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27화
17. 증거(證據)(11)
두 시간 후, 임시 수색본부 천막.
긴급한 경찰의 호출 요청을 받고 달려온 부동산 업자는 총 셋이다. 물론 실제 이 부근에서 활동하는 업자는 더 많겠지만 연주가 미리 한정수와 접촉한 업자만 추려서 보냈을 것이다.
나는 의경들이 마련해 준 플라스틱 테이블에 셋을 나란히 앉힌 후 맞은편에 앉았다.
경찰이 부른다고 해서 오긴 왔는데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된 세 사람은 말없이 내 눈치만 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중이다.
나는 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몇 가지 질문만 드리고 바로 귀가 조치해 드릴 테니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죄지어서 끌려 온 거 아니니까.”
하지만 내 말에 더욱 긴장해 보이는 세 사람. 그중 머리가 반쯤 벗겨진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기…… 일단 부르신다고 해서 오긴 왔는데 무슨 일인지. 전화로 듣기로는 한정수 그 사람과 접촉한 사람을 찾는다고 하던데.”
나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 분 모두 한정수 씨와 함께 동네 매물을 보러 다니신 분들입니까?”
셋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가만히 세 사람을 보며 물었다.
“이 중에 한정수에게 동네 폐가를 구매시키려던 분이 누구십니까?”
세 사람은 각자 뜨끔한 얼굴을 한다. 셋이 눈빛을 교환하던 사람들 중 대머리 아저씨가 다시 나선다.
“저기…… 형사님. 이 동네에 사람 안 사는 저택이 꽤 많습니다. 저희가 가진 매물 중에도 꽤 있고요. 업체가 다르다고 해도 관리하는 매물이 다 거기서 거기인 처지라 아마 셋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매물을 내놓은 사람이 여러 부동산에 의뢰했을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그중에 계약을 성사시킨 부동산에 중개 수수료를 낼 테니 내놓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부동산에 의뢰했겠지.
대머리 아저씨의 말에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인다.
“관리하시는 매물 중에 폐가가 몇 채나 됩니까?”
대머리 아저씨가 손가락을 구부리며 수를 센다. 열이 넘어가는 숫자. 아저씨는 한참 생각해 본 뒤 다른 이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우리 쪽에 열일곱. 거기는?”
“우리는 열인데.”
“우리 쪽에는 열셋.”
대머리 아저씨가 잠깐 생각을 해본 뒤 한 아저씨를 향해 말했다.
“자네 거, 두촌에서 받은 매물. 그거 아직 안 나갔지?”
질문받은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 가진 매물의 주소로 숫자를 맞춰본 대머리 아저씨가 말했다.
“총 열여덟 채쯤 됩니다.”
“그중에 아궁이를 사용하는 오래된 집이 얼마나 됩니까?”
“아궁이요?”
대머리 아저씨는 생각도 못 한 질문에 잠시 멍한 얼굴이었다가 다시 손가락을 든다. 하지만 오래 생각지 않고 말했다.
“우리 쪽은 둘.”
나머지 두 아저씨가 각기 손가락 하나씩을 든다. 대머리 아저씨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어디? 내촌?”
“아니, 남면.”
대머리 아저씨 손가락 하나가 더 구부러진다. 다음 아저씨를 본 대머리 아저씨가 물었다.
“거긴?”
“우리는 북방.”
대머리 아저씨 손가락 하나가 더 구부러진다. 총 네 군데. 됐다, 네 군데 수색하는 건 한 시간이면 된다. 수색대를 네 개로 쪼개어 수색하면 금방 찾을 것이다. 설마 네 군데 아궁이 전부에서 그을림이 나오진 않을 테니까.
나는 메모지를 밀어주며 말했다.
“그 네 곳의 주소 좀 부탁드립니다.”
부동산 업자들은 주소를 외우고 있지는 않은지 머뭇거린다.
“저기, 수첩에 있는데 급하게 오느라 안 가져와서.”
“사무실까지 얼마나 걸리십니까?”
“차로 십오 분 걸립니다.”
“명함 드릴 테니 이 번호로 문자 넣어주세요.”
“아, 그래도 됩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중대장들을 불러 수색대를 네 개로 쪼개라는 지시를 하려다 문득 기억 속에서 읽었던 주변 풍경을 떠올렸다.
사방이 잡풀로 우거진 거대한 논두렁. 가장 가까운 민가가 1㎞는 떨어져 있던 외진 곳이었다. 나는 다시 업자들을 보며 물었다.
“혹시 네 군데 중에 아주 외진 곳에 있던 집만 추리면 어떻습니까?”
대머리 아저씨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고, 형사님. 아궁이 뗄 정도로 오래된 집이 폐가로 남았다는 건 원래 외진 곳에 있었다는 소리 아닙니까? 우리가 가진 매물들 전부가 그럴 겁니다.”
“전부 한정수에게 추천했던 매물입니까?”
“저는 그런데…….”
대머리 아저씨가 나머지 두 사람을 보자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긁는다.
“외지인이 펜션 사업하러 오면 꼭 보여주는 편이죠. 이 동네 사람들은 절대 그런데 집 안 사지. 외지인에게 팔지 않으면 영영 못 파는 매물이니까 뭐…….”
음, 다 비슷한 집이란 거구나. 할 수 없지. 괜찮다, 어차피 달랑 네 군데뿐인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리다 문득 다시 기억을 떠올렸다.
한정수의 기억을 읽을 때, 어깨에 아내 시신을 짊어지고 향했던 집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붉은 양철 지붕, 회색 벽으로 지어진 단층집. 분명히 그렇게 생긴 집이었다.
“혹시 붉은 양철 지붕 집은 없습니까?”
두 업자는 고개를 저었고, 대머리 아저씨 눈이 동그래진다.
“어?”
찾았다, 바로 저기다. 나는 대머리 아저씨에게 물었다.
“혹시 그 집이 회색 벽으로 지어진 집입니까?”
대머리 아저씨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어…… 원래 회색 집 아니었는데 오래돼서 칠이 다 벗겨져서 시멘트가 다 드러나 그렇지요.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 집이 있는지. 여기 부동산 업자들도 거의 모르는 집인데.”
“주소 기억하십니까?”
대머리 아저씨는 자신 있는 얼굴로 일어났다.
“너무 오래 사람이 살지 않아서 주소가 말소된 곳입니다. 제가 직접 안내하죠.”
“여기서 얼마나 걸립니까?”
“차로 가면 10분 내외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수색대 부르겠습니다.”
“수, 수색대?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죄송합니다, 수사 기밀이라.”
“…….”
나는 천막 밖을 지키고 있는 의경에게 속삭였다.
“가서 중대장님께 수색대 전원 출동 대기해 달라고 전해. 여기서 10분 거리고, 선두 차량 쫓아오라고.”
“예, 알겠습니다.”
의경이 재빨리 뛰는 모습을 본 나는 바로 목 과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어, 도경아.
“KCSI 즉시 출동 가능합니까?”
-언제든 가능하지, 왜 뭐 발견했냐?
“아직 발견 못 했습니다만, 유력한 현장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지금 출동 중인데 해당 지역에 주소가 말소되었답니다.”
-대충 어디 근처인데?
“어제 임시 수사본부 천막 오셨죠? 거기서 차로 10분 거리입니다. 제가 폰으로 GPS 켜서 공유해 드릴 테니 바로 거기로 대원들 보내주시겠습니까?”
-알았다, 바로 보내마.
“감사합니다, 과장님.”
-당연한 일로 뭘. 나도 바로 내려가마.
“아직 아무것도 발견 못 했습니다.”
-자식, 다른 놈도 아니고 내가 널 몰라? 네가 찍은 곳이면 반드시 뭔가 나온다. 내가 짬밥을 허투루 먹은 줄 아냐, 이놈아? 내려갈 테니 기다려.
“알겠습니다, 과장님.”
잠시 후 논두렁 사잇길.
대머리 부동산 업자 아저씨의 차량 뒤로 수십 대의 경찰 버스가 따라붙는다. 아저씨는 평생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그런지 잔뜩 긴장해 허리를 쭉 펴고 곧은 자세로 운전 중이다.
자기가 대충 운전한다고 따르는 버스들이 논바닥에 추락하는 것도 아닌데 방향을 틀 때마다 무척 조심하는 아저씨.
아저씨 차의 조수석에 앉아 사이드 미러로 뒤를 확인하니 의경 중대 버스 스무 대가 줄지어 따라오고 있는 장관이 펼쳐져 있다. 대머리 아저씨가 우측 방향 표시등을 켜고 침을 꿀꺽 삼킨다.
“와따, 운전면허 시험 볼 때보다 더 떨리네.”
하긴 자신을 따라 800명이 넘는 인력이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도 800명 전원이 경찰인데 긴장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뒤를 보니 KCSI에서 출동 나온 대원들 차가 우릴 발견하고 제일 후미에 따라붙는 것이 보인다.
아저씨가 뒤를 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좁아서 버스는 못 들어가는데요.”
“여기서 도보로 얼마나 걸립니까?”
“5분이요.”
나는 즉시 무전을 들었다.
“수색대, 수색대.”
-예, 수색대 수 하나입니다.
“길이 좁아 버스 진입이 불가하다, 길에 주차하고 하차해서 도보로 이동하도록. 여기서 5분 거리.”
-예, 알겠습니다.
“후미에 KCSI 차량 진입 용이하도록 비켜서서 주차해.”
-예, 전달하겠습니다.
KCSI는 버스 대신 RV차량을 타고 다니니 진입 가능할 것이다. 눈치 빠른 대머리 아저씨는 할 수 있는 한 제일 느린 속도로 좁은 골목길에 진입하며 연신 뒤를 확인한다.
버스에서 의경들이 뛰어내려 쫓는 것을 확인하며 가는 아저씨가 어느 순간 차를 세우며 전면을 눈짓한다.
“저 집입니다.”
앞을 보자, 기억 속에서 본 붉은 양철 지붕에 회색 시멘트로 지어진 집이 덩그러니 있는 것이 보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보았다. 저 멀리 1㎞ 밖에 있는 민가. 주변에는 휑하게 죽은 풀만 있는 겨울의 논두렁이 기억과 꼭 일치한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차에 계세요.”
“아, 안 내리고요?”
“예, 그냥 안에 계세요. 원래 귀가해도 되는데 지금은 차 못 빼실 테니 잠시 후에 빠져나가세요. 제게 따로 말하지 않고 가셔도 됩니다, 감사했습니다.”
“아…… 예.”
내가 차에서 내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뒤에서 달려온 의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재빨리 외쳤다.
“집 안에 진입하지 말고! 집 주변에 폴리스 라인부터!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의경들 중 어깨에 녹색 견장을 차고 있는 녀석들이 내 말을 그대로 반복하며 지시를 내린다.
빠르게 집 주변에 폴리스라인이 그려지고, 장비를 구비한 내가 제일 먼저 집으로 진입했다.
KCSI는 버스들을 피하며 들어오느라 진입에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다. 장비가 한가득이니 의경들처럼 차에서 내려 뛰어오기는 힘들 것이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 뻥 뚫려 있는 시커먼 사각형 문. 집에 제대로 남아 있는 창문이 없어 집 뒤에서 들어온 바람이 앞으로 뿜어져 나온다. 나는 문 앞에 서자마자 안을 훑고 나온 바람 냄새를 맡았다.
‘등유 냄새.’
이건 분명히 기름 냄새다. 여기가 분명하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에는 총 세 개의 문이 존재한다. 나는 맨 오른쪽 문을 노려보았다. 기억 속의 한정수가 들어갔던 곳. 저기가 바로 부엌이다.
나는 발싸개와 장갑을 다시 한번 점검 후 마스크를 착용하고 현장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두 개의 아궁이 중 한 곳에 유난히 검은 그을음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기랄.”
부엌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여기서 일어났을 참혹한 일들에 대해 복기하고 있을 때, 카메라 가방과 무거운 장비들을 들고 온 KCSI 대원들이 뒤에서 말을 건다.
“목 과장님 지시로 왔습니다, 어디부터 조사하면 될까요? 집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까?”
나는 천천히 물러나며 부엌을 눈짓했다.
“부엌부터 집중 조사해 주세요. 특히 아궁이 속.”
대원이 고개를 부엌으로 집어넣으며 물었다.
“아궁이요?”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궁이에서 전소된 시신이 나올 겁니다. 탄화물은 부서지기 쉬우니 아궁이 쪽은 조심해서 다뤄주세요.”
내 말을 들은 대원의 눈이 커진다.
“예……?”
나는 장갑을 벗은 후 한쪽 눈을 눌렀다. 자기 아내에게 이런 짓을 한 놈에게 반드시 콩밥을 먹여야 직성이 풀리겠다.
대원은 한참 날 바라보다 다른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진입부터 사진 찍으면서 들어간다. 거기 둘은 기온, 바람 체크하고 외부 사진도 남겨.”
나는 조금 물러나 전화를 들었다.
“오 선배님. 즉시 한정수 신병 확보해 주세요. 시신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