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68화
19. 기억의 편린(12)
대한민국이 며칠이나 시끄럽다. 기자들은 병원 앞에 텐트까지 치고 희대의 살인범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깨어난다고 인터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놈이 깨어났다는 뉴스 자체가 특종이기 때문이다.
장진수가 체포되고 4일이 지나는 동안 각종 언론 매체는 놈이 탈옥 후 체포될 때까지 어디 있었는지 예상 동선을 분석하며, 과연 숨겨진 피해자가 나올 것인지에 대해 귀추를 주목했다.
하지만 어떤 전문가가 나서도 단순 추론일 뿐이다. 모든 것은 놈이 깨어나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야깃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모든 분석 채널의 방송을 챙겨보며 나름의 추론을 내어놓기 시작했고, 인터넷상에 각종 추론들이 난무해 혼란이 점점 가중되고 있다.
개인방송을 하는 일부 BJ들은 경찰 내부에 놈의 살인을 축소한 기밀문서가 있을 거라 주장하기도 했고, 실제 경찰서에 밤중에 몰래 침입해 자료를 보려다 체포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는 체포되는 순간에도 개인 방송을 하고 있었고, 끌려가면서도 외쳤다고 한다.
‘경찰이 놈의 범행을 축소하고 있다! 국민들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놈이 탈옥을 해서 얌전히 있다가 고작 신부 한 명 죽이려 시도하다 잡혔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우리가 보기엔 개 소리지만 문제는 국민들 중 상당수가 그의 말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여론은 경찰에게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경찰은 공개하지 않았다. 아니, 공개하고 싶어도 할 것이 없다. 밝혀진 것이 있어야 공표를 할 테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여론.
처음 경찰에 대한 비난은 피했다 안심했던 것이 무색하게 여론은 다시 경찰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우리는 뉴스를 지켜보며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는 여론의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빠르게 범인을 체포한 경찰의 공로를 인정했던 뉴스 채널에서도 범인이 혼수상태라는 이유로 여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경찰을 비난하는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뉴스 채널을 보던 관우가 리모컨을 집어 던진다.
“아, 씨X. 우리보고 어쩌라고! 범인 새끼가 혼수상태인데 그 새끼 꿈에라도 들어가서 물어봐 그럼? 어련히 기다리면 깨어나서 조사할 건데 뭔 지랄이야, 저게!”
나머지 팀원들은 대꾸하지 않지만 서로 동조하는 분위기이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바로 그때, 내 자리의 전화가 울린다. 핸드폰이 아닌 책상의 전화. 이 전화는 항상 중요한 알림을 가져온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네,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보았다.
“장진수 깨어났다. 바로 병원으로 간다.”
관우가 들고 있던 햄버거를 내던지며 벌떡 일어난다.
“오케이! 이 씨X 새끼 넌 죽었다.”
잠시 후, 종합병원.
놈이 깨어났다는 뉴스가 밖에도 전해졌는지 난리가 났다.
우리는 병원 측의 협조를 얻어 비밀리에 출입할 수 있는 통로를 통해 병실로 올라갔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1인실에 감금된 장진수의 병실. 문 앞에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순경들이 철통 보안을 유지 중이다.
병실 앞에서 대기하자 안에 들어갔던 의사가 문을 열고 나오며 우리를 살핀다.
“저기…… 현도경 형사님이 누구십니까?”
팀원들이 물러난다. 홀로 남겨진 나는 손을 들었다.
“접니다.”
“환자가 형사님만 만나겠다고 하는데.”
사실 예상했다. 놈은 예전부터 나와의 대화에만 응했다. 범죄자들은 어느 순간 자신을 뒤쫓는 형사와 강한 유대감을 가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놈은 어쩌면 이제 나를 친구처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자신을 이해할 유일한 친구.
나는 팀원들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대기하고 있어. 다녀올 테니.”
관우와 연주는 두말없이 물러났고 오진규가 다가오며 속삭인다.
“일기장과 성경. 그거 찾아야 됩니다, 과장님. 거기 답이 있을 겁니다.”
“예, 압니다.”
병실 안에 남아 있던 간호사가 나오며 말했다.
“형사님과 독대하겠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의사를 보았다.
“면회는 얼마나 가능합니까?”
의사가 시간을 확인한 뒤 말했다.
“십 분은 안 넘기셨으면 합니다. 아시다시피 의식은 차렸으나 상태는 매우 나쁩니다.”
“되도록 시간을 지키겠습니다.”
살인범 놈의 건강 따위 내 알 바 아니지만 사건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저 썩을 놈은 살아 있어야 된다. 그래야 누가 죽였는지 모를 미래의 백골 사체가 가진 한을 풀어줄 수 있으니까.
나는 병실 앞에서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문을 열었다.
띠…… 띠…… 띠…….
산소마스크를 쓰고 온몸에 의료기계를 주렁주렁 달고 누워 있는 장진수. 놈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태인 줄 알고 들어온 것이지만 막상 보니 좀 놀랍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대단하게 보일 지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을 닫은 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놈을 노려보았다. 놈은 힘이 없는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다.
“이게 무슨 꼴이냐?”
삐…… 삐…… 삐…….
장진수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쪽이라고 해야 옳다. 놈은 아직 산소마스크를 달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날 따라 놈의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의식이 있다.
나는 놈의 침대 옆에 서서 말했다.
“내가 저격수 배치했다고 했냐, 안 했냐? 아직도 대한민국 경찰은 총기 사용 못 한다는 생각이라도 한 거냐? 예전에도 지금에도. 인질을 잡고 있는 살인범은 언제든 쏠 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 경찰이다, 인마.”
장진수는 가만히 날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말했다.
“긴말 안 한다. 너. 나와서 사람 죽였어?”
“…….”
“고개도 못 돌리냐? 끄덕이거나 고개 젓거나 해서 알려달라고.”
“…….”
어찌 보면 총 맞은 사람이 의식을 차리자마자 윽박지르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인간일 때의 이야기다.
“말 못 하면 신호라도 보내. 죽였어, 안 죽였어?”
놈이 한참 나를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든다. 나는 수신호를 하는 줄 알고 놈의 손을 뚫어지게 보았다. 하지만 놈은 자기 얼굴을 막고 있는 산소마스크를 힘겹게 두드린다.
“뭐? 마스크 떼달라고? 안 돼, 새끼야. 죽고 싶어?”
톡톡…… 장진수는 힘겨운 손짓으로 마스크만 두드린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문을 열고 의사를 불렀다.
“잠깐 마스크 벗겨도 됩니까?”
의사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험할 텐데. 제가 동석해도 될까요?”
그건 안 된다. 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니까.
“그건 힘들고 잠깐 앞에서 대기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부르겠습니다.”
“다른 환자들이 많아서…….”
“잠깐이면 됩니다. 아까 말씀하신 십 분은 지키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꼭 시간 지켜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문을 닫고 놈에게 돌아왔다. 놈은 여전히 날 바라보며 산소마스크를 톡톡 두들기고 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무슨 짓인지.”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산소마스크를 벗기며 말했다.
“너 인마. 이거 오래 벗고 있으면 위험해. 빨리 말하고 다시 써라. 아무리 살인범이라도 경찰과 단독으로 인터뷰 중에 죽기라도 하면 문제가 커지니까.”
나는 산소마스크를 완전히 벗기지 않고 놈의 이마 부근에 올려두었다. 여차하면 재빨리 다시 씌워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진수. 장시간의 수술이 힘들었는지 입술이 가뭄 든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다.
“말해. 나와서 사람 죽였어, 안 죽였어?”
“……안, 죽였……습니다.”
됐다, 그럼. 그거면 됐다. 나머지는 나중에 천천히. 지금은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 망할 추론들만 없애 버리면 된다.
나는 산소마스크를 다시 붙잡았다.
“됐어, 그럼. 이제 다시 써라.”
나는 다시 마스크를 씌우려 하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들어오기 전에 오진규가 강조한 일기장과 성경이 그것이다.
“야.”
“…….”
“너 일기장과 성경. 어디다 숨겼냐?”
“…….”
“말해, 새끼야. 어차피 나중에 다 말해야 돼. 확 한 대 날려주고 싶은데 지금 패면 죽을 것 같아서 봐 주는 거다. 고분고분 해달라는 거 해준다고 잘해준다는 착각은 하지 마라. 아가리 찢고 싶은 거 겨우 참고 있으니까.”
나는 장진수를 내려 보며 으르렁거렸다.
“네가 감히 성당을 덮쳐? 그것도 내가 자란 보육원 성당을? 아주 죽고 싶지?”
장진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하긴 이놈은 그곳이 내가 자란 성당인 것을 모르고 그랬을 테지만 괘씸한 건 어쩔 수 없다.
“처맞기 전에 말해, 새끼야.”
장진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바람 빠진 타이어가 구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편지로…… 말했던 거…… 기억 안 나십니까?”
응? 편지? 편지에 일기장 위치 같은 게 적혀 있었어? 그런 건 못 봤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편지 또 보냈어?”
장진수가 내 눈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연다.
“우리는…… 게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마터면 붙잡고 있던 산소마스크로 놈의 면상을 내려칠 뻔했다. 이 새끼가 총을 맞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직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총 세 발로 부족하지? 서너 발 더 박아줘?”
놈이 씩씩 하는 거친 숨소리를 뱉기 시작한다. 열이 머리끝까지 났지만 더 이상 산소마스크를 벗겨두면 안 될 것 같아 보인다.
“그르륵…… 하아, 하아…….”
나는 다시 마스크를 씌우기 위해 놈의 머리를 잡았다. 그러자 놈이 고개를 슬쩍 뺀다.
“가만있어, 새끼야. 고생시키지 말고. 마스크 써야 산다.”
“……형……사님.”
“뭐?”
아직 할 말이 있는 걸까? 나는 화난 눈빛으로 놈의 눈을 쏘아 보았다. 숨을 헐떡이는 놈이 힘겹게 입을 연다.
“모든…… 게임의 룰에는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걸고…… 게임에서 지면 그것을 잃는다는 것…….”
“그게 뭐. 나도 오락실 가봐서 안다. 지면 넣은 동전 날아가는 거.”
씩씩거리는 숨을 몰아쉬는 장진수가 나를 올려보며 말을 잇는다.
“항상…… 억울했습니다, 허억…… 나는…… 모든 것을 걸었는데…… 형사님은 아무것도 걸지 않았으니까…….”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놈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걸까?
장진수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게임이…… 공평해진 것 같군요.”
나는 이 자식이 나를 놀리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놈의 표정. 비웃는 표정도, 비꼬는 표정도 아니다. 진지한 눈빛. 저것은 나를 가지고 놀려는 의도가 담긴 눈빛이 아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르르륵!!!”
좀 더 강렬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장진수. 놈은 갑자기 눈을 까뒤집으며 고개를 모로 떨군다.
마스크를 손에 쥔 나는 이를 악물며 밖을 향해 고함쳤다.
“젠장, 여기!! 의사 선생님!!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