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44화
18. Jailbreak(탈옥)(8)
“어디로 간다거나, 누굴 만난다거나 하는 말은 없었나?”
정상철이 즉시 고개를 젓는다.
“진수는 하루에 한마디도 안 하고 넘어가는 날이 많은 녀석이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녀석이 말을 못 하는 줄 알 정도였으니까. 우리 질문에도 웬만해선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로 의사소통하던 놈이라 그런 이야기를 하진 않았습니다.”
“물어본 적도 없나? 탈옥하겠다고 두 달이나 쇠창살 잘라대던 놈인데.”
“그게…… 제가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냥 고개를 저었습니다.”
“뭐라고 물었지?”
“밖에서 도와주는 사람 있어? 혼자 나가면 바로 잡혀, 병신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톱질만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밖에서 도와주는 사람 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외부 조력자가 없다. 그래, 장진수는 원래부터 탈옥할 생각을 하던 놈이 아니다. 톱 조각을 얻은 후부터 탈옥을 꿈꿨고 친구나 가족, 친지가 없으니 외부 조력자가 없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제 오진규의 생각을 확인할 차례이다.
“장진수가 마약 사범들과 거래를 했나?”
정상철이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저! 저는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입니다!”
“알아.”
“진짜! 저는 모릅니다.”
당황하는 걸 보니 관계는 없지만 묵과한 모양이다.
“네가 관계없다는 건 알겠으니까 본 거나 이야기해. 방에 있던 다른 재소자들과도 관계없는 일인가?”
“예! 물론입니다! 말 없는 녀석이긴 해도 2년이나 같이 있었으니 정이 쌓였습니다. 너무 위험한 짓이라고 말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갑자기 그런 짓을 했습니다.”
“갑자기?”
“예.”
“혹시 그것도 두 달 전부터?”
“어…….”
정상철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 잠시 계산을 해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대충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탈옥을 꿈꾸기 시작한 순간 거래도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거래 물품은 뭐였지?”
“감기약이었습니다.”
“알약인가?”
“예, 알약을 휴지로 싸서 한 번에 여섯 알씩 거래했습니다.”
“왜 여섯 알이지?”
“여섯 개를 먹어야 뿅 간다고 들었는데…….”
하, 감기약은 감기 나으라고 먹는 거다, 이 새끼들아. 감기약을 만든 사람이 네놈들이 여섯 알이나 처먹고 해롱해롱하는 걸 보면 참 좋아하겠다, 망할 새끼들.
“장진수가 그걸 어떻게 들여오는지는?”
“그건! 정말 모릅니다! 저는 정말 관계없고요!”
“…….”
나는 정상철을 빤히 노려보았다. 진짜 모르냐는 눈빛이다. 정상철은 사력을 다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정말! 정말로 모릅니다! 사실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만약 진수 놈이 약쟁이 새끼들과 거래해서 빵 내에서 쓸 뭔가를 받아온다면 우리도 도왔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녀석은 아무것도 안 받아왔습니다. 아니, 그냥 내주는 것 같다고 할까? 뭘 받아온 적이 없어요. 그런 걸 뭣 하러 돕겠습니까? 제게 떨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안 그렇습니까?”
“아무것도 받아오지 않았다고?”
“예! 정말입니다. 저희가 안 믿겨져서 진수 놈 몸과 짐도 뒤져봤는데 거래 대가로 받아올 만한 물건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 선배의 말이 맞았다. 장진수는 감기약을 주고 밖에 있던 약쟁이들 지인에게 돈을 받았을 것이다. 직접 받을 수 없고, 대리인도 없으니 계좌로 받았겠지.
나는 바로 연주에게 전화를 걸어 장진수의 전체 계좌를 추적하라 지시한 뒤 다시 정상철에게 물었다.
“약을 입수한 경로는?”
“진짜 모릅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정상철의 이마를 밀며 말했다.
“한 방 사는 새끼들이 그걸 몰라? 약 입수하면 방에 와서 어딘가 숨겼을 거 아냐?”
“아! 그건 압니다. 관물대 뒤에 깨진 벽 안쪽에 숨겼습니다.”
“직원들은 모르는 곳인가?”
“네, 모릅니다. 근데 기껏해야 두루마리 휴지 하나 들어가는 공간이라 숨길 것도 없습니다.”
“정말 입수 경로 몰라?”
“예! 정말입니다, 형사님!”
음, 진짜 모르는 건가? 나는 잠깐 정상철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라고 모든 비밀을 공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밖에서 감기약을 입수한 뒤 방에 숨기는 모습만 봤다. 응? 잠깐만, 입수 직후 숨겼다는 이야기라면…….
나는 정상철에게 물었다.
“감기약을 숨기기 전에 뭘 하고 들어왔지?”
“예?”
“전체 운동 시간 후에 들어와서 숨기던가?”
“아뇨?”
“그럼?”
“진료받고 돌아와서 숨기던데.”
“진료?”
“예, 진료는 신청하고 나면 교정 직원이 부를 때까지 그냥 대기합니다. 부를 때 나갔다가 진료받고 오는 건데 꼭 그거 다녀오면 감기약을 가져왔습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진료 후에 감기약을 가져왔다?
“혹시 너희 방 담당 교정 직원이 정해져 있나?”
“물론입니다.”
“몇 명이지?”
“셋이요.”
“진료를 보러 가고 올 때, 직원과 동행하지?”
“예, 보통 그렇습니다.”
“몇이나 가나?”
“한 명이 동행합니다.”
“장진수도 그랬고?”
“물론입니다.”
26번방을 담당하는 교정 직원은 셋. 방을 담당한다고 하기보다는 그 구역의 담당자일 것이다. 나는 밖을 향해 외쳤다.
“여기 잠시 들어와 주세요.”
밖에 있던 직원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나는 아까 빌린 담배와 라이터를 돌려주며 말했다.
“하동 26번방 담당 교정 직원 리스트 좀 부탁합니다.”
직원이 눈을 깜빡인다. 왜 저러지? 직원은 정상철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제가 담당자입니다만.”
아차, 정상철도 장진수와 한 방이고 정상철이 여기 왔으니 담당자 중 한 명이 데리고 왔겠지. 나는 밖을 눈짓하며 말했다.
“밖에 다른 직원 있습니까?”
“아뇨, 저 혼자인데 필요하시면 무전 해서 사람 데려올 수 있습니다.”
“무전 하시고 잠깐 한 분만 와달라고 해주세요. 저 사람 방에 데려가고 그쪽은 저와 이야기 좀 합시다.”
“예? 아…… 예.”
직원은 정상철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냐는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정상철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다.
잠시 후, 다른 직원이 와 정상철을 데려가고 혼자 남은 직원이 소파에 앉은 후 물었다.
“무슨 질문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나는 직원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장진수가 두 달 전부터 의사 진료를 꾸준히 신청했다고 하던데.”
“후, 맞습니다.”
직원의 표정이 무척 안 좋다. 하긴 장진수가 탈옥을 했고 그는 그 구역 담당자이니 반드시 징계가 따를 것이다. 소장이나 보안과장처럼 불명예 퇴직까지 가진 않겠지만 아마 계급 강등이 있을 것이다.
“무슨 일로 진료를 본 겁니까?”
“당 체크하러 가는 거라고 하던데.”
“당?”
“예, 살 자꾸 빠진다고 혈당 재야 된다고 하던데. 담당 공중보건의사 선생에게 확인도 받았습니다.”
음, 의무과장은 장진수에게 특이 사항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러 번에 걸친 혈당 체크를 통과했기에 특이 사항 없음이 성립했다는 건가? 나는 직원을 노려보며 물었다.
“당신도 장진수의 진료를 위해 데려간 적이 있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
나는 말없이 직원을 노려보았다. 직원은 기분 나쁜 얼굴로 답했다.
“솔직히 수색영장 청구하신 것도 그렇고. 의심하시는 건 알겠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네요. 감기약 이야기죠? 맹세코 그런 적 없습니다. 부모님 이름을 걸라고 해도 걸 수 있습니다.”
“…….”
오진규가 이미 직원들 계좌와 신용카드 기록을 확인했다. 거기서는 나오지 않았다. 감기약을 산 사람은 현금으로 물건을 샀다. 나는 직원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고 물었다.
“결혼하셨습니까?”
“예, 아들도 둘 있습니다. 아들놈 이름도 걸 수 있습니다. 전 결백합니다.”
“애가 몇 살입니까?”
“세 살입니다.”
이제 겨우 세 살 난 자기 아들 이름도 걸겠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건 쉽지 않다. 나는 슬쩍 직원에 대한 의심을 밀어내며 물었다.
“공무원 생활하시며 아이 키우기 쉽지 않겠군요.”
직원은 내 목소리가 느슨해지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봉인 거야 그렇다 치고, 시간 때문에 문제죠. 근무 한 번 들어오면 24시간은 기본이니 애 얼굴 볼 시간이 별로 없어 큰일입니다.”
“결혼하실 때 집은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전세 들어갔습니다. 기장 쪽에 있고.”
“기장이면 최근에 집값 좀 올랐을 텐데.”
“그거야 집주인들 사정이고. 세 들어 사는 놈은 집값 오르면 전셋값도 올려달라고 하니 싫죠.”
“전셋값은 어떻게 마련하셨습니까?”
“대출입니다.”
“대출금을 갚고 계십니까?”
“후, 그렇죠. 대한민국 아빠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월급에 몇 퍼센트나 갚으십니까?”
“빨리 갚고 싶어서 40%를 갚습니다. 덕분에 항상 쪼들리죠.”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가장. 그들에게 재소자들과의 거래는 달콤할 것이다. 하지만 양심껏 사는 사람들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다. 내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따로 있다.
“월급에 40%나 대출금을 갚으시면 생활하시기 힘드시겠군요.”
“그렇죠, 뭐.”
“용돈 받고 사십니까?”
“다 그렇게 삽니다.”
“얼마나 받으십니까?”
“5만 원이요.”
“일주일에?”
“아뇨, 한 달에.”
음, 한 달에 용돈 5만 원을 받는 사람. 물론 5만 원으로 가격이 싼 감기약을 사 비싸게 거래한다면 충분한 용돈을 확보할 수 있는 달콤한 제안일 것이다.
만약 직원이 공범이라면 한 번에 5만 원 이하의 감기약이 거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진규는 그들의 계좌를 모두 확인했다. 혹시 몰라 가족 계좌까지 확인해 보았지만 장진수에게 받은 대가로 보이는 돈은 없었다. 있었다면 벌써 보고가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내부 조력자는 한 부류이다. 나는 직원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말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가보셔도 좋습니다.”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다 나를 쓱 보며 말했다.
“형사님.”
“예.”
“여기 직원들 중에 그런 인간 없습니다.”
“…….”
“탈옥수 만든 능력 없는 직원 놈의 변명으로 들릴지 몰라도 정말입니다. 우리 직원들 모두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어주세요.”
“부디 그렇기를 빌겠습니다.”
직원은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방을 나섰다. 나는 직원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 후 오진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선배님.”
-예, 과장님. 약국 돌고 있는데 감기약 사가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약사가 전혀 기억을 못 하네요.
그렇겠지. 제일 많이 팔리는 게 감기약일 텐데.
-직원 명단의 사진 확보해서 CCTV 돌려봐야 하나 생각 중입니다.
“아뇨, 선배님. 수색영장 다시 신청해 주세요.”
-예? 무슨 수색영장을 또.
“계좌 기록입니다.”
-누구 계좌 말씀이신지.
“교도소 내 공중보건의 선생입니다.”
-예? 의사를 확인하라는 말씀입니까?
장진수를 도울 수 있는 사람. 진료를 보러 다녀오는 길에 장진수가 만날 수 있는 인간은 딱 두 부류다. 교정 직원 아니면 의사. 둘 중 내부 조력자가 있다.
“예, 즉시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