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45화
18. Jailbreak(탈옥)(9)
부산교도소 의무실.
나는 의무과장의 협조를 얻어 장진수의 차트를 확보했다.
복역 중 진료를 받은 횟수는 총 일곱 번, 문제는 입소 후 한 번도 진료 기록이 없던 놈이 두 달 전부터 갑자기 의무실을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일곱 번의 진료는 각기 다른 날짜에, 다른 시간에 진행되었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장진수를 진료한 의사이다.
“공중보건의 안주환.”
내 중얼거림을 들은 연주가 옆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빠르게 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 뒤 말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공중보건의 근무 중인 의사입니다. 전공은 IM(내과). 국립 의대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를 마치고 전문의를 딴 뒤 대체복무 중입니다.”
“장진수와 접점은?”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학교 어디 나왔어?”
“경기도 소재 대학교입니다.”
“아니, 초, 중, 고등학교.”
“초등학교 입학은 인천, 졸업은 서울이고 그 이후에는 쭉 서울에서 나왔습니다. 단양에서 학교를 다닌 장진수와 학연은 없어 보입니다.”
“성당은 안 다니고?”
“예, 기독교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인 등록된 교회는 없고요.”
“음.”
장진수가 남긴 기록. 일곱 번의 진료에서 만난 같은 의사. 교정 직원과 더불어 놈에게 감기약을 공급해 주었을 확률이 가장 높은 의사다. 나는 시계를 힐끔 보고 말했다.
“곧 의사가 올 시간이니 나가서 오 선배님과 안주환에 대해 캐봐. 교정 직원들보다 이쪽이 더 의심스럽다.”
“네, 과장님.”
연주가 나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동시에 안으로 들어오려던 의사와 마주친다. 의사는 무척 긴장한 얼굴로 연주가 나갈 수 있도록 비켜선다. 얼굴을 보아하니 저놈이 공범이 확실하다.
연주가 문을 닫고 나가자, 멀뚱히 서 있는 의사. 나는 자리를 권했다.
“여기 앉으세요.”
“…….”
의사가 주춤거리며 의자에 앉는다.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것이 지독하게 켕기는 것이 있는 얼굴이다.
나는 말없이 의사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의사는 어떤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갑자기 질문 없이 얼굴만 뚫어지게 보는 내 덕에 당황한다. 괜히 자기 얼굴을 만져보고 아무것도 없는 뒤를 돌아보는 의사. 그러다 결국 자기가 먼저 입을 연다.
“저기, 저 왜 부르셨는지.”
“…….”
나는 말없이 안주환의 신상명세서를 다시 확인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침묵이 숨 막힐 지경일 것이다. 나는 일부러 시간을 끌며 서류를 확인한 뒤 천천히 말했다.
“안주환 선생님.”
“네?”
기다렸다는 듯이 답이 나온다. 선생님의 ‘님’ 자가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나오는 걸 보니 어지간히 긴장했구나. 나는 다시 안주환을 지그시 바라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한테 할 말 없습니까?”
“…….”
묻기보다 할 말이 없냐 묻는 취조. 사실 이런 방식은 학교 선생님들에게 배웠다.
다짜고짜 매를 들며 ‘네 잘못이 뭐야?’라고 하면 수만 가지 생각이 든다. 도대체 선생님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걸까? 잘못한 게 한둘이 아닌데. 어디까지 말해야 되지?
그러다 선생님께 죄를 고백하면 다시 묻는다. ‘몇 대 맞을래?’ 당시에는 이런 취조 방식이 몸서리치게 싫었지만 이 방법은 생각보다 매우 효율적이다. 가끔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생각처럼 당황하며 눈을 굴리는 의사.
나는 다시 신상명세를 보며 말했다.
“대체요원으로 근무 중이네요. 그렇다면 군인이라는 건데.”
“…….”
“영창 가는 거야 당연한 거고. 실형도 떨어질 수 있겠네요.”
“…….”
이걸로 거래할 생각은 없다. 이놈은 죄를 지었다. 간도 크게 감히 교도소 내에 불법으로 감기약을 유통하다니. 반드시 벌을 받아야 된다.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안절부절못하는 안주환을 보며 말했다.
“똑똑하신 분이니 정상참작이란 단어 잘 알죠?”
“…….”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다. 악마 같은 놈들만 상대하다 일반인을 상대하니 귀여운 느낌도 좀 든다.
그때 노크 소리가 나며 오진규가 문을 연다. 그는 안주환을 째려본 뒤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사람 면전에서 귓속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상대는 범죄자이니 예의 차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오진규의 말은 좀 황당하다.
“그냥 ‘호? 그래요?’ 하세요. 그리고 안주환을 지그시 노려보시면 됩니다.”
응? 잠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난 곧 선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뭔가 나온 것처럼 연기해서 의사를 압박하라는 뜻이다.
나는 오진규가 귀에서 떨어지자마자 안주환을 보며 씩 웃었다.
“호, 그래요?”
안주환의 안색이 대번에 흙빛이 된다. 그는 오진규와 날 번갈아 보며 외쳤다.
“저, 정말! 저는 탈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드디어 입이 열렸다. 오진규가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쉰다.
“후, 탈옥 말고.”
“…….”
“탈옥 말고 있잖아요? 탈옥이야 그 새끼가 혼자 한 짓일 테고. 당신이 도운 건 그게 아닐 텐데?”
안주환의 고개가 툭 떨어진다. 오진규는 날 힐끔 보며 윙크한 뒤 맡기겠다는 듯 방을 나선다.
뭐야? 저 선배. 결국 계좌나 카드 기록에서 아무것도 못 찾은 거야?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와서 의사에게 정신적 압박만 하고 가는구나. 대단한 인간이다, 정말.
하지만 이런 속내를 들켜선 안 된다. 나는 안주환이 고개를 들 때까지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안주환은 고개를 들까 말까 여러 번 고민하다 결국 눈만 들어 나를 힐끔 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찔끔 놀란 그가 말을 더듬는다.
“그, 그, 그게. 그게 말입니다.”
“네, 말해봐요.”
“그게…… 두, 두 달 전이었습니다.”
“뭐가요?”
“자, 장진수 그놈이 제게 접근한 것 말입니다.”
“육하원칙 모릅니까? 제대로 말해요.”
“…….”
“많이 배우신 분이.”
“…….”
안주환은 호흡을 여러 번 한 뒤 조금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두 달 전이었습니다. 의무과장님이 재소자 중 급격한 체중 감소를 겪는 재소자가 있다고 해서 당화혈색소 검사를 지시받았습니다. 수감 번호 13하26 5899 장진수였습니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작게 박수를 쳤다.
“잘하시네. 계속하세요.”
안주환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진료실에 와서 혈액 샘플을 뽑았습니다. 당화혈색소 검사는 분석에 며칠 걸려서 일단 피를 뽑아 저장 후에 약간의 피로 혈당 체크를 했는데 식후 두 시간 혈당 수치가 88이었습니다. 너무 낮아서 얼른 서랍에서 사탕 하나를 빼 입에 물렸습니다.”
“혈당 수치 88이면 낮은 겁니까?”
“식후 두 시간 수치 기준으로 저혈당입니다. 더 떨어지면 쇼크가 올 수도 있는 수치이고.”
“그래서 그다음은?”
“아무래도 수치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의무과장님께 보고드리고 수시로 체크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앞에 앉혀놓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서 문진을 했습니다.”
안주환이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런데 질문을 하던 중 손에 자잘한 상처들이 있는 걸 봤습니다. 주로 검지와 엄지 쪽에 상처가 많았습니다. 손끝에서 두 번째 마디까지 약하게 찢어지거나 긁힌 자국이 많았는데 검게 변색되어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어느 손입니까?”
“오른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해줬습니까?”
“예, 혈당도 낮은 사람이 출혈까지 있으면 심각해질 수 있어서 바로 거즈로 소독하고 드레싱 했습니다.”
“그래서요?”
“드레싱 하면서 물었습니다. 목공소에서 일하냐고. 그렇다고 하길래, 뭘 하다 이렇게 다쳤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일하다 다쳤다고 하길래 너는 혈당이 낮으니 특별히 더 조심해야 된다. 필요하면 작업 반장에게 일 바꿔달라고 말해주겠다. 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안주환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드레싱을…… 하고 있는 도중에 그놈이 제안을 했습니다.”
“감기약?”
“예…….”
“하나당 얼마 준다고 했습니까?”
“…….”
“그냥 말하죠? 어차피 추적하면 다 나옵니다.”
“이십……만 원입니다.”
“원래 얼마짜리 약인데요?”
“이천 원……입니다.
호, 백 배가 남는 장사라. 돈 없는 군인 의사가 충분히 혹할 제안이다.
“감기약은 어디서 구입했습니까?”
“원래…… 일하던 병원에 약을 대던 제약회사 직원에게 현금 주고 구입했습니다.”
“몇 개나 넘겼습니까?”
“한 번에 30개씩 넘겼습니다.”
“일곱 번 진료 중에 첫 진료는 제안과 거래의 성립이니, 총 여섯 번을 넘긴 거네요?”
“예…… 한 번에 30개씩 여섯 번입니다.”
“1개에 몇 알이 들어 있죠?”
“열 알입니다.”
“열 알이라. 그럼 한 번에 300알씩 여섯 번. 1,800알이네요?”
“예…….”
“재소자들 말 들어보니 한 번에 여섯 알씩 먹으면 맛이 간다고 하던데. 1,800을 6으로 나누면 300명분. 당신 덕에 300명의 마약 사범이 천국에 다녀왔겠군요?”
“…….”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어차피 재소자들은 감기 증상도 없이 와서 약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어떻게든 구해서 먹는 놈들입니다.”
나는 차가운 얼굴로 안주환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
“그래서 잘했다는 건가?”
“…….”
“이봐, 안주환.”
“예…….”
“네놈이 장진수에게 공급한 감기약 말이야. 넌 한 통에 20만 원씩 받고 넘겼지만 그놈은 더 많은 돈을 받고 재소자들에게 팔았어. 그리고 그 돈은 탈옥 후에 필요한 자금이 되었고.”
“…….”
“결국 이 모든 일은 네가 놈에게 협조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란 거다. 알아?”
안주환의 고개가 푹 숙여진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건 재판장 가서 이야기하고. 돈은 어떻게 받았지?”
“계좌로 받았습니다.”
나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계좌로 받았다고? 오 선배가 그걸 놓칠 사람이 아닌데?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선배가 들어와서 귓속말만 하고 나갔을 리가 없다.
“차명계좌가 있나?”
안주환이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만 끄덕인다.
“예…….”
일반 의사에게 차명계좌가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당신이 직접 만든 건가?”
안주환이 한숨을 쉰 뒤 말했다.
“재소자 중에 밖에서 그런 일 하던 놈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계좌 파서 돈 넣어주면 난 그냥 돈만 쓰면 된다고…….”
“돈을 찾아본 적은 있고?”
“예, 있습니다.”
한 번에 30통을 개당 20만 원씩 넘겼다. 한 번 거래에 600만 원의 수익. 총 여섯 번을 거래했으니 안주환이 얻은 수익은 3,600만 원이다.
“얼마나 찾았습니까?”
“이백 찾았습니다. 제가 카드 빚이 좀 있어서.”
“아아, 그런 건 알고 싶지 않고. 돈 넣은 사람 기록 있죠?”
“예…….”
나는 빈 종이를 밀며 볼펜을 내주었다.
“여기 차명계좌 이름과 번호 쓰세요.”
“예…….”
순순히 계좌번호를 쓰고 있는 안주환. 나는 그를 가만히 보고 있다 물었다.
“돈 넣은 사람 이름은 누구였습니까?”
안주환이 차명 계좌였다면 당연히 보낸 쪽도 차명일 것이다. 안주환은 계좌번호를 쓰다 고개를 들었다.
“누구 말씀이신지.”
“돈 받았다면서요. 누구한테 받았냐고.”
“그러니까…… 그중에…… 아! 입금자가 한 명이 아닌데. 그중에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안주환을 노려보았다.
“한 명이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