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15화
16. Journey to crime(17)
연주의 발차기를 맞고 뒤로 마구 물러나는 허해청. 나와 오진규는 몸을 슬쩍 옆으로 틀어 놈을 피했다.
오진규는 그 와중에도 등으로 화장실 문을 막고 서서 도주로를 차단하고 있다. 벽에 부딪힌 허해청에게 달려드는 연주.
“거기 딱 서, 이 새끼야. 똥꼬에 우산 넣고 펴버린다!”
으, 상상만 해도 살벌한 욕을 퍼붓는 연주. 허해청은 연주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양팔을 들어 얼굴을 보호했다. 하지만 연주의 발차기는 놈의 정강이에 꽂혔다.
빠악!!
이거 뼈 부러지는 소리 아니지? 킥복싱 챔피언 출신이라고 한 말이 허언이 아니었구나. 뭐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는데, 지금.
“헉!”
허해청의 한쪽 다리가 공중으로 들리며 옆으로 쓰러진다.
콰당!!
자기 다리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는 허해청 위에 올라탄 연주. 아래에서 눈을 맞춘 허해청이 으르렁거린다.
“니 죽고 싶니? 갈비뼈 순서 바뀌고 싶지 않으면 내려오라!”
연주가 허해청의 손목을 붙잡고 꺾으며 말했다.
“닥쳐 이 새끼야, 입에서 때 나온다. 허리띠 졸라매서 모래시계 만들어줘? 똥이라도 먹을 줄 알면 정화조 대신에 쓰기라도 하지. 이 개 놈의 새끼가!”
연주가 허해청의 손목을 꺾으며 그대로 누워 버리자 죽는다고 고함을 지르는 놈.
“끄아아아아아!!!!!!!!”
가만히 지켜보던 오진규가 소름 돋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으, 구타보다 욕이 더 아프네. 원래 연주가 욕을 잘합니까?”
“…….”
나는 등에 벽을 기대고 실소를 지었다.
“뭐, 평소에는 안 하지만.”
오진규는 자기 팔을 쓰다듬으며 바르르 떤다. 허해청의 손모가지에서 바드득하는 소리가 난 후에 손을 놓아준 연주가 놈의 가슴에 올라타 주먹을 쥔다.
“어금니 뽑아서 앞니 할 생각 아니면 이 꽉 깨물어라.”
연주를 보면 남녀 간의 전투력에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 틀린 말처럼 느껴진다. 모자란 근력을 대신하기 위해 팔꿈치나 무릎을 주로 쓰는 킥복싱을 익힌 연주는 순식간에 놈을 걸레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지켜보던 오진규가 연주 겨드랑이를 파 억지로 일으켜 세운 후에야 구타가 멈춘다.
“이제 그만, 그만해라. 죽겠다.”
“놔요! 저런 새끼는 벌거벗겨서 눕혀놓고 파인애플로 젖꼭지를 갈아버려야 돼!”
“힉! 내가 다 아프네. 야야, 진정해.”
어째 맞고 있던 허해청보다 말리는 오진규의 표정이 더 공포스럽다.
몸부림을 치며 허해청을 발로 차는 연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평소보다 더 흥분한 연주다. 결국은 내가 나선 후에야 연주의 구타가 멈춘다.
“연주, 그만.”
내가 허해청과 연주 사이에 서자 천천히 호흡을 되돌리는 연주. 나는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허해청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허해청, 너를 살인, 시신 훼손, 강도, 특수 폭행, 장물 처리 혐의로 체포한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네가 하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처리될 수 있다. 변호사를 부를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조사를 받는 동안 변호사가 너를 대변할 수 있다. 변호사 수임료가 없는 경우 국선 변호사가 선임될 것이다.”
늘어져 있는 놈을 엎어 수갑을 채운 후 일어나자, 그때까지 연주를 붙잡고 있던 오진규가 슬그머니 그녀를 놓으며 말했다.
“입 한번 살벌하게 터네, 우리 연주.”
정신을 차린 연주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 그게…….”
이제야 자신이 무슨 욕을 했는지 깨달은 연주가 내 눈치를 본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연행해.”
연주가 허해청을 일으켜 세우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간다. 오진규가 실실 웃으며 연주 뒷모습을 보다 말했다.
“아직 잠복 대기 중인 형사들은 그대로 근무시키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해청이 진범인지 아닌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엄한 구석 들쑤시고 있다가 진범이 범행을 저지르면 그것만큼 우스운 꼴이 없을 것이다.
“그러세요. 경찰서로 돌아가시죠.”
* * *
잠시 후, 안산단원경찰서 취조실.
모니터링실에 올라온 정선규가 취조실 안에 피떡이 되어 널브러진 허해청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놈 확실합니까, 선배님?”
오진규가 커피를 마시며 씩 웃는다.
“왜? 괜히 애먼 놈 잡아서 두들겨 팼을까 봐?”
정선규는 허해청의 몰골을 살피며 침을 삼킨다.
“그게…… 진범이라도 저렇게 걸레를 만들어놓으시면…….”
오진규가 잔을 내려놓으며 팔짱을 낀다.
“이번 사건의 진범이 아니라도 저놈은 현행범으로 잡힌 거다. 강도 현행범.”
“음…… 그건 그렇지만. 취조는 선배님이 하십니까?”
“아니? 과장님이 하실 거다.”
정선규가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중대범죄 수사과 과장에, 총경 계급장까지 있는 분이 취조를 맡아요? 거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조직입니까?”
오진규가 낄낄대며 말했다.
“보통 조직과는 좀 다르지? 계장만 달아도 범인 직접 대면하는 일은 없는 일선 형사들 조직 문화와는 차이가 좀 있지.”
오진규가 유리 너머로 취조실 문이 열리고 도경이 들어오는 것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우리 국가수사본부의 모든 체계는 과장님이 중심이다.”
정선규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아는 오진규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서장이나 청장급도 아니고 일개 과장에게 저런 믿음을 보인다는 것이 실감 나질 않는다.
막말로 웬만한 강력계 계장급들은 오진규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이 바닥에서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한 사람이다.
정선규가 크게 숨을 내뱉으며 취조실을 바라본다.
* * *
연주가 준비해준 허해청에 대한 자료를 노트북에 넣어 취조실 안으로 들어오니 입술이 터져 피가 질질 나는 놈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我是外國人,請聯繫中國大使館.”
중국어를 해오는 놈을 보고 실소를 지은 나는 노트북을 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아까 한국말 하는 거 다 봤어, 이 새끼야. 되도 않을 수작을 부리고 앉았냐.”
허해청의 표정이 굳어진다. 아까 엉겁결에 한국어를 했다는 점을 잊었던 모양이다. 하긴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 때문에 놀라기도 했을 것이고 연주에게 두들겨 맞느라 혼이 날아갈 지경이었겠지.
나는 굳어 있는 허해청을 힐끔 보고 노트북을 열었다.
“이름.”
“…….”
“허해청 맞아?”
“…….”
“묵비권 행사하는 거냐?”
허해청은 가만히 날 노려보다 말했다.
“변호사 불러주오. 대사관에도 연락해 주고.”
나는 씩 웃으며 허해청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야.”
“…….”
“중국대사관 부르고, 중국 변호사 불러주고. 그래, 다 좋아.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니 네가 원하면 불러줘야지.”
허해청은 약간 안심한 얼굴이 된다. 나는 그런 녀석의 변화를 지켜보다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12건의 강도, 두 건의 강도살인, 거기에 시신 훼손까지 있어. 너 이거 중국 대사관에서 알게 되면 본국 송환 후 바로 사형이다. 중국 법 몰라?”
“…….”
허해청이 침을 꼴깍 삼킨다. 나는 조금 전에 덫을 놓았다. 녀석은 이번에 현행범으로 붙잡힌 범행만 인정하고 나머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놈이 중국 대사관 호출을 피하게 된다면 놈은 간접적으로 자기 범행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놈은 입을 다문다. 그것은 내 말에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금 좀 더 놈을 흔들 필요가 있다.
“중국의 유기 징역 한도는 15년이다. 즉, 15년 이상의 형량이 내려지는 범죄는 그냥 사형을 때려 버리는 나라라는 뜻이지. 중국은 살인범에게 ‘고의살인범(故意殺人犯)’이라 하고 마약밀매범은 ‘독범(毒犯)’이라 하며 횡령범은 ‘침범(侵犯)’이라고 한다.”
나는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중에서도 살인, 상습 강간, 마약밀매. 이 세 가지 범죄에 대해서는 무조건 사형이다.”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손가락을 보는 허해청.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중국 최고인민법원에서 네 범행에 어떤 판결을 내릴 것 같아?”
“…….”
나는 의자를 뒤로 기대며 팔짱을 꼈다.
“하지만 한국은 달라. 사형이라는 형량이 존재하긴 하지만 1997년 12월 30일에 마지막 사형 집행이 이루어진 뒤 지금까지 기결수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대한민국은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실질적 사형폐지국’로 분류되고 있다.”
허해청은 잠시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슬그머니 몸을 내밀며 말했다.
“네가 가감 없이 진술해 주면 한국 감옥 보내준다 이 말이다.”
“…….”
허해청은 말이 없었지만 그의 표정은 많은 말을 하고 있다. 갈등하는 얼굴. 나는 가만히 그의 고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허해청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약속할 수 있소?”
“뭘?”
“한국 감옥에 보내준다는 거.”
“어.”
사실은 그건 당연한 거야. 넌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거니까. 허해청은 잠시 고민한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말하겠소.”
나는 노트북을 당겨오며 말했다.
“먼저 묻는다.”
“하시오.”
“흉기가 두 개였다. 왜 그랬지?”
허해청은 잠시 생각해 본 뒤 말했다.
“처음에는 돌로 했소. 내 이 말투 때문에 말을 하면 꼬리 잡힐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는데. 돌로 협박을 하니 못 알아들어서 결국 말을 해야 했소.”
“그게 처음 죽인 여자였군.”
“그렇소.”
“그래서 망치를 구해왔다?”
“그렇소.”
“그런데 왜 망치로 안 죽이고 돌멩이로 죽였지? 망치가 휘두르기 편했을 텐데.”
“나는 돌이 좋소. 손에 착 감기고, 상대 상태도 잘 전달되고. 망치는 위협할 때만 쓰오.”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좁은 화장실에서는 망치를 휘두르기도 힘들고. 그렇지?”
허해청이 흠칫 놀라며 날 바라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소.”
“전남에 있다가 여기는 어떻게 올라왔지?”
“일자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소.”
“거기선 왜 도망쳤지?”
“작업 반장이 일 못한다고 쇠 파이프로 때렸소.”
“고용주에게 신고해도 개선이 안 됐고?”
“그렇소. 나를 이렇게 만든 건 한국이오. 그때 날 때리지만 않았어도. 날 때리고 나서도 개선이 됐으면 내가 먹고살고자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것이오.”
“지랄을 하세요, 네가 맞은 건 작업 반장인데 왜 화풀이는 죄 없는 여성들에게 해? 망할 새끼.”
“머, 먹고살려고 그랬소!”
나는 가만히 허해청을 노려보았다.
“먹고살려고 할 수 없이 했다?”
“그렇소.”
“먹고살려고 여자 죽이고?”
“돈이 필요했소.”
“먹고살려고 죽인 여성의 시신을 나뭇가지로 유린하고?”
“…….”
“먹고살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여자를 기다리며 거울 속 네 모습을 보며 희열에 찼고?”
허해청은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 그런 걸 어찌…….”
허해청은 진짜 저승사자라도 만난 얼굴로 날 바라본다. 나는 가만히 그런 놈을 노려보다 말했다.
“내가 아까 너 체포한 형사처럼 널 안 때리는 이유가 열이 안 받아서 그런 게 아니거든? 열 받아서 네 혓바닥 뽑아서 신발 밑창으로 쓰고 싶은 거 겨우 참고 있는 거야.”
“…….”
“그러니까 네 변명하지 말고 네가 했던 일만 나열해. 알았어?”
서슬 퍼런 내 기세에 허해청의 찔끔 놀라며 바로 앉으며 고개를 숙인다. 채찍을 줬으니 이번엔 당근을 줘야 할 차례이다. 나는 다시 노트북을 가져오며 말했다.
“약속은 약속이다. 진술 똑바로 하면 반드시 한국 감옥에 넣어준다. 지금부터 변명하지 말고, 네가 한 일은 했다고 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해. 넌 그것만 잘하면 된다. 그리고 한국 감옥 가서 맛있는 한식 처먹으며 사는 거다. 알았냐?”
“아, 알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