실히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음? 뭔가 더 아는 게 있는 걸까? 난 연주에게 눈짓으로 잠시 비키라는 신호를 보낸 후 녀석의 앞에 다시 앉았다. 잠시 놈의 눈빛을 보니 확실히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약속한다.”

임진택은 위압적인 자세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오진규를 힐끔 본 뒤 침을 삼킨다.

“그게…… 그놈 말입니다. 이 동네 놈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연주가 놀란 눈빛을 취한다. JCT 분석상 놈이 분명 여기에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이 동네 사는 놈이 아니라는 뜻인가?”

임진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뜻이 아니고. 그건 저도 잘 모르죠. 여기 사는 놈인지 아닌지까지는.”

“장난치는 건가? 무슨 뜻으로 한 말이지?”

오진규가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자 임진택이 찔끔한 얼굴로 말했다.

“그 새끼가 나가면서 약국과 마트 위치를 물어봤습니다.”

“음?”

“동네 놈이면 약국은 몰라도 마트 위치 같은 건 안 묻죠. 여기 안 살거나, 혹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확실합니다.”

임진택의 말을 들은 나는 오진규를 돌아보았다.

눈을 빛낸 오진규가 바로 전화를 들고 뛰어나가는 것이 보인다.

“나다, 선규야. 이 동네 전입 신고한 외국인 중에 지난 3개월 내에 신고한 놈 목록 좀 보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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