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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42화 (241/328)

살인의 기억 242화

18. Jailbreak(탈옥)(6)

목 과장님이 현장에 큰 도움을 주셨다. 바람처럼 목공소 장비 대장을 가져온 관우가 흥분하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과장님! 2개월 전에 줄 톱이 파손되어 교체했다는 기록!”

나는 관우가 데려온 목공소 관리 직원을 보았다. 이쪽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눈치챈 직원이 침을 꿀꺽 삼키며 날 바라본다.

“파손된 톱. 직접 확인하셨습니까?”

직원이 긴장한 얼굴로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 작업 반장 보고로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조각들은 전부 회수했고 폐기처분 했습니다.”

목 과장님이 팔짱을 끼고 나선다.

“톱이 어떻게 파손된 겁니까?”

“그, 그게 그 톱이 좀 오래된 것이었는지 작업 중에 부서졌습니다.”

“부러진 게 아니라 부서졌다고?”

“예, 여러 조각이 났습니다. 작업 반장이 보고를 했고 제가 직접 현장에 가서 날들을 회수했습니다.”

목 과장님이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물었다.

“날이 총 몇 조각이었습니까?”

“…….”

“예?”

“그, 그게…… 조각 숫자까지는.”

“기억을 못 하는 겁니까, 안 세어본 겁니까?”

“세, 세어보진 않았습니다.”

“다 회수했다면서! 날 부러진 거 맞춰서 확인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

직원이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하긴 현장에서 톱이 부러졌다고 그 날을 다 이어 붙여 확인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 큰 날들만 확인하고 작은 날붙이들은 빗자루로 쓸어버렸을 공산이 크다.

목 과장님은 화난 얼굴로 직원을 노려보다 공사장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밧줄 두는 위치가 어디입니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두 달 전에 파손된 줄 톱이 탈옥에 쓰였다는 것을 눈치챈 직원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한 곳을 가리킨다.

“저기 간이 건물 뒤입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컨테이너로 지어진 공사장 간이 건물 뒤로 돌아가자, 밧줄과 시멘트 포대가 보인다. 직원은 자물쇠로 단단히 잠긴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흉기가 될 수 있는 위험 물건은 모두 컨테이너 안에 보관 후 문을 잠급니다. 밖에 있는 건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거나, 흉기가 아닌 물건들입니다.”

목 과장님이 혀를 차며 말했다.

“여봐요. 한 해에 줄로 사람 목을 졸라 살해하는 범인이 몇 명이나 나오는 줄 알고 하는 말입니까?”

“…….”

“밧줄도 흉기야, 흉기!”

나는 흥분한 목 과장님을 진정시켰다.

“자자, 진정하시고. 일단 지나간 일이니 이 문제는 차후에 교정본부 차원에서 시정하도록 하세요.”

이 직원은 아마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도 그것을 아는지 고개를 푹 숙인다.

“가서 서기관님 모셔 오세요.”

“예…….”

직원이 자리를 피하자, 장갑 낀 손으로 밧줄을 만져보는 목 과장님이 중얼거린다.

“지름이 쇠창살보다 더 두껍네. 성인 남자 셋 무게도 버틸 정도야. 탈옥에 쓰인 밧줄은 어디 있어?”

“저쪽에 그대로 뒀습니다.”

“담벼락에 걸쳐 있어?”

“예, 혹시 몰라서 현장 보존했습니다.”

“잘했네, 가자.”

아직 담벼락에 걸친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밧줄. 목 과장님은 일단 사진으로 현장을 면밀히 남겨놓은 후 조심스럽게 밧줄을 끌어당긴다. 안쪽으로 내려온 밧줄의 길이를 재본 과장님이 말했다.

“조사해 보면 나오겠지만 공사장 바깥쪽에 목장갑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맨손으로 밧줄을 잡았을 거다. 밧줄 표면에서 놈의 피부 각질이 나올 거야. 하지만 그건 수사 방향성과는 별로 관계가 없겠지? 혹시 모를 공범이 있어도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밧줄에는 여러 사람 지문이 나올 거다. 이걸 조사해서는 별 수확이 없을 거야.”

나도 그리 생각하는 중이었다. 나는 담벼락 밖을 눈짓하며 말했다.

“놈이 도주한 방향이 야산이었습니다.”

목 과장님이 고개를 갸웃한다.

“민가가 아니고?”

“예, 이상하죠?”

“옷을 갈아입어야 했을 텐데.”

“저도 그 부분이 이상합니다. 일단 교정시설에서 놈의 도주 방향으로 수색대를 파견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몇 킬로 봤는데?”

“10㎞ 수색했답니다.”

“음.”

목 과장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새벽 두 시면 밤이 가장 깊을 시간이다. 그 시간에 야산으로 도주했다? 장진수가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모양이지?”

목 과장님이 지나가며 한 말. 나는 그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장진수가 이곳 지리를 잘 안다? 아냐, 어쩌면 아예 지리를 몰라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장진수는 평생 단양에 살았다. 그리고 서울로 이사를 갔다. 다른 지방에서 산 적은 한 번도 없다.

여행을 왔다고 해도 누가 부산까지 여행을 와 변두리에 있는 교도소 주변을 오겠는가? 교도소 주변에 놀 곳이나 볼 곳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지어놓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어느 교도소에 배정될지는 판결 후 도착한 뒤에나 알 수 있기에 미리 정보 수집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 장진수는 이곳 지리를 몰랐던 거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야산으로 일단 도주한 거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은 후 방향을 틀었을 확률이 높다.

‘장진수가 교도소 외부 지리를 몰랐다는 건 외부 조력자가 없다는 것의 방증이다. 만약 외부에 조력자가 있었다면 데리러 왔거나, 도주 경로를 미리 알려줬을 테니까. 게다가 바로 따라붙은 수색대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데리러 온 차가 없었다는 뜻과 같다.’

물론 이 가설은 관우가 외부 CCTV를 모조리 확인한 다음에 완성될 수 있다. 그 시각에 야산 인근에 들어가고 나온 차량이 없어야 증명될 수 있다.

잠시 후 관우가 서기관을 데리고 나타난다. 나는 서기관에게 눈인사를 한 뒤 관우에게 말했다.

“관우는 외부 나가서 예상 경로 CCTV 확보하고 분석 시작해.”

“예, 과장님.”

관우가 직원 한 명의 안내를 받아 교도소를 나선다.

불려온 서기관은 연신 한숨만 쉬고 있다. 표정이 무척 좋지 않은 것을 보니 이미 불려올 때 목공소에서 파손된 줄 톱이 원흉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또한 교정시설의 잘못은 그뿐이 아니다.

장진수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건 새벽 세 시 반에 순찰을 돌던 교정직원에 의해서이다. 놈이 화단으로 뛰어내린 건 새벽 두 시 3분. 그렇다는 건 새벽 두 시에 순찰을 돈 직원은 죄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새벽 두 시 반과 세 시에 순찰을 돈 직원은 징계 대상이다.

잠자던 재소자가 사라져도 몰랐다는 것은 치명적인 사태를 유발하게 만든 근무 태만이다. 일찍 발견했다면 아직 공사장 앞 땅을 파고 있는 장진수를 잡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정 직원들이 내부 협조를 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으니 서기관인 연지웅의 속은 말이 아닐 것이다.

목 과장님도 브리핑을 듣고 교정시설의 구멍을 알고 있었기에 서기관을 노려본다. 나는 슬쩍 목 과장님께 속삭였다.

“교도소장과 보안과장 목이 날아갔습니다. 이미 징계 절차 중이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협조받아야 됩니다.”

목 과장님은 날 힐끔 보고 혀를 찬 뒤 다시 주변을 살피러 떠나 버렸다. 나는 연지웅에게 협조를 받아야 하는 만큼 최대한 그를 이해한다는 어조로 말했다.

“서기관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너무 침울해하지 마세요.”

“…….”

“이미 소장님과 보안과장님이 직위 해제되셨습니다. 추가 징계는 없을 겁니다.”

“하…….”

징계는 피했지만 사고 수습은 남은 이의 몫이니 막막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그를 달래는 것이 우선이다.

연지웅이 한숨을 쉰 뒤 말했다.

“지금 수색영장이 떨어져서 일행분이 직원들 카드 사용 기록을 확인 중입니다.”

“그렇군요.”

“정말 직원 중에 내부 협력자가 있을까요?”

“아니길 바랍니다.”

“휴…….”

“대충 이야기는 들으셨죠? 톱 이야기.”

“예……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추후 시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즉시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연지웅은 아마 매일같이 윗사람들의 윽박 전화에 시달리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외부인 중 유일하게 자신을 탓하지 않는 내가 부탁이란 말을 꺼내자 얼른 답한다.

“예, 뭐든 협조하겠습니다.”

“감기약 이야기. 들으셨죠?”

연지웅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진다.

“하…… 예.”

“부산교도소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까?”

“……부끄럽지만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있었습니까?”

“최근이라 하심은.”

“최근 2년 안입니다. 정확히는 장진수가 부산교도소에 입소 후에.”

“음…… 있었습니다.”

“몇 건이나 적발됐습니까?”

“적발은 세 건입니다만 더 있을 겁니다.”

“더 있을 거라고요?”

“예, 마약 사범들은 본래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놈이 감기약을 처먹고 저러는지 약 기운 떨어져서 저 모양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같이 이불 뒤집어쓰고 덜덜 떨고 있으니 말입니다.”

음, 분간이 어렵긴 하겠다.

“장진수가 그들과 접촉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연지웅이 부끄럽다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숙인다. 그래, 직접 순찰 도는 교위나 교감도 아니고 서기관이나 되는 양반이 재소자 한 명을 관찰했을 리는 없다. 이건 내 질문이 잘못된 것이다.

“아, 제가 실수를 했네요. 모르고 계시는 게 당연하죠. 괜찮습니다.”

“…….”

그때 오진규가 연주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헌데 그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하다.

연지웅은 오진규를 보며 긴장한 얼굴이 된다. 그가 조금 전까지 교정 직원들의 카드 이용 내역을 확인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진규는 날 보며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신용카드, 체크카드 이용 기록상으로는 감기약 구매 기록이 안 나옵니다.”

조금만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현금으로 구매했을 것이다. 카드 기록으로 확인되었으면 좀 쉽게 갔겠지만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는 연지웅에게 물었다.

“이쪽 근방에 약국이 몇 개나 됩니까?”

연지웅은 잠시 생각해 보다 말했다.

“시내 쪽 가면 두 개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예, 여긴 이름만 부산이지, 완전 시골이라. 저희도 그 부분은 좀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사회와 격리되어야 할 범죄자들이 시내와 가까운 곳에 격리되는 것도 이상하죠.”

오진규는 옆에서 듣다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제가 시내 약국에 가서 주기적으로 현금을 주고 감기약을 구매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직원 복장으로 구매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옷에 대한 언급은 하지 마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오진규가 사라지자 연지웅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일단 카드 이용 기록 검수는 잘 넘겼기 때문이다.

나는 오진규 덕에 끊겼던 부탁을 다시 꺼냈다.

“서기관님.”

“예?”

“아까 부탁드리겠다고 한 것 말인데.”

“아! 감기약 이야기 하다 끊겼네요. 무슨 부탁입니까?”

“26번방 재소자들. 독방에 따로 수감했다고 하셨죠?”

“예, 맞습니다.”

“재소자들 인터뷰 좀 할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아! 물론입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과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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