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51화
18. Jailbreak(탈옥)(15)
직업이 택시 기사다 보니 각종 사건 사고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아 경찰서 출입이 잦았던 기사는 비교적 여유로운 얼굴로 찾아왔다가 일반 경찰서도 아닌,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명판을 보고는 지금까지의 간단한 시시비비와 차원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잔뜩 얼어 있다.
노트북을 들고 취조실 문을 열자,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기사가 엉거주춤 일어난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권했다.
“아, 참고인 자격으로 오신 것이니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앉으세요.”
“아, 예…….”
사실 수사 절차대로 말하자면 참고인이 아니다. 이 사람은 야밤에 탈옥한 죄수를 서울까지 태워준 기사다. 어쩌면 공범일 수도, 조력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련한 오진규는 미리 택시 기사의 신상을 캐내 탈옥한 장진수와 전혀 무관한 사람임을 밝혀냈다. 지연, 학연, 혈연. 어느 것도 연결점이 없는 사람이라 참고인 대우를 하는 것이다.
나는 노트북으로 CCTV 영상을 찾아, 국도변에서 택시를 잡아타는 장진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인 택시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지금 탄 사람을 서울에 내려준 것도 맞고요?”
“예.”
“결제는 어떻게 했습니까?”
“현금이었습니다.”
“얼마 받으셨습니까?”
“처음부터 5만 원 여섯 장을 흔들면서 탔습니다. 삼십 줄 테니까 서울까지 가자고.”
“미터기 안 꺾고 가신 겁니까?”
“예…….”
택시가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을 태우는 것은 불법이다. 택시 기사는 그 점이 켕겼지만 무려 국가수사본부에 끌려와 취조를 당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건 자신에게 더 불리하다 생각했는지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이실직고를 한다.
“그게, 형사님. 사실 이 법이란 게 말입니다. 만드는 사람들이 편하자고 만들어놓은 겁니다. 야밤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면 돌아올 때 백 퍼센트 빈 차로 돌아옵니다. 야간 운전에, 장거리까지 가는데 미터 요금만 받으면 어느 미친 기사 놈이 가겠어요? 게다가 불법 운행으로 부당 요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손님이 먼저 제안한 금액을 받은 겁니다. 흥정도 안 했어요, 정말입니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지금 그것 때문에 불려 오신 게 아닙니다. 그건 그냥 넘어가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택시 기사는 한시름 놓은 얼굴이 된다. 아무래도 그 부분이 걸렸던 모양이다. 나는 그를 안심시킨 후 본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손님은 어디에서 내렸습니까?”
“예, 종로경찰서 앞에서 내렸습니다.”
“…….”
탈옥한 죄수가 서울 종로경찰서 입구에서 내렸다. 나중에 언론이 알면 또 얼마나 부풀려서 조롱거리로 만들까? 택시 기사가 말을 잇는다.
“솔직히 야밤에 부산에서 택시 탄 사람이 서울까지 가자고 해서 좀 의심했는데 행선지가 경찰서인데 뭘 더 의심하겠습니까? 도주한 범죄자가 경찰서 앞에서 내릴 리가 없잖아요.”
장진수가 경찰서 앞에서 내린 이유는 당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경찰서 뒤 삼겹살집 근처가 자신이 살던 집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내린 것이다.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음, 직업이 직업인지라 손님에게 이런저런 말을 많이 거는 편입니다. 뭐 하시는 분이냐, 서울에는 무슨 일로 이 밤에 올라가시냐, 뭐 이런 질문을 했었죠.”
“뭐라고 답했습니까?”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간다고 했는데요.”
두고 온 물건. 장진수가 살던 여고생의 집 2층에서 무언가 가져간 그것. 그걸 가지러 서울까지 간 것이다.
“또 다른 말은 안 했습니까?”
택시 기사가 관자놀이를 긁으며 말했다.
“말 거는 게 싫은 눈치였습니다. 제가 기사 생활 20년이 넘었는데 딱 보면 알거든요. 너무 많이 말을 걸면 싫어할 손님인지, 노가리 까면서 재미있게 갈 수 있는 손님인지 보면 알아요. 그 손님은 전자였죠. 그래서 음악을 틀었습니다.”
“끝입니까?”
“아, 제가 트로트를 좋아해서 자주 트는데 손님들 중에 젊은 사람들은 그런 음악을 싫어해서 튼 후에 소리를 줄이고 물었습니다. 노래 좀 틀어도 되냐고.”
“네, 그런데요?”
택시 기사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디오를 틀어달라고 하더군요.”
그게 뭐? 이상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잠시 뭐가 이상한지 생각하다 문득 시간을 떠올렸다.
“새벽 네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말입니까?”
“그러게요. 그 시간에 하는 라디오 방송은 없죠.”
“그래서 못 트신 겁니까?”
“일단은 손님이 해달라는데 틀어는 봐야죠. 틀어보고 안 나오는 걸 알아야 포기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계속 말씀하세요.”
“어떤 방송 듣고 싶냐 물었더니 특이한 말을 했습니다.”
“무슨 말이요?”
“보통은 라디오 방송 이름이나, 방송국 이름을 말하는데 그 손님은 주파수를 말하더군요.”
“어떤 주파수였죠?”
“FM 105.3㎒를 틀어달라고 했습니다.”
“틀어줬더니 방송이 종료된 겁니까?”
택시 기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택시 일 하다 보면 라디오 방송은 신물 나게 듣습니다. 그런데 FM 105.3㎒에는 방송이 없어요.”
응? 없는 주파수의 방송을 틀어달라고 했다?
나는 노트북을 가져와 주파수를 검색했다. 그리고 곧 장진수가 왜 그 주파수를 이야기했는지 눈치챘다. 해당 주파수는 서울의 주파수였던 것이다. 부산에서 동일 방송을 들으려면 FM 101.1㎒에 맞춰야 한다.
“천주교 평화방송…….”
어긋난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살인자. 그는 수감 생활 중에서도 자신의 삐뚤어진 종교관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잠시 주파수를 빤히 보다 물었다.
“서울에 몇 시에 도착했습니까?”
“음, 밤 시간이라 오래 안 걸렸습니다. 경찰 앞에서 이런 말 하면 좀 뭐하지만 수사하시는 데 괜히 혼선 드리고 싶지 않으니 이실직고하죠. 딱 세 시간 이십 분 걸렸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세 시간 이십 분. 꽤 과속을 한 모양이다. 하긴 새벽 시간에 차도 없으니 당연히 밟았겠지.
장진수가 택시에 탄 건 새벽 네 시경. 세 시간 이십 분 뒤면 아침 일곱 시가 조금 지날 무렵이다. 그리고 그날 밤 장진수는 자신이 살던 집을 찾아가 뭔가를 가져갔다.
택시 기사가 말을 잇는다.
“그 손님은 원래 거기 살던 사람 같았습니다. 서울 지리를 잘 알더군요. 제가 길을 잘못 들 뻔했는데 나서서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의심 안 했죠.”
“음.”
택시 기사에게 알아낼 수 있었던 건 장진수가 애초부터 자신의 물건을 가지러 이동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건 매우 중요한 단서이다. 그가 탈옥 직후 가서 찾아내야 했던 무언가. 그것이 수사의 단초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나는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왕복 택시비는 국가에서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좌번호를 주시겠습니까?”
“아이고, 나랏일 하시는 분들에게 돈 받기가 이거 참.”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른 계좌번호를 써서 내미는 기사님. 그는 민망한 웃음을 짓다가 말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그 손님이 한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뭡니까?”
“조수석에 제 아들놈 어린 시절 사진이 있었거든요. 그걸 빤히 보더니 아들이냐고 묻더군요.”
“그래서요?”
“아들이라고 했죠. 사실 그게 20년 전에 찍은 사진인데 아들놈이 하도 귀엽게 나온 사진이라 택시 처음 시작할 때부터 거기 둔 사진이거든요. 지금은 장성해서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 중이지만 여전히 제 눈에는 그때 그 꼬마 녀석으로 보이죠.”
“그뿐입니까?”
“음, 아들에게 잘해주냐 물었습니다.”
아들에게 잘해주냐고? 나는 문득 장진수가 취조 중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란 새끼는 의부였습니다. 진짜 아버지는 얼굴도 본 적 없습니다. 그 새끼는 매일 저를 때렸고, 감금했습니다. 꼭 엄마가 보지 않을 때만 그랬죠. 일을 다녀온 엄마에게 그 새끼가 자꾸 절 때린다고 일렀지만 엄마는 오히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싫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면 못쓴다고 했습니다.’
택시 기사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그 손님. 범죄자 맞죠? 경찰이 이렇게 쫓는 걸 보면 맞는 것 같은데. 그때 그래서 그랬나?”
“뭐가 말입니까?”
기사가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게. 서울 올라갈 때까지 뒷좌석에 그냥 앉아 있던 사람이 사진을 보며 질문을 할 때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얼굴을 쭉 내밀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려고 그런 것 아닙니까?”
“아뇨, 질문을 한 뒤가 문제죠. 잘해주냐고 묻고 난 뒤에 제 얼굴에 바싹 자기 얼굴을 들이밀고 절 노려보더군요.”
“…….”
“순간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죠. 그러다 아, 혹시 어린 시절에 뭔 상처 같은 게 있나 보다 해서 얼른 제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천천히 뒷좌석으로 물러나더군요.”
장진수는 부모에게 상처가 있다. 자신을 매일 때리던 의부와 그것을 알고도 모른 척하던 친모. 만약 이 기사님이 거기서 아들 욕을 했다면 어땠을까? 희대의 살인마인 장진수는 이 기사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장진수가 탈옥 후에 할 짓과 연관이 되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이건 억측으로 보인다. 장진수는 이미 부모를 죽였다. 복수를 할 대상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친척들이 남아 있지만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고 했었다.
이제 와 그때의 상처를 다시 들추어 복수할 대상을 억지로 만들 놈은 아니다. 오히려 살인의 희열이 주는 쾌락이 그리워 탈옥을 했다면 그쪽이 더 신빙성 있겠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몇 가지 더 질문을 한 뒤 보냈다.
잠시 홀로 취조실에 앉아 장진수에 대해 생각하던 중, 취조실 문이 열리며 오진규가 눈짓한다.
“과장님. 연주가 장진수 집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아, 예. KCSI에 요청한 수사 시의 사진은 왔습니까?”
“예, 좀 전에 행랑으로 왔는데 이백 장이 좀 넘네요. 지금 관우와 연주가 대조 분석 중입니다.”
“가보죠.”
“예.”
노트북을 챙겨 사무실로 돌아가니 한쪽 벽면 가득 사진들이 붙어 있다. 오진규가 사진을 붙이고 있는 연주와 관우를 보며 한숨을 쉰다.
“하, 사진이 많으니 그렇게 대조해야 되는구나.”
관우가 같은 각도에서 찍혔거나, 비슷한 구조물이 보이는 사진들을 한데 모아 붙이며 말했다.
“이게 제일 빠릅니다.”
이런 분야에서 관우를 따를 수 있는 이는 없다. 내가 윗사람이긴 해도 이럴 땐 녀석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좋다.
오진규와 나까지 거들자 금방 사진들이 벽면을 채운다. 관우는 연주가 찍어온 사진 중 벽에 붙은 사진과 같은 물건들이 보이는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바로 옆에 붙이며 말했다.
“자자, 어릴 때 숨은 그림 찾기 많이들 해보셨죠? 이렇게 붙여주세요.”
다시 나와 오진규, 연주가 동원되어 사진들을 분류해 붙인다. 벽면에 총 사백 장에 가까운 사진들이 붙어 있는 장관을 연출한 관우는 멀찍하게 떨어져 사진들을 바라보다 팔짱을 끼고 말했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
오진규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하, 이걸 어느 세월에 찾고 앉았냐. 차라리 순경들 지원이라도 좀 불러서 전수 검사를…….”
그때 연주가 오진규를 툭 친 후 검지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오진규가 뭔가 싶어 연주를 보자, 연주가 관우를 눈짓한다. 다시 오진규가 관우를 보자 무섭게 집중하고 있는 녀석의 눈빛이 보인다.
오진규가 입맛을 다시며 커피나 한잔 타려고 돌아서는 그 순간.
관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Bingo, I Got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