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25화
17. 증거(證據)(9)
KCSI.
초조한 얼굴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내게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오진규와 연주, 관우가 다가온다.
오진규가 내 모습을 보고 아직 결과가 나오기 전임을 눈치채고 검사실 방향을 바라본다.
“결과 얼마나 기다려야 된 답니까?”
“아직 몰라요.”
연주가 핸드폰을 들며 말했다.
“시신 신원 확인만 되면 한정수 이 사람 긴급체포 할 수 있게 밀착 감시 팀에 연락해 둘게요.”
시신이 김주연임을 밝혀낸다 해도 한정수가 살인자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살해 시점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긴급체포 사유가 된다. 적어도 2차, 3차의 증거 은닉이나 훼손을 할 수 없도록 묶어둘 수 있는 것이다.
관우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논두렁 쪽에서 발견됐다고 들었는데.”
“어.”
단서를 찾아낸 건 전적으로 관우 덕분이다. 녀석이 CCTV 동선과 시간을 비교해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면 수색대는 아직도 엉뚱한 공원묘지 주변을 뒤지고 있었을 테니까.
관우가 노트북을 열고 날짜별 날씨를 체크하며 말했다.
“1월 7일 날씨는 2.8도. 밤에 영하로 떨어졌지만 낮 기온은 영상이었습니다. 범인이 논두렁에 증거물들을 버렸을 때는 얼음이 녹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든다.
“게다가 주변은 오리 농법을 쓰는 농가였다. 범인은 오리들이 논두렁을 누비며 곤충들을 먹을 때 증거도 함께 훼손되기를 바랐을 거야.”
연주가 실소를 지었다.
“이 겨울에 무슨 오리가 농사를.”
오진규가 어깨를 으쓱한다.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으니 생각이 짧았겠지. 어쨌든 밤사이에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논두렁은 얼었다.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봐야지.”
바로 그때, 검사실 자동문이 열리며 침통한 얼굴의 목 과장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우르르 달려가 과장님을 에워쌌다.
“어떻게 됐습니까? 김주연 씨 시신 맞아요?”
“맞죠? 맞죠?”
팀원들 사이에 서서 무뚝뚝한 표정을 짓던 목 과장님이 날 바라본다. 표정을 보니 결과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목 과장님과 눈빛을 교환하다 천천히 연주 어깨를 잡았다.
“밀착 감시 팀에 전화해서 작전 취소해.”
연주가 놀라 날 바라보다 목 과장님 표정을 다시 보고는 시무룩한 얼굴로 전화기를 들고 구석으로 간다. 오진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설마 동물 뼈입니까?”
목 과장님은 오진규에게 존대를 한다. 목 과장님 쪽 연배가 더 높지만 쉽게 반말을 할 정도로 정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 뼈 맞습니다.”
사람 뼈가 맞다. 하지만 김주연 씨 뼈는 아니다? 그럼 또 다른 누군가 살해되었다는 건가?
“희생자가 더 있다는 겁니까?”
목 과장님은 질문을 던진 날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몰라.”
목 과장님은 전화를 걸러 간 연주가 다시 돌아왔을 때를 기다렸다가 모두 앞에서 말했다.
“얼음 위에서 발견된 탄화물은 새끼손톱 반 정도 크기였다. 성분 분석 결과, 섬유가 나왔고, 아마 옷일 확률이 높지만, 김주연 씨 실종 당시에 입었던 옷과 같은 종류인지는 알 수 없다.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울 섬유의 재질이란 것밖에 없다.”
오진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김주연 씨가 실종 당시 분홍색 울 스웨터를 입고 있었죠.”
관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 타서 색 분석이 안 되는 거네요. 울 스웨터 입었다는 것만으로 김주연 씨라고 단정 지을 순 없으니.”
목 과장님이 관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얼음 아래에서 발견된 대퇴부 뼈로 추정되는 뼛조각은 길이 13.8㎝의 뼈였다. 하지만 단백질 성분이 남아 있지 않았어.”
연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 타버렸으니까 단백질은 안 남았겠지만…… DNA는요?”
관우가 한숨을 쉬며 끼어든다.
“DNA 분석을 하려면 단백질이 남아 있어야 돼. 뼈만 남았을 때 골수까지 타버렸으면 DNA 채취 자체가 불가능해.”
목 과장님이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관우 말이 맞다. 사람의 뼈라는 것도 부러진 뼛조각의 단면을 보고 알아낸 것이고, 그 외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다. 일단 뼛조각은 미뤄두고 얼음 위에서 발견된 탄화물들을 추가 분석 중이야.”
오진규가 고개를 흔든다.
“하, 미치겠네. 진도가 확 나가나 했더니.”
나는 잠자코 상황을 파악하다 말했다.
“연주야.”
“네, 과장님.”
“홍천 시내 수색 중인 수색대 쪽에 연락해서 수색 반경 더 넓히라고 해. 그리고 관우.”
관우가 나선다.
“네, 과장님.”
“수색은 네가 직접 맡는다. 현장 내려가서 CCTV 분석하고 가장 의심 가는 부분을 짚어줘.”
“헐, 의경 중대장이면 경감인데 제 지휘 받을까요?”
오진규가 관우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국가수사본부 이름 팔면 누가 반항해? 내가 같이 내려가마.”
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난다. 나는 다시 연주에게 말했다.
“연주는 KCSI에서 대기해. 뭔가 더 나오면 바로 연락해 주고.”
“네, 과장님.”
나는 마지막으로 목 과장님 쪽을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나올 확률이 높겠지만 최선을 다해주세요, 부탁합니다.”
“그래, 고생해라.”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 일단 장영훈 본부장님께 현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청으로 돌아왔다.
KCSI를 통해 미리 대략적인 보고를 받으셨는지 짧게 보고를 끝내고 돌아온 사무실. 모두가 자기 일을 하러 나가고 나 혼자다.
나는 책상에 앉아 사건 기록을 훑어보았다. 내가 놓친 건 없는지. 혹시 뭘 더 봐야 하는지. 하지만 답답한 마음만 든다.
“후…….”
커피나 한잔하자는 마음으로, 믹스 커피를 타 창가에 서자 문득 공원묘지에서 읽었던 강혁 아저씨 기억이 생각난다. 기억 속의 묘비가 떠오른다.
5-438
故人名 : 河娜恩
1960년 9월 13일 ~ 2023년 11월 10일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나는 커피를 마시다 PC를 보았다. 사건 이외의 기록을 열람하는 건 금기이지만, 그래도 아저씨 일이라 그런지 궁금한 마음이 든다.
이름과 출생연도를 아니 검색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경찰청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해 확인하자, 생일이 같고 이름이 같은 인물들이 쭉 나열된다. 그중 사망 일을 다시 입력하니 그런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뭐지?”
사망한 날짜 이날이 맞는데.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다시 내려가서 보고 와야 되나? 2023년이면 내가 순환보직을 돌다 종로 경찰서 강력 3반에 배치받았던 그 해인데.
나는 하나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기록을 쭉쭉 내려보다 어느 순간 멈췄다.
“어……?”
1960년 9월 13일생의 하나은. 그들 중 사건 피해자가 있다.
“2023년 11월 10일. 북한산 보광사 뒤편 5㎞ 지점에서 백골 사체로 발견?”
2023년 11월 10일. 내가 본 하나은의 사망 일자와 같은 날짜에 발견된 백골 사체. 설마 이 사람인 걸까? 나는 그녀의 기록을 눌러 상세 기록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크게 떴다.
“경찰?”
1980년 경찰공무원 시험으로 순경 임관. 1984년 경장 진급, 1987년 경사 진급 후 퇴직.
뭐지? 80년대에는 공무원 되기 힘들었을 텐데 달랑 7년 일하고 그만뒀다고? 왜?
게다가 여경이 경사까지 진급하는 일은 그 시절에 매우 드문 일이었다. 꽤 능력이 있으니 이만큼 진급을 했을 텐데 왜 그만뒀을까? 그리고 그녀는 왜 백골 사체로 발견된 걸까?
나는 턱을 괴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았다.
“만약 경찰 업무 수행 중에 돌아가셨다면 국립묘지에 있었을 거다. 퇴직이라는 기록이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돼.”
경찰 업무 중에 발생했던 일이라면 일단 직위 해제가 먼저 있어야 된다. 실종으로 업무 수행이 불가한 상황에 놓였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정상적으로 퇴직했다. 퇴직 연도는 1988년 5월 21일. 이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강혁 아저씨와는 무슨 관계일까?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던 나는 문득 잠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을 때가 새벽 두 시 반. 나도 모르게 팀원들 일 시켜두고 혼자 사무실에서 자버리는 만행을 저질러 버렸다.
아침 여덟 시가 되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뜬 나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몰라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연락 온 곳이 없다. 아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밤새 아무것도 진척이 없다는 뜻인데.
나는 양치와 세면부터 한 뒤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여기 이렇게 가만히 있다고 되는 일은 없다. 일단 다시 현장에 내려가 볼 생각이다.
벌써 몇 번이나 홍천에 내려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젠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찾아갈 지경이다.
홍천 시내를 거쳐 논두렁 방향으로 틀자, 입구에 의경 버스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밤새 수색작업이 계속된 모양이다. 물론 자기들 알아서 교대 근무를 하고 있겠지만 무척 고생스러울 것이다.
버스들 사이를 지나, 어젯밤 증거물들이 발견된 논두렁에 도착했다.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고 의경 몇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주변 수색을 끝내고 안쪽으로 더 밀고 들어간 모양이다.
차를 대고 내리자, 수색 본부 천막이 보인다.
내 얼굴을 아는 의경들의 경례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여 준 뒤 천막 문을 열자,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관우가 보인다.
“아~~~하아아암, 어? 과장님 오셨어요?”
녀석,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이구나. 나만 자고 와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잠 못 잤지?”
“하하, 뭐 그렇죠.”
“인근 모텔에서 다섯 시간만 자고 와.”
“오 선배님 현장 나가셨는데.”
“따로 말할 테니까 너부터 가. 그러다 몸 상한다.”
관우는 거절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더는 몸이 버티지 못하겠는지 비틀거리며 일어나 상의를 걸친다.
“모텔 가기는 그렇고 사우나 가서 목욕이나 하고 잠깐 눈 붙이고 올게요.”
“그래.”
“오 선배님 밤새 뛰어다니셨어요. 꼭 휴식 줘야 됩니다.”
“그래, 알았다.”
관우를 먼저 보내고 오진규가 있는 곳을 알아내 차를 몰고 도착하자, 초췌한 얼굴로 지시를 내리고 있는 오진규가 보인다.
“거기 말고, 그래 거기. 잘 뒤져봐. 어이! 그쪽은 함부로 밟지 말고!”
열정 하나는 젊은 사람 못지않은 오진규.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선배님.”
“과장님 오셨습니까?”
“관우 녀석 사우나 가서 눈 좀 붙이라고 했습니다. 선배님도 다녀오시죠.”
“전 괜찮습니다.”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체력이 유지돼야 끝까지 수사하죠. 다녀오세요.”
오진규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웃는다.
“더 사양하면 명령이라도 내릴 기세네요. 알겠습니다. 잠깐만 쉬고 오겠습니다. 여기 의경들 불쌍하네요. 경감이 가고 총경이 오다니, 하하.”
오진규는 수색 중인 현장을 바라보다 한숨을 쉰다.
“이 개X끼. 증거만 나와봐라. 이 고생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니까. 아오.”
혼자 욕을 하다 자리를 뜨는 오진규. 나는 푹 쉬고 오라 등을 두들겨 준 뒤 수색 현장을 바라보았다.
내 팀원들뿐 아니라 총 1,200명이 넘는 의경들을 교대로 수색하게 만든 범인. 도대체 이놈 때문에 몇 명의 인력이 피해를 보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를 갈며 논두렁들을 노려보았다.
“잡히면 뚝배기 부숴 버린다, 새끼야.”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악의가 솟구치던 바로 그때. 겨울이라 갈색으로 물들어 있던 논두렁들이 점점 색을 잃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