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60화
19. 기억의 편린(4)
사람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남이 믿는 종교가 싫을 수도, 종교 자체를 욕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특정 종교를 싫어하는 이유는 믿음의 강제성 때문인데, 눈앞에 이 사람은 타인의 종교를 모독하고 그가 가진 성서를 불태웠다.
믿음을 강제하려는 자와, 타인의 믿음을 강제로 억누르려는 자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종교가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유년 시절부터 성당에서 자란 나는 성서를 불태웠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성경책을 태워요?”
하준우가 급히 말했다.
“저, 정말! 그때는 너무 화가 나서 그랬던 겁니다. 진수를 열 받게 해서 먼저 덤벼들게 하고 싶었습니다. 반에서 1등 하는 애를 먼저 건드리면 제가 죄를 다 뒤집어쓴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머리를 쓴 거였는데…….”
내 얼굴이 차가워지자 하준우가 말꼬리를 흐린다.
“지, 지금은…… 저도 교회에 나갑니다. 가끔 그때 일이 생각나면 자다가도 후회가 되고 미안합니다. 몇 번이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
나는 하준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장진수에게는 사과했습니까?”
“…….”
“죄는 놈에게 짓고 용서는 신에게 구했다?”
“…….”
“하준우 씨.”
“……예.”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는 신성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인간이고 죄를 지은 대상도 같은 인간입니다. 신에게 용서를 구하셨다면 당연히 인간에게도 사과를 했어야 옳습니다. 그것이 사죄의 완성인 겁니다.”
“…….”
“계속하세요.”
하준우는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점심시간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날은 진수가 주번이라 수업이 끝나고 칠판을 지우러 나간 틈에 가방에서 성경책을 훔쳐 쓰레기 소각장으로 갔습니다. 마침 경비 아저씨가 쓰레기 소각을 하고 있길래 거기 넣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곧 진수가 달려 나왔습니다.”
“바로 나온 겁니까?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았죠?”
이유진이 다시 끼어든다.
“진수는 특이한 아이였어요.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는데 그때는 안 그랬거든요? 공부를 잘해서 항상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는 애였어요. 그런데 3학년 때 다시 같은 반으로 만났더니 애가 변해 있었어요. 쉬는 시간마다, 점심시간마다 교과서나 참고서 대신 성경책을 읽었어요. 그날도 칠판을 지우고 자리에 돌아와 가방에서 성경책을 찾았고요.”
“이유진 씨가 그 광경을 본 겁니까?”
이유진이 하준우를 힐끔 본 뒤 한숨을 쉰다.
“네, 준우가 계획을 말해줬어요. 전 하지 말라고 했는데 화가 많이 났는지 반드시 해야겠다고 해서. 준우가 소각장에 가 있을 때 전 교실에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봤어요.”
“놈이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이유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별거 없어요. 가방을 뒤지다 성경책이 없다는 걸 알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책상 아래를 뒤지다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탈탈 털었어요. 가방 속 물건들이 책상을 맞고 옆에 있던 짝에게 튕겼죠. 짝이 인상을 쓰며 네 성경책 아까 준우가 가지고 나갔다고 말해줬고요. 진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나갔어요.”
나는 하준우 쪽을 보며 물었다.
“달려 나온 놈이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하준우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달려 나온 진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통쾌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척 당황한 진수 얼굴을 보니 내가 제대로 복수를 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진수가 달려오더군요. 전 싸울 준비를 하려고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그런데…… 진수는 절 그대로 스쳐 지나가 불타고 있는 쓰레기 소각장 문을 열었습니다.”
불에 타고 있는 성경책을 구하려고 들어간 모양이다.
“그래서요?”
“불이 활활 타고 있는 소각장에 몸을 던지려는 진수를 보는 순간 미친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에서 붙잡았죠. 사실…… 솔직히 말해 친구를 구하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녀석이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난 살인자가 되는 거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뒤에서 붙잡아도 몸부림을 치며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리려고…… 말리려고 때린 겁니다. 정신 차리라고. 저런 게 대체 뭐라고 목숨까지 던지려고 하냐고…….”
의도는 불손하나 결과적으로 친구 목숨을 구했다. 물론 구한 목숨이 사람 열셋을 죽인 살인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지만. 하준우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때부터 저는 진수를 피하게 됐습니다. 싸울 때 미친놈처럼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드는 놈에게도 물러서지 않았지만, 진수는 달랐습니다. 광신도의 눈빛이라고 할까…… 건드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아이로 보였습니다.”
“구타는 두 번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예…… 두 번 맞습니다.”
“두 번째는 왜 그랬습니까?”
“그게…… 과학실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걸 본 제가 욕을 했는데…… 그게 빌미가 되어서.”
“그 이상한 짓이 무엇이었습니까?”
하준우가 한숨을 쉰다.
“그게…… 그날 학교에서 행사가 있었습니다. 인근 성당에서 바자회를 하는 날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진수가 자꾸 과학실에서만 꼼지락거리더군요. 도대체 뭘 하는 건가 했지만 소각장에서 일이 있은 후 가급적 피해 다니다 보니 그냥 신경을 껐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과학실 서랍에 물건을 두고 와서 잠깐 거길 들어갔는데…….”
“과학실 서랍에? 거기 개인 물건을 둬요?”
보통 자기 캐비닛에 두거나, 책상 아래에 딸린 서랍에 물건을 두는 것이 보통인데. 하준우가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담배와 라이터가…….”
아, 안 걸리려고 거기 숨겨둔 모양이다.
“예, 계속하세요.”
“예…… 그날은 토요일 오후라 수업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저는 보통 수업 끝나고 과학실 들러서 한 개피를 태우고 집에 가곤 했는데 그날은 행사 한다고 운동장에 어른이 많았습니다. 어디 구석에 가서 한 대만 태우고 가려고 과학실 문을 열었는데…….”
“장진수가 있었습니까?”
“예…… 며칠이나 과학실에서 대체 뭘 하나 했었는데 정말 해괴망측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죠?”
하준우가 공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 그게…… 뉴스에서 봤습니다. 녀석이 사람을 죽이고 원통에 넣고 액체를 채워 전시했다고…….”
“예, 그랬습니다.”
“그것이었습니다.”
“뭐……요?”
“아, 오해는 마세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순간 움찔했다가 안심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 단백질 표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해부 정도는 중학교 과학 시간에도 배우니까. 파충류나 곤충으로 했다면 그건 학문적 욕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하준우는 그 행위를 해괴망측하다고 표현했다.
“그럼 무엇이었습니까?”
“……뱀이었습니다.”
뱀? 중학교 과학 시간에 뱀 해부를 배우나? 하준우가 자기 변호를 위해 빠르게 말을 잇는다.
“그것도 살아 있는 뱀이었습니다. 어디서 잡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뱀이 원통 안에 가득 찬 액체 안에서 괴로움에 몸을 뒤틀고 있었습니다. 진수는 그걸 보고 소름 끼치게 웃고 있었고요.”
확실히 중학교 때 봤다면 충격적인 장면일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장진수를 때릴 이유가 될까?
“놈을 때린 이유는 무엇이었죠?”
하준우가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쉰다.
“그때는 진수에게 감정이 안 좋을 때라…… 하는 짓이 하도 이상해서 제가 한 소리 했습니다.”
“뭐라고요?”
하준우가 그때를 회상하며 대화를 말한다.
‘야, 미친 새끼야. 너 지금 그게 뭐 하는 짓이야?’
‘……낄낄.’
‘소름 끼치게 웃지 좀 말고, 병신아. 불쌍한 뱀 가지고 뭐 하는 짓이냐고!’
‘불쌍해? 뱀이?’
‘당연하지!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해도 뱀은 엄연한 생명이야! 넌 매일 성경 처읽고 있는 놈이 그것도 모르냐?’
‘뱀은 나빠.’
‘나도 알아, 이 새끼야! 나쁘다고 함부로 죽여도 되냐는 말이다!’
‘뱀은 이브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먹게 했어.’
‘뭐?’
‘뱀은 악마야. 뱀은 인간을 유혹해 죄를 짓게 만들어.’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네가 뭘 알아! 나는 오늘 악마를 잡고 있어. 그리고 난 이걸 성당 바자회에 마스코트로 낼 거야.’
하준우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너무 황당했습니다. 제가 성당 다니는 놈은 아니지만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 성당 행사에 저런 게 마스코트로 걸려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소름이 끼쳤습니다……. 저는 결국 발로 원통을 차버렸고 진수는 바로 제게 달려들었습니다.”
장진수는 몸이 약하다. 그래서 항상 여자만 노렸다. 화가 나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맞은 것이다.
‘미카엘 신부님 말씀이 맞았다. 성당 주최의 바자회 행사에 장진수가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어.’
당시 놈은 과학실에서 이 사람에게 맞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못 나온 것이다. 하준우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때…… 제게 덤벼들던 진수 눈빛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눈이 벌게져서 맞고 나가떨어져도 또 덤비고, 다시 달려들고…… 나중에는 때리던 제가 질려 버려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진수와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행동을 하든 뭔 짓을 하든 투명인간 취급했으니까요.”
친구의 고백을 듣고 있던 이유진이 말했다.
“하지만 형사님. 준우가 나쁜 짓을 한 건 맞지만 지속적으로 괴롭힌 건 아니에요. 제가 알기론 이 두 번이 끝인데. 정말 진수가 이것 때문에 복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뒤에서 듣고 있던 오진규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게 문제라는 거요. 자기 죄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 겨우 그까짓 일로 내게 복수를 하겠냐는 생각 자체가 이미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니까.”
이유진의 입이 다물어진다. 오진규가 일어나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하지만 이 사람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탈옥까지 해서 복수를 하러 오기에는 동기가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과장님.”
동의한다. 만약 놈이 자유의 몸이었다면 그때의 복수를 꿈꿀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탈옥까지 해야 할 이유로 보기는 어렵다. 나는 이유진을 보며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신은 놈을 괴롭힌 적이 없어 보이는데.”
이유진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전 없어요. 그리고 사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누굴 괴롭히고 따돌리고 하는 문화도 없었어요. 진수가 워낙 특이한 애라 친구들이 가까이하지 않긴 했지만 딱히 괴롭힌 사람도 없어요. 준우와 일이 있었던 것 말고는 다른 일은 들어본 적도 없고.”
음, 학우 관계의 문제가 있었지만 범죄의 동기가 될 만한 사건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좋습니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 더 하죠.”
“네, 형사님.”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장진수. 놈이 스승이라고 인정한 사람. 혹은 유독 잘 따르던 선생님이 계셨습니까?”
이유진과 하준우가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고개를 젓는다.
“아뇨, 진수는 오직 종교에 미친 애였어요. 특히 도덕 선생님이 유교나 도교 정신에 대해 가르칠 때는 그 조용하던 애가 조목조목 종교적 반박까지 했던 아이였으니까. 따르는 건 물론이고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도 없었어요. 진수가 도덕 선생님께 하는 짓을 본 다른 선생님들도 다들 멀리하셨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