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48화 (247/328)

살인의 기억 248화

18. Jailbreak(탈옥)(12)

새벽 한 시.

팀원들에게 각자의 일을 맡긴 후, 나는 편지가 배송된 종로경찰서로 왔다.

외과의사가 만삭 부인을 살해한 사건 이후 처음 오는 곳. 새벽이지만 아직 남아 일하는 형사들이 몇 보인다.

강력 3반의 자리를 보니, 팀장 자리에 앉아 발톱을 깎고 있는 최영현의 모습이 보인다.

최영현은 새벽이라 비교적 한산한 사무실 복도에 키가 큰 그림자가 나타나자 힐끔 보았다가 그것이 나라는 걸 알고 얼른 일어나 달려온다.

“과장님 오셨습니까!”

최영현이 반가운 얼굴로 말한다.

“이리 들어오세요. 저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예, 고맙습니다.”

최영현은 구석에서 문서 작업을 하고 있는 말단 형사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 후 돌아와 자기 자리에 앉는다.

“편지 때문에 오셨죠?”

“예, 몇 시쯤 온 겁니까?”

“음, 오후 네 시쯤 왔습니다. 저희도 담당하고 있는 사건 때문에 전부 외근 나갔었는데 돌아와 보니 막내 책상 위에 있었습니다. 과장님 성함이 적혀 있는 걸 보고 제게 가져왔고요. 장진수 이름을 보고 급히 CCTV 돌려봤는데 집배원이 네 시에 놓고 나가더군요. 얼굴도 안 가렸습니다. 모자는 쓰고 있었는데 경찰서 내부에서 모자를 푹 눌러 쓰진 않았죠. 얼굴 확인하고 우체국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니 아직도 일하고 있었습니다. 신상은 다 확보해 뒀지만 의심할 바는 없고요.”

“음…….”

“기타 확인해야 될 사항은 모두 확인해서 본부장님께 보냈고요.”

“이야기 들었습니다, 꼼꼼하게 처리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신세 진 것도 있는데 뭘.”

최영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지난번 외과의사 만삭 부인 살인사건만 해도 중간에 우연히 과장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그대로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하는 토론토대학 교수에게 말려 흐지부지 끝났을 겁니다. 그랬다면 전 징계를 면치 못했겠죠. 짐승도 아니고 사람 새끼가 은혜를 입었으면 갚는 게 인지상정이죠.”

“아닙니다, 고생은 여기 팀원들이 다 한 건데요, 뭘.”

“하하, 겸손하시기는. 하긴 그러니 공도 다 저희에게 미뤄주셨을 테죠.”

최영현은 미소를 짓다 다시 표정을 굳혔다.

“장진수가 탈옥했다……. 이 새끼 이거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요?”

“…….”

최영현이 시간을 확인한 뒤 말했다.

“기억하십니까? 그때도 딱 이 시간쯤이었습니다.”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 그래, 내가 종로경찰서에 배속받고 처음 조폭 사건에 투입되어 한몫을 했다고 인정받은 그날의 회식 자리.

나는 최영현과 함께 경찰서 근처 삼겹살집에서 회식을 하다 우연히 입에 피를 묻히고 돌아다니던 개를 발견하고 시신이 있는 집을 뒤졌다.

그때도 최영현과 함께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최영현이 심각한 얼굴로 턱을 만지며 말했다.

“그때 본 시신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형사 생활하다 본 시신 중에 제일 충격적인 시신이었으니까.”

“후.”

나는 문득 그때의 수사가 생각났다. 장진수가 살던 집은 피해자의 옆집이었다. 집주인이 사는 집은 1층. 장진수는 2층에 세 들어 살았었다.

“혹시 장진수가 살던 집 말입니다. 지금은 계약 종료되었을 테니 다른 사람이 살겠죠?”

“음, 글쎄요.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

가보고 싶지만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다. 아무리 수사 때문이라고 하지만 새벽 한 시가 넘어 남의 집 벨을 누르는 건 명백한 실례다.

하지만 워낙 잡을 지푸라기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밖에서 동태라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장진수에게서 편지가 또 올 겁니다. 그때도 바로 전달 부탁드립니다.”

“예? 또 와요?”

나는 최영현에게 대략적인 편지 내용을 알려주었다. 인사를 하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다 내 말을 들은 그가 놀라며 물었다.

“게임을 하자고 했다고요?”

최영현이 눈을 뒤룩거린다. 예전에 내가 진행했던 취조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이 사람도 취조 시에 모니터링실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잘 알 것이다.

“예, 게임의 조건이 리셋되었다는 뜻은 나와 했던 게임에서 패배해 받았던 페널티가 무효화되었다는 뜻이겠죠. 그러니 다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자는 뜻일 테고.”

최영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또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겁니까?”

“아마도.”

“그런…… 자, 잠깐. 그 새끼는 무려 11년이나 시신을 들키지 않은 놈 아닙니까? 어딘가 꽁꽁 숨어 살인을 저지른다면 검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겁니까?”

“후, 그렇게 되지 않게 만들어야죠.”

“하…… 일단 알겠습니다. 편지가 오면 제가 직접 청으로 들고 가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벌써 가시게요? 술이라도 한잔하고 가시지. 요 앞 해장국집이 24시간인데.”

“다음에 하죠.”

느긋하게 술 마시고 있을 마음이 아니다. 살인마의 탈옥으로 일반 시민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도 문제이고, 내게 제일 소중한 사람인 강혁 아저씨의 불명예 해임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하다.

나는 최영현과 헤어져 주차장으로 가다 걸음을 멈췄다.

그때 회식 장소는 경찰서 뒷골목 삼겹살집.

골목길에 있어 차를 가져가기 어려운 곳이다. 게다가 여기서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잠깐 들러볼까?”

아무것도 건질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형사의 마음이란 게 그렇다. 혹시 만약 장진수가 이 시각에 그곳을 서성거리고 있으면 어쩌지? 내가 귀찮다고 몇 걸음 덜 걸었다가 범인을 놓치면 난 얼마나 후회를 할까?

나는 별 기대 없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싶어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나는 경찰서 뒷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상가 밀집 지역을 지나 주택가에 접어들자, 노란 불빛들이 골목길 사이사이를 비추고 있다.

이제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골목길을 누비며 예전 생각을 하다 어느새 도착한 삼겹살집. 아직도 영업 중인지 불이 켜져 있다.

은색 알루미늄 문은 예전과 그대로다. 계단 세 개 위에 있는 문. 회식 중에 화장실을 다녀와 잠시 바람을 쐬려 이 계단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처럼 계단에 털썩 앉아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때, 알루미늄 문을 열고 나오던 중년의 손님이 나를 본다.

“어이쿠, 깜짝이야.”

“아, 죄송합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

“아, 그냥 바람 좀 쐬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나도 삼겹살집의 손님인 줄 알았는지 묻는다.

“저기 혹시 화장실 어디인지 알아요?”

예전에도 이랬는데. 그때도 내가 여기 앉아 있을 때 안에 있던 최영현이 나오다 화장실 위치를 물었었다.

“오른쪽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아, 예. 고마워요.”

나는 화장실로 가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보았다.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는 뒷모습. 그때도 화장실 가는 최영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바람을 쐬고 싶어 후미진 골목길을 걸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그때처럼 길을 걸으며 주택들을 바라보았다.

몇 걸음 걷지 않고 멈춘 나는 왼쪽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닿는 가장 끝에 있는 아주 작은 골목길의 끝 집. 초록색 대문의 그때 그 집이 보인다.

반쯤 열려 있는 문에서 입에 피가 묻은 칠구 녀석이 나왔었다. 지금은 집 문이 닫혀 있고 불이 모두 꺼져 있다.

2년 전 사건이니 지금은 제주도 산다던 딸이 올라와 집을 정리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아직 비어 있을 수도 있겠지.

나는 천천히 걸어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피해자 집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왼쪽의 집이 눈에 들어온다.

저 집 2층에 장진수가 살고 있었다. 나는 장진수의 방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뚜벅뚜벅 걸어가 집 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이 새끼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마른세수를 하느라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민에 빠졌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저기.”

갑자기 바로 옆에서 들리는 여자 목소리에 나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헉!”

새벽에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리니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벌떡 일어나 몇 걸음을 물러나자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상대가 더 놀라 물러난다.

귀신이 아니라는 걸 안 나는 급히 사과를 했다.

“아, 미안해요.”

상대는 여고생으로 보인다. 책가방을 메고 교복을 입고 있다. 지금이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인데 이제 오는 걸 보니 고학년인가 보다.

아이가 많이 놀랐을 거라고 생각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도중, 놀라 물러났던 아이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한다.

“형사 아저씨?”

응? 나 알아? 다시 아이 얼굴을 보니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다. 누구더라? 여고생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맞죠? 그때 그 형사 아저씨!”

“누구……?”

“에? 저 기억 안 나요? 아저씨 우리 집에 왔었는데. 우리 집 2층 살던 살인범! 뉴스에 떠들썩하게 나왔던 살인범 잡은 형사 아저씨 아니세요?”

헐, 너 설마 그때 그 여중생이냐? 총 사진 찍어서 SNS 올리겠다던 그 철없던 중학생?

“너…….”

“기억나죠? 와, 진짜 오랜만이다. 그렇죠?”

“어, 그건 그런데. 너 이 시간까지 뭐 하다 오는 거야?”

아이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삶이 다 이렇죠 뭐. 대학은 가야 되니까. 이씨, 대학은 누구 좋으라고 가나 몰라.”

“매일 이 시간에 오는 거야?”

“월, 수, 금만 이렇게 늦어요.”

“다른 날은?”

“12시쯤 와요.”

12시는 이른 시간이냐? 아무리 그래도 여고생 혼자 이 밤길을 걷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집을 힐끔 보며 물었다.

“아직 여기 살아?”

여고생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다.

“네, 네. 학교 애들도 맨날 물어봐요. 너희 집에 살인마 살았다며? 아직 그 집에 살아? 소름 끼쳐서 어떻게 살아? 하고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부모님 재산이라곤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이 집이 유일한데. 낡아서 팔리지도 않고.”

음, 워낙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때렸으니 학교에도 소문이 났을 거다. 이 아이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는 친구들이 소문을 퍼뜨렸을 것이고 아이는 죄도 없이 친구들의 관심을 받았겠지. 이 아이도 피해자이구나.

“매일 혼자 다니니?”

“아뇨, 엄마가 나와요.”

“오늘은 왜 안 나오시고?”

“엄빠 지금 시골 내려갔어요. 큰아빠가 아파서. 오늘만 저 혼자 있어요.”

“음, 그렇구나. 안 무서워?”

“뭐, 조금? 근데 하도 피곤해서 샤워하면 바로 기절하니까 상관없어요.”

나는 슬쩍 2층을 보았다. 저 집에 살인자가 살았는데 집에 혼자 있을 수 있어? 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그건 실례인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내 표정에서 질문을 읽은 모양이다. 입술을 삐죽거린 아이가 땅을 차며 말했다.

“다른 세입자가 들어왔으면 좀 좋았을 텐데. 음, 아닌가? 괜히 이상한 놈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에 더 불안해졌을 수도 있고.”

음, 이 집에 완전히 혼자 있는 모양이구나. 음?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지?

“다른 세입자가 안 들어왔다고?”

여고생이 신발로 땅을 후벼 파다 고개를 든다.

“누가 여길 들어와요? 재수 없다고 안 오지. 동네에 소문 다 났는데. 바로 옆에 할아버지 죽은 집도 2년 전부터 내놨는데 아직도 집 안 나가요. 계속 빈집으로 두고 있고.”

장진수의 집과, 그가 살인을 했던 집이 모두 비어 있다? 나는 가만히 집을 바라보다 아이에게 말했다.

“밤중에 미안하지만 잠깐 집 좀 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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