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55화 (254/328)

살인의 기억 255화

18. Jailbreak(탈옥)(19)

관우는 결국 손가락을 틈새로 끼워 넣어 강제로 문을 따는 행위를 중단하고, 장비를 들며 어색하게 웃는다.

“현장 훼손될까 싶어 가급적이면 힘으로 열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 없네요.”

그래, 두 시간이 넘게 허비했으니 지금은 저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나는 관우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도록 실금에서 멀리 떨어져 오진규에게로 왔다. 그는 아직 지하실을 살피고 있다.

“살인자의 아지트라…….”

오진규가 팔짱을 끼고 내부를 샅샅이 살피다 말했다.

“살인자라는 부류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군요. 경찰로 살며 수많은 살인자들을 봐왔지만 그들의 행동 패턴을 어느 정도 예상하는 것이 나름의 최선이었습니다. 도저히 놈들이 하는 생각의 흐름은 읽어낼 수가 없어요.”

당연한 겁니다. 그게 읽어지면 선배님도 정신 병원에 가셔야 되는 거니까. 오진규가 눈짓하며 말했다.

“사람 죽이고 다니는 놈이 아지트에 저런 그림을 걸어놓는 건 정말 미친 것 같죠? 소름이 돋네요, 정말.”

오진규가 가리키는 곳. 그림 하나가 걸려 있다. 그림 속에는 아기 천사가 푸른 숲의 나무둥치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그림은 매우 작다. 규격 사이즈 캔버스 기준으로 0호에 해당하는 가장 작은 그림이다.

그림은 짙은 갈색의 오래된 액자 속에 담겨 일반적으로 그림을 거는 위치보다 훨씬 높게 걸려 있다. 아래에서 올려 보았을 때 우리가 시계를 거는 위치쯤에 걸려 있는 것이다.

오진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게다가 저 위치 좀 보세요. 그림을 보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저렇게 작은 그림을 저리 위에 걸어두면 어떻게 보겠다는 건지.”

처음에는 그저 오진규가 살인자를 욕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그 성당…….’

번개같이 머릿속을 스쳐 가는 그때의 성경 글귀가 떠오른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나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사 그림이 그려진 곳의 반대편. 그곳에 이끼가 잔뜩 낀 빈 벽이 있다. 푸른색의 이끼가 벽 전체를 덮어 벽의 원래 색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얼른 반대편 벽으로 뛰며 말했다.

“관우!”

실금 사이에 장비가 들어가지 않아 낑낑대던 관우가 고개를 든다.

“예?”

“아무 장비나, 이끼 걷어낼 수 있는 거 가져와.”

오진규와 관우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관우가 껌을 떼는 도구처럼 생긴 칼을 건네준다.

“뭐 하시려고.”

나는 관우 손에서 장비를 빼앗은 후 이끼를 긁어내기 시작했다.

“여기 또 다른 천사가 있을 거다. 먼저 이 벽에 있는 이끼부터 긁어내.”

“예?”

“장진수 사건 파일. 안 읽었어?”

장진수 사건이 났을 때 관우는 외근이 없는 내근 형사였다. 사무실에 앉아 CCTV 분석에 올인 했었기 때문에 당시 단양의 성당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 내 곁에는 연주만 있었다. 관우는 잠시 눈알을 굴리며 서면으로 읽은 사건 기록을 떠올리다 눈썹을 좁힌다.

“아.”

이제 기억이 난 모양이다. 다행히 장진수 놈이 탈옥했을 때 예전 사건 기록을 꼼꼼하게 확인했던 모양이다.

경험 많은 오진규는 관우보다 일찍 사건 기록을 생각해 내고 관우 가방을 뒤져 다른 장비를 손에 쥔 뒤 주변에서 의자를 찾아 끌고 온다.

“제가 위쪽을 벗겨내겠습니다.”

남자 셋이 벽에 붙어 이끼를 긁어내고 있다. 조금 웃기는 장면이지만 나는 분명히 이곳에 뭔가 있다는 직감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15분쯤이 지나자 위쪽을 맡고 있던 오진규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 있습니다!”

중간 부근을 벗기던 나와 쪼그리고 앉아 아랫부분을 벗겨내던 관우가 동시에 칼을 던지며 물러났다. 의자를 밟고 올라선 오진규의 손이 닿은 곳. 액자가 아닌 벽화. 색이 들어가지 않은 검은 선으로 이루어진 작은 아기 천사 그림이 벽에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인다.

오진규는 진짜 천사 그림이 나왔음을 보고 눈을 일그러뜨린다.

“이 새끼 이거 설마.”

첫 번째 사건 때 두 천사의 그림이 있는 곳을 기점으로 25리(9.81818㎞) 밖에 시신을 숨겨둔 장소가 있었다.

관우가 입을 떡 벌리며 날 돌아본다.

“설마 또 사람을 죽여서 시신에 그 짓거리를 한 곳이 있다는 겁니까……?”

믿고 싶지 않은 말. 나는 입술을 깨물고 천사를 노려보며 놈에 대해 떠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건 그런 뜻이 아닐 거다.”

오진규가 의자에서 뛰어내린 후 물러나 높이 있는 천사 그림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나는 천사 그림을 노려보며 말했다.

“놈은 자신의 행위를 예술로 생각했던 놈이며, 그 예술이 세상에 자신의 이름으로 알려지길 바랐습니다.”

“음, 당시 뉴스도 그렇고 이후 범죄 심리학자의 분석에도 그렇게 나왔었죠.”

“그런 놈이 또 다른 작품들을 숨겼을 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예술적 발자취로 남겨지기를 바랐던 놈이니까요.”

“음…….”

오진규가 수긍한다. 관우 역시 수긍했지만 마주 보고 있는 두 천사의 그림을 번갈아 본 녀석이 물었다.

“그럼 이 그림의 의미는…….”

나는 당시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사람들과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곳…….”

당시 곁에 계시던 신부님이 말씀해 주신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나는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엠마오 마을.”

관우는 내 중얼거림에 사건 보고서의 한 부분을 기억해 낸 후 얼른 핸드폰을 꺼내 검색한다. 하지만 곧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 마을 없는데. 성경에만 나오는 마을 아닙니까?”

오진규가 관우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성경이 인마, 2천 년 전 이야기인데 아직도 동일 지명이 있을 리가. 잘 찾아봐.”

“음, 마을 이름을 알아내는 게 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찾아볼게요.”

나는 손을 들며 관우를 만류했다.

“됐어,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루이사 수녀님 전화번호를 눌렀다. 수녀님은 언제나 그렇듯 엄마처럼 밝고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주신다.

-우리 도경이, 무슨 일이야?

“수녀님, 죄송해요. 뭐 하나 여쭤보려고요.”

-응? 갑자기 뭘?

나는 장진수의 책상에 앉아 서랍을 열어보며 통화를 이어갔다.

“루카 복음에 보면 엠마오 마을이란 곳이 나오잖아요?”

-오, 우리 도경이. 드디어 하느님께 관심이 생긴 거야?

“하하, 뭐…….”

수녀님은 항상 성당의 보육원 출신이면서도 종교에 신실하지 않은 나를 안타까워하셨다. 이제 와 종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무척 기꺼운 말투이시다.

-응, 그게 왜?

“거기 현재 지명이 뭐예요?”

-아, 그게 궁금했구나.

나는 서랍장 속에 있는 펜들과 잡동사니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 서랍장을 비워냈다. 그리고 수녀님께 마을 이름을 듣는 순간 눈을 꿈틀거렸다.

-그 마을의 현재 이름은 Emmaus야. 예루살렘 북동쪽에 있단다.

서랍장 안쪽 깊숙한 곳의 바닥. 칼로 새겨진 글귀가 보인다.

“고맙습니다, 수녀님. 다시 전화드릴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어느새 내 옆에 달려온 관우를 바라보았다.

“여기다.”

관우는 서랍장을 통째로 빼 칼로 새겨진 글귀를 자세히 보았다.

“이거 뭐라고 읽는 겁니까? 애무인가?”

오진규가 관우 뒤통수를 툭 치며 말했다.

“변태야, 너?”

관우가 머리를 긁는 것을 본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엠와스라고 읽는다. 책상 쪽에 저걸 여는 장치가 있을 확률이 높아.”

“오! 알겠습니다.”

관우는 글귀를 손으로 쓰다듬어 본 뒤 책상에 있는 서랍장을 모두 빼고 플래시로 안을 비춰본다.

물러난 나는 오진규와 함께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오진규가 팔짱을 끼고 관우를 지켜보며 말했다.

“유년 시절의 행보에 사건의 단초가 있다면 당연히 예전에 다녔던 성당도 확인해야 되겠죠?”

“물론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장진수 사건 때 우리가 만났던 신부님은 놈이 처음 성당에 오게 되었을 때 성당에 계셨던 신부님이었다.

신부는 2년에 한 번씩 성당을 옮겨 다니게 되는데 모종의 이유로 20년 만에 다시 단양 성당에서 근무하게 된 신부님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 그 신부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더라? 생각해 보니 그냥 직책만 부르고 이름은 안 물어봤던 것 같다.

“그때 그 신부님. 그분을 다시 찾아내야 됩니다.”

오진규가 수첩을 연다. 미리 체크해 두었던 모양이다.

“주민등록상 이름은 구종식. 세례명은 미카엘입니다.”

“현재 소재 파악해 주세요. 2년 전 사건이니 다른 성당으로 파견되셨을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오진규가 전화기를 들고 구석으로 간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라 전화 몇 통 돌려 사무실에서 PC 앞에 앉아 있는 사람 잘 찾는 후배에게 부탁할 모양이다.

당시 만났던 미카엘 신부는 장진수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찾으면 일이 좀 더 쉬워질 것이다.

관우가 입에 플래시를 물고 서랍장을 모두 뺀 책상 속을 살피다 어느 순간 손을 번쩍 든다. 입에 물었던 플래시를 뺀 관우가 말했다.

“여기, 버튼이 있습니다.”

나는 얼른 달려가 관우가 플래시로 비춰준 책상 안쪽을 보았다. 책상에 앉았을 때를 기준으로 왼쪽 서랍장을 완전히 뺀 뒤 손을 가장 깊숙하게 집어넣으면 겨우 손에 닿는 위치에 빨간색 스위치가 있었다.

“눌러.”

“예.”

관우가 손을 넣어 버튼을 누르자, 덜컹하는 소리가 지하실을 울린다.

나는 얼른 벽에 있는 실금으로 달려갔다. 멀리서 봐도 확연하게 열린 것이 보인다. 서랍장처럼 앞으로 밀려 나와 있는 사각형 벽.

나는 장갑 낀 손으로 서랍을 열었다. 돌로 만들어져 있지만 레일에 윤활유가 발라져 있어 부드럽게 열리는 서랍장.

하지만 속을 본 나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관우가 조금 늦게 달려와 서랍장을 보고 인상을 썼다.

“비어 있는데요?”

“…….”

여기에 있던 뭔가를 가져갔다.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관우는 빈 서랍을 뚫어지게 보다 핸드폰을 가져온 뒤 서랍장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둔 후 말했다.

“과장님.”

“음?”

“아주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최근에 한 번 열린 것 같죠?”

벽에 있던 이끼의 상태나 서랍장 속의 먼지 상태를 보아서는 관우 말이 옳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우가 플래시를 서랍장 안으로 비추며 말했다.

“먼지가 없는 부분의 형태.”

관우 말에 다시 서랍장을 보니 사각형 모양의 먼지 자국이 보인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관우가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가져간 건 책인 것 같습니다. 먼지 형태가 딱 책 형태로 보이네요.”

또 책? 서울에서는 성경책이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책일까? 그때 오진규가 다가오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에이.”

오진규는 실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흔든다.

“미카엘 신부 찾아냈습니다.”

“어디 있습니까?”

“서울 쌍문동 제4성당입니다.”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얼굴로 오진규를 획 돌아보았다.

“어디……라고요?”

오진규는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쌍문동 제4성당입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쌍문동 제4성당? 거긴 내가 자란 보육원이 있는 성당이다. 방금 통화했던 루이사 수녀님이 몸담고 있는 바로 그곳. 미카엘 신부가 거기로 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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