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43화
18. Jailbreak(탈옥)(7)
오진규는 읍내 약국 확인, 관우는 외부 CCTV 수거, 연주는 목 과장님을 도와 현장 증거를 수집하러 보내고 나니 재소자 인터뷰는 나 혼자 해야 했다.
장소를 준비해 준 연지웅이 꽤 넓은 응접실을 눈짓하며 말했다.
“변호사 면회실입니다. 사용하시기 나쁘지 않을 겁니다. 문 앞에 직원을 대기해 둘 테니 필요하신 건 말씀만 하세요.”
역시 연지웅에게 윽박지르지 않길 잘했다. 그는 내게 매우 협조적인 태도로 말했다.
“순서는 어떻게 할까요?”
“총 다섯이죠?”
“예.”
“방장부터 하는 걸로 하죠. 여기 데려오실 때도 서로 만나지 않게 해주세요.”
“네, 한 사람씩 따로 데려오겠습니다.”
연지웅이 여러 장의 서류 중 방장의 신상을 기재한 장을 펼쳐 준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연지웅이 나가고 혼자 남은 나는 그가 주고 간 재소자 정보를 확인했다.
수감 번호 13하26 3891, 이름 정상철. 나이 55세. 야간주거침입절도 2건, 특수강도 3건, 강도강간 1건. 총 전과 6범으로 징역 8년.
전과 6범이란 말은 벌써 감옥에 여섯 번째 수감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한 번의 검거에 여러 차례의 범죄가 발각되어 전과가 쌓였을 수도 있다. 조직폭력배도 아닌 인간이 방장까지 하고 있는 것을 봐서는 감옥에 수시로 드나드는 인간일 것 같다.
가족관계 등을 찬찬히 살피고 있는 도중 노크소리가 난다.
“네, 들어오세요.”
교정 직원이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나자, 수갑을 찬 재소자가 보인다. 원래 나이인 55세보다 좀 더 늙어 보이고,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것이 절도범의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보더니 주춤거린다. 이름만 방장이지 간은 작은 인간인가 보다.
나는 일부러 차갑고 낮은 말투로 말했다.
“앉으세요.”
“…….”
교정 직원을 한번 힐끔 본 정상철이 우물쭈물거리다 내 맞은편에 앉는다.
나는 약간 몸을 앞으로 내밀고 팔꿈치를 양 무릎 위에 댄 후 그를 노려보고 있다. 정상철은 잠깐 나와 눈을 마주치다 슬쩍 시선을 돌린다.
“장진수와 친했습니까?”
“…….”
“기록을 보니 2년이나 한 방을 썼던데.”
“…….”
정상철은 아무 말 없이 창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군대 가서 함께 고생한 동기들과 끈끈한 정이 생기듯 감옥도 마찬가지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그들 안에서의 정이 생겨나는 곳이니까.
물론 그들이 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상대의 잘못을 감싸고 모른 척해주는 삐뚤어진 방식이란 것은 문제이지만 말이다.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습니까?”
정상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바라본다. 시종일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켕기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지만 끝내 그는 장진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별로 안 친해서 모르겠습니다.”
이 새끼가 사람이 우스워 보이나? 나는 신분증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후 손깍지를 끼고 정상철을 노려보았다.
“정상철.”
깎듯이 예의를 지키다 반말을 하자, 움찔 놀라는 정상철.
“너 나 누군지 모르지?”
“…….”
“음?”
“경찰이란 건 아는데요.”
나는 신분증을 눈짓했다.
“봐.”
정상철이 내 신분증을 가만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든다. 신분증에 기재된 소속을 본 놈의 눈이 커진다. 기껏해야 강력계 형사가 왔을 거라 예상한 모양이다.
“너. 장진수가 무슨 죄 지었는지는 알아?”
“…….”
“모범수 방에 있다고 그놈 죄질이 약한 것 같나?”
아마 정상철은 장진수가 살인범이란 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를 가능성이 높다.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지금부터 4년 전. 즉, 그는 장진수 사건이 났을 때 이미 감옥 안에 있었다는 뜻이다. 기껏해야 한 명쯤 실수로 죽이고 들어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새끼가 무기징역 받은 건 너도 알 테고. 빵에 들락거리는 걸 밥 먹듯이 하는 놈이니 알겠지? 사람 죽이면 몇 년 받는지?”
“…….”
“말해봐, 몇 년 받아?”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최대 15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가만히 정상철을 노려보았다. 스스로 대가리 굴려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정상철은 내 눈빛에 목을 움츠리며 더듬거린다.
“둘 정도…… 죽인 겁니까?”
“…….”
나는 굳은 얼굴로 정상철을 노려보며 말했다.
“열넷.”
정상철은 상상도 못 했는지 눈에 보일 만큼 움찔 놀란다.
“여, 여, 열넷이라고요?”
“거기 자기 부모도 포함되어 있다.”
“…….”
“단지 사람을 죽이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시신에 장난까지 쳐서 보란 듯이 전시했다.”
“…….”
나는 정상철이 느긋하게 바라보던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그런 놈이 밖에 나간 거다.”
나는 정상철의 신상 명세 중 가족관계를 짚으며 말했다.
“16세의 딸과 아내가 있네?”
“…….”
“장진수는 여자만 노렸다. 그게 네 아내와 딸이 될 수도 있다.”
“그, 그런.”
정상철은 눈을 마구 뒤룩거리다 급히 물었다.
“그놈이 어디로 도망갔습니까?”
“뭐?”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정상철이 다급하게 묻는다.
“혹시 충청도 쪽으로 갔습니까?”
“그건 왜?”
“제발! 제발 말해주세요!”
하는 꼴을 보니 가족이 충청도에 있구나.
“아직 추적 중이다. 야산 쪽으로 도주한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물론 곧 밝혀지겠지만.”
“하…….”
한숨을 쉰 정상철의 몸에서 힘이 풀린다. 여기서 조금 더 압박해 줄 필요가 있겠다.
“아, 혹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장진수가 대부분의 살인을 한 건 단양이다.”
정상철의 고개가 번쩍 들린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양은 충청북도에 있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장진수가 마지막 살인을 한 건 서울이었다. 그때 살던 곳도 서울이었다.
하지만 많은 살인이 단양에서 일어났고, 인근 천주교 성지 근처에 시신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이 말을 해 정상철로 하여금 장진수가 충청도에 갔을 거란 생각을 심어준 것이다.
정상철이 소파 아래로 털썩 주저앉은 후 무릎으로 기어와 내 손을 덥석 붙잡는다.
“단양 성지 중학교 정하연! 제 딸입니다, 제발 보호 프로그램 부탁드립니다.”
음, 그래. 범죄자라도 자기 가족은 소중한 법이지. 나는 정상철의 손을 슬쩍 뿌리치며 소파를 눈짓했다.
“하는 거 봐서. 앉아.”
정상철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벌떡 일어나 달려가 소파에 정자세로 앉는다. 이제 대화를 할 시간이다.
“장진수에 대해 말해.”
“어, 어떤 것을.”
“뭐든.”
정상철은 절대 입을 열지 말자고 같은 방 사람들과 단합했기에 어떤 진술을 할지 미리 생각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진술은 뒤죽박죽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괜찮다. 정리되지 않은 정보야말로 진실에 가까울 테니까.
“그게…… 거의 말이 없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렇지. 장진수가 세 들어 살던 집주인네 여중생도 놈이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들어온 첫날부터 말도 없이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눈빛이 독한 것도 아니고 딱히 규율을 어기는 것도 아니라 그냥 뒀습니다. 솔직히 다른 방에 가면 괴롭히기도 하는데 저희 방은 그런 게 없었습니다.”
“왜 없지?”
“모범 수용동을 유지해야 혜택이 많아서요.”
“규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제성이 필요할 텐데.”
“아닙니다, 혜택을 맛보고 나면 스스로 합니다. 게다가 저희 방에는 조폭도 없거든요.”
나는 슬쩍 방에 수감된 나머지 재소자들 신상명세를 보았다. 그의 말처럼 이 방에 수감된 재소자 중 죄질이 가장 나쁜 건 정상철이다. 무려 강도강간이라는 때려죽일 짓을 하고 들어온 놈이지만 지금은 이걸로 윽박지를 때가 아니다.
“장진수가 쇠창살 자를 때. 지켜보고 있었지?”
“…….”
“이미 80% 이상 조사가 끝났어. 말을 하면 그나마 정상참작. 안 하면 독방이거나 심하면 형량이 늘어나게 될 거다. 가만히 있어도 네 딸 스무 살 돼야 나가는데. 여기서 더 있다가 딸 결혼식도 못 보고 죽을 건가?”
“…….”
나는 잠시 정상철에게 시간을 주었다. 윽박지르는 건 충분히 했다.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해야 한다.
나는 밖에 서 있는 교정 직원을 불렀다.
“여기요.”
금세 문이 열리며 직원이 고개를 내민다.
“혹시 담배 가진 것 좀 있으세요?”
직원이 얼른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준 후 종이컵에 정수기 물을 반쯤 따라 테이블 위에 올린 후 창문을 열어준다. 나는 직원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담배와 라이터를 정상철 쪽으로 밀었다.
“담배 태우나?”
“……예.”
“태워.”
“…….”
“괜찮다.”
정상철은 자신만 태우라는 내 권유에 자꾸 눈치를 본다.
“난 원래 담배 안 태운다. 그냥 혼자 태워, 괜찮으니까.”
그제야 조심스럽게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는 정상철. 오랜만에 담배 맛을 보니 어지러운 모양이다. 관자놀이를 매만지던 놈은 반쯤 담배를 태우다 자기 엄지손톱을 내민다.
“요만한 톱 조각이었습니다.”
목 과장님이 말한 그 톱 조각이다. 역시 과장님 추측이 맞았다.
“언제부터 일을 시작했지?”
“두 달 전부터 밤마다 했습니다.”
“어디서 얻었나?”
“신축 성당 공사에 동원되어 나갔다가 진수가 쓰던 톱이 부러졌습니다. 제가 작업반장에게 직접 보고했고.”
“그래서?”
“날붙이 전부 모아서 깨끗하게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고 진행 중이었는데 교정 직원분이 와서 감시했습니다. 잘 처리하고 방에 돌아왔는데 그날 밤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날 밤부터 확실해?”
“예, 확실합니다. 제가 소리 듣고 자다 일어나서 창문에 들러붙어 있는 진수를 보고 뭣 하냐고 물었던 걸 기억합니다.”
이제 알겠다. 장진수는 6개월간 외부 접촉이 없었다. 면회, 우편, 전화 기록 모두 없었다. 외부 자극으로 인해 탈옥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톱 조각을 입수한 것이 두 달 전이었던 것이다. 장진수는 톱 조각을 몰래 숨긴 후부터 탈옥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뚜렷한 목적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탈옥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당장 탈옥부터 하는 미친놈은 없다.
대한민국은 CCTV 천국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순 있어도 반드시 잡힌다. 탈옥을 하는 놈들도 그걸 안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도망 다니며 그 목적을 이룬다. 나중에 잡혀 형량이 더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장진수에게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기징역이라 어차피 형량이 더 늘어날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아는 장진수가 밖에 나가 맛있는 거나 먹고, 바깥 공기 쐬러 탈옥할 놈은 아니다. 분명히 뭔가 목적이 있다.
어차피 안 되는 거라 생각하고 속에 꾹꾹 담아두었던 그 열망은 톱 조각을 손에 넣는 순간 활활 타올랐을 것이다.
정상철은 생각에 잠긴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두 달이나 매일 밤 쇠창살을 잘랐습니다. 손톱만 한 톱으로 말입니다. 수십 번이나 손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는데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설마 그게 되겠어 하면서 비웃었는데 기어코 해낸 겁니다.”
목 과장님의 추측이 또 맞아떨어졌다. 장진수는 작은 톱으로 쇠창살을 자르며 손에 상처를 입었다. 그것도 수십 번이나. 무엇이 그에게 그런 집착을 만들어 내게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