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52화 (251/328)

살인의 기억 252화

18. Jailbreak(탈옥)(16)

관우의 말에 우리 셋 모두 놀란 얼굴이 되었다. 붙인 사진이 무려 사백 장이다. 관우가 멀찍하게 떨어져 사진을 노려본 건 불과 오 분가량. 벌써 찾아냈다고?

오진규가 황당한 눈으로 말했다.

“야, 넌 뭐 신화에 나오는 눈 백 개 달린 아르고스라도 되냐? 얼마나 봤다고 벌써 찾았어?”

관우가 씩 웃으며 책상 위로 올라가 양반 다리를 한다.

“잠깐만요. 일단 찾은 건 하나인데 더 있을지도 몰라서.”

관우는 책상 위에 앉은 채로 뚫어지게 사진들을 바라본다. 이미 하나를 찾아낸 관우였기에 우리는 찍소리도 하지 않고 물러나 있다.

관우는 고개를 휙휙 돌리며 사진들을 관찰하다 책상에서 뛰어내렸다. 벽으로 간 관우가 사진 몇 장을 떼어내 내민다.

“자, 여기요 과장님.”

관우가 준 사진. 그건 총 네 장의 사진이다. 두 장은 책장을 찍은 사진이고, 두 장은 책상을 찍은 사진이다. 언뜻 변화가 없어 보이는 사진. 하지만 관우 녀석이 골라낸 사진이다. 뭔가 있다.

나는 먼저 책장 사진 두 장을 비교하다 다른 점을 발견했다.

“성경책?”

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가리킨다.

“KCSI가 제공한 사진에 책장 왼쪽 여섯 번째에 있던 갈색 가죽 성경책. 그게 없어졌습니다.”

대단한 새끼. 책장에 꽂힌 책이 수백 권인데 거기서 성경책 한 권이 사라진 걸 찾아내다니.

나는 다음으로 책상 사진 두 장을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어디가 다른지 모르겠다. 한참을 봐도 전혀 알 수 없는 변화.

답답한 표정을 짓던 오진규가 사진을 가져가 보더니 인상을 쓴다.

“뭐야, 이건 전혀 변화가 없는데?”

관우가 사진을 눈짓하며 말했다.

“책상 우편에 볼펜 통 보세요.”

오진규가 다시 사진을 뚫어지게 보다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든다.

“설마 볼펜 하나 없어진 걸 찾아낸 거냐?”

헐, 볼펜 통에 꽂힌 펜이 적어도 서른 개는 넘어 보이는데. 그중에 하나가 없어진 걸 찾았다고? 관우 눈엔 정말 컴퓨터라도 내장되어 있는 건가?

연주가 황당해하는 오진규 손에서 사진을 빼앗아 간 뒤 고개를 끄덕인다.

“음, 맞네. 하얀색 몸체에 검은 끝의 보통 플라스틱 볼펜 하나가 없어졌구나.”

연주는 관우 능력을 가장 잘 아는 아이라 놀랍지도 않은 모양이다. 역시 이 분야는 관우가 최고다.

나는 관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했다.

“좋아, 볼펜은 그렇다 치고, 일단 성경책이 사라졌다는 건 중요한 단서이다. 장진수는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갈 때도 가톨릭 라디오 방송을 틀어달라고 했다. 서울에 올라와 자기 방에 있는 성경책부터 챙긴 건 이 새끼가 앞으로 할 일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는 중요한 단서다. 잘했다, 관우.”

“과찬의 말씀. 전 사진 좀 더 보겠습니다. 혹시 못 보고 지나친 게 있을 수도 있어서요.”

“그래, 부탁한다.”

나는 사진을 챙기고 있는 연주에게 물었다.

“강, 절도 사건 보고는?”

연주가 고개를 젓는다.

“두 건 보고 들어와서 확인했는데, 한 건은 이미 범인 검거했고, 한 건은 CCTV에 잡혔는데 장진수 신체 정보와 차이가 있습니다. 장진수로 볼 수 없어요.”

“그래, 장진수가 가진 돈은 50만 원이다. 그중 택시를 타기 위해 30만 원을 썼고, 이제 20만 원 남았다.”

오진규가 끼어 들었다.

“여인숙에서 잔다고 쳐도 하루 이만 원은 줘야 됩니다. 먹고, 자고, 싸는 데 드는 비용을 아무리 아껴도 하루 이만 오천 원은 쓰겠죠. 그럼 그 돈으로 버틸 수 있는 건 8일입니다.”

8일. 장진수가 탈옥한 지 3일이 지났다. 앞으로 최대 5일 뒤면 놈이 가진 돈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모자란 돈을 수급하기 위해 놈이 움직일 것이다. 그러다 증거를 흘릴 것이고 우리는 놈을 추적할 단서를 얻게 될 것이다.

“서울에 있는 모든 서에 장진수 수배 전단 뿌리고, 종로 인근의 여인숙에 형사들 파견하세요.”

“예, 과장님.”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수신자는 KCSI 목 과장님이다.

“예, 과장님.”

-어, 도경아. 편지지에서 검출된 황색 먼지에 대해 조사해 봤는데.

“예.”

황색 먼지. 사실 흙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편지를 쓴 장소가 야외였고, 황사 바람이 부는 서울 시내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산화칼슘(CaO)이 56%, CO2가 44% 검출됐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석회석.

“석……회석이요?”

단순한 먼지가 아니었다?

-혹시 몰라서 다시 검사를 돌렸더니 입경이 0.002㎜인 콜로이드(colloid)가 검출되었다. 먼지 색이 황색인 이유가 여기 있었다.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석회석 사이에서 점토 물질이 나왔다는 뜻이다.

석회석과 점토? 나는 문득 생각나는 말을 입에 담았다.

“시멘트?”

-그래, 시멘트 가공 원료다. 이 새끼가 편지를 쓴 장소가 시멘트를 사용하는 공사장 근처였거나, 혹은 이 새끼의 은신처가 공사장 근처나 시멘트 공장 근처일 수도 있다.

“시멘트 공사장은 오히려 확률이 낮습니다.”

-그래, 공사장 인근은 오히려 주변 시민들 건강을 고려해 미세 먼지를 차단하는 시설이 있을 테니까. 아마도 공사장일 가능성이 높아.

“공사장이라.”

-아지트일 경우라면 추적 범위를 좁힐 수 있겠지만, 만약 야외에서 쓴 편지라면 오히려 수사에 혼란이 올 수 있으니 잘 판단하고.

“알겠습니다, 과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추가로 진행된 건 없고?

나는 장진수가 살던 집에 놈이 왔다 갔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러자 뭔가 챙기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낸 과장님이 말했다.

-내가 놈의 집에 가보마. 혹시 뭐라도 나올지 모르니 팀원 다 끌고 간다.

“고맙습니다, 과장님.”

-뭔가 나오면 또 연락하마.

“예,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나는 생각에 잠겼다. 시멘트를 사용하는 공사장. 이건 힌트일까? 아니면 오히려 수사를 우회하게 만드는 맥거핀(MacGuffin)일까? 일단 단서가 될 만한 것일지도 모르니 염두에는 둬야 한다.

“오 선배님.”

자기 자리에서 수배 전단을 데이터베이스에 올리고 있던 오진규가 고개를 든다.

“예, 과장님.”

“관할서 형사들이 여인숙 수색할 때 주변에 공사장이 있는 곳이 있으면 우선 보고하라고 전해주세요.”

“공사장이요?”

“장진수가 보낸 편지지에서 시멘트를 구성하는 물질이 검출됐습니다. 혹시 몰라서요.”

오진규가 잠시 생각해 본 뒤 고개를 끄덕인다.

“주변에 공사장이 있는 여인숙 수색 시에는 꼭 팀 단위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시해 두겠습니다.”

오진규는 다시 데이터베이스로 눈을 돌렸다가 어느 순간 다시 고개를 든다.

“과장님.”

“예.”

“단양 경찰서에서 보고서가 들어왔습니다.”

“뭐랍니까?”

“단양에 있는 장진수의 본가에도 침입 흔적이 있답니다.”

본가에도 갔다? 서울에서는 성경책을 가져갔다. 본가에서는 뭘 가져갔을까?

“없어진 건 파악된 겁니까?”

“현재 사진으로 분석 대조 중인데 딱히 나온 건 없답니다. 혹시 몰라서 사진 파일 전부 보내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예, 관우에게 맡기죠.”

오진규는 아직도 책상 위에 앉아 턱을 괴고 사진을 보고 있는 관우를 힐끔 보고는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걸어 다니는 사진, 영상 분석기가 여기 있으니 일이 쉽네요. 거참, 신기한 놈이라니까.”

“침입 흔적은 어디에서 발견했다고 합니까?”

오진규는 다시 보고서를 읽어본 뒤 말했다.

“마당 아래 지하실? 뭔 집 구조가 이래?”

나는 오진규의 말을 듣자마자 굳었다. 마당에 있던 장독대. 그 아래에 있던 비밀 지하실. 그곳은 장진수가 자기 부모를 죽이고 전시했던 공간이다. 오진규는 이 사건에 대해 잘 모르기에 저리 말하는 것이다.

“지하실에 침입 흔적이 있다고요?”

“예. 아, 과장님이 이 사건 담당이셨으니 잘 아시겠네요.”

“무슨 흔적입니까?”

“어디 보자…… 여기 있네요. 밀봉해 두었던 지하실 입구 폴리스 라인 일부가 찢어져 있었답니다. 사진도 왔습니다.”

“봅시다.”

오진규의 자리로 가 사진을 보니 노란색 폴리스 라인 테이프의 오른쪽 아래 귀퉁이가 찢어져 있다. 딱 사람 한 명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갈 정도만 찢겨 있는데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대충 붙여놓은 태가 난다.

“사진 빨리 보내라고 해주세요.”

“예, 바로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관우야!”

관우가 사진을 뚫어지게 보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 번 더 수고해 줘.”

관우가 씩 웃으며 엄지를 든다.

“저 숨은그림찾기 좋아합니다, 맡겨두세요.”

연주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찬다.

“하여간 변태 오타쿠. 그런 게 뭐가 재미있다고. 눈만 아프구만.”

잠시 후, 오진규가 사진 파일을 전송하자, 관우는 자기 자리로 가 사진을 대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관우도 찾아내기 힘든 흔적인지, 혹은 아무것도 가지고 간 게 없는 것인지 한참 동안 소식이 없다.

두 시간이나 지나고 나자 실시간으로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의 강, 절도 사건 보고서를 확인 중이던 연주가 관우 자리로 가 물었다.

“네가 아직도 발견 못 했으면 변한 게 없는 거 아냐?”

관우가 양손으로 자기 눈에 망원경을 만들어 쓰며 화면을 뚫어지게 본다.

“아냐, 뭔가 이상해. 분명히 촉이 온다 이 말이지.”

“지랄, 야. 그만 봐. 이게 뭐가 재미있다고.”

“아냐, 아냐. 진짜 뭔가 이상해.”

“뭐가?”

“너도 볼래?”

KCSI가 조사 중일 때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 단양 경찰서 형사들 중 꽤 경력 있는 형사가 찍었는지 최대한 비슷한 각도에서 찍힌 두 장의 사진이 보인다.

가운데 덩그러니 책상이 있고, 바닥에 동그란 원통이 놓여 있던 녹물 자국이 있는 사진. 뒤에 있는 벽은 회색이고, 작은 백열등이 천장에 달려 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의 지하실이다. 책상과 함께 딸린 책장에 책이 있긴 하지만, 몇 권 되지 않아 육안으로 금세 식별이 가능하다.

연주가 턱을 괴고 사진을 바라보다 말했다.

“전혀 이상한 점 없는데.”

“아냐, 아냐. 이상해.”

“뭐가, 인마.”

“빛이 이상하지 않아? 사진 분위기가 달라졌어.”

“뭐야, 그게. 사진 찍은 시간이 다른가 보지.”

“음, 그런가?”

“책상을 봐. 그림자가 달라. 플래시를 켜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음.”

“벽도 봐. 여긴 실금 같은 거 보이는데. 여긴 안 보이잖아.”

“…….”

“응? 안 보여?”

“잠깐.”

“응?”

“실금! 그래! 이거야, 이게 이상한 거였어! 제기랄, 두 시간을 봤는데 한심하게! 네가 말 안 했으면 못 찾았겠네. 과장님!”

관우가 다급히 날 부른다. 나는 아까부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에 즉시 반응해 관우 자리로 달려왔다.

“뭐야?”

“여기 책상 뒤에 회색 벽 보세요.”

관우가 말하는 회색의 벽. 우리는 보통 달라진 점을 찾을 때 물건을 떠올린다. 그래서 항상 물건들의 위치를 비교하는 것에 정신이 팔린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 달라진 점은 책상 뒤의 회색 벽에 미세하게 나 있는 실금이다.

“이게 왜?”

“확대해 보겠습니다.”

관우가 마우스 휠을 움직여 사진을 확대하자, 파일이 깨진다. 관우가 프로그램을 돌려 복원하기 시작하자, 점점 선명해지는 벽.

나는 확대된 사진을 보며 관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깨달았다.

“실금이 사각형이다?”

“비밀 공간이 있었던 겁니다.”

비밀 공간. KCSI도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다. 연주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게 가능해? 여기 KCSI가 싹 털어간 곳이라고. 벽에 대놓고 비밀 공간이 있는데 발견 못 했다고?”

관우가 KCSI가 조사했을 당시의 사진을 보여준다.

“자, 여기 봐.”

다시 사진을 확대하는 관우. 연주는 사진을 자세히 바라보다 인상을 쓴다.

“뽀얀 먼지가 덮여 있었네. 적어도 몇 년은 건드리지 않은 것 같은데. 이래서 실금을 눈치 못 챈 거라고?”

“먼지 정도가 아니야. 이끼까지 덮여 있었어. 멀리서 봐서는 잘 모르겠고. 내려가 봐야 될 것 같다.”

관우가 날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관우가 단양으로 내려간다. 가서 비밀 공간에 대해 알아와.”

“예,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게임하다 비밀 퀘스트를 발견해 신이 난 매니아마냥 실실 웃으며 옷가지를 챙기는 관우. 녀석은 이쪽 일이 천생 직업인 모양이다.

“내가 간다, 장진수!”

오그라드는 대사를 외치며 뛰어나가는 관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연주와 오진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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