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63화
19. 기억의 편린(7)
급히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오진규가 전화기를 붙들고 외친다.
“이름 구종식, 세례명 미카엘이다! 현재 쌍문동 성당 주임 신부로 근무 중! 즉시 순찰대부터 파견하고, 형사들 깔아! 이 새끼야, 의경 중대로 안 돼! 상대는 연쇄살인범이다, SOU(경찰 특공대)에 미리 연락해서 대기해 달라고 하고!”
연주가 노트북으로 미카엘 신부의 신원 확인을 한 뒤 말했다.
“과장님, 미카엘 신부님의 거처는 성당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통 그렇다. 따로 가까운 곳에 숙소를 마련해 주는 성당도 있고, 성당 옆에 보육원이 있을 경우 숙소가 성당과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자란 쌍문동 성당 신부님들은 성당 옆에 딸린 숙소에서 생활하셨다.
나는 얼른 전화를 들어 수녀님들께 연락을 드렸다.
“수녀님! 괜찮으세요?”
-도경아…….
루이사 수녀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나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장진수 그 새끼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건드린다면. 나는 어쩌면 그 새끼를 진짜 죽일지도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겁먹은 수녀님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순 없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침착하게 물었다.
“수녀님. 지금 성당에 누가 와 있죠?”
-…….
“지금 옆에 있습니까?”
-응.
“바꿔주시겠어요?”
수화기 너머로 수녀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꿔달라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수녀님 목소리 외에 다른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노이즈의 울림으로 나는 누군가가 수녀님 전화를 들었음을 눈치챘다.
“장진수.”
-…….
씹어 먹을 듯이 내뱉는 말에 차 안에 있던 팀원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본다. 오진규는 상황을 눈치채고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빨리 쌍문동 성당으로 SOU 출동 요청해, 저격수 대기시키고.]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전화기 너머에 나직한 목소리를 더했다.
“장진수, 나 기억하나?”
-…….
“기억 못 할 리가 없겠지. 탈옥 후에 편지까지 보냈는데.”
-…….
“덕분에 꽤 번거롭게 됐어. 종로 경찰서에서 나온 지 꽤 됐거든. 네가 편지를 보낼 때마다 경찰 내부에서 다시 내게 전달하는 수고를 끼치게 해서 선배들에게 죄송하게 됐고 말이야.”
한참 말이 없던 장진수. 놈은 아주 천천히 말을 꺼낸다.
-어디 멀리 가신 겁니까?
오랜만에 듣는 놈의 목소리이다. 여전히 흥분한 살인범과는 거리가 먼 매우 침착한 목소리. 지금 놈은 수녀님과 신부님, 거기에 더해 아이들까지 인질로 붙잡고 있다. 절대 놈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음, 그리 멀리 가진 않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있으니까. 종로 경찰서와 크게 멀진 않아.”
-그건 몰랐군요.
“모를 수밖에. 자, 그럼 이제 나와 이야기를 좀 해볼까?”
-아직 당신과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할 이야기가 생기면 편지를 보내죠.
“어허, 끊지 말고. 너 거기가 어디인지 알고 간 거냐?”
-…….
“너 미카엘 신부님 찾으러 갔지? 네 인생의 스승님 말이야.”
-…….
“네가 무슨 목적으로 거길 갔는지 이미 알고 있다.”
-……역시 당신은 다른 경찰과 다르군요.
“그렇지? 네가 내는 수수께끼는 참 어려워. 나 아니면 맞히기 힘들지.”
-안 보던 사이에 자신감이 충만해지신 것 같군요.
“그럴 만하니까 그런 거지. 나 너 상대하던 경위 시절 촌뜨기가 아니거든. 나 총경에 국가수사본부 과장이다, 이제.”
-축하드려야 합니까?
“해주면 좋고.”
-일단 축하드리죠. 그럼 끊습니다.
“어이, 장진수.”
-…….
나는 전화를 끊으려는 장진수를 불렀다. 다급히 불렀지만 최대한 느슨한 어투로. 나는 지금 무척 긴장해 있다. 혹시 이놈이 전화를 끊고 수녀님과 아이들을 해칠까 봐.
“여기서 멈춰, 이 새끼야.”
-…….
“여기서 멈추면 아직 희망은 있다.”
거짓말이다. 상대는 무기수다. 게다가 탈옥까지 했다. 놈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 대한민국이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나라인 건 세상이 다 안다. 상대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다. 가장 최선은 있던 자리에 돌아가는 것뿐이다.
물론 이전보다 훨씬 더 폐쇄된 공간에 갇힐 것이다. 나는 단지 시간을 끌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성당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30분이나 남았다. 관우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지만 만약 이 전화가 끊어진 후 장진수가 행동을 시작한다면 막아낼 수 없다.
오진규가 자기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입을 뻥긋한다.
‘SOU 도착까지 7분.’
7분. 너무 긴 시간이다. 나는 그와의 대화에 적막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말을 이었다.
“이제 와 미카엘 신부님을 죽인다고 네 작품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너도 알지 않나? 네가 저지른 일은 예술이 아니라 범죄다. 이제 좀 깨달아, 이 새끼야!”
하지만 전화기 너머는 조용하다. 설마 전화를 끊은 거야? 나는 핸드폰 액정을 보았다. 아직 통화 중이다.
“장진수! 장진수! 대답해!”
-누가 내 작품을 완성하러 왔다고 했습니까?
“…….”
뭐? 모든 예술 작품은 완성되지 못한 범죄라고 했다. 자기 스승을 죽이는 것으로 예술의 완성을 보러 간 것이 아니었단 말이야? 그럼 거긴 도대체 왜 간 거야? 물어보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장진수, 아니, 진수야. 내 말 좀 들어봐.”
-…….
“네가 있는 거기에 아이들이 있다. 너도 알지? 보육원 딸린 성당인 거.”
-압니다.
애초에 난 아이들이 수녀님이나 신부님이 죽는 것을 보면 어떨 것 같냐는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곧 내 입을 강제로 막고 말을 멈췄다. 상대가 누구인지 잊은 것이다. 어쩌면 놈은 자신의 살해 장면을 본 아이들 중 자신과 같은 또 다른 예술가의 탄생하기를 반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차라리 수사와 관계된 질문으로 시간을 끌자.
“애들은 죄가 없다. 수녀님도 마찬가지고.”
-압니다.
알아? 안 건드리겠다는 뜻인가? 그럼 도대체 왜 수녀님과 같이 있는 거야?
“지금 거기 미카엘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같이 계신가?”
-예.
“아이들은?”
-애들은 자는 것 같습니다.
일단 다행이다. 애들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었구나. 하지만 혹시 모른다. 눈이 돌아간 살인마가 신부님과 수녀님들을 죽이고 잠이 든 아이들까지 건드릴지도 모른다. 상대는 정상인이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종교관은 결코 옳지 않다. 신은 인간에게 사람의 생명을 죽일 권리를 주지 않았어.”
-압니다.
안다고? 이 새끼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여태껏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인 거잖아. 2년 사이에 감옥에서 교화라도 된 거야? 아니지, 교화됐다는 놈이 탈옥을 했을 리가 없다.
말문이 막히자 또다시 적막이 흐른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된다.
“종로에 있던 2층 집에 갔었지?”
-…….
“거기서 넌 성경책을 가져갔다.”
-…….
“단양에 있던 본가에도 갔었지. 지하실의 비밀 공간에서 넌 책을 가져갔다.”
-…….
“아마도 그건 일기장이겠지.”
-…….
“맞지?”
-…….
“아닌가?”
-…….
“장진수, 대답해.”
-꼭 취조받는 기분이군요. 2년 전의 그때처럼.
“네가 범죄자이고, 내가 경찰인 이상 우리 입장은 바뀌지 않아. 질문은 내가 하고, 넌 답을 한다.”
-여긴 경찰서가 아닙니다만.
“경찰서이건 아니건 상관없어. 우리 입장은 여전히 같다.”
-그런 이야기는 잡힌 후에 듣죠. 끊습니다.
“잠깐!”
-또 뭡니까?
이대로 전화가 끊기면 안 된다. 나는 곁눈질로 오진규를 보았다. 그는 GPS로 SOU 이동 동선을 확인하며 표정을 찡그린다. 아직 도착 전인 모양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하나만 더 묻자, 장진수.”
-딱 하나입니다.
“미카엘 신부님이 네 스승이냐?”
-…….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인생의 한 부분을 배운다. 가르치는 자가 1이라고 가르쳤을 때 누군가는 1이라 배우고, 누군가는 2라고 배운다. 2라고 배운 이가 선생을 원망해도 될까?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다 1이라고 배웠다면 그건 잘못 받아들인 사람의 잘못이 아닐까?”
-…….
“장진수. 미카엘 신부님은 죄가 없다. 배움을 받아들일 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었던 거야. 인정해, 네 종교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도 인정하라고.”
-…….
장진수는 말이 없다. 하지만 통화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놈은 내 말에 흔들리고 있을까? 뭐든 좋다. SOU가 도착할 때까지 전화만 끊지 말고 있어, 제발.
한동안 말이 없던 놈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통에는 한계가 있으나, 공포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사람이 소유한 감정 중 공포와 두려움만큼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은 없지요.
“……뭐?”
-지금의 당신은 내가 아는 그때 형사가 아니군요.
“…….”
-두려우십니까?
두렵다. 미칠 듯이 두렵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성경에는 총 365번이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고통받기 두려워하는 자는 두려움 때문에 고통받는 법입니다.
들을 가치도 없는 궤변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핸드폰을 붙잡은 손을 덜덜 떨고 있다.
“너 이 새끼. 거기 있는 사람들 건드리면 반드시 죽여준다.”
-…….
“듣고 있어, 이 개새끼야?!”
바로 그때 오진규가 고개를 번쩍 들고 마구 끄덕이는 것이 보인다. SOU가 도착했다는 신호이다. 나는 손을 빙빙 돌려 지시를 내렸다.
‘저격수 배치.’
‘알겠습니다.’
‘필요시 발포 허가합니다. 단, 절대 치명상은 피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에 있는 놈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든다.
-걱정 마세요, 저는 아무나 죽이지 않습니다.
이 새끼가 개소리를 골라가며 하는구나. 그럼 네게 죽은 그 사람들은 전부 이유가 있어 죽였다는 말이야?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마음 같아서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나는 마음을 억눌렀다.
“진수야. 잘 들어라. 지금 성당 주변이 포위됐다. 그중에는 저격수도 있어.”
-…….
“흉기를 들고 있다면 즉시 내려놔.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러나라. 그럼 아무 일도 없을 거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들어준다. 그러니 여기서 멈춰.”
고뇌하고 있을까? 장진수는 아무 말이 없다. 됐다, 이제 SOU까지 출동했고, 저격수 배치까지 알렸다. 놈은 포기할 거다. 자신의 생명이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놈은 보통 미친놈이 아니니까. 그때 장진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지나치게 두려워합니다. 하나의 두려움이 다른 하나의 두려움을 제거하죠. 사람의 위협이 나를 놀라게 할 때 나는 하느님의 진노를 생각할 겁니다. 그럼 이만.
전화가 끊기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급히 오진규를 바라보며 외쳤다.
“SOU에 연락해서 놈이 이상행동을 하면 즉시 발포하라고 지시하세요!”
오진규는 이미 통화 연결이 되어 있던 SOU 책임자에게 외쳤다.
“이상행동 즉시 발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