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69화
19. 기억의 편린(13)
간호사, 의사들이 달려들어 오는 병실.
나는 그들에게 밀려 구석에 서 있다가, 병실에서 벗어났다. 밖에서 다급한 외침을 듣고 발만 동동 구르던 연주가 내 얼굴을 보자 달려든다.
“과장님! 어떻게 됐어요? 진술 딸 수 있는 상태였어요?”
“…….”
연주의 질문을 분명히 들었지만, 나는 지금 머리가 복잡하다. 놈이 마지막에 했던 말. 그게 나를 찝찝하게 만든다.
‘항상 억울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걸었는데 형사님은 아무것도 걸지 않았으니까. 이제…… 게임이 공평해진 것 같군요.’
찝찝한 이야기는 또 하나 있다.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
그러나 이건 비교적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성경과 일기장을 찾는 것이 내게 주어진 미션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것을 해결해야 내가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이제 게임이 공평해졌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상대는 연쇄살인범이다. 자신은 모든 것을 걸었는데 난 아무것도 걸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공평해졌다는 건 나도 소중한 무엇인가를 걸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만지면서 소리를 지르며 놈의 위에 올라타 처치 중인 의사를 노려보았다.
‘내게 소중한 것. 우리 대화 속에서 노출된 나의 소중한 것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수녀님.’
나는 그와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감히 성당을 덮쳐? 그것도 내가 자란 보육원 성당을? 아주 죽고 싶지?’
자신이 미카엘 신부님을 찾아간 성당이 내가 자란 성당이란 건 모르는 눈치였다. 내 말 때문에 알아챈 것이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연주를 보았다.
“연주야.”
“네, 과장님.”
“이 새끼 혹시라도 병원에서 탈출하게 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본부장님께 내가 말해둘 테니까 병원 감시 인력 세 배로 늘려.”
“네, 과장님.”
“그리고 또 하나.”
“네, 말씀하세요.”
“쌍문 성당에 순찰, 경계 인력 배치해.”
연주가 눈을 깜빡인다.
“성당이요?”
“그래.”
연주가 병실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위험 요소가 저기 누워 있는데요. 여기 감시 인력 충원했으면 됐지, 거긴 왜…….”
“혹시 모르니까.”
“…….”
의아해하는 연주에게 다가온 오진규가 말했다.
“범죄자도 머리 좋은 놈이 하는 거다. 만에 하나 저 머리 좋은 놈이 여길 탈출한다면 다시 신부님을 노릴 가능성이 높아. 혹시 모를 상황에 미리 대비하자는 뜻일 거다. 인력 배치해.”
연주는 잠시 생각해 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조금 물러나 있는 관우를 바라보았다.
“관우야.”
“예, 과장님.”
“SOU 대원 CAM을 비롯해,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공, 민간 폐쇄회로 전부 분석한다.”
관우는 이 부분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고 있었는지 즉시 고개를 끄덕인다.
“안 그래도 순경들 시켜서 회수시켰습니다. 사무실 돌아가면 바로 분석 시작하겠습니다. 뭘 위주로 보면 될까요?”
오진규가 팔짱을 끼며 나선다.
“놈이 체포될 때 성경과 일기장을 소지하지 않고 있었다. 중요한 물건이라면 몸에 소지했을 가능성이 높아. 일을 저지르기 위해 진입 직전 근처에 숨겼을 수도 있어. 만약 가지고 신부님 숙소로 들어갔다면 아직 그 안에 있을 가능성도 있고.”
관우가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아~ 일기장. 알겠습니다. 탈탈 털겠습니다.”
오진규 이야기도 물론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것과 다르다.
“관우.”
“예?”
“영상 분석 중에 놈의 입 모양을 잘 봐. 혹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으면 더 좋고.”
“말이요? 음…… 알겠습니다.”
질문을 할 만한 상황이지만 관우는 내게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녀석이다.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CCTV 회수를 위해 파견했던 순경들에게 연락을 취하며 뒤로 빠지는 관우.
마지막으로 오진규가 나선다.
“목 과장님의 분석 중에 편지에서 나온 시멘트 원료가 아무래도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반드시 먹고 잘 곳이 필요했을 것이고 어디인가 분명히 아지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놈이 서울에 올라와 생활했던 모든 곳을 다시 한번 털어보고, 만났던 사람들과 전수 인터뷰 진행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선배님.”
오진규가 씩 웃어 보인 후 연주와 관우에게 어깨동무를 한다.
“자, 가자고.”
믿음직한 팀원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다시 놈의 병실 쪽을 보니 상황이 안정되었는지 의사와 간호사가 수액을 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기다리자 간호사는 그대로 대기하고 의사만 밖으로 나와 내게 말한다.
“패혈증 증세가 있습니다. 현 시간부터 제가 허락하기 전까지 환자 면회는 불가합니다.”
“…….”
물어야 될 것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이다. 억지로 의사를 뚫고 놈과 대화를 시도하다 그것이 기자들에게 알려지면 인권단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놈이 아무렇지 않다 해도 이러한 상황에 강압적인 수사를 진행했다는 질책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손가락질은 내가 아닌 청장인 아저씨를 향하게 될 것이다.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후, 내가 언제부터 언론 신경 쓰며 다녔다고.”
그래도 할 수 없다. 이건 내가 아닌 아저씨를 위한 것이다. 명예롭고 멋진 은퇴야말로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니까.
* * *
쌍문 성당.
밤에 있었던 일 때문에 아직 성당 옆 숙소 문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어 있고, KCSI 대원들이 들락거리는 현장.
덕분에 성당 맞은편 빌라에 살던 동네 주민들이 성당 앞에 모여 웅성대고 있다.
수녀님들이 걱정되기도 하고 장진수에 대해 더 물을 것이 있어 돌아온 내 귀로 동네 주민들의 수군거림이 들린다.
“들었어? 그 왜, 탈옥한 연쇄살인범 있잖아? 그놈이 어제 여기 왔었다더라.”
“뭐? 정말이야? 그런 놈이 우리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으, 소름 끼쳐.”
“근데 말이야. 여기 와서 신부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소문이 있어.”
“신부님을? 왜?”
“그놈 이야기 알지? 왜 2년 전에 뉴스에서 엄청 떠들었잖아.”
“알지, 알지. 잘못된 종교관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그 개 짓을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미친놈.”
“그래, 사람을 통에 담가 약품에 푹 절이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미친놈 말이야.”
“그래, 그게 왜?”
“그놈에게 종교관을 가르친 게 저기 저 성당 신부라고 하더라.”
“헉! 진짜? 뉴스에서 그런 건 못 봤는데.”
“미친. 뉴스가 전부 다 말해주는 거 봤냐?”
“진짜라고? 그거 어디서 들었어?”
“내 친구네 형이 단양 살아. 장진수 그놈이 어릴 때 본 적이 있대.”
“헐…… 진짜일 확률이 높네. 그럼 이제 저 성당 어떻게 가냐, 소름 끼쳐서. 나도 저 신부가 주관하는 미사 드리면 그 미친놈처럼 살인범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아냐?”
“그렇지, 우리 아랫집 아줌마도 여기 다니는데 사람들이 아침부터 찾아가서 거기 나가지 말라고 막 뭐라 하더라고.”
“아이고, 나 같아도 이웃이 거기 나간다면 무섭겠다. 언제 그 또라이 새끼처럼 사람 죽일지 모르는 거 아냐? 그게 나나 내 가족이 되지 말란 보장도 없고.”
“그러게 말이야, 그냥 이 기회에 저런 성당 없애 버렸으면 좋겠다. 성당이고 교회고, 절이고 싹 다 사라졌음 좋겠어, 난.”
“옳거니. 나도 같은 생각.”
나는 듣기 싫어도 들려오는 동네 주민들의 말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인류는 고대로부터 종교로 인해 수많은 전쟁을 해왔다. 1600년대부터 시작된 종교 전쟁의 적들은 항상 외부의 이교도였다.
많은 이들이 한 종교의 적을 타 종교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아니다. 종교의 적은 인간이다. 그것도 같은 종교 집단 내의 인간.
그들이 종교의 이름을 등에 짊어지고 행동을 했건 아니건,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언론은 군중을 선동하기 위해 자극적인 뉴스를 보낸다.
‘4건의 강간, 1건의 살인범. 붙잡고 보니 교회 장로?’
사실 피의자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종교가 있으니 일반인보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사회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뿐이다.
종교가 있다고 악마의 속삭임이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범죄의 유혹에 노출된 한 명의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나 세상은 단지 종교가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대상 종교까지 싸잡아 쓰레기로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살인자를 가르친 학교 선생을 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종교 지도자는 욕한다. 왜? 그냥 종교가 싫으니까. 종교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특정 종교를 싫어하는 타 종교의 신도들이 득달같이 물어뜯는다.
나는 성당의 보육원에서 자랐지만 무교에 가깝다. 하지만 자라며 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내 마음속에 가톨릭의 뿌리가 있어 그런지 저런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보육원에서 나온 후로 일요일에 성당 한 번 안 가본 놈이 왜 이러나 모르겠다.
나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순경들이 지키는 폴리스 라인을 지나 성당 뒤의 보육원으로 들어갔다.
보육원은 자꾸 무슨 일인지 궁금해 방문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을 잠가둔 것 같다.
보육원 앞 놀이터에 궁금한 얼굴을 한 주민들이 서성거리며 창문을 두드리거나, 수녀님을 부르고 있다.
성당과 숙소 쪽에만 폴리스 라인을 설치해 두어 보육원은 공개되어 있는 상태라 이런 모양이다.
나는 순경 한 명을 손짓으로 불렀다.
“여기.”
들어올 때 내 신분증을 보여주었기에 번개처럼 뛰어오는 순경.
“예, 과장님!”
“보육원에 살인범과 접촉한 수녀님들이 계시니까, 여기도 라인 설치하고, 일반인 접근 통제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건물만 할까요?”
“아니, 놀이터까지 해주세요.”
“놀이터는 왜…….”
“안에 애들 있어요.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가둬놓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바로 설치하겠습니다.”
“사람들 다 밀어내 주시고.”
“예!”
순경이 뛰어가 다른 순경들을 데려온 뒤 보육원 놀이터를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입구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한다.
이제야 좀 정리된 현장. 아까 주민들이 보육원 문을 두드리는 걸 봤다. 내가 두드려 봤자 반응 없을 것 같으니 수녀님께 전화하는 편이 빠르겠다.
전화기를 들고 문이 잠긴 보육원 문을 보는 그때. 미닫이문 바로 옆에 난 창살 안쪽 창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열린 틈을 슬쩍 보고 실소를 지었다. 아주 작은 눈 한 쌍이 염탐하는 듯 나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창문 앞에 섰다.
“새별아.”
“…….”
“새별아, 아저씨 기억나지?”
어둠 속에 숨은 조그맣고 귀여운 눈동자. 약간 겁먹은 듯한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쿠키 아저씨 기억 안 나? 가끔 오는데.”
“……쿠키?”
나는 창살을 붙잡으며 말했다.
“응, 그때 수녀님 쿠키 줬었던 그 아저씨야. 기억하지? 안에 수녀님 계셔? 도경이가 왔다는 말만 좀 전해주면 안 될까?”
“……쿠키.”
뭐야, 쿠키를 내놓으라는 거냐, 지금?
“하하…… 새별이가 쿠키 먹고 싶구나? 그럼 수녀님 만나서 좀 달라고 할게. 슬쩍 주고 가면 되겠다. 그때처럼. 그렇지?”
“쿠키…… 그 아저씨가 쿠키 먹으며 울었는데.”
“응? 나 안 울었어.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나 진짜 기억 안 나?”
“울었어, 많이 많이.”
나는 이 아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다시 수녀님을 불러달라 말하려 했다. 그러다 문득 다시 아이를 보았다.
“너…… 어젯밤에 찾아온 아저씨. 혹시 본 거야?”
어둠 속에 있던 새별이 얼굴이 창살로 다가온다.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바라보았다.
“저기 부엌문에서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