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16화
16. Journey to crime(18)
며칠 후 고시원 뒤 포장마차.
사건을 해결하고 올라온 다음 날 술 한잔하자며 찾아온 강혁 아저씨와 마주 앉았다. 아저씨는 날 지그시 보며 눈짓한다.
“사건 이야기 좀 해봐라.”
“뭐, 별거 없어요.”
“그래도 듣고 싶어서. 주인장! 여기 오늘 뭐가 맛있습니까?”
도마를 펼치고 칼질을 하던 무뚝뚝한 주인아저씨가 수족관을 눈짓한다. 아주 싱싱해 보이는 낙지 몇 마리가 물속에 있는 양파망 속에 갇혀 꿈틀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강혁 아저씨가 낙지를 보며 씩 웃으며 말했다.
“낙지 좋지! 옛날에는 말이 늙으면 낙지를 먹였다고 하던데. 그만큼 보양에 좋다는 뜻이겠지. 거 한 마리 줘요!”
강혁 아저씨가 다시 날 보며 이야기해 보란 신호를 보낸다.
나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결했고, 어떻게 범인을 잡았는지, 어떤 기억을 읽었는지 말했다.
강혁 아저씨는 평소와 다르게 내 말을 끊고 들어오며 질문을 하거나, 농담을 하지 않고 홀로 소주를 들이켜며 가만히 말을 듣고 있다.
한참 혼자 떠들던 나는 술을 마시고 있는 강혁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이게 끝인데요.”
아저씨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표정으로 혼자 생각하다 잔을 내려놓는다.
“도경아.”
“예?”
“기억 이야기. 그것 좀 듣자.”
응? 아까 허해청에 대해 읽은 기억에 대해 다 말했는데 또 뭘?
“아까 말했는데.”
“그거 말고.”
“그럼요?”
“병원에서 읽은 기억.”
“…….”
“너 최 선생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면서.”
하, 환자 비밀 안 지켜주냐, 진짜? 너무하다. 참아왔던 감정이 북받친다.
“아니! 그 선생은 환자 비밀 유지 같은 것도 안 한답니까? 이거 위법이잖아요. 너무하네, 진짜.”
“…….”
“저 그 병원 다시는 안 가요. 저한테 가라고 하지 마세요.”
화가 났다. 아무리 아저씨라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있게 마련인데. 내 속까지 조목조목 다 보고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싫다.
나는 소주잔을 치우고 글라스에 소주를 콸콸 부어 때려 마셨다. 아저씨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신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좀 나을 텐데. 저렇게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으니 더 화가 난다. 나는 다시 글라스에 소주를 따라 한 번에 마신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갈게요, 피곤해서.”
“…….”
아저씨는 말없이 나를 바라만 보고 계신다. 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후 휘적휘적 걸어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몇 번이나 생각해 봤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다. 아저씨가 날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그 의사 선생은 도대체 뭘까?
나와 아저씨는 가깝지만 엄연한 남이다. 의료법상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가족에게도 병명을 알리지 못한다. 아무리 아저씨가 청장이라도 이래선 안 되는 거다.
최예림 선생에게 가 따질까 고민하다 시간을 보니 너무 늦은 시간이다. 이제 진료에 안 갈 생각이니 다음에 볼 일도 없을 텐데 굳이 따지러 가는 시간도 아깝고.
고시원에 들어가 공용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복도로 들어오자, 고시원 주인아저씨가 날 보며 말했다.
“여, 310호 왔어?”
310호. 내가 지내는 방의 숫자이다. 저 아저씨는 꼭 사람을 방 번호로 부른다.
“예.”
“며칠 안 보이던데.”
“일 있어서 지방 갔다 왔어요.”
“그래? 잠깐만.”
아저씨는 뭔가 뒤적뒤적하더니 누런 봉투 하나를 내민다. 나는 봉투를 가만히 보다 물었다.
“뭐예요?”
“우편물. 310호 없어서 내가 받았어.”
“그냥 제 방 우편물 보관함에 두시지.”
“넣으려고 했는데 너무 커서. 보통 둘둘 말아서 넣는데 그건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응? 이게 뭐길래 그래? 나는 봉투를 받아 겉면을 살폈다.
“보건……복지부?”
여기서 왜 내게 우편물을 보냈지? 아, 국가기관 문서라 아저씨가 보관하고 있었구나. 뭐, 별거 아니겠지. 나는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어, 피곤해 보이네. 어서 가서 쉬어.”
오랜만에 돌아온 고시원 방. 싱글 침대와 책상 하나가 전부인 이 공간에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욕실이다.
싼 고시원 방을 얻은 사람들은 공용 화장실과 욕실을 사용해야 되지만 비교적 비싼 방을 사용하는 나는 이렇게 개인 욕실을 따로 사용할 수 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그동안의 피로가 좀 가시는 기분이 든다.
젖은 머리를 털며 드라이기를 찾다 책상 위에 놓아둔 서류 봉투에 눈이 간다. 도대체 이게 뭘까? 나는 서랍장 안에서 드라이기를 꺼내 머리를 말리며 한 손으로 봉투를 찢었다.
머리를 말리며 봉투에서 몇 장의 서류를 반쯤 꺼낸 나. 그냥 안내문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서류를 보던 나는 맨 첫 줄에 써 있는 한 줄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
얼마나 멈춰 있었을까? 뜨거운 드라이기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타기 직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드라이기를 끈 후에 봉투에 반쯤 나와 있던 서류를 완전히 꺼냈다.
“일반 입양 신청 동의서……?”
[신청인 강혁. 동의 확인 현도경.]
[본인은 상기 신청인의 법적 양자 입적 신청에 동의합니다.]
나는 서류 맨 아래 써 있는 글귀를 보며 굳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나는 거칠게 서류를 넘겨 보았다.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구청 신고서도 포함되어 있는 서류. 모든 증빙 서류 준비가 끝나고 이제 내 사인만 넣고 구청에 제출하면 끝나는 서류였다.
아저씨가 날 아들로 삼길 원한다고?
나에게 가족이 생긴다고?
나는 급히 시간을 보았다. 포장마차에서 돌아온 지 삼십 분이 지났다. 나는 서류를 움켜쥐고 급히 옷을 입은 후 포장마차로 뛰었다.
아직 아저씨가 계실까? 내가 너무 모질게 대해 실망하고 돌아가신 건 아닐까? 그런데 이거 정말일까? 아저씨가 정말 내 가족이 되어주신다는 거야? 정말? 정말?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뛰었다. 급한 마음에 운동화가 아닌 슬리퍼를 신고 뛰었더니 더 힘이 든다.
가파른 오르막을 뛰어 올라가 포장마차가 보이는 곳에 진입한 나는 달을 보며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발견했다.
혼자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
날 이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인데. 처음부터 날 자식같이 생각했기에 그 많은 걱정과 잔소리를 퍼부었던 것인데. 사춘기 꼬마도 아니고 어엿한 성인인 내가 애들처럼 투정을 부려 버렸다.
다시 한번 내 손에 들린 서류 봉투를 내려보았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코끝을 여러 번 비비며 아저씨에게 걸어갔다.
서울 도심이 한눈에 보이는 포장마차에 앉아 달구경을 하던 아저씨가 자기 옆에 온 나를 바라보더니 빙긋 웃는다.
“왔냐?”
왜 그렇게 갔냐, 버릇없게. 너는 왜 그러냐? 사람 말도 끝까지 안 듣고. 왜 내 마음을 그리 몰라 주냐. 수많은 말을 할 만도 한데. 아저씨는 그저 ‘왔냐?’라는 말을 하며 웃어주신다.
“아저씨.”
아저씨가 내 손에 들린 봉투를 힐끗 보더니 약간 부끄러운 얼굴로 소주를 마신다.
“그건 뭣 하러 들고 다녀. 그냥 사인해서 구청에 내면 될 것을.”
아까 시킨 낙지가 나왔는지 삼십 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잘게 잘린 낙지 다리들이 꿈틀거리는 그릇을 나무젓가락으로 휘적거리는 아저씨. 민망한 얼굴을 감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귀엽다.
나는 그런 아저씨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 맞은편에 털썩 앉은 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누가 동의해 준대요?”
“…….”
젓가락질을 하던 아저씨가 굳는다. 날 가만히 바라보는 아저씨가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운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구청 가서 내라는 서류. 내가 언제 이런 거 사인한다고 했어요?”
“…….”
“귀찮게 정말.”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포장마차 주인아저씨에게 외쳤다.
“아저씨 여기 볼펜 없어요?”
포장마차 사장님이 볼펜을 하나 가져온다. 나는 웃으며 사장님께 말했다.
“요즘 귀찮게 하는 아저씨가 생겨서 미치겠네요.”
사장님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 멀뚱멀뚱 날 바라보다 휙 돌아 가버린다. 나는 서류를 꺼내며 강혁 아저씨를 보며 웃었다.
“에이! 사인해 줘버려야지! 그래야 귀찮게 안 하지!”
“…….”
강혁 아저씨의 굳은 얼굴이 사르르 펴진다. 웃고 있는 날 보던 아저씨가 인상을 쓴다.
“나이 먹은 놈 놀리니 좋으냐?”
“나이 어린 놈 놀리는 건 좋아하시면서.”
“그거랑 이거랑 같냐, 인마!”
“뭐가 달라요?”
“하여간 한마디를 안 져요!”
“저 아저씨 말로 이겨본 적 없는데요.”
“이 새끼가.”
나는 웃으며 서류 서명란에 사인을 했다. 그러곤 다시 봉투에 서류를 넣은 후에 말했다.
“아저씨.”
“왜?”
“설마 아빠라고 불러야 되는 건 아니죠?”
“간지럽게 하지 마, 미친놈아.”
“킥킥. 근데 사모님 허락은 받았어요?”
“와, 이 정 없는 새끼 봐라.”
“왜요?”
“나 이혼했거든? 그것도 10년 전에?”
“헐, 진짜? 왜요?”
“뭘 왜야, 인마. 집에 들어가질 못하는데 결혼생활이 어떻겠냐.”
“헉, 그럼 저도 결혼 못 해요?”
“하지, 왜 못 해. 갔다가 잘 돌아오는 거지. 낄낄.”
“와, 대박.”
“경찰의 숙명이라고 생각해라, 낄낄.”
“경찰은 결혼생활 못 해요? 잘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어, 근데 너나 나 같은 놈은 못 해. 사건에 매달려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놈들은 다른 걸 못 보거든. 하나 챙겼으면 하나는 포기하는 게 인생의 진리다, 어린놈아.”
다시 낄낄대기 시작하는 우리.
사실 아저씨가 이혼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경찰대에 다닐 때 무척 힘든 얼굴로 찾아온 아저씨가 술 한잔하자고 한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교수님과 인사하는 아저씨를 보고 나중에 교수님께 여쭤보니 이혼했다고 들었다.
그때는 그냥 모른 척했다. 괜한 위로보단 평소처럼 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한참 농담을 주고받던 나는 옆에 두었던 서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구청에는 나중에 가려고요.”
“…….”
“지금은 나를 향한 이런 마음이 실체화되어 있는 이 서류를 그냥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구청에 안 간다는 소리에 풀 죽은 표정이 된 아저씨가 내 마지막 말에 빙긋 웃는다. 꾸물거리는 낙지를 젓가락으로 푹 퍼서 참기름에 찍어 내 숟가락에 올려준 아저씨가 말했다.
“서류야 아무렴 어떠냐? 각자 속내를 알고 있으면 그걸로 된 거지. 새끼.”
“하하, 그러네요.”
강혁 아저씨가 날 흘겨보며 말했다.
“병원은 계속 다니는 거다?”
“하하…… 알았어요.”
“최 선생에게 너무 뭐라고 하지 말고. 사실 그 서류. 최 선생에게 먼저 보여줬다. 네 상태에 대해 알고 싶어서.”
아, 그래서 최 선생님이 아저씨에게 모든 걸 말했구나. 이제 상황이 이해된다. 하긴 지금 난 너무 행복한 마음에 무슨 말을 들어도 행복할 것 같지만.
내게도 가족이 생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내겐 가족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