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46화 (245/328)

살인의 기억 246화

18. Jailbreak(탈옥)(10)

부산교도소 변호사 접견실.

임시 수사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이곳에 수사팀 모두가 모였다. 먼저 오진규가 안주환의 차명계좌 기록을 보여주며 말했다.

“자, 여기. 명의자는 문지환. 아마 노숙자일 겁니다. 계좌 개설일이 지금부터 53일 전. 비슷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총액 3,600만 원 입금되었고, 그중 2백만 원이 인출됐습니다. 인출 장소는 부산 강서구 대저2동의 편의점입니다.”

안주환의 진술이 맞아떨어진다. 적어도 간이 작은 의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기록을 보며 말했다.

“입금자가 총 몇입니까?”

오진규가 한숨을 푹 쉰다.

“백만 원씩 36명입니다.”

“예?”

“총 36명이 백만 원씩 입금했습니다.”

“…….”

연주가 얼른 두꺼운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36명 전수 조사했는데, 모두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마약사범의 지인들이었습니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습니다.”

오진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안에 있던 놈들이 장진규에게 약을 구입하고 대금은 밖에 있는 놈들을 시켜 차명계좌에 넣었다는 건데.”

연주가 계좌 기록을 바라보다 말했다.

“장진수는 얼마에 약을 넘겼을까요?”

오진규가 혀를 차며 말했다.

“조사해 보면 나오겠지. 안주환이 3,600만 원을 받았다면 이놈은 적어도 그 이상을 받았을 거야. 보내는 놈들이 두 번에 나눠서 보냈을 거고.”

물론 이것을 추적해 내부에서 불법으로 감기약을 구매한 재소자들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지금은 풀려난 악마를 시급히 찾아야 할 때이다.

나는 오진규에게 말했다.

“일단 그건 잠깐 미뤄두고. 안주환에게 돈을 보낸 사람이 장진수의 차명계좌에도 돈을 보냈을 겁니다. 그쪽을 조사해 주세요.”

오진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미 조사했죠.”

역시 오진규다. 오진규가 다른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안주환에게 돈 보낸 놈들이 같은 날 또 다른 사람에게도 돈을 보냈습니다. 아마 이 계좌가 장진수의 차명계좌일 겁니다.”

오진규가 내미는 서류 속에 있는 계좌. 이름은 배영진. 이 사람도 노숙자일 확률이 높다. 나는 차명계좌 기록을 보며 말했다.

“총액 6천만 원.”

오진규가 아래쪽을 짚으며 말했다.

“이 계좌의 출금 기록은 하나. 강서체육공원 앞 편의점에서 오십 만원을 인출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말한 기록을 확인해 보니 인출한 시간이 탈옥 당일 새벽 네 시다. 나는 턱을 쓸며 손을 내밀었다.

“지도.”

연주가 얼른 지도를 가지고 온다. 나는 지도를 펼쳐 장진수가 도망간 방향과 편의점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반대 방향이네요.”

내 생각이 맞았다. 장진수는 부산교도소 인근 지리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벽을 넘어 냅다 도망친 놈은 한 시간이나 헤매다 다시 시내 쪽으로 방향을 잡고 편의점에서 돈을 찾은 것이다.

연주가 약간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이놈 이거. 돈을 어떻게 찾은 거죠? 카드가 있을 리도 없고. 핸드폰은 더더욱 없었을 텐데.”

나도 그 부분이 이상하다. 외부에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그때 구석에서 노트북으로 자료 정리 중이던 관우가 손을 든다.

“그 부분은 제가 알아냈습니다.”

오진규가 반색하며 손바닥을 비빈다.

“오! CCTV 추적의 천재! 왜 지금까지 조용한가 했어.”

오진규의 너스레에 씩 웃은 관우가 노트북을 가지고 와 내 옆에 앉는다.

“자, 여기 보면 야산으로 뛰는 장진수가 보이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장진수의 뒷모습이 보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우가 다른 영상을 보여준다.

“교도소에서 2㎞ 떨어진 곳에 있는 도로교통상황 CCTV입니다.”

영상 속에서 오르막길에서 도로로 뛰어 내려오는 장진수의 모습이 보인다. 오진규가 고개를 쑥 내밀며 물었다.

“뭐야, 옷 갈아입었네?”

장진수의 옷이 바뀌어 있다. 좀 전에는 재소자 복장이었는데 지금은 베이지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이다. 하지만 아직 신발은 그대로이다. 관우가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인다.

“예, 첫 영상과 두 번째 영상의 시간 차이는 40분입니다. 혹시 이때 외부 조력자를 만난 게 아닌가 의심이 가서 직접 여길 가 봤습니다.”

아, 그래서 관우가 한참이나 소식이 없었구나. 관우가 다른 영상을 튼다.

연주가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뭐야, 여기? 양계장 아냐?”

닭들이 고개를 빼고 모이를 먹는 양계장의 시설들. 늦은 밤이라 닭들도 모두 잠든 시각의 CCTV이다. 관우가 화면을 눈짓하며 말했다.

“여길 보세요.”

어둠 속에서 밖의 빛이 옅게 보인다. 누군가 문을 연 것이다. 밖에는 가로등이 없는 모양이다. 빛의 감도로 보아 저건 달빛일 가능성이 높다.

달빛을 등진 그림자가 양계장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뒤진다. 닭들이 깨 소리를 낼까 봐 걱정되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그림자.

그림자는 잠시 후 벽에 걸어둔 옷가지 몇 개를 챙긴 후 다시 양계장을 나간다. 영상을 멈춘 관우가 말했다.

“두 번째 영상에서 장진수가 오르막길에서 내려왔죠? 직접 거길 가 보니 오르막길 위에 양계장이 있더라고요.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CCTV를 보니 장진수 모습이 있었습니다. 옷을 도난당했다는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오진규가 까칠한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외부 조력자를 만난 게 아니고 옷만 훔쳐 입었다?”

“예, 맞습니다. 양계장 주변에서 장진수 재소자 복장이 나왔어요.”

“어? 어디 있어?”

“목 과장님께 드렸습니다.”

과장님이 안 보인다 했더니 벌써 그걸 들고 인근 KCSI 지부로 가신 모양이다. 나는 손뼉을 한번 친 뒤 말했다.

“그건 됐고. 아까 이야기 다시 해봐. 장진수가 카드나 핸드폰 없이 돈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

관우가 노트북을 조작하며 말했다.

“아까 장진수가 강서체육공원 앞 편의점에서 오십만 원 인출했다고 하셨죠?”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우가 윙크를 하며 화면을 눈짓한다.

“온라인 뱅크 일일 출금 한도가 오십이죠.”

화면 속, 편의점 앞에 있는 ATM기기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있는 장진수의 모습이 보인다. 은행 ATM기기라면 정면에서 촬영된 영상이 확보되겠지만, 편의점이라 뒤쪽에서 촬영된 영상만 확보할 수 있다. 관우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아까 재소자 중에 차명계좌 개설을 전문으로 하는 놈이 있다고 하셨죠. 그런 놈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아마 미리 ATM 스마트 출금을 신청해 뒀을 거예요.”

오진규가 물었다.

“ATM 스마트 출금이 뭐야?”

연주가 말을 자른다.

“그게 말이 돼? 그거 나도 하는데. 카드가 없다고 해도 핸드폰은 있어야 돼. 계좌번호, 비밀번호 입력하면 핸드폰으로 출금인증번호 여섯 자리가 오고, 그걸 입력해야 돈 찾을 수 있잖아.”

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거 뚫는 거 별로 안 어렵다. 중국 쪽에 보면 Bot 핸드폰이라고 있어. 문자가 오면 자동으로 어디론가 보내주는 기능만 있는 폰이라 추적도 불가능하지. 차명계좌 만드는 놈이 그걸 몰랐을까. 여길 봐. 장진수가 ATM 기기 앞에 서 있다가 갑자기 카운터로 가지?”

화면 속 장진수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아르바이트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인다. 관우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 진술 확인했어요. 장진수가 잠깐 이메일 확인할 게 있다고 하면서 노트북 좀 쓰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즉, Bot 핸드폰이 인증번호를 이메일로 전송했고, 장진수는 그걸 확인 후에 다시 ATM기기로 돌아와 돈을 인출한 겁니다.”

역시 이쪽 분야에는 관우가 최고다. 나는 잘했다는 듯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좋아, 잘했다.”

“히히, 아직 안 끝났습니다.”

관우가 다른 화면을 클릭해 띄운다.

“자, 여기는 원예 용품점 앞이고, 강서체육공원 맞은편입니다. 시간은 새벽 네 시 사십 분이고.”

화면이 재생되자 오진규와 연주의 눈이 커진다.

“장진수?”

나도 놀랐다. 화면 속 장진수가 택시를 잡아 타고 있다. 게다가 택시 넘버까지 확인 가능한 화질이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관우를 보았다.

“대단한 자식. 그새 여기까지 찾아낸 거냐?”

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뇨, 더 찾았습니다.”

“음?”

관우가 다른 화면을 보여준다.

“이 택시. 서울로 갔습니다.”

나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나 같은 서민은 한 번도 택시로 서울을 간다는 생각을 못 해봐서 인근의 어디론가 이동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택시를 타고 서울까지 가면 얼마가 나올까? 오진규가 물었다.

“어디서 내렸어?”

“그건 아직 못 알아봤습니다만 동서울 톨게이트 통과하는 것까지는 확인했습니다.”

오진규가 얼른 택시 넘버를 적은 후 메모지를 들었다.

“일단 택시기사부터 만나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그러세요. 저는 교도소 쪽에 남은 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관우는 계속 장진수 동선 따보고, 연주는 장진수 차명계좌 동결해. 출금 시도하는 기록 생기면 바로 보고하고.”

“네, 과장님.”

“예! 알겠습니다.”

나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사전 조사는 끝났습니다. 이제 추적합니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신창X 사건이 재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알았습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네, 과장님.”

연주와 오진규는 외부에 나가야 되는 일이라 임시 수사본부를 떠났고 관우는 하드 더미들을 들고 구석진 자리에 가 앉는다.

나는 그런 관우를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밥은 먹었어?”

관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야, 요즘 교도소 밥 맛있네요.”

“응?”

“아까 연지웅인가 하는 그 서기관님이 밥 먹으라고 하길래 직원 식당 가서 먹었습니다. 과장님은 드셨어요?”

“어, 난 아직.”

“식사하시고 오세요. 아직 밥 줄 겁니다.”

“그럴까?”

“예, 오늘 불고기 반찬이던데. 맛있습니다. 햄버거보다 더 맛있던데.”

햄버거 좋아하는 관우에게 최고의 칭찬이다. 꽤 맛있는 모양이다.

“그래, 밥이나 먹어야겠다. 가는 길에 감기약 판매한 공중보건의 입건할 거니까 인근 순찰대 좀 오라고 해줄래?”

“예,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와 직원에게 식당 위치를 묻자 그가 안내를 해준다. 아, 여긴 내 맘대로 쏘다닐 수 없는 곳이었지 참. 마침 직원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길래 같이 밥을 먹었다.

관우 말처럼 꽤 맛이 있다. 식당 아주머니 손맛이 좋은 모양이다.

식사를 거의 다 마칠 무렵. 나는 물 한 잔을 마시며 교도소 식당을 둘러보았다.

살면서 교도소 직원 밥을 먹어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직원 식당이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창살로 막힌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잠시 감상하던 나는 공중보건의 선생을 체포하기 위해 남은 잔반을 버리고 식판을 반납했다.

관우에게 순찰대가 도착했는지 전화로 물어보려던 바로 그때. 급박한 얼굴로 날 찾아온 연주의 외침 소리가 들려온다.

“과장님!”

어찌나 뛰어왔는지 머리가 산발이 된 연주.

“무슨 일이야? 몰골이 왜 그래?”

연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날 바라본다.

“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설마. 장진수 이 새끼가 벌써 누군가를 죽인 거야? 나는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일단 복귀하시라고 합니다.”

“복귀? 갑자기 왜?”

시급히 추적해야 할 판에 복귀? 물론 이놈이 서울로 갔으니 우리도 올라가는 게 맞기는 한데. 이 시국에 갑자기 청에는 왜?

연주가 침을 삼키며 말했다.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 앞으로 편지가 왔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청으로 온 편지? 나는 영문을 몰라 잠깐 당황하다 연주 표정을 보고 상황을 짐작했다.

“장진수에게서 온 편지야?”

연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받는 사람이 과장님 성함으로 되어 있답니다. 지금 목 과장님이 서울로 올라가시는 중입니다. 장진수 본인 필적이 맞는지 확인해 주실 겁니다.”

장진수가 내게 편지를 보냈다. 내가 자신을 다시 쫓을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즉시 서울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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