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38화 (237/328)

살인의 기억 238화

18. Jailbreak(탈옥)(2)

13번 건물 1층 화단.

이미 1차 수색 작업을 끝냈는지, 증거물이라고 쓰여진 종이 위에 쇠창살 한 개가 놓여 있다.

관우가 쇠창살을 들어 무게를 가늠한 뒤 말했다.

“지름 1.5㎝ 정도 되겠네요.”

관우가 주변을 둘러보다 연지웅에게 물었다.

“그런데 하나는 어디 있어요? 두 개 잘렸던데.”

연지웅이 한숨을 쉬며 눈짓한다.

“하나는 저쪽에.”

모두의 눈길이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한다. 50미터 남짓한 철담장 아래 구멍이 보인다. 약 20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는 구멍을 본 나는 연지웅에게 물었다.

“쇠창살 하나로 저 아래 땅을 파고 나간 겁니까?”

“예, 아직 추워서 땅이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손으로는 절대 팔 수 없었겠지요.”

“가보죠.”

철담장 밖은 공사장이었다. 이 사태로 모든 공사는 중단된 상태. 땅을 파던 포크레인도 멈춰 있고,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다.

나는 담장 아래 패여 있는 땅을 손가락으로 가늠하며 말했다.

“폭 53㎝, 깊이 27㎝ 정도.”

연주가 내 말을 수첩에 기록하며 말했다.

“49㎏의 남자라면 빠져나갈 수 있었겠네요.”

그때 연지웅의 지시로 의무과장에게 신체검사 기록을 가지러 갔던 교위가 돌아온다. 연지웅이 먼저 차트를 넘겨 몸무게 부분을 펴서 보여준다.

“여기 보십시오. 이 주일 전에 49.3㎏이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이 주일 동안 더 빠졌을 수도 있답니다.”

진짜였다. 관우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연주를 본다.

“너 몇 킬로냐?”

“…….”

“어?”

“죽고 싶지?”

“아니?”

“몸무게는 왜?”

“여기 한번 나가봐.”

연주는 가만히 구멍을 보다 엎드려 몸을 욱여넣었다. 하지만 여의치 않은지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며 머리부터 구멍에 넣는다.

본래 유연한 연주가 허리를 동글게 말고 손을 위로 올린 후 발을 밀자, 상체가 쑥 들어가다 가슴에서 걸린다. 연주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관우를 째려본다.

“내가 더 뚱뚱해서 그런 거 아니거든?”

관우는 처음부터 연주를 놀릴 생각은 아니었는지 걸린 부분을 가만히 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와 남자는 신체가 다르니까. 남자는 안 걸릴 수도 있겠네. 됐어, 일어나.”

나는 담장 밖 공사장을 바라보았다. 공사장 너머에도 거대한 담벼락이 있다. 저긴 또 어떻게 넘어간 걸까?

“담장 문 좀 열어주시죠.”

“예.”

공사장 문을 열고 벽 쪽으로 가자, 연지웅이 말했다.

“외벽에서 밧줄이 발견됐습니다.”

“밧줄을 타고 나간 겁니까?”

“예.”

“밧줄은 어디…… 아.”

여긴 공사장이다. 밧줄 같은 건 금세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설마 여기까지 나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을 테니 공사에 필요한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일단 장진수의 탈옥 루트를 확인한 뒤 지시를 내렸다.

“오 선배님.”

“예, 과장님.”

“직원 한 분 모시고 가서 목공소 장비관리 대장과 남은 장비들 확인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 지시에 연지웅이 눈짓하고, 직원 중 한 명이 오진규를 데리고 간다.

나는 다음으로 관우를 불렀다.

“관우야.”

“예, 과장님.”

“보안과 가서 CCTV 확인하고, 이 담벼락 바깥쪽에 CCTV 있는지 확인하고 추적 부탁해.”

“예, 과장님. 이 새끼가 분명히 옷부터 갈아입었을 겁니다. 민가가 있는 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 근방 싹 털어 오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관우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간다. 관우 옆에 또 다른 직원 한 명이 붙는다. 여긴 교도소이니 혼자서는 얼마 못 가 잠긴 문 앞에 고립될 테니 반드시 직원을 동행하는 것이 맞다.

나는 마지막으로 연주를 불렀다.

“연주.”

“네, 과장님.”

“장진수와 같은 방에 있던 재소자들 인터뷰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연주에게도 직원 한 명이 붙는다. 그러자 나와 연지웅 서기관 둘만 남게 되었다. 그는 나와 둘만 있는 것이 약간 어색한 표정이다.

“서기관님.”

“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에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

나는 장진수가 있던 26번 방을 올려 보며 말했다.

“죄수가 탈옥했습니다. 독방 사용자가 아닌 여섯 명이 사용하는 방에 있던 죄수입니다.”

“예.”

“같은 방 재소자나, 교도관의 도움 없이 가능하겠습니까?”

“…….”

연지웅은 내 말에 침중한 표정이 된다. 살짝 고개를 숙인 그가 말했다.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겠습니다.”

됐다. 내 새끼 감싸기 하는 서기관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연지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한다.

“인터뷰하실 수 있도록 변호사 면회실을 준비했습니다. 당일 근무자 전원 소집해 뒀으니 직접 만나보시죠.”

“감사합니다.”

* * *

변호사 면회실에 앉은 나는 한 명씩 들어오는 교정직 공무원들을 인터뷰했다. 총 열 명의 직원을 신문했는데 그들의 말은 모두 비슷했다.

첫 번째.

교정 공무원은 모든 방 앞을 지키지는 않는다. 복도 바깥에 한 명이 있고, 교대로 30분 단위로 방 앞의 복도를 순찰한다고 한다.

두 번째.

여섯 명 중 맨 끝에 자던 장진수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새벽 세 시 삼십 분. 순찰 시간을 보았을 때 장진수가 탈옥을 한 건 새벽 두 시 반부터 세 시 반 사이일 확률이 높다.

세 번째.

당일 순찰을 돈 직원의 말로는 새벽 두 시 삼십 분에 있었던 순찰에는 해당 방에 여섯 명 모두 있었다고 한다.

물론 자고 있는 여섯 명을 본 것이겠지만 그들 말로는 이불을 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녀석이 있으면 각별히 더 신경 써서 확인한다고 한다.

교도소의 방은 밤이라고 완전히 소등하지 않으므로 식별이 가능했을 것이다.

네 번째.

장진수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직원의 말로는 방에 다섯 명밖에 없어 화장실에 간 것으로 생각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봤는데 화장실 불도 꺼져 있고 인기척도 없어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한다.

이불이 걷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베개로 위장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결국 장진수는 두 시 반까지 방에 있었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

창살이 끊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교정 직원이 창문 밖을 보았을 때 장진수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비상벨을 울리고 직원들이 출동해 새벽 내내 주변을 뒤졌지만 그는 사라져 버렸다.

물론 이 모든 진술은 두 시 반에 순찰을 한 직원이 책임 회피를 위해 거짓말을 했을 경우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나는 마지막 직원을 인터뷰 후 홀로 앉아 진술을 적은 수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단 어떻게 도구를 손에 넣었는지 확인해야 돼.’

장진수는 혼자다. 유일한 가족인 부모를 자신이 직접 죽였기 때문이다.

외부에 조력자가 없다면 탈옥을 할 수 없다. 가장 확률 높은 조력자는 내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수사의 첫 단계로 내부를 조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변호사 면회실 문이 열리며 오진규와 연주가 함께 들어온다. 오진규가 장비 관리 대장을 테이블에 올려두며 말했다.

“서기관 이야기가 맞았습니다. 모든 도구가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톱을 주로 확인했는데, 90일 치 대장에 기록된 장비와 남아 있는 장비가 일치했습니다.”

“장비는 외부 반입 불가 맞죠? 잠시 빌려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겠죠?”

오진규가 실소를 짓는다.

“여기 교도소입니다, 과장님. 범죄자들 손에 톱 들려서 방에 보낼 미친놈이 있을 리가 없죠.”

음, 그건 그렇다. 그럼 장진수는 어디서 톱을 찾아낸 걸까? 나는 연주를 보며 물었다.

“죄수들 인터뷰는?”

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다들 모른다고 잡아떼고 있어요. 장진수가 그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냥 잤는데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려서 깼더니 장진수가 없더라. 뭐 이런 진술뿐입니다.”

처음부터 쉽게 갈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같은 방에 수감되었던 사람과 사회에 나와서 다시 만나 친하게 지내기도 할 만큼 유대가 쌓이는 곳이 이곳이니까. 그들끼리 서로 지켜주려 할 것은 예상했다.

나는 가만히 연주가 내미는 인터뷰 기록 서류를 보며 말했다.

“장진수의 도주 루트를 찾는 건 관우에게 맡긴다. 우리는 장진수가 여기서 어떻게 생활했고, 어떤 경로로 톱을 입수했으며, 탈옥 후 필요한 돈은 어디서 마련했는지. 거기에 집중한다. 그럼 길이 보일 거야.”

“예, 과장님.”

“알겠습니다, 과장님.”

나는 오진규를 바라보았다. 이런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선배님.”

“예?”

“잘 부탁드립니다.”

오진규가 씩 웃으며 엄지를 든다.

“맡겨두세요.”

오진규가 연주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장진수 신상 명세 다시 줘봐.”

“여기요, 선배님.”

오진규가 장진수 자료를 다시 확인하며 말했다.

“단양 가톨릭 고등학교 졸업, 단양 제일 대학교 해양학과 출신. 단양 아쿠아리움에서 순치 수조 관리사로 재직. 단백질 표본을 제작할 만큼 약물 사용에 능하다…….”

오진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다, 밖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거기 밖에 있죠?”

문이 열리고 문 앞을 지키던 교정직 직원이 얼굴을 내민다.

“예?”

“서기관님 좀 불러주세요.”

“여기 계십니다, 잠시만요.”

서기관은 걱정 때문에 자리를 못 떴는지 밖을 서성이고 있었나 보다. 바로 들어오는 연지웅이 말했다.

“예, 뭐 도와드릴 거라도 있습니까?”

오진규가 손가락을 풀며 말했다.

“교정 직원들. 카드 사용기록 좀 봐야겠습니다.”

연지웅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예? 그건 저희들도 열람이.”

오진규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당연히 그렇죠. 수색영장 발부받아서 진행할 건데 미리 통보하는 겁니다.”

“아…….”

연지웅은 결국 수사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해 왔다는 점에 시무룩한 얼굴이다.

“알겠습니다, 미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진규가 그런 연지웅에게 말했다.

“재소자 중에 뽕쟁이 새끼들만 따로 추려서 자료 좀 주세요.”

연지웅이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마약사범 말씀이십니까?”

“예.”

“그건 왜…….”

오진규가 씩 웃는다.

“일단 주시죠.”

연지웅이 잠시 우리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준비해 드리죠.”

연지웅이 지시를 하러 나가자 연주가 물었다.

“선배님. 갑자기 마약사범은 왜요?”

나도 궁금한 이야기다. 경험 많은 오진규는 어디부터 쑤시고 들어가려는 걸까? 오진규가 미소 지으며 장진수의 신상 명세를 들어 보인다.

“약품 사용에 능한 놈입니다.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표본 제작을 할 때 사체를 놓고 하는 것보다 아직 살아 있는 표본을 기절시켜 제작해야 완벽한 표본이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거북한 이야기이지만 옳은 소리다. 장진수도 사람을 기절시킨 후, 리어카에 싣고 데려갔었다.

“그래서요?”

오진규가 손바닥에 뭔가를 드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놈은 사람으로 표본을 만들었던 놈입니다. 기절을 시키려면 약물을 썼겠죠. 170에 60킬로밖에 안 되는 놈이 힘으로 제압하려면 애를 먹었을 테니까.”

“맞습니다.”

“향정신성 약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놈이란 겁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진규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고민해 본 나는 다시 물었다.

“장진수가 교도소 내부의 마약 사범에게 향정신성 약품을 공급해 돈을 벌었을 거란 뜻입니까?”

오진규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연주가 나섰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여기 교도소인데. 게다가 방금 교정 직원들 카드 사용기록 확인하겠다고 하셨는데. 직원들이 버젓이 향정신성 약품을 구입해서 내부에 반입했다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선배님.”

연주의 말이 맞다. 이건 단순히 교도소 내부에 담배나 술 따위를 몰래 들여와 비싸게 판매하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무려 마약 성분의 약품을 들여오는 일. 교정직 공무원 중에 그렇게까지 타락한 인간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걸리면 단순 정직이 아니라 실형을 살 수도 있는 짓을 하는 놈이 있다고? 이번에는 오진규가 틀린 것 같다.

“선배님, 아무래도 그쪽은 좀.”

오진규가 나와 연주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과장님.”

“예?”

“연주 말이 맞습니다. 교정 직원이 교도소에 마약을 들여왔을 리가 없죠.”

응?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럼 앞에 말은 다 뭐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나와 연주를 보며 웃음 지은 오진규가 말했다.

“향정신성 의약품을 잘 아는 장진수라면 교도소 내의 마약 사범에게 그것을 대체할 무언가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정 직원들에게 뒷돈을 주고 구매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만한 약품이죠.”

그런 약품이 있어? 말이 돼? 직원들이 마약인지 모르고 구매해 준다고?

“그게 무슨 약품입니까?”

오진규가 창문을 노려보며 씩 웃는다.

“감기약입니다.”

응? 감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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