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47화 (246/328)

살인의 기억 247화

18. Jailbreak(탈옥)(11)

다섯 시간 후, 서울경찰청.

우리는 모든 수사를 중단하고 즉시 서울로 올라왔다. 아직 부산교도소에 남은 일이 있었지만, 그건 관할경찰서와 부산 검찰에 사건을 이관할 생각이다.

청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본부장님 호출로 그의 방으로 가자, 책상에 앉은 KCSI 목 과장님이 현미경으로 편지를 관찰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장영훈 본부장님이 소파에 앉아 있다 급히 들어오는 우리 팀원들을 본다. 열한 시가 넘은 시간에도 퇴근하지 않은 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 새끼 이거. 또 사람 죽이면 그때는 진짜 큰일이다.”

나는 소파 위로 들고 온 가방을 던지며 물었다.

“뭐라고 써 있습니까?”

장영훈 본부장님은 말없이 검사 진행 중인 목 과장님을 눈짓한다. 검사가 끝나면 알게 될 거란 뜻 같다.

본부장님이 서 있는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서 있지들 말고 일단 앉아, 목 아프다.”

관우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다른 범죄자들처럼 잡지 책에 글자 오려서 보낸 겁니까?”

오진규가 옆자리에 앉으며 관우의 어깨동무를 한다.

“그럴 리가 없지. 이미 우리가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데.”

장영훈 본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자필 편지다. 수신인은 도경이고.”

모두가 나를 바라본다. 장진수는 왜 내게 편지를 보낸 걸까?

“청으로 배달 온 겁니까?”

본부장님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종로경찰서로 왔다. 최영현이 대리 수령했는데, 발신인 이름 보고 사건과 관계있다고 생각하고 즉시 연락했어. 봉투를 개봉하지 않은 채로 긴급하게 청으로 가지고 왔더군.”

장진수를 검거한 것은 내가 종로경찰서에 막 부임했을 때이다. 일반인이 경찰이 어디로 전근을 갔는지, 어디로 배속되어 발령되었는지 알 리가 없으므로 그쪽으로 보낸 모양이다.

“배달원은 누구였습니까? 일반 우편 배달원이었습니까?”

본부장님이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CCTV를 돌려보니 종로5가 우체국 소속 집배원이었다. 신원 확실하고 근속 10년 차 직원이라 사건과 관계는 없어 보인다.”

“발신지는 어디였습니까?”

“서울 소공동이다. 추적 결과 소공동 백화점 앞 우체통에서 수거된 우편물로 파악됐다.”

관우는 급히 노트북을 열어, 백화점 앞 CCTV를 검색한다.

“우체통, 우체통…… 오! CCTV로 추적 가능하겠네요.”

오진규가 관우 등을 밀며 말했다.

“넌 어서 가서 추적해.”

“예.”

관우는 사무실로 가려다 그래도 편지 내용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노트북을 들고 제일 구석 자리로 간다.

목 과장님이 핀셋으로 우표를 조심스럽게 뗀 후 약물 처리를 하고 말했다.

“우표에서 지문이 나왔다. 장진수 지문이 확실해.”

버젓이 지문이 나왔다. 자신을 숨길 생각이 없다는 뜻이며 편지까지 보냈다는 건 숨을 생각도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잡혀줄 생각도 아닐 것이다.

나는 목 과장님이 앉은 자리로 가 물었다.

“조사 끝났습니까?”

목 과장님이 고글을 벗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교도소 입소 시 자필로 썼던 서약서의 필체와 비교 분석 결과, 장진수의 필적이 맞다. 우편물 속에 미세 증거는 채취 종료했으니 가져가서 확인해.”

목 과장님이 장갑을 건네준다. 나는 장갑을 끼고 편지지를 잡았다. 편지지의 색깔은 하늘색. 보통의 문구점에서 판매되는 일반 편지지이지만, 수십을 살해한 살인마가 쓴 편지지치고는 유치한 색이다.

나는 편지의 내용을 읽으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던 연주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기다리다 내가 편지지를 내리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손을 내민다.

“과장님, 저도!”

오진규도 동시에 달려와 손을 내밀고 있다. 연주는 내 손에서 편지를 잽싸게 빼앗은 후 오진규를 힐끔 본다.

“제가 읽어드릴게요, 선배님.”

“음.”

연주는 눈으로 편지를 한 번 읽은 후 애매한 표정으로 짧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현도경 형사에게.

오랜만입니다, 날 아직 기억하나요?

나는 한 번도 당신을 잊어본 적 없습니다.

가끔 감옥에 새로운 녀석들이 올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놈들 중에 당신이 잡아넣은 놈도 있을까? 매주 수십 명씩 들어오는 놈들을 볼 때면

저런 놈들 상대하던 당신이 혹시 날 잊은 건 아닐까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하는데 당신만 나를 잊는 건 불공평하니까.

오진규가 혀를 찬다.

“미친놈이 연애편지를 쓰고 자빠졌네.”

연주가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그거 알아요?

당신과의 게임은 리셋되었다는 것.

다음 게임에서 나는 절대적 우의를 가져갈 겁니다.

그러니 당신에게는 매우 불리한 게임이 되겠죠.

나는 비겁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페널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힌트를 줄 겁니다.

다음 편지를 기다리세요.

당신의 게임 파트너로부터.

연주가 황당한 표정으로 편지를 내리자 장영훈 본부장님이 물었다.

“저기 저 미친놈이 게임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도대체 뭐야? 너 살인자와 게임한 적 있어?”

장진수 검거 후, 진술을 지켜보았던 연주와 관우는 이 게임이 무엇인지 알지만 나머지는 모른다.

나는 장진수와 당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당시 장진수는 단양의 부모님 집 정원의 장독대 밑, 비밀공간에서 부모의 시신이 나와 긴급 체포된 상황이었고, 나는 놈이 부모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살해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은 좀 달라 보입니다.’

‘호? 어째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걸 발견했으니까. 적어도 그들과 같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보이는구나. 기분은 좋네. 그럼 네가 인정하는 나와 내기 하나 할래?’

‘내기?’

‘그래, 내기 좋아하냐?’

‘별로 안 해봤는데. 도박은 별로 안 좋아해서.’

‘후후, 도박까진 아니고. 돈 거는 것도 아닌데 뭘.’

‘들어나 봅시다.’

‘방금 네가 네 입으로 말했듯이 나는 네가 보아왔던 경찰들과 다르다.’

‘그래서요?’

‘내가 네 아지트를 찾아낼 거야.’

‘그런 게 과연 있을까요?’

‘있어, 난 알아.’

‘그래서 어쩌라는 말입니까?’

‘방금 말했잖아, 나랑 내기하자고.’

‘무슨 내기이냐고 물었습니다만.’

‘내가 아지트를 찾으면 너는 범행 일체에 대해 자백하기로 하는 거 어때?’

‘……’

‘뭐 싫으면 말고. 어차피 아지트 찾으면 끝나.’

‘뭐, 그걸 발견했다고 네 죄라는 게 밝혀지는 건 아니지. 하지만 그 작품들은 다 사라지고, 그건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남긴 시신으로 발표되겠지. 어때? 할 건가?’

‘…….’

‘싫으면 말아. 나야 뭐, 살인범 한 명 잡는 거보다 두 명이 되는 쪽이 진급에도 좋으니.’

‘조건이 있습니다.’

‘뭐?’

‘당신이 그걸 찾아낸다면.’

‘낸다면?’

‘당신 말처럼 모든 걸 말하죠, 대신 당신은 이 모든 일이 나로 인해 일어났다는 증언을 해야 합니다.’

‘딜.’

‘행운을 빌죠.’

나는 본부장님, 목 과장님, 오진규를 위해 그때 놈과 했던 내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오진규가 얼굴을 구기며 편지지를 노려본다.

“개새끼가 지금 또 같이 놀아달라는 거야?”

장영훈 본부장님이 굳을 얼굴로 손을 든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본부장님이 편지지를 들어 우리 쪽으로 보여주며 말했다.

“이놈이 또 게임을 시작하자는 말을 했다. 게다가 불공정한 게임이므로 힌트를 제시해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 말은 이놈이 또 뭔가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뜻이다. 자신을 뒤쫓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는 말이기도 하고. 이놈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무엇이겠냐?”

장진수는 무려 열셋을 살해한 연쇄살인마다. 그런 그가 저지를 범죄가 무엇이겠는가? 살인을 한번 맛본 놈은 절대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놈은 또 살인을 저지를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입을 다물자, 본부장님이 말했다.

“빨리 잡아야 된다. 탈옥수가 나가서 사람 죽이면 부산교도소장 모가지로는 어림도 없어. 어쩌면 강혁 청장님께도 영향이 갈 수 있다.”

제길, 아저씨 임기 몇 달 남았다고. 안 돼, 아저씨가 불명예 퇴직 하게 할 순 없다.

그때 관우가 손을 번쩍 든다.

“여기! 놈의 모습이 잡혔습니다!”

우리는 우르르 관우가 있는 자리로 몰려갔다. 멈춘 화면 속에 검은 점퍼에 검은 모자, 마스크를 쓴 인물이 우체통에 파란 편지를 넣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오진규가 화면을 자기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이 새끼 옷 또 갈아입었네. 이번엔 신발도 바꿔 신었습니다.”

연주가 화면을 자세히 보며 말했다.

“일반인들은 교도소 신발까지는 잘 모르지만 불심검문하는 경찰들은 알 수 있으니까 바꿔 신었겠죠. 부산에서는 그럴 경황이 없었지만.”

장영훈 본부장님이 물었다.

“이놈 이거 도주 자금 수급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오진규가 지금까지 수사했던 내용을 보고하자, 본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계좌는 거래 중지시켰고?”

“예, 그렇습니다.”

“그럼 이 새끼가 곧 돈이 떨어질 거라 이 말이지.”

돈이 떨어진 범죄자. 그가 무엇을 할지는 매우 자명하다. 절도, 혹은 강도일 거다. 최악의 경우 살인을 하고 그의 소지품에서 현금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갈 수도 있다.

나는 연주에게 지시를 내렸다.

“연주는 경찰청 데이터 베이스 접속해서, 서울 시내 강, 절도 사건 실시간으로 확인해. 사건 접수되면 관우와 연계해서 CCTV 확보하고 범인과 장진수 신체 특징 비교해서 보고해.”

“네, 과장님.”

나는 오진규를 보며 물었다.

“장진수를 서울에 데려다준 택시 기사 찾아냈습니까?”

“예, 연락 닿았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있는 사람이라.”

본부장님이 끼어든다.

“왕복 택시 대절 수사 비용으로 인정해 줄 테니까 서울로 불러. 돈 준다면 올 거다.”

“예, 그럼 간단히 해결되죠. 바로 부르겠습니다.”

내 눈에 구석 자리에서 목 과장님이 검지를 슬며시 드는 것이 보인다.

“할 말 있으십니까, 과장님.”

목 과장님이 아까 편지지를 조사할 때 옆에 두었던 빈 봉투를 든다.

“여기. 안 보이지? 자세히 보면 편지지 겉면에 미세 먼지가 있었다. 난 이걸 좀 조사해 보마.”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미세먼지. 저기서 뭘 알아낼 수 있을까?

“특이 사항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까?”

“음, 미세 먼지에 색깔이 있었다. 황색이었고, 푸른색 편지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먼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석해 보면 이 편지를 썼을 때의 주변 환경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좋습니다, 분석 완료되면 바로 전화 주세요.”

“그래.”

나는 팀원들을 보며 손뼉을 쳤다.

“자,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강혁 청장님께 술 한잔 안 얻어 먹어본 사람 없을 겁니다. 이제 임기 종료까지 고작 두 달쯤 남은 분을 불명예 해임 되게 하고 싶진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팀원들 모두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와 강혁 아저씨가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들 나름 아저씨께 따로 신세 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진규는 납치 사건 수사 중 아이가 사망한 일로 인해 낙담하고 있을 때 아저씨가 위로가 되어주었고, 다시 국가수사본부로 불러들인 것도 아저씨다. 관우와 연주는 경위 진급 시 큰 신세를 진 바 있다.

모두가 이를 앙다물고 날 바라본다.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장진수를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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