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59화 (258/328)

살인의 기억 259화

19. 기억의 편린(3)

단양 도천 중학교 학생회실.

미리 연주가 약속을 잡고 참고인들을 불러두었기에 우리는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고 한 장소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맨 처음 만난 건 도천 초등학교 시절 동창생 두 명. 그들의 진술은 일관되었다.

‘진수는 거의 말이 없는 아이였어요. 친구들과 축구나 농구, 피구를 할 때도 같이해 본 적이 없어요.’

‘체육 시간에 진수는 항상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만 있었어요. 안쓰럽게 생각한 오지랖 넓은 친구가 같이 놀자고 해도 대꾸도 안 했고요.’

‘진수와 친한 애는 없었어요.’

‘별로 관심 가져본 적이 없어요. 어차피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아이라서.’

나는 인터뷰를 연주에게 맡겨두고 오진규와 함께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다.

놈에 대한 뉴스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후 주변에서도 질문을 많이 받아 그런지 평소에 놈에 대한 기억을 해내려 노력한 모양이지만 특별한 점도 없던 23년 전 반 친구에 대한 기억이 많을 리가 없다.

나는 더 들어도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곤 연주에게 그들을 보내라는 신호를 보냈다. 연주가 여기까지 와준 참고인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한 뒤 그들을 내보내고 뒤를 돌아본다.

“바로 중학교 동창들 부를까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가 학생회실 밖으로 나가 두 사람을 데려온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이고 30대 중반이다. 자, 생각해 보자.

‘놈은 20대 초반에 부모의 죽음을 겪었다. 하지만 실종 5년 만에 사망 처리된 사건이므로 부모가 살해된 건 놈이 십 대 중, 후반 시절이란 뜻이 된다. 지금 들어온 사람들이 중학교 동창이라면 놈이 부모를 죽였을 때의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두 사람은 형사 셋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교실에 들어와 긴장한 얼굴이 된다. 연주가 앉으라 손짓하며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친절한 미소를 보낸다.

“자자, 앉으세요. 여러분은 그저 참고인일 뿐입니다. 범인과 어떤 연계도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고 편하게 질문에 답 해주시면 돼요.”

두 사람은 연주의 말에 약간 안도한 얼굴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금세 다시 굳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일어나 그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친절한 얼굴의 연주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내가 할게.”

“아, 네 과장님.”

연주와 달리 키와 덩치가 크고 약간 차가운 얼굴의 내가 자리에 앉자 두 사람은 크게 긴장한 얼굴이 된다.

여기까지 와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일부러 친절한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협조해 주러 온 사람들의 성의를 생각해 예의를 잃지 않을 뿐이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신분증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두 사람 쪽으로 슬쩍 밀었다. 눈으로 내 신분을 확인한 두 사람이 더 긴장한 얼굴이 된다. 신분증에 소속과 계급이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양은 시골이라 부르기 뭐하지만 국가수사본부 소속의 형사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여자 쪽이 남자 쪽을 본다. 표정으로 대화를 하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 모양이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준우입니다.”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십니까?”

“식당 합니다.”

“단양에서 하십니까?”

“네, 수변로 근처에서 마늘 순대국밥 팝니다.”

단양의 시장 거리에는 본래 마늘 순대국밥집이 유명하다. 나는 여자를 돌아보며 눈짓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여자가 먼저 입을 연다.

“이유진이요. 시멘트 공장 경리로 있어요.”

나는 이유진의 소개를 들으며 눈썹을 실룩거렸다. 시멘트 공장? 놈이 처음 보낸 편지에 묻어 있던 물질이 시멘트 원료가 되는 광물이었는데. 혹시 연관이 있을까? 나는 이유진을 빤히 보며 물었다.

“한정 시멘트 공장 말씀이십니까?”

“네, 맞아요.”

몇 번씩 단양을 내려와 이곳에 대규모 시멘트 공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경리 일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공장 내부에서 근무하십니까?”

“아뇨, 저희는 따로 사무실이 있어요.”

“공장에서 멉니까?”

“음, 한 7㎞ 정도 떨어져 있어요.”

음, 이 여자가 일하는 공간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시멘트 원료가 공장 반경 7㎞ 밖까지 날리고 있다면 환경 단체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까 놈이 여자에게 접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보았다.

“장진수 아시죠?”

본론이 나오자, 두 사람이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도천 중학교 13기 졸업생. 동창이며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셨다고.”

이번에는 하준우가 나섰다.

“예, 맞습니다. 진수와 같은 반이었어요.”

이유진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나는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며 물었다.

“놈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계시죠?”

이유진은 소름이 끼치는지 자기 팔을 쓰다듬는다. 하준우도 살짝 몸을 떨며 말했다.

“예, 뉴스 봤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해결되었다고…….”

이유진도 이제 와 왜 다시 놈에 대해 묻는지 궁금한 얼굴이다. 나는 시간을 힐끔 본 뒤 말했다.

“오늘 저녁에 뉴스가 나올 겁니다. 아마 집에 돌아가신 후에 확인되실 겁니다.”

“무슨 뉴스인지…….”

“놈이 탈옥했습니다.”

“헙!”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된다.

사실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다. 신창원 사건 케이스가 워낙 경찰 조직에 트라우마로 남았던 사건이라 반대의 의견이 높았다.

장영훈 본부장님도 강혁 아저씨의 청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최대한 미뤘지만 연쇄살인마가 탈옥해 거리를 활보하고 있음을 숨긴다는 건 위험에 노출되어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생각에 안건을 제출했다고 한다.

경찰 고위 간부 회의에서 고성이 오가고 찬반 여론이 갈렸지만, 이 결정을 내린 건 강혁 아저씨였다.

본부장님께 들었지만 가만히 간부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아저씨가 서류철로 테이블을 쾅쾅 내려치고 벼락같은 고함을 내질렀다고 한다.

‘너희 새끼들은 국민들에게 욕 안 먹으려고 경찰이 된 거냐!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 야간 경비원, 의사들, 경찰들, 소방대원, 기자들, 119대원들, 장의사, 경비업체 근무자들, 철도 직원, 치안안보부서의 상황실 직원들과 같은 밤을 지키는 사람들! 모두가 고통 속에 산다! 일을 못해서 욕을 먹는다? 당연하지! 이 일 하라고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세금 내주는 사람들인데! 국민들이 앞장서라면 서고, 물러나라면 물러나는 게 우리다! 자신들을 지킬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판단해 우리를 쓰는 것이 국민이란 말이다, 이 한심한 새끼들아!’

강혁 아저씨는 일갈을 내지르며 당장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모든 뉴스에 장진수 얼굴을 내보내라고 하셨다. 밤길에 퇴근하는 여인들. 우리의 아이들이 놈의 얼굴을 익혀 위험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였다.

그로 인해 경찰의 무능함을 탓하는 여론이 일어나 자신이 옷을 벗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그게 경찰이라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멍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간부들에게 강혁 아저씨는 혀를 차며 말했다고 한다.

‘밤을 지키는 자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 공도 인정받기 힘들고, 잘못하면 쉽게 드러나 욕을 먹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 우리가 좌절하고 내빼면 사람들은 밤을 잃는다.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대한민국 경찰 조직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경찰청장의 결정. 경찰은 즉시 움직였다.

여태껏 언론도 알고 있었지만 엠바고(embargo) 때문에 안전장치를 걸어두었던 기사들이 오늘 저녁 한꺼번에 터져 나올 것이다. 그만큼 우리도 여론의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자기 자리 생각도 좀 하시지. 이제 몇 개월 남았다고. 쯧.’

측근의 입장에서 안타깝고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래서 강혁 아저씨가 좋다. 말단 형사 때부터 경찰청장까지 한결같은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경찰이란 일을 ‘업(業)’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아저씨. 그런 아저씨가 존경스럽다.

하준우가 손을 벌벌 떨며 물었다.

“지, 지, 진수가 정말 탈옥했습니까? 서, 설마 단양으로 오는 건 아니겠죠?”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옆의 이유진도 겁먹은 얼굴이지만 이상하게 하준우 쪽이 더 긴장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놈과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말꼬리를 흐리는 남자. 이유진이 팔꿈치로 그를 찌르며 눈짓한다.

“그냥 말씀드려. 나중에 괜히 위험해지지 말고. 솔직히 말하고 보호라도 받아야 살지, 바보야.”

속삭이는 것 같지만 다 들린다. 나는 팔짱을 끼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때렸습니까?”

하준우가 숨을 들이켠다.

“그, 그, 그게! 괴, 괴롭히려고 그랬던 건 아니고!”

말을 마구 더듬는 하준우. 뭐 상관없다. 학창 시절에 있었던 폭력이고 사건의 공소시효도 다 지난 사건 가지고 문제 삼을 생각은 없으니까. 단지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것뿐이다.

하준우가 당황하며 말했다.

“그, 그게…… 자주 그랬던 건 아닌데 딱 두 번 그랬습니다.”

얼굴에 멍이 들어 성당에 온 것이 두 번. 눈앞에 이 남자가 놈에게 상처를 만든 것이다.

“왜 그랬습니까?”

“…….”

하준우가 고개를 숙인다. 잠시 말이 없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무척 죄스러운 얼굴이다.

“죄송합니다. 어린 시절 치기였습니다. 눈앞에 진수가 있다면 사과하고 싶습니다.”

“이제 늦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 휘두른 주먹이 단순히 어린 시절의 치기라 말한다. 그러면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다들 싸우면서 큰다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겠지만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를 당했다면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갈 수도 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실수였다며 무조건적인 선처를 바라는 가해자의 행태를 무척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나도 그런 폭력에 노출되어 자랐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싸늘한 반응이 날아오자 흠칫 놀란 하준우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을 잇는다.

“진수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운동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녀석이었는데 공부 잘하는 게 아니꼽고 얄미웠습니다. 그날은…… 아침에 학교에 가는데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던 날이었습니다. 친구 잘 사귀라고. 지금 같이 다니는 애들은 네 인생에 하등 도움 안 된다고. 차라리 반에서 1등 하는 진수 같은 애와 친하게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십 대 남자아이에게 친구는 자신의 전부이다. 그 시절에는 가족보다 소중한 것이 친구라는 존재이니까. 엄마가 자기 친구들을 욕하니 싫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해 병신 취급을 하는 진수와 친하게 지내라는 엄마 말에 그 분노와 미움이 장진수에게 향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불러내서 때렸습니까?”

“…….”

“하준우 씨?”

“…….”

이유진이 답답하다는 듯 끼어든다.

“그냥 말씀드리라니까, 바보야! 그러다 너 죽는다고! 형사 아저씨, 얘가 그때 진수가 매일 들고 다니던 성경책을 불태웠어요. 진수 열 받으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