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40화 (239/328)

살인의 기억 240화

18. Jailbreak(탈옥)(4)

의무과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관우의 전화를 받은 나는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상황실로 향했다.

교정 직원들이 근무 중이고, 연지웅 서기관이 관우와 함께 있다. 관우는 PC 앞에 앉아 있다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든다.

“과장님 여기요.”

“어.”

관우가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주며 말했다.

“서기관님 말씀대로 공사장 측 담장 아래를 파고 나간 것으로 보이고, 밧줄은 공사장 내에서 수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우가 보여주는 화면. 교도소는 최대한 CCTV 사각을 없애도록 설계된 곳이라 장진수의 모습이 담겨 있는 화면이 보인다.

어둡지만 화단 쪽으로 뛰어내린 그림자가 빠르게 뛰어 공사장 쪽으로 가는 모습이 보이고, 잠시 후 담벼락 위로 밧줄이 걸린다. 밧줄을 타고 고양이처럼 담벼락을 넘어 버리는 가벼운 몸놀림의 그림자. 이놈이 장진수이다.

관우가 화면을 보며 턱을 만진다.

“일단 여기 화면 보면. 아, 잠시만요. 밝기 조절을 좀 해보면…….”

관우가 화면을 만지자 어두웠던 화면이 밝아진다. 여전히 화질은 별로지만 장진수의 모습이 식별되는 수준까지 나아졌다. 관우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장진수가 화단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멈춘 관우가 말했다.

“이놈 손에 잘린 철창이 쥐어져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밧줄은 없어요. 뒷모습을 보면…….”

다른 각도에서 본 화면에 다시 밝기 조절을 하는 관우.

“뛰어가는 뒷모습을 봐도 밧줄은 없습니다. 뒷주머니 같은 데 있나 해서 혹시 몰라 확인했고요.”

나는 관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재소자 복장에는 원래 주머니가 없다, 관우야.”

관우가 머리를 긁으며 서기관을 보자, 연지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위험 물건을 숨겨둘까 봐 상의나 하의 모두 주머니가 없게 제작하고 있습니다.”

관우가 입술을 슬쩍 내밀고 말했다.

“어쨌든. 이때는 없던 밧줄이 공사장을 지난 후에 갑자기 나타난 걸로 봐서는 밧줄을 공사장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봐야겠죠.”

공사장에 밧줄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화면을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장진수가 화단에서 뛰어내리고, 공사장 담벼락 밑을 파서 진입, 외부 담벼락을 넘는 데까지 얼마나 걸렸어?”

“한 시간 10분 걸렸습니다.”

한 시간 남짓. 제일 시간을 많이 할애한 건 구멍을 파는 일이었을 것이다. 1월이라 얼어붙은 땅을 성인 남자가 들어갈 만한 크기로 파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적어도 한 시간 중 대부분은 거기다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진수가 공사장에 밧줄을 어디다 두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데.”

나의 의문은 연지웅이 풀어주었다.

“당연히 알고 있을 겁니다. 교도소 내부 공사에 재소자들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일이 잦습니다. 아, 물론 그에 따른 급여는 지급하고 있습니다.”

대충 예상은 했다. 장진수는 원래 이 공사장을 출입했던 것이다. 밧줄이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탈옥 계획 안의 퍼즐로 사용했을 것이다.

“공사는 언제부터 했습니까?”

“삼 개월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삼 개월이라…….”

계획을 세우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두 달 전에 그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탈옥을 생각하게 했고, 일해오던 공사장에서 본 밧줄을 계획에 이용하려고 생각했겠지. 나는 관우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외부 쪽은 어때?”

관우가 외부 CCTV를 재생한다. 화면 속에서 담벼락 중간까지 밧줄을 잡고 내려오던 장진수가 중간에서 줄을 놓고 뛰어내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바닥에 쓰러져 몇 번 구르던 장진수는 약간 절뚝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화면을 보며 물었다.

“서기관님.”

“예.”

“저 방향이면 어느 쪽입니까?”

“음, 저쪽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산입니까?”

“예, 산이 맞는데 등산로도 없는 험한 곳입니다.”

새벽에 탈옥을 했다. 새벽은 절도하기 가장 좋은 시간. 탈옥수는 자신을 감출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 제일 먼저 위장해야 할 것은 옷. 일반적인 탈옥수의 프로파일로 봤을 때 탈옥 직후에는 옷을 훔치기 위해 민가가 있는 쪽으로 도주해야 옳다.

하지만 장진수는 등산로도 없는 야산으로 도주했다.

나는 화면을 보다 허리를 펴고 생각에 잠겼다.

‘야산으로 도주했다. 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동선이다. 관우가 고민하는 날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시청에 확인했는데 저쪽 방향에는 CCTV가 없답니다.”

당연하지. 등산로도 없는 야산에 CCTV를 왜 설치하겠는가?

우리가 뭘 놓치고 있지? 나는 계속 생각에 잠겼지만 장진수의 도주로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장진수가 화단으로 뛰어내린 게 몇 시야?”

“새벽 2시 3분입니다.”

2시 3분. 순찰을 도는 2시가 지난 지 3분이 흐른 후 그가 화단으로 뛰어내렸다.

“철창 자르는 시간까지 계산해야 될 텐데.”

“방 내부에는 CCTV가 없어 화면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연지웅을 바라보았다.

“여주 교도소 쪽에는 모든 방 내부에 CCTV가 있다고 들었는데. 여긴 아닙니까?”

연지웅이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실은 저희 교도소에서도 전 방에 폐쇄회로를 설치할 계획이 있었습니다만, 2004년에 무산됐습니다. 여주 교도소도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왜죠?”

“수원 구치소에서 법적 근거나 기준 없이 임의로 구금시설 수용 거실 안에 CCTV를 설치해 수용자의 모든 행동을 24시간 촬영, 감시함으로써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소송이 있었습니다.”

수원 구치소에서 소송? 재소자가 고발했다는 뜻인데.

“구금 시설 내 CCTV 설치는 수용자 감시의 효율성 말고도 보안 사고 방지, 자살 방지, 수용자 간 인권 침해 방지와 같은 보호 기능을 갖고 있는 것 아닙니까?”

“…….”

“수용자에 대한 ‘시선내 계호’가 교도관의 기본 업무 원칙이므로 CCTV를 통한 수용자 감시는 행형법의 목적이나 취지에 위배되지 않아 인권 침해로 볼 수 없는 것일 텐데요.”

연지웅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예, 저희도 그렇게 주장했었습니다.”

“받아들여지지 않은 겁니까?”

연지웅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국가인권위는 CCTV가 재생 및 무제한 복사가 가능하고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유출할 수 있는 점, 특정 부위를 정밀하게 촬영할 수 있고 촬영된 내용을 편집할 수 있는 점 등에서 교도관의 시선 계호와 크게 다르다고 판단했습니다.”

연지웅이 화면을 노려보며 말을 잇는다.

“또한 24시간 연속으로 수용자의 모든 행동이 감시되고 동태적인 삶의 흐름이 정보의 형태로 녹화됨으로써 수용자 개인의 사생활이 과도하게 침해될 우려가 높고 CCTV가 설치된 사실 자체가 주는 위축 효과로 인해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도 현저하게 제한되며 녹화된 개인 정보의 유출 등 악용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연지웅이 쓴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결국 국가인권위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제10조, 평등권 제11조, 적법절차의 원리 제12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제17조 인권을 침해한 행위로 판단하고 법무부장관에게 구금시설 내 CCTV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할 것을 요청하고 피진정인들에게는 인권 침해 방지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것을 각각 권고했습니다. 아직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수용자의 생활 공간에는 CCTV를 설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듣고 있던 관우가 이를 갈았다.

“개뿔, 인권은 인간에게 있는 권리 아닙니까? 쓰레기 짐승 같은 새끼들이 인권은 무슨!”

대놓고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무언의 긍정으로 동의를 표하는 연지웅. 일단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결론이다.

나는 가만히 화면을 들여다보다 관우에게 물었다.

“잘린 철창 지름이 1.5㎝라고 했지?”

“예, 과장님.”

“톱으로 그거 자르는 데 얼마나 걸릴까?”

관우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목재도 아니고 철창을 톱으로 자르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필요하죠. 별로 굵지 않다고 해도 두 개나 잘라야 되는데.”

자, 그럼 여기서 가설. 장진수는 탈옥을 한 당일에 철창을 자른 것이 아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끄트머리를 조금 남겨두고 잘랐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는 도구이다.

나는 연지웅을 보며 말했다.

“검방 하시죠?”

“예, 합니다.”

“13번 건물 하동 26번 방 검방 기록 있습니까?”

“음, 거긴 모범수용자들이 모인 곳이라 별문제 없었을 겁니다. 그런 방은 한 번만 문제가 생겨도 모범수용동에서 탈락하게 되거든요. 아직 유지되고 있었으니 검방에서 문제가 생긴 적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가장 최근에 검방 했던 건 언제입니까?”

“음, 잠시만요.”

연지웅이 손짓하자, 눈치 빠른 교위 한 명이 얼른 검방 기록을 가져온다. 기록을 수기로 남겼는지 자필로 쓰여진 기록들을 넘겨보던 연지웅이 말했다.

“가장 최근 기록이 오늘 기준 11일 전이네요.”

11일. 그럼 장진수는 이 11일 안에 도구를 얻어 철창을 잘랐다는 뜻으로 봐야 할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나는 관우에게 말했다.

“KCSI 목 과장님께 연락해서 경험 많은 대원 한 명만 파견해 달라고 해줘. 철창 단면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예, 바로 요청해 두겠습니다.”

그때 연주가 상황실로 들어오며 날 부른다.

“과장님.”

“어, 그래. 어떻게 됐어?”

연주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젓는다.

“최근 6개월이 문제가 아니라, 수용 후 단 한 번도 면회나 우편물이 온 적이 없답니다.”

“…….”

“아니, 사람이 어떻게 살았길래 이렇게 철저하게 혼자일 수가 있죠?”

외부 조력자의 가능성이 작아진다.

“전화 사용 기록은?”

연주는 미리 알아보고 왔는지 즉답을 한다.

“아뇨, 단 한 번도 전화를 사용한 적이 없어요.”

교도소 내부에서 밖에서 사용할 돈을 구하는 건 내부자의 조력이면 가능하다. 밖에서 도와준 사람은 아예 없다는 걸까? 도주한 뒤 추적을 따돌릴 방법을 모두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그렇다 해도 이상해.’

의무 과장의 말에 의하면 장진수는 두 달 전부터 갑자기 감량을 시작했다고 했다. 외부의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탈옥을 꿈꾸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혹시 내부에서 재소자 간에 괴롭힘이나 폭행을 당했던 걸까?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반드시 어딘가 다쳐 의무 기록이 남았어야 한다. 하지만 의무 과장은 장진수가 체중이 감소된 것 외에는 특이 사항이 없다고 했다.

나는 연지웅을 보며 물었다.

“장진수는 어떻게 생활했습니까?”

연지웅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안 그래도 보안과 직원들에게 물어봤는데 모범수였다고 합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범수로 불린다는 건 웬만해선 불가능하죠. 규범에 맞게 생활했고 규칙을 어긴 적은 단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었답니다.”

“재소자들 사이에 싸움이 잦지 않습니까? 장진수가 싸움에 휘말린 적은 없었습니까?”

“기록에 남은 건 전혀 없습니다만. 게다가 재소자들 사이에 큰 싸움이 난 적은 지난 2년간 한 건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한두 명이 싸우다 처벌을 받고 끝났죠. 그런 경우는 모두 기록이 남습니다만 장진수에 대해 남은 기록은 없습니다.”

점점 미궁으로 파고드는 사건. 나는 긴 한숨을 쉬었다.

장진수. 도대체 두 달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엇이 조용히 수감 생활을 하던 네게 탈옥을 꿈꾸게 만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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