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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57화 (256/328)

살인의 기억 257화

19. 기억의 편린(1)

핸드폰이 문자 알림을 울린다. 연주에게 온 문자이다.

[과장님. 장진수가 다니던 단양 도천 초등학교 동창생 4명, 도천 중학교 동창생 2명, 중학교 시절 선생님 두 분의 소재를 확보했습니다. 바로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역시 연주는 빠르다. 나는 간단히 그리하라는 답을 보내준 후 다시 신부님을 보았다.

“처음 놈을 만났을 때, 어땠습니까?”

“무얼 물어보시는 것인지 정확히…….”

“자기 발로 성당에 왔습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그럼요?”

내 상식으로 성당은 교회와 달리 돌아다니며 전도하지 않는다. 일부러 믿지 않는 사람에게 가 종교를 전파하지 않는 것이 가톨릭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미카엘 신부님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마 9월경이었을 겁니다. 성당별로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9월부터 11월 사이에는 지역 성지순례가 있습니다.”

“성지순례? 그거 여행 프로그램 아닙니까? 유럽 지역 여행하는 코스.”

“하하, 그런 것도 있지요.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지만 성지인 것이 아닙니다. 형사님이 사시는 이 서울에도 성지가 있지요.”

성지? 그건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데. 서울에도 그런 곳이 있어?

내 표정을 본 미카엘 신부님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젊은이의 성지로 불리지요? 홍대, 합정 인근입니다.”

응? 밤마다 클럽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는 그곳에 성지가 있다고?

미카엘 신부님이 말을 잇는다.

“절두산(切頭山) 순교 성지입니다.”

뭐냐, 그 소름 끼치는 이름의 산은. 우리나라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산이 있었나?

미카엘 신부가 설명을 덧붙인다.

“합정동 양화진의 한강변 언덕이지요.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 성지입니다. 본래 이름은 잠두봉(蠶頭峰)으로,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죠. 1866년 병인박해 때 이 산에서 천주교 신자들 목을 잘라 한강에 던져 넣는 식의 집단 처형을 했기에 절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956년에 천주교에서 땅을 매입하여 순교 성지 성역화 사업에 나섰고 1967년 순교 성지 기념 성당과 박물관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음, 그런 곳도 있었구나. 단양에서 내가 아는 성지는 장진수가 시신을 숨겨둔 장소로 쓰였었다. ‘순례’라는 단어를 붙였으니 한 곳만 다닌 건 아닐 것이다.

“어느 성지에서 장진수를 만나신 겁니까?”

“정확히 단양이 아니라 제천이었습니다.”

“제천 어디였습니까?”

“배론 성지였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배론 성지를 검색했다.

‘배론 성지라는 이름은 배의 밑바닥같이 생긴 지형이라 붙은 것이고, 1801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도 황사영이 이 토굴에서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교에게 보낼 글을 썼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성 요셉 신학교를 만들어 성직자를 양성했다.’

성지라는 이름이 붙을 만한 곳이다.

“단양과 제천이 가깝다고 하지만 고등학생인 장진수가 가기에는 조금 멀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멀지 않습니다. 버스도 충분히 많고요.”

“당시 놈은 혼자 있었습니까?”

“네, 혼자 있었습니다. 성지 구석에 있는 작은 벤치에 쪼그리고 앉아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미카엘 신부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상처가 많은 아이 같았습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아이를 품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서 말을 걸었지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 같은 사제 복장의 사람이 말을 걸면 사람들은 대부분 뒷걸음질 칩니다. 이 나라에는 하느님 이름을 파는 사기꾼들이 너무 많거든요.”

“음, 그렇죠.”

“그저 학생이 궁금해할 것들을 말해주었습니다. 여기까지 와 있다는 건 성지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고, 성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요.”

“놈이 관심을 보였습니까?”

“예, 처음에는 제가 말을 하든 말든 초점 잃은 눈으로 먼 곳만 바라보다 설명이 끝나니 어느새 저를 보고 있더군요.”

“그 후에는 어땠습니까?”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성지를 돌아볼 텐데 나와 함께 가면 자세한 설명을 해주겠다는 제안이었고, 토마스는 제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가 단양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섣불리 성당에 나오라 재촉하기보다는 그저 저도 단양의 상진 성당에 있다고 넌지시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미카엘 신부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주, 혹은 몇 주 뒤의 미사 시간에 놈이 나타난 겁니까?”

미카엘 신부가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열린 성당 문을 통해 토마스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주님의 품에 어린 양이 들어오는 환상을 보았는데. 그 아이가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습니다.”

“그 후로 장진수는 매주 미사에 참석했습니까?”

“예,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40주간 행해진 성서 모임에도 항상 참석했죠.”

성서 모임. 내가 제일 싫어하던 모임이다. 어릴 때 수녀님이 데리고 가신 적이 있는데 두 시간이 넘게 성경을 읽고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나는 두 번 나간 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나가기를 꺼렸다. 성서 모임 시간만 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날 보며 미소를 지은 루이사 수녀님은 다시 모임 참석을 권하지 않으셨었다.

놈은 매우 독실한 신자였다. 그러나 방향이 틀어져 처참한 결과를 낸 광신도가 되었다. 나는 수첩을 열며 물었다.

“여기서는 보육원에서 포도주를 만드신다고 들었습니다.”

미카엘 신부가 약간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제 딴에는 신성한 의식이라 생각하고 홀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술을 빚었던 것인데. 그 장소가 범행에 쓰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공개된 장소에서 만드시는 겁니까?”

“네, 또 그때 사용된 오래된 오크 통처럼 범행에 사용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소량씩 제작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첩에 들은 이야기들을 기록하며 물었다.

“혹시 놈의 학창 시절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글쎄요, 자신의 내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아이였습니다. 그저 말없이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아이였죠. 하지만 한 번도 남을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완수하는 아이였습니다.”

“전혀 아는 바가 없으십니까?”

“음…… 가끔 멍이 들어 오곤 했습니다.”

“멍? 어디에 말입니까, 얼굴이요?”

“네, 하지만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은 당연히 싸우면서 크지 않겠습니까?”

“애 얼굴에 멍이 들어 나타났는데 무슨 일이냐 묻지 않으셨습니까?”

“물었습니다. 하지만 제 질문은 혹시 부모님이 널 때리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음.”

“아이들은 싸우면서 성장하지만 아동학대는 다른 문제니까요.”

“그때 놈이 뭐라고 하던가요?”

“그냥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후에 한 번 정도 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2년간 두 번. 그래, 생각해 보면 난 그보다 훨씬 더했다. 얼굴에 멍이 없는 날이 없었던 지경이었으니까.

중학교 시절에는 날 괴롭히는 일진 놈들 때문에 그랬고, 고학년 때는 형사님들과 훈련을 하다 그랬다.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아이 얼굴에 멍이 든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2년간 딱 두 번만 있었던 일이니 학대 의심 증거는 없을 것 같다.

“혹시 집에는 가보신 적 없습니까?”

“토마스의 집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없습니다.”

“꽤 친하게 지내셨던 것 같은데. 왜 없을까요?”

“음…… 한번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토마스가 말리더군요.”

“왜요?”

“부모님이 매우 엄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종교도 달라서 사제가 집에 오는 걸 반기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미 죽은 부모님이 사제를 어찌 싫어할 수 있을까? 그저 자기 이야기를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학교 쪽에 방문하신 적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성당 행사 중에 인근 학교에서 진행되는 바자회가 있었는데 그때 가봤습니다.”

“거기서 놈을 보셨습니까?”

“아뇨, 없더군요. 좀 서운했죠. 우리 성당에서 하는 행사가 자기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와보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그에 대해 놈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냥 다른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학교 방문은 1회로 끝이었습니까?”

“네, 다음에 또 갔는지는 모르지만 제 임기 내에는 1회뿐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카엘 신부와 눈을 맞췄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 더 드리겠습니다.”

“예, 형사님.”

“혹시 놈이 고민 상담 같은 것을 한 적은 없습니까?”

“…….”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예?”

미카엘 신부가 단호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고민 상담은 없었으나 고해성사가 있었습니다.”

“…….”

제길, 하필.

“고해성사 비밀유지 의무를 이행하시겠다는 겁니까?”

“사제 직위 해제까지 갈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하느님 앞에 비밀 엄수를 맹세한 사제입니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가 있을 텐데요.”

“예, 맞습니다. 비밀유지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특수한 경우는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고해성사를 하는 경우나, 성사 도중 남의 욕을 하는 경우입니다. 토마스의 경우 이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저는 비밀유지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상대는 살인자다. 사람을 열셋이나 죽인 연쇄살인범이다. 그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단서이다.

하지만 나는 인정해야 한다. 놈이 살인자인 것처럼 눈앞의 사람도 사제이다. 사제는 그들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 존재이다. 또한 그가 진술을 거부한다 하여 법적인 구속 효과도 없다.

나는 수첩을 천천히 닫으며 말했다.

“존중하죠.”

“감사합니다, 형사님.”

“하지만 한 가지.”

“예.”

“본인의 범죄 계획, 범죄 사실의 고백이 아니었다는 점은 확실히 해주셔야 합니다. 만약, 나중에 이 일이 밝혀지면 저도 신부님을 보호해 드릴 수 없습니다.”

미카엘 신부님이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토마스가 한 고해성사 속에 토마스의 범죄 계획, 토마스의 범죄 사실에 대한 고백은 없었음을 사제 직함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됐다. 상대는 사제다. 사제 직함을 걸고 말한다면 믿어도 좋다. 나는 수첩을 챙긴 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혹시 인터뷰 중에 예의에 벗어난 언행이 있었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미카엘 신부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모은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마태복음 7장 7절의 말씀입니다. 부디 형사님께도 하느님의 사랑이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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