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39화 (238/328)

살인의 기억 239화

18. Jailbreak(탈옥)(3)

오진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감기약에는 마약 성분이 들어 있지 않지만 환각 증세를 위해 감기약을 며칠씩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복용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오진규는 항상 자신의 경험과 실제 사례를 토대로 수사의 방향을 잡는 사람이다. 이번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진규는 장진수의 신상명세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2007년 춘천 교도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교정 직원이 한 재소자의 눈동자가 풀리고 몸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 질병의 원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감기약을 다량 복용한 것을 알게 됐죠. 수사 결과, 그동안 교도소 내 보건의료과에서 받은 감기약 5일 치 정도를 보관했다가 한꺼번에 복용한 것으로 보고 이 같은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10간 독거실 수용을 결정했습니다.”

연주가 놀랍다는 얼굴로 물었다.

“진짜 감기약 먹고 마약 복용을 한 것 같은 효과가 난다고요?”

오진규가 연주를 보며 싱긋 웃는다.

“과다복용하면 비슷한 효과가 난다.”

“약 처방을 과다하게 해줬을 리가 없을 텐데요. 거긴 교도소잖아요?”

“재소자들이 약을 먹지 않고 감춰두거나 다른 수용자에게 몰아주는 등의 방법으로 한꺼번에 다량 복용하면서 환각 증세를 느끼는 사례도 있었어.”

“아니, 그럼 교도소 내에 감기약 들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감기약 처방을 최대한 삼가봤다. 그랬더니 재소자 가운데 일부가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며 정보공개를 청구하거나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기까지 한 사례가 있었다. 약을 타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밝혀낼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약을 지급하는 경우도 대부분이지.”

연주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와…….”

“한 해 평균 재소자 1,000여 명 가운데 보건의료과에서 약을 처방받는 수용자는 400여 명 정도야. 보건의료과는 감기 증상을 호소하는 수용자에게 3일 치씩의 약을 처방해서 최대한 오남용을 막고 있다만 몰아주기를 하면 그것도 막을 방법이 없지.”

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여간 왜 범죄자들은 항상 머리가 좋은지 모르겠다.

오진규가 검지를 까딱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달라.”

연주는 잠시 생각해 보다 손가락을 튕겼다.

“감기약이 진짜 효과가 있다니 생각났는데 제가 드라마를 하나 봤거든요? 왜 있잖아요? 야구 선수가 감옥 가는 드라마.”

“어, 그거 나도 봤다.”

“거기 보면 재소자들이 티 머니 카드로 거래를 하던데. 혹시 장진수가 외부에서 약을 들여와 카드를 받고 판매한 건 아닐까요?”

오진규가 애매한 얼굴로 웃는다.

“그건 허구야. 티 머니 카드는 재소자들에게 허가된 물품이 아니다. 당연히 내부에 매점도 없고. 영치금으로 뭘 구매하려면 구매 대장을 작성하고, 방 안에서 물품을 받는 형식이다.”

“음…….”

나는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다 말했다.

“그러니까 선배 말씀은 장진수가 감기약을 들여오려면 반드시 내부 직원이 협조했을 거라 이 말씀이죠?”

“예, 과장님. 하지만 이건 가설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가설을 밝혀내기 위해 내부부터 수사해야 된다는 거죠. 이놈이 어떤 루트로 돈을 구했는지 알아야 나가서 어떻게 돈을 찾고 어찌 움직일지 추적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음, 좋습니다. 연주야. 청에 전화해서 교정 직원들 카드 이용 내역 확인 가능하도록 영장 발부 요청해 줘.”

“네, 과장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영장 나오려면 시간 좀 걸릴 테니, 일단 장진수를 진단했던 의사부터 만나보죠.”

잠시 후 교도소 진료실.

진료실 앞은 진료를 받으러 온 재소자들이 교정직원들의 감시하에 줄을 지어 앉아 대기 중이다.

우리가 나타나자, 아니, 정확히 연주가 나타나자 모두의 눈길이 쏠린다. 교도소 내에서 여자 볼 일이 없으니 근처에 여자가 오기만 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재소자들.

연주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앞만 보고 걸었다. 재소자들도 바로 옆에 교정직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차마 대놓고 추파를 던지지는 않는다.

공중보건의들이 진료를 보는 곳을 지나,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니 안경을 쓴 40대 남성이 차트를 보고 있다 일어나 말했다.

“미리 이야기 들었습니다, 부산 교도소 의무 과장 차민규입니다.”

오진규가 슬쩍 뒤로 물러나며 날 바라본다. 일행의 대표는 나이니 내가 인사하는 것이 맞다.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장 현도경입니다.”

차민규는 오진규가 아니라 내가 일행의 대표라는 점에 약간 놀랐지만 곧 안경을 밀어 올리며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죠.”

연주와 오진규는 벽에 붙어 있는 벤치에 앉고 나만 차민규의 맞은편에 앉았다. 차민규가 PC의 모니터를 끄며 물었다.

“그래, 탈옥수에 대해 물어 보시려는 거죠?”

“맞습니다.”

“음, 장진수…… 장진수…… 여기 있네요. 흐음…….”

차민규가 수기로 쓴 차트를 확인하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다 고개를 든다.

“처음 입소 시에 61㎏이었던 몸무게가 마지막 신체검사 때 49㎏까지 빠졌습니다.”

“네, 그건 아까 들었습니다만, 사실 확인을 위해 과장님을 찾아왔습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음, 보시다시피 저는 중증 환자가 아닌 이상 직접 진료를 보지는 않습니다. 공중보건의가 일차 진료를 하고 문제가 있거나 외부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환자가 발생했을 때만 제가 가서 봅니다. 장진수의 경우, 공중보건의 선생의 보고가 있긴 했습니다.”

“어떤 보고였습니까?”

“일차 보고는 당뇨병 의심이었습니다. 담당 교정 직원 말로는 최근 2개월 내에 갑자기 살이 급격하게 빠졌다고 했습니다. 12㎏이 두 달 사이에 빠질 수 있는 병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갑상선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결핵일 수도 있죠.”

“그래서 검사하셨습니까?”

“네, 소장님 허가하에 제일 먼저 전염성이 있는 결핵부터 검사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독방에 수감하도록 하였고요. 하지만 결핵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당뇨 검사를 위해 당화혈색소 검사를 진행했습니다만, 수치는 5.1이었고, 이는 정상 범주 내에 있는 결과였습니다.”

“그럼 왜 빠졌다고 보십니까?”

“의외로 답은 간단했습니다.”

“뭡니까?”

“여섯 명이 한 방을 사용하는 일반 방에서는 자신의 몫을 남이 먹어줄 경우 음식이 남지 않지만 독방에 수감된 재소자는 다르죠. 음식을 먹지 않는 건가 해서 교정 직원에게 물었더니 들어간 음식이 남김없이 사라져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혹시 몰라 식사 모습을 몰래 지켜봐 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변기에 버렸답니다.”

“음.”

“결과적으로 장진수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감량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겠죠. 연명이 가능한 수준으로 소량의 음식물만 섭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물이요?”

“예, 우리 몸은 사실 체지방보다 붓기 때문에 평상시 몸을 유지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짠 음식을 많이 먹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물도 많이 마시는 편이죠. 혹시 운동하시는 분들이 바디 프로필을 찍거나, 모델들이 화보를 찍기 전에 물을 끊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죠?”

“예, 들어봤습니다. 신체 굴곡을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물로 인한 붓기를 일시적으로 빼는 행위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시적이 아니라, 장기화되면 사람의 덩치는 몰라보게 작아집니다. 무척 괴롭고 힘든 일이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나는 차민규 선생의 말을 듣고 생각에 빠졌다.

장진수는 두 달 전부터 갑자기 감량을 했다. 어찌나 독한 마음을 먹고 다이어트를 했는지 일반인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강력한 방법인 수분 끊기까지 시도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탈옥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왜? 두 달 전이라는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두 달 전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연주를 보며 말했다.

“서기관님께 요청해서 최근 6개월간 장진수 면회 일지와 우편물 대장 확인해 줘. 두 달 전에 이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

연주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벌떡 일어나 나간다. 오진규는 여자 냄새만 맡아도 침을 질질 흘리는 재소자들 사이에 연주만 보내는 것이 걱정되는 표정이다.

나는 오진규의 표정을 읽고 눈짓했다.

“선배도 같이 가주세요. 가시는 김에 영장 심사 통과했는지 알아봐 주시고. 통과됐으면 바로 진행해 주세요. 본부장님이 직접 챙겨주고 계시니 어쩌면 벌써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진규가 나가자, 차민규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차민규는 장진수의 차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외에는 질병이 없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33세, 현재는 36세군요. 아직 젊은 나이라 질병을 얻을 때는 아닙니다. 특이 사항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는 차민규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끝입니까? 체중이 그 정도 빠졌는데 원인을 알 수 없었다면 큰 병원에 보냈어야 하는 것 아닌지요.”

차민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한 해 700여 명의 공중보건의사가 새로 들어옵니다. 그들의 동기 중 교정 시설에서 일하는 이는 20명 내외. 교정 시설은 의사 한 명당 1인 진료가 하루 평균 277건에 달해 지원하려는 의사가 거의 없는 실정이죠. 한 명의 재소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당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장진수의 경우에는 본인이 호소하는 통증이 전무한 상황이라 좀 더 지켜볼 요량이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의사 한 사람이 하루에 277건의 진료를 본다고? 그게 가능한 수치일까? 그런 숫자의 진료를 보면서 모든 사람을 꼼꼼하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일반인이 아닌 범죄자들의 수용소이니 더했을 것이고.

“질문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예, 하세요.”

“감기약에 대해 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차민규가 눈썹을 꿈틀거린다.

“마약 사범들에 관련된 겁니까?”

“예.”

차민규는 이곳에서 오래 일한 사람답게 서두를 말하자마자 화두가 무엇인지 눈치챈다. 턱을 쓸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감기약을 다량 복용하고 마약에 취한 기분을 낼 수 있는가? 그것이 궁금하신 겁니까?”

“아뇨, 그건 이미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음, 그럼 무슨 질문이죠?”

“하루 감기로 약을 받아가는 재소자 숫자입니다.”

차민규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아까 껐던 모니터를 다시 켜고 차트를 본다. 약 처방 리스트를 확인하던 차민규가 말했다.

“감기약은 최대 처방 기간 3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알고 계신 이유와 동일한 이유이고. 또한 확실한 감기가 아니면 최대한 처방을 삼가고 있는 만큼 생각보다 많지는 않습니다. 하루 평균 10명 내외네요.”

하루 평균 10명이라.

“약 처방 1일분에 몇 봉이 든 겁니까?”

“두 봉입니다.”

“아침과 저녁 약입니까?”

“맞습니다.”

“3일분이니 여섯 봉이 되겠군요.”

차민규가 턱을 괴고 말했다.

“음, 하지만 여섯 봉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녁 약에만 수면제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에 마약 사범이 주로 복용하는 건 저녁 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결국 3봉으로 봐야죠.”

“음, 그렇군요. 그럼 몇 봉을 먹어야 환각 상태가 옵니까?”

“적어도 5봉은 필요합니다.”

나는 가만히 차민규를 바라보다 물었다.

“그럼 바깥에서 사는 일반의약품으로 그런 효과를 만들려면 어떻습니까?”

차민규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는 내가 지금 무슨 의심을 하고 있는지 대번에 알아챘다.

“혹시 교정 직원들에 대해 의심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수사해 봐야 알겠죠.”

“…….”

“질문에 답해주시겠습니까?”

차민규는 굳은 얼굴로 답한다.

“일반 의약품은 저희가 처방하는 약보다 약효가 약합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우리 약보다 강한 약이 있습니다.”

“뭐죠?”

“코 감기약입니다.”

코감기? 아, 그렇지. 코 감기약을 복용하고 몽롱해지는 기분. 나도 느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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