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37화
18. Jailbreak(탈옥)(1)
다음 날 오전, 부산교도소로 내려가는 길.
조수석에 앉은 오진규가 운전 중인 관우에게 물었다.
“장진수가 그놈이지? 사람 가지고 인체 표본 만들던 또라이 새끼.”
관우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확히는 골격 염색 표본 제작이라는 건데, 원래 해부가 힘든 작은 물고기의 단백질을 투명화시켜서 교육용으로 내부를 볼 수 있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 새끼가 그걸 사람한테 한 거죠.”
이 사건은 본래 종로 경찰서 강력 3반의 사건이다. 그때 대전에 있었던 오진규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당시 워낙 언론이 떠들어대고, 장진수가 본인의 신상을 공개하기 바랐기에 국가적 이슈가 된 사안이라 오진규도 어느 정도 아는 모양새다.
오진규가 뒷좌석에서 연주와 함께 부산교도소 도면을 보고 있는 날 돌아본다.
“과장님.”
“예, 선배님.”
“그 새끼 형량이 어떻게 됩니까?”
“1심에서 징역 30년 선고, 2심에서 무기징역 선고, 이후 항소를 포기했습니다.”
“그럼 무기징역이네요.”
“예.”
“음, 무기징역 형량을 받은 죄수가 탈옥했다……. 교정 본부 쪽 대가리 몇 날아가겠군요.”
연주가 핸드폰을 검색하며 말했다.
“벌써 소장, 보안과장 모가지 날아갔어요. 부산교도소는 지방교정청이 없어서 망정이지, 다른 곳 같았으면 제일 윗사람까지 다 모가지 날아갔을걸요?”
오진규가 어깨를 으쓱한다.
“빠르기도 해라. 월급 올려주는 건 더럽게 느린데 해고하는 건 왜 그리 빨리 처리하나 몰라.”
연주가 핸드폰을 넣으며 말했다.
“아직 언론에 공개되기 전에 다 처리해야 국민들 원성을 조금이라도 덜 사죠.”
오진규가 날 바라본다.
“공개수사로 가실 겁니까?”
음, 어떻게 해야 될까? 공개수사로 전환하면 제보 전화들이 빗발친다.
문제는 그 많은 전화들 중 진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포함된 제보는 1% 미만이란 것이다.
99%의 전화는 장난이거나, 목격자의 착각이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물밀 듯이 들어오는 건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다.
또한 공개수사 전환 시 수사 압박이 매우 커진다는 점에서 일선 형사가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긴다.
압박에 시달리던 형사들이 필요치 않은 조치를 취하고, 또 어떤 형사는 실적에 눈이 멀어 혼자 범인을 잡으려 하다 놓치기도 한다.
오진규도 그것을 아는지 입맛을 다시며 팔짱을 낀다.
“신창X 사건 때를 보면, 실적에 눈이 먼 형사들이 범인을 놓친 경우가 무려 6회나 있었죠?”
운전을 하던 관우가 말했다.
“그중 몇 번은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놈에게 무기를 빼앗기고 위협당해 오히려 경찰이 도주한 적도 있었어요.”
“하, 참나.”
“당시 신창X에게 내건 현상금이 5천만 원이었는데, 제보한 시민이 현상금을 달라고 하자, 놓쳐서 못 준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현상금은 제보에 대한 보상이지, 체포에 대한 보상이 아니므로 지급해야 되는데 말이죠. 결국 시민이 2년이나 소송을 해서 다 받아냈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한심하네, 정말.”
공개수사로 전환하면 대한민국 형사들 전체가 사건에 투입된다.
문제는 그들 중 일부. 실적에 눈이 먼 자들의 이상 행태이다. 조직은 체계가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다. 수사 역시 정확한 계획을 수립하고 움직여야 해결이 가능한데 이러한 돌발 행위들이 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나는 도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일단 그 문제는 본부장님과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관우야, 얼마나 남았어?”
“이제 곧 도착합니다, 과장님.”
“앞에 기자들 없지?”
“아직 언론 공개 전이라 없을 겁니다.”
교도소 입구는 기자들이 없어도 난장판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교정직 공무원들이 곤봉을 들고 뛰어다니는 현장.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오늘 면회가 모두 취소되었고, 이를 모르고 들어오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관우가 입구를 지키는 교정직 공무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자, 그는 얼른 뛰어가 내부에 인터폰으로 알린다.
같은 경찰이 아닌 법무부 소속 공무원들이기에 계급으로 찍어 누를 수 없던 우리는 공무원의 대기 신호를 기다렸다. 10분쯤 지나자 출입 허가가 나오고 교도소 입구 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리 무전을 받고 나와 대기하는 공무원들 네 명이 보인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공무원 중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직원이 다가와 경례를 한다.
“수고 많으십니다, 부산교도소 서기관, 연지웅입니다.”
서기관. 교도행정국의 직급 체계는 경찰과 다르다. 순경, 경장, 경사, 경위 순으로 진급하는 경찰과 달리 교도, 교사, 교위, 교감, 교정관 순으로 진급하는 교정국에서 서기관 직급이면 경찰에서의 내 직급과 비슷하다. 물론 국가수사본부 명함 없이 순수 직급으로 따질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는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장, 현도경입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교정 본부를 감사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장진수의 방부터 확인하죠.”
“예, 이쪽입니다.”
연지웅의 안내를 받아 부산교도소로 들어가는 길. 우리는 장진수의 방으로 가는 동안 무려 열 개가 넘는 철문을 지나야 했다.
모든 곳이 잠겨 있었으며 연지웅이 신분증으로 인증을 해야 열리는 구조이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탈옥을 했던 걸까?
오진규가 연지웅에게 물었다.
“장진수의 방이 몇 층이었습니까?”
“4층입니다.”
“탈옥 시간은 몇 시입니까?”
“새벽 두 시에서 네 시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방에 있었을 시간 아닙니까? 4층이나 되는 높이에 있는 방.”
“맞습니다, 그러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하…….”
연지웅도 이 상황이 매우 난감한 모양이다. 하긴, 교정 본부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 바로 탈옥 사건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장진수 죄수 번호는 13하26 5899입니다.”
오진규가 턱을 쓸며 주변을 본다.
“13번 건물 하동 26번 방이란 소리인데.”
“맞습니다, 잘 아시는군요.”
“교도소 하루 이틀 와봤겠습니까, 허허.”
복도를 지나고, 여러 건물을 지난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착한 13번 건물. 5층 건물 중 4층에 장진수가 있었다.
연지웅이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26번 방에는 총 여섯 명의 재소자가 수용되어 있었고, 현재는 조사를 위해 모두 독방에 수감했습니다.”
잘한 조치이다. 물론 공범이라면 서로 이미 입을 맞춰놓았겠지만 계속 한 방에 두면 거짓말의 두께가 더욱 두꺼워진다. 서로 만나지 못하게 따로 수감해 두는 편이 좋다.
연지웅이 복도를 걷는 동안 보이는 다른 방들. 방마다 여섯 명이 들어앉아 있는 재소자들이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하고 숨을 죽이고 있다. 물론 간이 큰 어떤 녀석들은 복도 쪽 창살에 붙어 입을 나불대기도 한다.
“어이, 형씨. 경찰이지? 무슨 일 난 거야? 어? 말 좀 해줘.”
오진규가 머리를 빡빡 깎은 재소자를 보며 실소를 짓는다.
“내가 너 같은 놈과 말 섞을 군번으로 보이냐?”
“뭐?”
“저기 가서 벽보고 혼자 말해, 이 새끼야.”
“하? 야 너 내가 누구인지 아냐?”
오진규가 빡빡머리를 물끄러미 본다. 관우가 나서서 오진규를 밀어낸다.
“자자, 선배님.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얼른 가시죠.”
관우가 오진규를 안고 밀어내자 이번엔 연주가 나서며 빡빡머리를 노려본다.
“네가 누군데?”
빡빡머리는 여자인 연주가 노려보자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 오랜만에 젊은 여자 보니까 아주 불끈불끈하네. 어때? 잠깐 방에 안 들어올래? 오빠가 아주 끝내주는데.”
연주의 표정이 굳어진다. 아이고, 저 새끼 오늘 죽겠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맨 뒤에 가던 내가 조용히 연주를 불렀다.
“김연주.”
연주는 놈을 노려보며 답한다.
“네, 과장님.”
“계속 걸어. 쓸데없는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
연주는 잠시 놈을 더 노려보다 걷는다. 오늘 불구가 될 뻔한 날이란 걸 모르는 빡빡머리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어이, 언니! 어디가? 놀다 가라니까?”
더는 못 참겠다. 나는 놈이 기대 있는 철창을 주먹으로 꽝 내려쳤다. 코를 철창에 대고 있던 놈이 충격에 얼굴을 감싸 쥐며 뒤로 물러난다. 죽일 기세로 날 노려보는 빡빡머리.
나는 차가운 눈으로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한마디만 더 하면 사지 다 부러질 줄 알아라.”
연주와 달리 장대한 기골에 차가운 눈빛을 가진 내가 나서자, 더 나서지 않고 물러나는 놈. 범죄자들이 이렇다. 자기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만 강한 비겁한 놈들.
연지웅 서기관을 따라 26번 방에 도착하고, 문을 딴 뒤 안으로 들어가는 일행들.
연지웅이 작은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입니다.”
창문에 창살이 있다. 그런데 그중 두 개의 창살이 사라져 있다. 관우가 장갑을 끼고 창문을 열어본 뒤 창살의 잘린 단면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며 말했다.
“이거…… 톱으로 자른 것 같은데요?”
교도소에서 무슨 수로 톱을 구한 거지? 연지웅이 얼른 말했다.
“목공소에서 사용하는 톱을 전부 확인했습니다만, 사라진 공구는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관우가 잘린 단면을 문지르며 물었다.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해요?”
“…….”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면 자신들의 잘못을 발뺌하기 위해 증거를 숨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이번에도 그런 사건일 수도 있다.
오진규가 나서며 말했다.
“목공소 장비 서류 있죠?”
“예…….”
“목공소는 어디죠?”
“일 층 뒤편에 있는데.”
“서류 가지고 오세요. 같이 목공소 가서 확인하죠. 지난 3개월 치 다 가져와요.”
“예…….”
의심받는다는 생각에 표정이 좋지 않은 연지웅. 교도소 측에 잘못이 있는지는 확인해 보면 알 일이다.
관우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고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밖에 환풍기 파이프가 있네요. 저걸 타고 내려간 것 같습니다.”
그랬겠지. 장진수는 날 수 없으니까. 관우는 고개를 빼다 창문에 걸려 여러 번 머리를 돌려 빠져나온다.
가만히 창문을 보던 관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성인 남성이 여기로 빠져나갔다고요?”
나는 장진수의 프로파일을 떠올렸다. 키 170㎝가량에 몸무게 60㎏의 왜소한 체격.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 창문은 너무 작다. 여자인 연주라면 몰라, 남자가 나가기는 턱없이 작은 창문이다.
모두가 연지웅을 바라보자,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게…… 장진수의 최근 모습을 보시면…….”
최근 모습? 나는 연지웅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최근 모습이 어땠습니까?”
“그게, 여기서는 사진을 찍지 않으니 모습을 직접 보여 드릴 수는 없지만 의료 기록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의료 기록이요? 어디 아픈 곳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신체검사 시에 남은 기록입니다.”
“어떤 기록 말씀인지.”
연지웅이 창살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 주일 전에 전체 신체검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보안과 사람들 말로는 의무 과장 선생이 위험할 수 있다고 따로 언질을 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위험해요? 뭐가 말입니까?”
“장진수가 처음 여기 왔을 때 몸무게는 61㎏.”
연지웅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이 주일 전 그의 최종 몸무게는 49㎏이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따로 검사해 보기를 권유받았습니다.”
나는 눈을 번쩍 뜨며 급히 창살을 보았다.
“설마…… 탈옥을 하려고 일부러 감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