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61화 (261/328)

살인의 기억 261화

19. 기억의 편린(5)

도교(道敎)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민족종교로, 신선 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음양, 오행, 복서, 무축, 참위 등을 더하고, 거기에 도가(道家)의 철학을 도입해 다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종교이다.

유교(儒敎)는 종교라 볼 수 없다.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공자(孔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의 학문을 이르는 말로, 동아시아 특유의 철학 체계이다.

윤리, 혹은 도덕 시간에 간단히 배우는 학문. 선생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이 내용에 대해 심도 깊게 다루지 않는다. 차라리 유교가 성행하던 조선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국사 선생님이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곤 한다.

놈은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타 종교에 대해 알려주는 것조차 싫었던 걸까?

나는 두 사람에게 몇 가지를 더 물은 후, 오진규에게 지시를 내렸다.

“두 분 일터까지 모셔주시고, 혹시 모르니 두 분 거처와 일터에 순찰 인력 배치해 주세요.”

“예, 과장님.”

이유진은 순찰 인력으로 모자라니 24시간 경호 인력을 배치해 달라고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고뇌에 빠진 내 얼굴을 보고는 감히 더 말을 붙이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간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연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음으로 선생님들 인터뷰가 남았습니다.”

선생님이라. 놈이 말한 스승. 그것이 꼭 학교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스승은 꼭 학교 선생님이 아닐 수 있다. 학원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 서예 선생님이나 바둑, 미술이나 피아노 선생님께도 인생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학생이다.

학교는 몰라도 학원 다닌 경력까지 다 파고들려면 시간깨나 들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연주가 맡고. 특이한 사항 있으면 보고해 줘.”

“예, 과장님.”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학교를 벗어나 인근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오진규가 따라오려 했지만 잠시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거절했다.

낡아 윤활유가 모자란 그네는 흔들릴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지만 오히려 좋다. 백색 소음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좋은 도구이니까.

나는 눈을 감고 놈의 편지의 서문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에는 항상 문이 열리고 미래를 열어주는 순간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어준 선생님이 있었습니까?

선생은 영원한 영향력을 안겨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영향력이 어디에서 중지될지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학생이 영원히 자기의 일을 즐겁게 해내게 하는 선생은 월계관을 쓰게 될 것이라고.

놈은 자신의 스승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유명해질수록 자신의 선생은 월계관을 쓴 것과 같은 명예를 누릴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을 보라. 놈의 학창 시절 동문이었다는 이유로. 놈을 가르친 선생이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가 스쳤던 사람들 중 누구도 그의 스승으로 생각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놈의 스승은 누구일까?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

바로 이 편지의 문단 중 마지막 한 줄이다.

모든 예술 작품은 실행되지 못한 범죄입니다.

과연 마지막 말은 무슨 뜻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눈을 감았다. 사실 몇 번이나 놈의 기억을 읽으려 시도를 했다. 하지만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있는 놈에게 악의를 가져봐야 과거의 사건에 대한 악의였다.

그래서인지 기억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나는 놈이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는 기억을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예방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누군가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니. 내가 진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이 맞나 싶다.

나는 그네에 앉은 채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모든 예술 작품은 실행되지 못한 범죄이다.”

자신이 실행한 것은 범죄. 그것은 완성된 예술 작품이란 뜻이다. 그래, 이 말 자체는 알아듣겠다. 하지만 이 글귀가 왜 스승을 찬양하는 글 뒤에 붙어 있냐 이거다. 단순히 횡설수설하는 걸까?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학교 다닐 때도, 대학 시절에도 전교 1등과 과 수석을 하던 놈이 편지 한 통 문단에 맞게 쓰지 못할 리가 없다.”

나는 긴 한숨을 쉬며 놀이터 끄트머리를 초점 없는 눈으로 보았다.

“스승…… 스승…….”

사람은 누구에게나 스승이 있다.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가령 ‘나는 인생에 스승으로 삼을 만한 인물이 없었고, 그것이 안타까웠다. 좀 더 좋은 스승이 있었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 나아졌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착각이다.

그 착각의 원인은 스승이란 존재가 꼭 당신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존재라고 믿는 것에서 기인한다.

내 인생을 망친 사람. 내 인생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끌고 간 사람도 인생의 스승이다. 당신은 그에게서 그리 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스승은 항상 인생 주변에 머무른다. 그들의 직책은 꼭 선생이 아니다. 주변 어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친구일 수도 있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 나쁜 길로 빠져들었다? 그는 그 나쁜 친구를 스승으로 삼아 배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목 과장님 말처럼 장진수에게 살인의 미학을 가르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결론이 된다.

나는 턱을 괴고 눈동자를 뒤룩거렸다.

“내 인생의 스승은.”

바로 말할 수 있다. 수녀님 두 분과 강혁 아저씨다. 사실 나는 친구가 없다. 성격이 나빠 친구를 못 사귀었다고 하기보다는 인생이 너무 바빴다.

고아라는 족쇄에서 풀려나기 위해 발버둥 치듯 해왔던 공부. 경찰을 꿈꾸고 나서 진행했던 지옥 훈련들. 나는 하루가 부족한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어느 저녁 친구의 부름에 할 일 없이 집에서 뒹굴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가 술이나 마시는 인생은 내 삶과 거리가 멀었다.

물론 그게 친구가 없는 이유가 될 순 없을 거다. 모르긴 해도 내 성격에 문제가 있긴 하겠지. 그토록 좋아하는 수녀님께도 일 년에 몇 번 갈까 말까 할 정도로 잔정이 없는 성격이긴 하니까. 그냥 자기변명이다.

나는 수녀님들께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배웠다. 나는 공부를 잘했다. 1등 한 성적표를 가지고 와 수녀님들께 자랑하듯 보여주면 수녀님들은 웃으며 잘했다 칭찬하시면서도 이렇게 말하셨다.

‘똑똑한 돼지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도경아.’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인간인데.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그럼 내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이젠 이해가 된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을 상대하며 살아가니 더 여실히 느껴진다. 물론 꼭 범죄를 일으킨 이만이 짐승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생각과 이치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이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나 하나 편하면 됐지. 법? 다른 사람들 열심히 지키라고 해. 그거 다 지키고 사는 건 병신이나 하는 짓이야.’라는 생각.

그런 인간이 소수이기에 망정이지 다수가 그랬다간 법도 질서도 없는 세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다수가 그 법을 지키고 있기에 소수의 위법이 사회정의를 어그러뜨리는 수준까지 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돼지 새끼들이 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그런 의미에서 수녀님들은 내가 인간이 되게 해주신 분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강혁 아저씨.”

아저씨는 내게 삶의 의미를 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과 달라 힘들고 괴로웠던 학창 시절.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늘 혼란스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성당에 딸린 보육원에서 성장한 나는 내가 무당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린 나는 TV에 나와 신병에 대해 떠드는 무속인들을 볼 때마다 무서웠다. 나도 혹시 저렇게 되는 건가? 저런 색동옷에 이상한 화장을 하고 나무젓가락 흔들며 사람들 코 묻은 돈이나 떼먹고 살아야 되는 거야? 난 그러기 싫은데. 왜 내겐 이런 게 보이는 거지?

어린 나는 무서웠다.

그리고 그런 내게 처음으로 네 능력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줬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저씨이다.

아저씨와의 첫 사건은 내가 경찰이 되기 전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아저씨는 경찰이 되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나의 멘토이며 훌륭한 스승이다. 아저씨처럼 늙어가고, 아저씨처럼 성공적인 경찰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게 이런 스승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수녀님들께도 스승님이 계셨겠지? 누구일까? 연배 높은 수녀님? 혹은 하느님일지도 모른다. 어떤 신부님은 자신의 스승이 성경책 안에 있다고 하신 분도 있었다.

그럼 강혁 아저씨는 어떨까? 분명 선배 경찰이겠지. 혹은 부모님의 바른 교육일 수도 있다.

“선배 경찰?”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문득 아저씨 기억을 읽었던 생각이 난다.

“하나은 경사.”

백골 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그 경찰. 아저씨는 그녀의 묘비에 방문해 눈물을 보였다. 나이 차를 보았을 때 그녀는 강혁 아저씨의 선배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녀가 아저씨의 스승일까?

“하나은…… 하나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때, 전화기가 울린다. 내가 자기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고 전화한 걸까? 아저씨의 전화다. 나는 잠시 답답했던 마음을 잊고 빙긋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어, 도경아. 어디냐?

“저 단양이요.”

-그래, 오늘 뉴스 나가는 거 알지?

“예, 아저씨.”

-뉴스 터지고 나면 제보가 빗발칠 거다. 청에 전담 제보 전화 센터를 구축해 뒀다. 센터장에게 네 연락처 남겨놨으니 필요한 경우에 연락이 갈 거다. 모르는 번호라고 안 받지 말고.

“예, 알았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음, 아니. 입맛이 없어서.

입맛이 없을 만도 하지. 이제 곧 여론이 폭풍처럼 몰아칠 텐데. 처음에는 다들 충격을 받는 선에서 그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찰 수사에 대한 반감이 커질 것이다.

연쇄살인마이자, 탈옥수를 언제까지 활보하게 놔둘 거냐는 질책들이 있겠지. 나라도 그 생각을 하면 밥이 안 넘어갈 것 같다.

‘나라도 위로해 드려야지.’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다른 말을 꺼냈다.

“아저씨도 인생에 스승이 있어요?”

-응? 갑자기 뭔 소리야?

“그냥 궁금해서요.”

-싱거운 새끼. 스승이라. 당연히 있지.

“경찰?”

-그래, 선배님들께 보고 배운 걸로 살아가고 있지. 개중에는 개떡 같은 쓰레기 새끼들도 있었지만 그런 놈에게는 물들기 싫어 애초에 가까이 두지도 않았다.

“그렇구나.”

-그건 갑자기 왜?

나는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가 내 표정을 못 봐서 다행이다.

“그냥…… 내 스승은 아저씨가 아닌가 해서요.”

-…….

너무 낯 간지러운 말을 했나? 전화기 너머 아저씨가 침묵한다. 나는 괜히 민망해 말을 덧붙였다.

“그냥 아저씨 반만이라도 따라가는 경찰이 되는 게 꿈이라고요, 하하. 식사 꼭 챙겨 드세요! 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게요!”

나는 얼른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때 아저씨가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도경아.

“네?”

-청출어람이란 한자성어 알지? 푸른색은 풀에서 나왔지만 그 풀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고작 나 정도의 사람이 되지 말고 날 밟고 일어나라. 그래서 더 큰 사람이 돼라. 그게 내가 바라는 일이다.

“…….”

-끊는다, 간지러운 새끼야.

쿡. 웃음이 난다. 나만 민망한 줄 알았는데 아저씨가 더 부끄러웠구나. 나는 빙긋 웃으며 끊긴 전화의 액정을 바라보다 문득 눈동자가 흔들렸다.

“스승을…… 밟고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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