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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64화 (264/328)

살인의 기억 264화

19. 기억의 편린(8)

20분 뒤 쌍문동 성당.

관우가 모는 차가 성당 근처에 다다르자 골목길을 꽉 메운 순찰차 불빛이 나이트의 눈부신 조명처럼 사방을 비추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무슨 일인지 나와 본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도, 그들을 밀어내기 위해 폴리스라인을 치고 통제하는 순경들의 모습도. 모두 슬로우비디오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멍하게 초점 잃은 눈으로 창밖을 보는 날 흔들어대는 연주의 목소리도 아주 느리게 들린다. 마치 늘어난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처럼.

“과장님! 과장님!”

나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때 기적처럼 연주의 느린 말 중 일부가 귓가로 꽂혔다.

“수녀님과 아이들은 무사하다고 해요! 정신 좀 차려요!”

나는 급히 숨을 들이켰다.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긴장했던 것이다. 나는 거친 기침을 내뿜었다.

“콜록! 콜록!”

연주가 내 등을 두들기며 창밖을 본다.

“저격수가 발포했답니다, 오른쪽 허벅지에 한 발, 복부에 두 발 쐈는데 최대한 치명상은 피해 가며 쏴도 상대가 계속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어찌 될지 모르겠답니다.”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주를 보았다.

“수녀님들…… 진짜 괜찮으신 것 맞지?”

연주가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기 보이네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는 아주 간단한 움직임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것 같은 목뼈를 억지로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놈이 총을 맞을 때 가까이 있었는지 얼굴에 피가 튀어 안색이 하얗게 질린 두 분 수녀님들이 순경들의 부축을 받아 구급차로 이송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두 분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몸속에 있는 피가 전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에 축 늘어져 버린 나. 관우와 오진규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차 밖으로 튀어 나갔다가 돌아와 내 상태를 보며 말했다.

“과장님, 괜찮으신 겁니까?”

“과장님, 구급 대원들 잠깐 와달라고 할까요?”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왜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괜찮다. 수녀님들과 아이들이 무사하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힘없이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난 괜찮아요. 장진수는 어떻게 됐습니까?”

“방금 인근 병원으로 긴급 호송됐습니다. SOU 팀장 말로는 전화 통화를 끊자마자 놈이 신부님에게 달려들었답니다. 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을 미리 확인해 둔 터라 즉시 발포했고요.”

나는 긴장 때문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늘어졌다.

“예…… 수고 많았습니다. 현장 정리 후에 병원으로 가보죠.”

오진규와 관우가 현장 정리를 위해 자리를 뜬다. 혼자 남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관찰하고 있는 연주. 나는 연주에게 웃음을 보이며 어깨를 툭툭 쳤다.

“괜찮다. 너무 긴장해서 순간 에너지가 다 빠져나갔나 봐. 잠깐 쉬면 괜찮아지니까 너도 가서 일 도와.”

“정말 괜찮아요?”

“응.”

연주는 잠시 날 관찰하다 입술을 깨물더니 차에서 내려 자기 일을 하러 간다.

나는 멍하게 차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밤중에 난 몇 발의 총성.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가지 않는 한 총성을 직접 들어본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좁은 골목길 밖에서 달려오는 기자들의 차량이 보인다. 한두 대가 아니라 십여 대는 넘는 차량들이다. 하긴, 연쇄살인마를 그냥 잡은 것도 아니고 총을 쏴서 잡았다는 건 특종 중에 특종이겠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수녀님을 보았다. 내 어머니 같은 두 분 수녀님들. 두 분이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구급차에 앉아 처치를 받고 계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안아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조금만 회복하고 가서 안아드려야겠다.

로사 수녀님은 너무 놀라셨는지 구급 대원이 처치를 위해 자기 손을 잡아도 깜짝깜짝 놀라고 계신다.

루이사 수녀님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초점 잃은 눈빛이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개구리만 봐도 놀라 펄쩍 뛰는 두 분인데 살인마의 지척에서 사람이 총에 맞는 모습을 본 건 평생 잊히지 않을 트라우마일지도 모른다.

두 분 수녀님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주차된 다른 구급차 뒤에 앉아 있는 미카엘 신부님 모습도 보인다.

장진수는 신부님을 덮치려는 와중에 총을 맞았다. 그래서인지 신부님은 두 분 수녀님보다 훨씬 많은 피를 묻히고 앉아 계신다. 그의 표정 역시 두 분 수녀님과 다르지 않다.

언제나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던 성당 앞. 오늘은 그런 성당 앞이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멍하게 나의 추억이 망가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어?”

주황색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구급 대원의 옷이 서서히 흑백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창백한 안색의 수녀님 모습도, 멍한 신부님 모습도 모두가 흑백으로 물들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이게 뭐지?

장진수 놈은 이미 잡았는데. 뭘 보여주는 거야, 지금?

* * *

뚜벅뚜벅, 뚜벅뚜벅.

조금 빠른 걸음을 걷는 소리. 나는 지금 구두를 신고 있는 모양이다. 새로 산 구두인지 걸을 때마다 굽 소리가 딱딱거리며 바닥을 두드린다.

나는 지금 아주 어두운 골목길을 빠르게 걷고 있다. 지금 내 마음은 뭔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오금이 저리는 느낌이지만 그것은 결코 나쁜 기분이 아니다.

회색 벽을 지나 또 다른 골목길로 접어들자, 저만치 앞에 가는 여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지금 뭔가에 쫓기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품에 무언가를 들고 있다. 뒷모습이라 확실하지 않지만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소중하게 품고 전력을 다해 뛰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어둠 속에 숨은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녀가 날 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급히 방향을 전환해 다른 골목길로 뛰어든다. 조금 빨리 걸었지만 결코 뛰지 않는 나는 그녀를 따라 골목길을 돌았다. 또다시 골목길 끄트머리에 그녀의 모습이 보였지만 금세 다른 골목길로 사라진다.

나는 사냥감을 몰 듯 조금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쫓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내면의 희열이 점점 차오른다.

새벽녘,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걷는 나는 지금 무척 상쾌한 기분이다. 날 앞서가는 여인이 흘리고 간 냄새를 킁킁거리며 맛있는 사냥감을 사냥하듯 나는 그렇게 빠르게 걸었다.

그녀를 따라가다 보니 조금 넓은 거리가 나온다. 맞은편에는 회색 건물이 보인다. 매우 큰 공장 단지로 보이는데 무슨 공장인지는 모르겠다.

힐끔 옆을 보니 커다란 십자가가 걸린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그 건물 입구에 여성이 보인다.

건물 앞에 조그마한 가로등. 그 아래에 선 여인은 나를 노려보고는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순간 약간 당황했다. 도망을 가도 시원치 않은데 내 쪽으로 온다? 뭐 상관없다. 나는 내 볼일만 보면 되니까.

순식간에 내 쪽으로 달려오는 여자를 잡으려 손에 힘을 주는 그 순간. 여자는 내 5미터 앞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어 다른 골목길로 들어갔다.

나는 물끄러미 여자가 사라진 골목길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다른 사냥감들과 저 여자는 다르다. 모는 맛이 있다고 할까? 아마 내가 해본 사냥 중에 최고의 사냥이 아닐까 싶다.

나는 여자가 들어간 골목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멈칫했다.

분명히 손에 뭔가 안고 있었던 것 같은데. 천에 씌운 무언가를 소중하게 안고 있었던 걸 본 것 같은데. 내 정면으로 뛰어왔던 여자의 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다시 십자가가 걸린 붉은 벽돌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때 골목길 안쪽에서 여자의 외침이 들렸다.

“이리 와, 이 개새끼야! 나 여기 있다! 한번 붙어보자!”

나는 실소를 흘렸다. 역시 사냥할 맛이 나는 사냥감이다. 나는 희열에 찬 웃음을 질질 흘리며 어두컴컴한 골목길로 빨려 들어간다.

그때 내 기억의 산책을 깨는 목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과장님! 장진수 이 새끼가 위독하다고 합니다! 지금 긴급 수술에 들어갔답니다!”

언뜻 방해를 받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기억을 읽다 어두운 골목길로 접어드는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기억에서 빠져나오는 전조 증상이다.

눈을 떠보니 열린 차 문을 붙잡고 있는 관우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머리가 아프지 않다.”

관우가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묻는다.

“예?”

“아, 미안.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밖을 노려보았다.

‘남의 기억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머리 아프지 않은 기억도 있었다. 그것의 차이는 뭘까?’

나는 지금껏 필사적으로 외면했던 사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렴풋이 이 기억이 혹시 내 기억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 의심을 하게 된 건 여러 번 반복된 일련의 사건 때문이다.

먼저 쫓기는 여성의 기억, 아니, 정확히는 여성의 품에 안긴 아기의 기억이 첫 번째이다. 나는 그 기억을 읽고 어지러움과 두통을 겪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혹시 이것이 내 기억이라 두통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했었지만 제발 내 기억이 아니기를 빌었다. 얼굴도 모르지만 그녀가 내 엄마라면 그녀는 무서운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니까.

두 번째. 묘비를 찾은 강혁 아저씨의 기억을 읽었을 때.

나는 이때 조금 혼란스러웠다. 강혁 아저씨와 나는 가깝지만 분명히 남이다. 하지만 묘비를 찾은 아저씨 기억을 읽었을 때도 나는 멀쩡했다.

그리고 오늘.

아마 이것은 어떤 사건일지 모르는 한 사건의 범인이 남긴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어지럽지 않았다.

첫 번째 기억이 내 기억이라 두통이 없었다면 나머지 두 가지의 기억은 왜 두통이 없었던 걸까? 분명히 내가 아닌 남의 기억인데 말이다.

관우가 다시 말했다.

“과장님! 제 말 들으셨어요?”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며 미안한 얼굴로 물었다.

“미안, 뭐라고 했지?”

“어휴, 충격을 많이 받으셨나 보네. 과장님도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냐, 미안하다. 잠깐 딴생각하느라고. 뭐라고 했어?”

“장진수 이 새끼 지금 위독하다고요. 심정지 와서 긴급 수술 들어갔답니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내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모든 것이 본인의 선택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 누구의 탓도 아닌 일이지만 놈의 입에서 들을 것이 많은 지금 녀석이 죽기라도 한다면 너무나 많은 의문들이 풀리지 않고 묻혀 버린다.

“병원이 어디라고?”

“쌍문동 한성 종합병원입니다.”

“수술 들어간 건?”

“5분 전이요.”

긴급 수술이라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당장 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는 천천히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여기 정리되는 대로 병원으로 가자.”

“예, 과장님.”

솔직히 살인마 놈의 안부보다 내 사람들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 지금은 내 사람들을 챙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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