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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14화 (213/328)

살인의 기억 214화

16. Journey to crime(16)

관우와 통화를 마치고 관산 공원 방면으로 방향을 꺾은 나는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라면? 그래서 지금 이 시각에 범인이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사냥 중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 경찰의 판단 미스는 일반인의 실수와 다르다. 일반인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는 보통 금전적 손해나 시간적 손해가 발생하지만 우리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경우 생명이 꺼질 수도 있다.

나는 관우의 추측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범인은 머리가 나쁘지만, 조심스럽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이놈은 강박이 있는 놈처럼 프로파일링에 딱딱 맞는 패턴을 보인다.

버퍼 존을 형성했고, JCT 분석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분석은 수많은 범죄자들의 범죄심리를 연구해 낸 결과이다.

자기 나름 정확한 영역 통제로 수사망을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다.

지나친 통제 욕구는 강박을 만든다. 관우의 말처럼 범인에게 강박이 있다면 현 시각에 그가 관산 공원에 있을 거란 추론은 충분히 타당하다.

어느새 도착한 관산 공원. 나는 공원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돈 뒤 자전거 대여소 옆에 스쿠터를 세웠다.

기동력을 확보할 순 있지만 같은 스쿠터가 공원을 계속 돌면 범인에게 오히려 경계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스쿠터라 함부로 세울 순 없어 킥 스탠드 대신 거치 스탠드를 세워 주차한 내 뒤로 어느새 도착한 오진규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건 웬 바이크입니까?”

“아, 선배님.”

오진규는 스쿠터를 보며 물었다.

“배달 바이크 같은데.”

“잠깐 빌렸습니다.”

오진규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는지 가까운 곳에 보이는 육교를 눈짓한다.

“미리 와서 주변 살폈는데 육교 위가 제일 잘 보입니다.”

“올라가죠.”

오진규와 함께 육교에 올라서니 아래로 작은 강이 흐르는 공원이 한눈에 보인다. 오진규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눈짓한다.

“저기 연주도 오네요.”

멀리 헐레벌떡 뛰어오다 우릴 발견하고는 천천히 걷는 연주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빙긋 웃으며 연주를 바라보다 문득 눈썹을 꿈틀거렸다.

연주의 뒤쪽,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진규도 위에서 상황을 내려보고 있다 말했다.

“저놈 저거, 좀 이상하죠?”

“…….”

나는 천천히 연주를 노려보며 전화를 걸었다. 걸어오던 연주는 품에서 울리는 전화기를 빼 들었다가 내 이름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육교 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눈치 빠른 연주는 뭔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흔들며 자신이 여기 있다는 신호를 보내진 않는다.

-과장님?

나는 육교 위에서 연주 뒤를 따르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뒤돌아보지 말고 차분하게 들어.”

-네?

“너 차 타고 온 거 아냐?”

-차 키를 사무실에 두고 와서 택시 타고 왔어요. 왜요?

“어디서 내렸어?”

-어…… 택시기사님께 관산 공원 입구에서 내려달라고 했더니 공원 반대편에 내려줘서. 멀리서 보니까 딱 이 육교에 과장님이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빙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공원 입구에서부터 반대편 육교까지 걸어왔다는 거다. 나는 연주 쪽을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네 뒤에 용의자로 보이는 놈이 붙었다.”

연주는 순간 멈칫했지만 이상 행동은 하지 않고 계속 걷는다. 오진규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 새끼가 지금 형사를 사냥감으로 물색한 겁니까? 어이구, 저놈 오늘 고자 안 되면 다행이네. 하필이면 골라도 연주를 골라.”

동감이다. 하지만 상대는 흉기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돌멩이야 길가에서 수급한다 쳐도 저놈은 꼭 협박용 망치를 들고 다닌다.

“연주야, 잘 들어. 범인은 돌멩이 외에도 망치를 들고 다닌다. 기억하지?”

-네, 과장님.

“공원으로 들어가서 벤치에 잠깐 앉아. 가능하면 유동인구가 좀 있는 길가의 벤치로 고르고.”

-바로 유인 안 하고요?

나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하늘을 보았다.

“아직 범인이 움직일 시간이 아니다.”

나는 놈의 기억을 읽었다. 놈은 꼭 밤늦게 나와 사냥감을 물색하는 것이 아니다. 이른 저녁부터 나와 여자들을 따라다닌다. 허탕 친 기억이 많기에 항시 사람을 노리는 것이다.

따라다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만 골라 다니다 집으로 가버리는 여자는 그냥 둔다. 하지만 목표가 인적이 드문 곳을 지나는 순간 뒤에서 덮칠 것이다.

나는 공원 안쪽에 있는 커피 트럭을 보며 말했다.

“두 시 방향에 커피 트럭 보이지?”

-하얀 트럭이요? 보여요.

“저기서 커피 하나 사서, 트럭 기점으로 여덟 시 방향 벤치에 앉아. 개천이 잘 보이는 곳으로.”

-영수증 처리 해주시는 거죠?

실소가 나온다. 지금 살인범이 네 뒤를 쫓고 있는데 그런 농담이 나오니? 오진규가 웃음을 터뜨린다.

“하여간 연주 이 녀석은 조선시대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이 됐을 겁니다, 하하.”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주마. 시간 끌어. 주변에 사람 사라지고, 해 질 때까지.”

-네, 알겠습니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으니 걱정 말고.”

-네, 과장님.

연주가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끊은 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러곤 공원 출입구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간다. 연주는 활동성이 좋은 옷을 골라 입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동네 마실 나온 여성 같아 보인다.

나는 오진규와 함께 육교 아래로 몸을 숨긴 후 철창 사이로 놈을 살폈다.

천천히 걸어온 놈은 주변을 살핀 후 연주가 들어간 공원 출입구로 들어간다.

놈이 공원 안으로 진입 후에 다시 허리를 편 우리는 멀리 떨어진 커피 트럭으로 가는 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주가 커피를 사는 동안 용의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육교 아래, 공원 다리 밑 어딘가 숨어 있을 것이다.

연주는 커피를 하나 사서 벤치로 걸어간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자리를 잡은 연주는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전혀 의심스러운 점이 없는 움직임이다.

* * *

연주는 두 시간이 넘게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다. 자동차 레이싱 게임을 하는지 핸드폰을 좌우로 빙글빙글 돌리기도 한다.

오진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강심장이 따로 없네. 주변에 살인범이 있는데 집중해서 하는 게임을 할 수 있다니.”

오진규가 날 돌아보며 물었다.

“우릴 믿고 저러는 것이겠죠?”

나는 연주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뇨, 연주는 스스로를 믿는 겁니다.”

“예?”

오진규는 연주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이해가 안 되겠지.

솔직히 연주는 관우와 일대일로 붙어도 승부를 확신할 수 없는 실력자이다. 킥복싱으로 다져진 데다 현장에서 구르며 워낙 변칙적인 싸움 기술을 많이 익힌 녀석이라 정공법으로 붙으면 백전백승일 것이다.

오진규는 입맛을 다시다 말했다.

“일단 전 내려가겠습니다. 용의자 모습이 안 보이니 불안하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을 보았다.

“상황 보고 아홉 시 넘어가면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때 작전 시작하죠.”

“예, 혹시 아래 내려가서 놈이 없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진규가 육교 아래로 내려가 공원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연주가 있는 방향으로 걷는 오진규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을 보니 아직도 사각지대에 놈이 숨어 있는 모양이다.

오진규는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연주를 모른 척하며 스쳐 간다. 공원 길을 끝까지 걸어 밖으로 나가는 오진규.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공원의 다른 출입구로 뛰고 있을 것이다.

용의자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놈의 사각지대를 통해 다시 공원으로 진입하겠지. 오진규는 믿어도 된다.

다시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범인의 사냥감 포인트에서 잠복 중인 안산 형사들의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진짜 범인이 같은 시각에 다른 곳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끔찍한 결과는 피한 모양이다.

밤 열 시가 넘어가고 슬슬 인적이 드물어지는 공원.

나는 약 30미터 밖에서 빠르게 걸어오며 운동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전화를 들었다. 벤치에 있던 연주가 게임을 끄고 전화를 받는다.

-네, 과장님.

“우측에서 오는 아주머니 지나가면 열한 시 방향에 있는 공중화장실로 들어가.”

-작전 시작입니까?

“그래, 현행범으로 잡아야 된다. 알지?”

-당연하죠.

“조심해.”

-충성.

전화를 끊은 연주가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켠다. 핸드폰 시계를 확인한 연주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화장실 찾는 시늉을 한다.

다 마셔서 빈 커피 컵을 들고 화장실 쪽으로 가는 연주. 그와 동시에 육교 아래에서 용의자의 뒤통수가 나타난다.

나는 연주가 화장실로 향하자마자 움직이는 놈을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인내심 끝내주는 새끼. 몇 시간을 기다리는 거냐.”

용의자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화장실과 다른 방향으로 걷는 용의자. 하지만 빙 돌아갈 뿐 결과적으로 원래 위치에서 화장실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게다가 주변을 자꾸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오진규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린 후, 연주가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직후 공원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육교 아래로 내려간 나는 공원 출입구 쪽에 숨어 용의자를 지켜보았다. 화장실까지 거리는 약 오십 미터. 지금 모습을 드러낼 순 없다. 용의자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출입구 옆에 몸을 숨기고 눈만 드러냈다. 용의자는 주변을 서성이다 여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는 범인이 닫은 여자 화장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반대편에서 오진규도 나와 비슷한 속도로 뛰어오고 있다.

연주는 똑똑한 아이다. 화장실 안에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나오지 않고 안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걸 모르는 범인은 거울을 보며 또 자신에게 희열을 가져다줄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화장실 앞에 도착해 합류한 오진규와 나. 하지만 우리는 바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용의자를 현행범으로 잡아야 한다. 이전 사건에서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주는 화장실 안에서 우리가 앞에 올 때까지 시간을 벌다 나올 것이다. 범인이 연주를 덮치려는 바로 그때가 우리가 진입해야 할 때이다.

오진규가 발목을 풀며 화장실을 노려보았다. 연주를 믿지만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는지 초조한 얼굴이 된 오진규가 중얼거렸다.

“소리만 질러라, 바로 들어갈 테니까. 제발 위험한 짓은 하지 말고.”

나와 오진규는 여자 화장실 입구에 나란히 서서 안에서 들려올 연주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연주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과장님! 선배님! 지금!”

연주의 목소리가 만든 메아리가 끝나기도 전에 화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우리. 문소리가 들리자 놀란 얼굴로 돌아보는 용의자의 눈이 보인다.

검은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범인. 놈의 손에 망치와 돌멩이가 들려 있는 것을 확인한 오진규가 총을 꺼내 겨눈다.

“손 들어, 이 새끼야.”

범인은 놀란 눈으로 망치를 꽉 붙잡는다. 여차하면 연주를 인질 삼을 생각인지 뒤로 물러나는 녀석이 조선족 말투로 외쳤다.

“뭐, 뭐야! 물만두 귀 같은 새끼들이.”

나는 총구를 겨눈 오진규의 앞으로 나서며 주먹을 풀었다.

“배고프냐? 물만두는 왜 찾아?”

망치로 날 겨눈 놈이 말했다.

“뭐 하는 놈이냐!”

나는 주먹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저승사자.”

허해청이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뭐?”

나는 눈짓하며 웃었다.

“나 말고, 네 뒤에 있는 사람이 저승사자라고. 병신아.”

내 말에 허해청이 재빨리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 속에 뒤에서 날아오른 연주의 발바닥이 가득 찬다.

독기 가득한 연주의 고함이 화장실을 울린다.

“내가 이 새끼야! 2022년 베이징 올림픽 편파 판정 때부터 이날을 기다렸다, 이 오랑캐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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