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26화 (225/328)

살인의 기억 226화

17. 증거(證據)(10)

머릿속에 전기장치가 들어 있는 것처럼 삐 하는 소리가 울린다.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간 나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한 압박감과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하아, 하아…….’

나는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이상하다. 주변에 힘든 일을 하고 있던 흔적이 전혀 없다.

나는 지금 차 안에 있다. 방금 운전을 마쳤는지 시동을 끄고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숨을 고르던 나.

나는 한참 그 자세로 있다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며 트렁크 열림 버튼을 눌렀다. 차에서 내리다 비틀거리는 바람에 넘어질 뻔한 나는 겨우 차 문을 잡고 버텼다. 다리가 풀려 몇 번이나 휘청거렸지만 내 마음은 무척 조급하다.

‘하아, 하아…….’

나는 주변을 살피며 차 트렁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 시야에 차 트렁크 내부의 모습이 보인다.

김장을 담글 때 사용하는 커다란 비닐 위에 김주연의 시신이 있다.

머리를 가격당했는지 후두부에 커다란 상처가 있고 비닐에 핏물이 흥건하다. 나는 그녀의 시신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씨X…….’

젠장, 죽일 생각까지는 아니었는데. 너무 화가 나 정신없이 때리다 보니 어느 순간 아내가 숨을 쉬지 않았다. 뒤늦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흔들어 봤지만 아내는 깨어나지 않았다.

‘씨X, 씨X!’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결혼 복이 왜 이다지도 없는 걸까?

처음 만난 마누라 년은 헬스 트레이너와 바람이 나 이혼했다. 그때 생긴 의처증을 극복하기 위해 3년이나 혼자 있었다.

이번에 만난 이 여자와는 잘 살겠다고 다짐했다. 슬하에 전남편과 낳은 딸이 있었지만 애가 착하고 생각도 깊어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 싶었다.

살갑게 잘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계부 이야기 안 듣기 위해 해줄 건 다 해줬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나는 피를 흘리는 아내의 시신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니까, 이미 뒤진 오빠 묘는 왜 이장한다고 지랄이야. 지금 사업도 접고 내가 얼마나 힘든데. 돈을 씨X, 쓰기만 하면 다야? 벌어오는 건? 너도 돈 번다고? 지랄하네, 부모가 남긴 상가에서 한 달에 월세 120 받는 걸로 생활 유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딸 학원비만 해도 120이 넘어, 이 사람아.’

돈 문제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알아듣게 설명도 해봤다. 10년이나 운영하던 내 회사를 더 유지할 수 없어 접을 때도 아내는 날 위로하지 않았다. 그저 내 탓을 할 뿐이었다.

바닥부터 굴러 일군 내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 억장도 함께 무너졌다. 하지만 아내는 전혀 힘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내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처자식 먹여 살리는 건 남편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내 판단이 빨라 빚을 지는 일은 없었다. 좋은 가격이라고 할 순 없지만 대기업에 사업체를 넘기고 말년을 살 수 있을 돈도 마련했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을 때려보아도 그 돈으로 죽을 때까지 먹고살 순 없었다.

회사 사장일 때부터 알고 지내던 현주 생각이 난다.

그 아이는 참 마음에 드는 아이였다. 필요 이상으로 내 삶에 관여도 하지 않고 돈만 대주면 내 판타지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는 여자였다. 그녀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도 내게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서울 근교에 있어 여행객들이 자주 오는 홍천에 내려와 펜션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었다.

부동산 업자를 대동하고 건물 부지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던 그때. 내가 가진 돈으로 펜션을 하기에는 조금 모자라다 생각해 은행 대출을 알아보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갑작스레 아내가 멀쩡한 오빠 묘를 이장하겠다고 나섰다.

아니, 씨X. 왜 갑자기 이 시국에 그런 짓을 하냐고. 좀 더 여력이 있을 때 해도 되잖아? 묘지에 응달이 져서 그렇다고? 오빠가 추울 것 같다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미 뒤진 새끼가 뭘 안다고. 얼굴도 모르는 새끼 때문에 내 미래를 책임질 돈을 쓸 순 없다. 게다가 아내는 추모 묘지가 아니라 산에 땅을 사서 묻어주고 싶단다.

몇 번이나 말렸다. 지금 내 사정에 대해 충분히 말해주기도 했다. 그러자 아내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상가를 팔아 그 돈으로 이장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니, 씨X. 그건 최후의 보루라고. 내가 펜션 사업 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만약에 이것도 망하면 우리한테 남은 게 그 상가뿐인데 그걸로 이미 뒤진 새끼 이사를 시켜준다고? 어이가 없어서 정말.

나는 아내 시신을 노려보며 원망을 키웠다. 모든 게 저 여자 탓이다. 이 죽음도, 지금 내 고생도. 전부 이 여자 탓이다.

‘내 인생까지 망할 순 없어.’

지워야 된다. 이 여자와 있었던 모든 일, 모든 증거를 없애야 된다. 제일 먼저 없애야 하는 건 시신이다. 시신이 없으면 사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나는 주머니에서 목장갑을 꺼내 끼고 준비해 온 비옷을 꺼내 입었다.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아내 시신을 낑낑거리며 어깨에 메고 비틀거리며 걸었다.

회색 벽, 붉은색 양철 지붕.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만 뻥 뚫린 폐가가 보인다. 나는 이 집을 알고 있다. 얼마 전에 부동산 업자와 와서 본 곳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혼자 사는 할머니였는데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집을 내놨다고. 완전히 방치된 집이라 싸게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단층 건물에 부지도 좁아서 펜션을 지으려면 건물을 다 철거하고 다시 지어야 하니 안 사겠다고 거절했던 집이다.

그때 나는 이 집이 아주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며, 아무도 찾지 않는 집이란 정보를 얻었다.

아내 시신을 들고 폐가 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얼어붙은 논두렁들. 육안으로 보이는 가장 가까운 민가가 1㎞ 이상 떨어진 외진 곳이다.

물론 여기라고 시신을 그냥 방치하면 반드시 발견된다. 나는 아내 시신을 들고 옛 주방으로 향했다. 어찌나 오래된 주방인지 집과 분리되어 두 개의 아궁이를 떼는 부엌이 보인다.

이 아궁이에 불을 때면 방도 따뜻해지는 구조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아궁이 옆에 아내 시신을 앉혀놓고 지푸라기를 모아 아궁이에 불을 때기 시작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라이터 불을 켜는데도 몇 번이나 놓쳤다.

‘씨X! 씨X! 좀 붙으라고!’

몇 번의 노력 끝에 드디어 지푸라기에 불이 붙었다. 주변에서 땔감을 찾아 불을 좀 더 키웠지만 이 정도 불로는 밥도 못 짓는다.

나는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오래 사람이 살지 않아 쓰기 좋게 잘라둔 땔감을 찾는 건 무리였지만 다행히 잡풀이 길게 자라 있는 것이 보인다.

녹슨 낫을 찾아와 풀을 베고 운 좋게 발견한 나뭇가지들을 모아 부엌에 때려 넣었다.

그리고 차로 돌아가 뒷좌석에서 미리 사둔 등유 통을 가져와 붓자, 불길이 천장에 닿을 만큼 솟구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일 거다. 등유는 휘발성 물질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큰불을 내게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더 많은 땔감을 필요로 하게 된다.

나는 좀 더 먼 곳까지 수색해 굵은 나무들을 찾아냈다. 도구가 없어 나무를 베지는 못하고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주워 돌아와 불 속에 던져 넣은 나는 아궁이 위에 아내 시신을 눕혔다.

동그란 아궁이 위에 누워 있는 아내 시신. 같이 산 건 4년 남짓이지만 꽤 정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제 죽은 사람일 뿐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 삶도 망칠 순 없잖아? 당신이 이해해.

아내 시신 옆으로 불길이 솟구쳐 오른다. 먼저 진한 탄 내음이 나며 아내의 옷이 타오른다. 순식간에 옷을 태운 불길이 아내의 머리로 옮겨붙는다. 사람 머리카락이 저렇게 빨리 타는지 몰랐다. 불이 붙는다 싶은 순간 머리카락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나는 우두커니 아내 시신이 불에 타는 것을 보다 땔감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연기도 나고 있다. 혹시 주변에서 불이 난 건 아닌지 나와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급히 집 밖으로 나와 주변을 경계하며 땔감을 모았다. 한참이나 모아 등에 짊어진 땔감을 가지고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 시신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역한 냄새가 나고, 검은 그을림 사이로 붉은 핏자국들이 보이는 흉물스러운 시신.

하지만 이것으로 안 된다. 완전히 없애 버릴 때까지 태워야 된다. 드라마에서 많이 봤다. 이런 시신들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들었다. 재가 되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태워야 된다.

나는 나뭇가지로 아내 엉덩이 부분을 들어 아궁이 속으로 땔감들을 밀어 넣었다. 다시 불길이 솟구치고 그 순간 아내 엉덩이가 아궁이 속으로 쑥 빠져든다.

잘됐다. 이러면 더 잘 태울 수 있을 거다. 나는 나뭇가지 두 개로 아내 팔을 들어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시신이 반신 욕조 속에 들어간 모양새가 되니 불길이 더욱 거세게 솟구친다.

솟구치는 불길을 보니 왠지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 든다. 여기까지 긴장한 상태로 오느라 힘이 쭉 빠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타오르는 불길을 멍하게 보고 있는 나.

가끔 불길이 작아질 때면 나뭇가지를 더 넣고, 등유를 더 붓는다. 그것이 이후로 내가 한 행동의 전부이다.

사람 살 타는 냄새를 가까이서 맡아본 건 처음이다. 처음에는 역했지만 이제 좀 익숙해진다. 고구마 굽는 냄새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맡고 있을 만하다.

아직도 불길 속에 타오르는 아내 시신의 모양이 보인다. 한참이나 더 태워야 화장터에서 사람 시신 태우듯 뼈만 남을 것이다.

뼈가 나오면 부숴서 잘게 쪼갠 후 여러 곳에 나눠 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내는 실종으로 판명이 될 것이고, 내가 살인자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혼인 신고를 해서 법적 대리인이 나니까 상가도 내 것이고.’

됐다. 펜션 사업이 잘되면 그쪽에서도 돈을 벌고 상가 월세는 현주 갖다 주면 될 거다.

딸은? 음, 계속 키워야 할 거다. 내가 의심을 피하려면 말이다. 다행히 고등학생이니 곧 성인이 되니까 성인이 되면 바로 독립을 시켜야지.

나는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 원망하지 마. 나 살려고 이혼했어. 더 살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런데 다시 결혼하고도 죽을 것 같았어. 나부터 살아야지. 이건 다 당신 탓이야. 그러니 원망하지 말고 편히 가.’

타오르는 붉은 불길이 점점 색을 잃어가고 폐가의 부엌이 빙글빙글 어지럽게 돈다.

세상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은 나는 몸의 감각을 찾자마자 비틀거렸다.

“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부터 살폈다. 다행히 이번에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 야외이긴 하지만 다들 수색에 정신이 팔려 날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없던 모양이다.

나는 잠시 허리를 숙이고 어지러움을 참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이 짐승 같은 새끼가…….”

자기 아내를 죽이고 오히려 남 탓을 하는 인간 말종.

원망하지 말라고? 나 살려고 그랬다고? 자기 살려면 남은 죽어도 된다는 생각인 거야?

“한정수…….”

확실해졌다. 남편이 범인이다. 나는 분노에 손을 떨며 전화를 들었다.

“연주야, 나다. 홍천 시내 부동산 업자들 전부 연락 돌려서 한정수와 함께 펜션 사업 구상한 업자 찾아내, 지금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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