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66화
19. 기억의 편린(10)
병원 앞에 도착하자,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병원 앞에 진을 치고 있다. 리포터들이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긴급 뉴스를 송출하고 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탈옥해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탈옥수이며, 연쇄살인범 장 씨가 조금 전 자신이 유년기에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을 찾아가 흉기를 휘두르려 하다 담당 형사의 요청으로 출동한 경찰 특공대의 저격수에게 세 발의 총을 맞고 이곳 쌍문동 H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병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장 씨는 폐에 관통상을 입었으며, 의식이 없는 상태로 실려와 응급실에서 심정지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현재 긴급 수술 중이며 의식이 회복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상 MCC 뉴스, 오진명입니다.]
차에 탄 상태로 밖의 상황을 보던 연주가 관우에게 말했다.
“차 돌려, 지금 내리면 연예인 취급 받을 거야. 장례식장 입구 쪽 비었을 테니까 그쪽에 대고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는 연주의 의견대로 장례식장에 차를 대고 최대한 조용히 병원 본관으로 이동했다.
로비 안에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다행히 아주 늦은 시간이라 일반 환자들은 없는 로비. 아닌 밤중에 난리가 나 호출당한 병원 직원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병원 로비 전체에 퍼져 있는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구석진 기둥에 숨어 상황을 살폈다. 연주가 한숨을 쉰 뒤 날 바라본다.
“이래서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진입이 불가능하겠네요. 그나마 여기서 제 인상이 제일 봐줄 만하니까 기자인 척하고 슬쩍 직원 한 명 불러오겠습니다.”
관우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우린 남자 셋인데 그럼 네가 제일 괜찮지, 당연한 소릴 하냐. 너만 여잔데.”
“토 달지 마, 새끼야.”
연주가 관우 뒤통수를 슬쩍 친 후 원무과 직원들이 모인 곳으로 간다.
기자들이 연주를 힐끔거렸지만 보통의 여기자와 연주는 차림새로 구분하기 힘들다. 기자들은 어디 다른 언론사의 기자인가 보다 하고 다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연주가 기둥 뒤로 남자 직원 한 명을 데리고 온다. 나는 그에게 신분증을 내민 후 물었다.
“아직 수술 중입니까?”
“예, 맞습니다.”
“수술 후에 어디로 갑니까?”
“회복실에 있다가, 중환자실로 갈 것 같습니다. 상태가 워낙 위중한 환자라.”
관우가 턱을 부들부들 떤다.
“오, My 건강보험. 저 새끼가 내가 낸 보험금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거 아냐? 오우, 소름 끼쳐.”
나는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직원 통로 있죠?”
“예, 저쪽.”
약 20미터쯤 떨어져 있는 곳이다. 문제는 탁 트인 곳에 있어 기자들 눈에 띄기 쉬운 곳이라는 점이다. 물론 재빨리 뛰어가서 문을 잠가 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직원을 앞세운 후 말했다.
“뜁시다.”
“아…… 예.”
직원이 빠르게 뛰어간다. 물론 연주와 관우가 더 빠르다. 뒤에서 출발했지만 3미터도 못 가 직원을 추월한 두 사람.
물론 직원 통로는 카드 키가 있어야 열리기 때문에 먼저 도착해 봐야 들어갈 수도 없지만 일단 뛰고 보는 두 녀석이다.
우리가 로비로 쏟아져 나오자 본능적으로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기자들.
오진규가 상의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얼굴 팔린다, 숙여.”
우리는 잘못한 것도 없이 도둑놈들처럼 옷으로 얼굴을 가리며 뛰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기자들이 쫓아왔지만 그때는 이미 우리가 직원 통로 안으로 몸을 들이민 뒤였다.
잠겨 버린 문을 두들기는 기자들의 아우성이 들려오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솔직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숨어 다녀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얼굴 팔리면 안 되는 형사이니 숨는 것인데 애초에 기자들이 우릴 찍지 않으면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니 원망은 기자들에게 돌려 버리자.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수술실 앞으로 왔다. 밤늦은 시간이라 텅 빈 수술실 앞 벤치에 놈을 이송한 형사 둘과 순경 둘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우리가 다가오자 경례를 하는 네 사람.
오진규가 그들 중 형사 차림의 경찰들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했다.
“어, 수고들 많았다. 교대해 줄 테니까 그만 들어가.”
형사들과 순경들은 오진규 지시에 두말없이 밖으로 나선다. 역시 아랫사람들에게 카리마스가 대단한 사람이다.
우리 넷은 벤치에 주르륵 앉았다. 수술 중이라는 조명을 뚫어지게 보던 나는 수술실 안에서 나오는 수술 간호사를 보자마자 신분증을 내밀고 물었다.
“긴급 수술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간호사는 내 신분증을 자세히 본 뒤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오진규가 끼어들었다.
“사망할 수도 있는 겁니까?”
간호사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총상이 폐를 관통하며 심각한 조직 손상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환자는 쇼크 상태이며 바이탈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현재 출혈을 최대한 잡아내며 수혈 중입니다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만약 이대로 놈이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SOU 저격수가 징계받는 일은 없다. 만약 언론이 공격한다면 내가 막을 것이고, 내 힘으로 안 되면 아저씨가 막아주실 것이다.
“수술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앞으로 여섯 시간 이상 걸릴 것 같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간호사가 다시 볼일을 보러 가자, 팔짱을 끼고 있던 연주가 말했다.
“만약 저 새끼가 이대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관우가 목 뒤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뭘 어째, 죽어도 싼 놈이 죽고 게임 끝난 거지.”
연주가 관우 뒤통수를 때리려 손을 들어 올리자, 녀석이 얼른 피한다.
“아, 왜! 맞는 소린데. 설마 너 저런 놈도 생명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 할 건 아니지?”
연주가 도끼눈을 뜨고 허리춤에 손을 올린다.
“내가? 너 내 성격 모르냐? 저런 새끼는 내 손으로 죽여도 성이 안 풀리는 사람이야, 내가.”
“그럼 왜 때리려고 해?”
“하, 미친놈아. 저 새끼 탈옥한 놈이라고. 우린 저 새끼 취조도 못 땄고.”
“아무 짓도 안 했잖아? 아니, 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막았지.”
“어떻게 알아, 병신아!”
“어?”
“저 새끼 저거 살인하고 11년이나 안 걸린 놈인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짓을 했는지 어떻게 아냐고! 막말로 몇 년 뒤에 백골 사체라도 나오면? 저 새끼 뒤졌으니 그럼 그 사건은 미제가 될 거 아냐, 상황 파악이 안 되냐?”
관우는 그제야 심각한 얼굴이 된다.
“젠장, 그럴 수도 있구나.”
오진규는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날 바라본다.
“놈이 나와서 살인을 했을까요?”
“…….”
“만약 이대로 저 새끼가 뒤져 버리면 지금은 유야무야 넘어가겠지만 나중에 큰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일단 아직 안 죽었으니 결과를 기다려 보죠.”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놈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네가 생각하는 종교관은 결코 옳지 않다. 신은 인간에게 사람의 생명을 죽일 권리를 주지 않았어.’
‘압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통화하던 당시에는 너무 긴장한 상황이라 잠깐 혼란스럽고 말았지만 이 대화는 심상치 않다.
‘자신의 종교관이 삐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가 잘못된 종교관에 사로잡혀 사람을 죽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인데. 미카엘 신부님을 공격한 건 자신에게 잘못된 종교를 심어줬다고 생각한 걸 테고.
‘놈은 어쩌면 처음부터 신부님을 공격할 목적으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감옥 내에서 이를 깨달았다면 다른 이를 살해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시간을 확인 후 팀원들에게 말했다.
“여긴 제가 지키겠습니다. 다들 어디 가서 잠깐 눈 붙이고 오세요.”
끝까지 자기가 남겠다고 나더러 쉬고 오라고 떼를 쓰는 세 팀원들을 억지로 밀어내고 홀로 벤치에 남은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놈과 통화할 때 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인생의 한 부분을 배운다. 가르치는 자가 1이라고 가르쳤을 때 누군가는 1이라 배우고, 누군가는 2라고 배운다. 2라고 배운 이가 선생을 원망해도 될까?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다 1이라고 배웠다면 그건 잘못 받아들인 사람의 잘못이 아닐까?”
-…….
“장진수. 미카엘 신부님은 죄가 없다. 배움을 받아들일 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었던 거야. 인정해, 네 종교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도 인정하라고.”
-…….
이것은 나의 가치관이다. 나는 이리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을 말했을 때 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내 목소리에서 수녀님과 아이들이 다칠까 두려워하는 공포심을 읽어냈을 뿐이다.
나는 검지와 엄지를 비비며 중얼거렸다.
“신부님도 사람이니 정말 잘못된 종교관을 심어줬을 수도 있지만.”
나는 말을 내뱉고 금세 고개를 저었다.
놈이 신부님을 처음 만난 건 벌써 15년도 넘은 일이다. 잘못된 종교 철학을 가진 신부님이 15년이 지난 지금도 멀쩡히 신부로 근무하고 있을 리가 없다. 대한민국 가톨릭협회가 그런 신부를 용납했을 리 없다.
“그저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냐, 장진수.”
사람들은 항상 누군가를 원망한다. 무슨 일이 있든지 누군가를 원망한다. 정작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데.
원망이란 건 처음에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을 원망이라는 수레에 태워 남에게 밀어놓으면 되니까.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짐이 된다.
나는 보통 사람보다 이 감정 흐름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고아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닌데. 나는 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고통받고 놀림받고, 또 외면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언제나 화가 나 있었고, 화는 얼굴에 드러나 있었으며 그 분노는 내게 다가와 주려던 친구들을 밀어냈었다.
나는 세상을 원망했고, 부모님을 원망했다.
아니, 나는 그저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다.
나의 불안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원망이라는 쉬운 단어에 실어 태워버릴 대상은 항상 존재했다.
나는 두려웠다.
애초에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들킬까 봐.
나는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워 내 모습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수술실 문을 보았다.
“너도 그랬냐, 새끼야?”
연민이라는 감정보다 한심하다는 감정이 앞선다. 나는 아무도 없는 수술실 앞에서 미친놈처럼 중얼거렸다.
“그거 개소리다. 내가 너보다 약간 더 살아봤는데. 그거 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다. 만약에 운이 좋아서 다시 살게 되면 이젠 좀 깨달아라, 이 새끼야.”
피로가 몰려온다. 하루 종일 서울과 단양을 오가느라 진이 다 빠졌다. 게다가 오늘은 수녀님과 아이들 걱정 때문에 한껏 긴장을 했으니 평소보다 더 그렇겠지.
나는 팔짱을 끼고 벤치 뒤 벽에 등을 기댄 후 눈을 감았다. 아직 여섯 시간이나 남았으니 나도 잠시 눈을 붙일 생각이다.
그 옛날 이놈이 일으킨 사건을 처음 마주했을 때 KCSI에서 계장님이 내게 했던 말씀처럼.
“잘 수 있을 때 자둬야지.”
형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나는 조금 성장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