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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53화 (252/328)

살인의 기억 253화

18. Jailbreak(탈옥)(17)

관우를 단양에 내려보냈지만 여전히 수사는 막막하다. 장진수 이 새끼가 도대체 어디 가서 뭘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한심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수사의 경우 탈옥수가 어떤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당장 그를 뒤쫓을 단서가 없어 움직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답답한 마음에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접속해 연주가 확인 중이던 전국 강, 절도 사건을 실시간을 확인했지만 장진수가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사건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수첩을 열어 지금까지 조사한 것들을 나열하며 적어 내려갔다.

맨 처음 주목해야 할 점. 그건 장진수는 처음부터 탈옥을 꿈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놈은 공사장에서 우연히 주운 톱 조각을 얻는 순간 탈옥의 계획을 세웠다.

이 추론을 뒷받침할 심증은 톱 조각을 얻은 후부터 그의 다이어트가 시작되었고, 그전까지 조용하게 살던 놈이 공중보건의와 결탁해 감옥 내에 감기약을 돌리며 자금을 모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만나게 되는 우연으로 인해 인생의 방향성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감옥 내에 있는데, 우연히 손에 넣은 작은 톱 조각 때문에 목적도 없이 탈옥을 한다? 대가리에 짐승 같은 본능뿐인 머리 나쁜 폭력 범죄자라면 모를까 장진수 같은 지능 범죄자가 이런 단순한 이유로 움직일 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나의 고정관념일지 모른다. 놈은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고, 2심에서 무기징역 선고, 이후 항소를 포기했다. 어차피 살아생전에 바깥 공기를 맡지 못할 테니 나갔다? 어차피 잡혀서 다시 감옥에 들어와 봐야 형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몸부림일까?”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마지막 발버둥을 쳐보는 것일까? 정말 그런 단순한 이유일까? 아니면, 톱 조각을 발견하는 순간 이미 포기해 버린 마지막 목적에 불이 들어온 걸까? 그렇다면 그 마지막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적어둔 글귀를 가만히 바라보다 다음 글을 적었다.

놈이 보낸 편지에는 나와 새로운 게임을 하고 싶다는 제안이 기재되어 있었다. 아니, 그건 제안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 일전에 내가 승리한 게임의 조건은 이미 무효화되었다. 이제 다시 게임을 시작할 때라고 써 있었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이 불리한 게임에서 내가 가진 페널티를 해소시켜 주기 위해 새로운 단서를 보내준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 편지 형태일 것이다.

놈이 보낸 편지에 묻은 황색 먼지. 그것에서 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성분들이 검출되었다. 이것은 수사 혼란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할 단서가 될 수도, 나중에 연관성을 알게 되고 뒤늦게 깨우치게 되는 중요한 단서일 수도 있다.

현재는 사실을 나열하는 것 외에 중요하게 생각해 타겟 수사를 할 만한 증거로 볼 수는 없다.

세 번째.

놈이 탈옥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살던 집에 돌아온 것이다.

이 대목은 무척 간 큰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다. 감히 탈옥수 주제에 택시를 타고 종로 경찰서 앞에서 내린 것도 그렇지만 체포당한 지 2년이 넘은 상황에 예전에 살던 집이 아직 비어 있다는 확신도 없이 무작정 갔다는 것도 대범한 결정이다.

그는 예전의 집에서 자신의 성경책을 가져갔다.

그 책이 거기 남아 있다는 것은 사건의 증거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KCSI가 그 집을 싹 털어 증거물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압수했기에 그 책은 단순한 성경책일 것이다. 사건에 관계된 메모라도 있었다면 그 집에 남겨두었을 리가 없으니까.

만약 그 집에 신규 세입자가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죽였을까? 아니다. 장진수는 새벽 늦은 시간에 집을 방문했다. 그의 치밀한 성격으로 볼 때 집 주변에 장시간 잠복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종로 경찰서 앞에서 내린 건 아침 이른 시간. 집에 간 것은 당일 밤 12시를 넘겨 다음 날이 된 새벽이다. 어쩌면 그는 하루를 꼬박 그 집 앞에서 잠복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집에 사람이 없다는 확신을 갖고 난 뒤에 찾아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만약 집주인인 윤정이 부모님이 비밀번호를 바꿔두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그렇게 중요한 책이라면 입수를 위해 집주인 일가족을 위협하거나, 고문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윤정이 부모님의 선택이 그들의 안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답답한 건 이 모든 것이 마치 지독한 우연이 겹친 것 같다는 거다.”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계획하여 실행한 부분이 없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며 모험적이다.

이건 내가 아는 장진수가 아니다. 무려 11년이나 치밀하게 범죄를 숨긴 범인. 그는 열셋이나 죽이고 그 시신을 훼손하면서도 11년간 살인 행위 자체를 감쪽같이 숨겨왔던 지능범이다.

그런데 지금 이 행태는 다르다. 대범하며, 즉흥적이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같이 느껴진다.

뭘까? 도대체 이 자식이 뭘 하러 나온 걸까? 여자나 후리고, 술이나 먹으러 나올 놈이 아니다.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탈옥수 중에 상당수는 술에 취한 상태로 체포된다. 자유롭게 살다 우리에 갇힌 짐승들은 통제를 버티지 못한다. 그리고 자유로워졌을 때 그들은 도주보다 잠시의 자유가 주는 달콤함에 빠져 결국 검거된다.

자신을 통제하는 데 익숙한 일부는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기도 한다. 대부분이 잡히지만 간혹 빠져나가는 놈들도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 선배님.”

자기 자리에서 장진수의 이전 사건 자료를 보던 오진규가 날 본다.

“혹시나 해서 그런데 중국 밀항선 쪽도 살펴봐 주시겠습니까?”

오진규가 씩 웃으며 엄지를 든다.

“이미 조치 취해뒀습니다. 해경과 인천, 서해안 경찰 쪽에서 순찰 강화 중입니다.”

“역시. 미리 움직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고, 제가 해야 될 일인데요 뭘.”

그때 책상 위에 올려둔 전화기가 울린다.

나는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용한 사무실에 울리는 진동 소리에 연주와 오진규가 고개를 든다.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친 후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최영현 팀장님입니다.”

이 시국에 최영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뿐이다. 나는 천천히 전화를 들었다.

“예, 선배님.”

나는 다른 팀원들도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으로 전환 후 테이블 위에 전화를 놓았다.

-편지가 왔습니다.

기다렸지만 듣고 싶지 않았던 말. 장진수가 새로운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 받는 타이밍에 청으로 가는 행랑이 출발하길래 바로 보냈습니다. 20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화가 끊어지자 오진규와 연주가 번개처럼 튀어 나간다. 주차장으로 들어올 행랑 트럭을 기다리러 가는 것이다. 혹시 증거를 훼손할 수 있으니 장갑까지 챙겨서 뛰는 두 사람.

나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돌아올 두 사람을 기다렸다.

째깍, 째깍 시간이 지난다.

이번 편지에 뭐라고 써 있을까? 설마 누군가를 죽이고 시신을 찾으라는 건 아니겠지? 연쇄살인마가 탈옥해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다고? 언론이 우릴 죽이려 들 것이다. 사고는 교정 본부가 쳤지만 수습은 우리 몫이니까.

긴장한 나는 앉아 있지도 못하고 사무실을 서성거렸다. 10분이 10일같이 느껴진다. 몇 번이나 창문 밖을 확인했지만 주차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모습만 보인다.

지잉, 지이잉.

또다시 전화가 울린다. 얼른 확인해 본 나는 긴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았다.

“네, 아저씨.”

강혁 아저씨다.

-병원 다녀왔냐?

하? 지금 어떤 시국인데 이 아저씨가. 이 새끼 빨리 못 잡으면 아저씨 제복 벗는다고요. 평생 경찰에 충성했는데 불명예 해임 당하게 생겼다니까? 지금 내 병원이 문제야?

“하…… 이번 주는 좀 넘어가요. 바빠서.”

-장진수 그 새끼 때문에?

“아시면서 뭘 물어요.”

-탈옥한 연쇄살인마. 그래, 잡아야지. 하지만 도경아. 이번 주는 그렇다 치고 다음 주에는 꼭 가라. 국민의 안위, 국가의 평화. 범죄에 대한 단죄. 그래, 다 중요하다. 우리 경찰이 내 목숨이 일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잃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2순위든 3순위든 좋으니까 네 건강도 챙겨야 되는 거다. 알았지?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경찰의 본분도 잊지 말라 당부하시면서도 나의 안전을 지키라는 걱정이 담긴 따뜻한 말씀. 나는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며 슬그머니 장난을 쳤다.

“지금 제 걱정할 때가 아니지 않아요?”

-뭐, 인마. 내가 그깟 탈옥수 놈 못 잡아서 불명예 해임 되는 거 걱정할 위인으로 보이냐? 해임? 하라 그래. 그런 건 안 겁나, 인마. 내가 겁나는 건 그 새끼가 누군가를 죽이는 거다. 그래서 또다시 피해자가 생기고, 그들의 유가족이 평생 슬픔에 잠겨 사는 걸 보는 거. 그게 내가 제일 겁나는 거다.

역시 아저씨답다.

“그거 말고요.”

-그럼 뭐?

“이번에 인천에서 칼부림 사건 보고 도망친 경찰들 때문에 시끄럽던데.”

-…….

“경찰 커뮤니티에 어떤 경찰이 월급 300만 원에 목숨 걸라고 하는 건 미친 소리라는 글까지 올라와서 국민들 반응 엄청 안 좋지 않아요?”

-씨X.

웃음이 나온다. 경찰청장쯤 되면 신경 써야 될 게 한두 개가 아닌 법이니 이 사건도 골치깨나 썩는 일일 것이다.

-내가 살다 살다 이런 개새끼들이 경찰이 되는 말세를 볼 줄이야. 아니 이 씨X 놈들이 누가 경찰 하라고 떠밀었어? 지가 지 손으로 신청서 쓰고, 지가 공부해서 경찰 된 놈들이 뭐? 월급이 작아서 목숨을 못 걸었어? 씨X 새끼들이 그럼 얼마를 주면 건다는 거야? 오백? 천? 그거 주면 목숨 건다고? 지랄하네, 씨X 놈들이. 월급 1억을 줘도 칼만 보면 간담이 쪼그라들어 벌벌 떨며 기어 나올 거다, 그런 새끼들은.

나는 고소를 지었다. 그래, 경찰도 사람이다. 우리도 칼 휘두르는 놈 보면 겁이 난다.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다.

나는 훈련을 받았으니까? 일반인보다 강하니까? 아니, 우리가 맞서서 물러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이다. 내가 피하면 나보다 약한 이가 맞서야 되니까. 내가 나서서 팔에 칼침 한방이면 끝날 걸 나 아닌 누군가가 나서면 생명을 담보해야 되니까.

그 때문에 나서는 거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경찰로 살아가는 이가 그런 사명감이 없다? 그건 경찰이 아니다. 비난받기 전에 관두고 다른 철 밥통 직업을 찾았어야 한다. 그랬다면 경찰이 이토록 국민들에게 믿음을 잃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시게요?”

해임? 직위 해제? 심하면 해고일 수도 있다. 강혁 아저씨는 욕을 잔뜩 해놓고 나선 입맛을 다신다.

-도망간 놈들. 그리고 커뮤니티에 글 올린 녀석. 다 20대더라.

“…….”

-나라가 살기 힘드니 공무원 되어 철 밥통 끼고 살아보려고 들어온 녀석들이라 이거지. 그리고 그 나라는 우리 같은 어른들이 만들어놨고.

“그래서 어쩌시게요?”

-불명예 해임 되면 일반 직장도 못 들어간다. 그럼 그 젊은 놈들 인생 망치는 거지. 본인이 선택하게 할 거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어. 쪽 팔려서 어떻게 이 바닥에서 일을 하겠냐? 지들 알아서 나가게 하려고.

“피해자 가족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건 내가 해결해야지.

“어떻게요?”

-찾아갈 거다. 그리고 무릎을 꿇을 거야. 내가 이 나라 경찰청장이고 당신들 두고 도망간 놈들은 날 보고 자란 놈들이라고. 내가 모자라서 이런 사태가 일어난 거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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