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71화
19. 기억의 편린(15)
나는 새별이와 마주 앉아 양반다리를 꼬았다.
동그랗고 순수한 아이의 두 눈. 엄마의 장기를 팔아 그 돈으로 수술해 살아남은 아이.
하지만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니, 언젠가는 알게 될 수도 있다. 일일이 신문을 스크랩해야 정보를 얻을 수 있던 예전과 지금은 다르니까.
오래된 사건이라도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얼마든 정보 수집이 가능한 시대에 아이는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알게 될 테고, 그것이 큰 상처로 남을 공산이 크다.
마음 한편이 무겁고 아리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에서 잘 지켜보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 손을 내밀어주는 것밖에 없다.
지금은 아직 어리니 이렇게 가끔 찾아와 몰래 쿠키를 주는 정도로 아이의 행복감을 채워줄 수 있다.
“새별아.”
“응.”
“그 아저씨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
“음…….”
새별이가 머리에 뭔가 쓰는 시늉을 한다.
“까만 옷.”
나는 새별이가 자기 머리를 만지는 것을 가만히 보며 물었다.
“까만 모자도 쓰고 있었어?”
“응!”
“어떻게 생긴 모자야?”
“으응…….”
아이가 설명하기 어려운 듯 고민스러운 얼굴이 된다. 나는 수첩을 꺼내 일반적인 모자 그림을 그려 보여주었다.
“이런 모자야?”
“아니.”
“그럼 이런 모자야?”
“응!”
일명 피시 맨 캡이라고 부르는 낚시 모자. 한국에서는 힙합 가수들이 멋으로 쓰고 다니는 모자다.
‘현장에서 발견된 모자와 같다.’
SOU대원의 CAM에서는 모자를 벗은 놈의 얼굴이 찍혀 있지만 현장에서 모자가 발견되었다. 아마 신부님 숙소에 들어온 후에 벗어두었던 모양이다.
나는 새별이가 진짜 장진수를 목격한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위에 검은 옷을 입었어?”
“응, 바지도.”
“검은 옷은 어떻게 생겼어?”
“그냥 옷.”
“아저씨가 입은 것처럼 이런 거야?”
“아니?”
“그럼?”
“아저씨 옷은 길어. 그 사람 옷은 짧아.”
장진수의 옷차림과 동일하다. 놈은 검은색 항공 점퍼를 입고 있었다.
“혹시 얼굴에 특징은 없었어?”
“웅…….”
검지를 이마에 대고 생각하는 새별이. 진짜 저런 포즈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구나. 저런 건 만화에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상대가 아이이다 보니 귀엽다는 생각만 든다.
새별이는 잠시 고민하다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고 자기 눈을 가린다.
“안경.”
“…….”
장진수. 그놈이다. 그런데 이놈이 신부님께 가기 전에 보육원에 갔다고? 거길 왜 간 거지? 단순히 신부님의 현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아니면 목격자들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 두기 위해서?
어쨌건 놈은 보육원에 갔으면서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지금은 오직 그것만이 중요하다.
“아까 새별이가 나한테 그 아저씨가 울었다고 했는데.”
“응.”
“왜 울었어?”
“몰라. 내가 물어봤는데 말 안 했어.”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말을…… 걸었다고?”
“응.”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아이가 연쇄살인범과 대화를 했다는 걸 모른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때 이야기 자세히 해줄래?”
새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춤을 끌어 올린다. 접시에 놓인 쿠키를 힐끔 본 새별이는 큰 쿠키를 휴지에 싸서 자기 주머니에 넣은 뒤 손을 내민다.
“가자.”
“응? 어딜?”
“가자.”
“……?”
어딜 가자는 걸까? 엉겁결에 아이 손을 잡으니 작은 힘으로 날 당긴다.
새별이가 날 데리고 거실로 나와 주방으로 향한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고소한 카레 냄새에 킁킁 코를 벌름거리는 새별이 얼굴이 밝아진다.
“카레 좋아! 히히.”
“…….”
새별이는 주방을 지나 외부 창고로 이어지는 베란다로 날 끌고 왔다.
알루미늄 미닫이문이 잠겨 있는 곳. 새별이가 낑낑대며 잠금장치를 열려고 한다.
나는 아이 대신 문을 열며 물었다.
“여기서 그 아저씨 본 거야?”
“응!”
문이 열리자 새별이가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아이는 나가다 말고 문턱에 주저앉아 오른쪽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기.”
미닫이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이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놀이터에서 외부 창고로 오는 사잇길이 보인다. 폭 1미터가량의 좁은 사잇길이다.
“저기 그 아저씨가 있었어?”
“응!”
나는 다시 사잇길을 보았다. 저곳에 놈이 있었다. 검은 옷에 검은 모자. 어두운 사잇길에 서 있었을 놈의 모습이 환상처럼 보인다.
“새별이 그 아저씨 안 무서웠어?”
“응.”
“왜? 어두운데 까만 옷 입고 얼굴 가린 아저씨 무서웠을 텐데.”
“안 무서워.”
아이라서 겁이 없었던 걸까? 새별이는 문턱에 주저앉아 있다가 문득 주머니 속에 넣었던 쿠키 걱정이 됐는지 조심조심 과자를 꺼내 부서진 부분이 없는지 확인한다.
부서졌다고 맛이 변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다. 괜히 모양이 부서지면 마음이 아프게 마련이다.
새별이가 쿠키를 살펴보며 말했다.
“그 아저씨 눈.”
“응?”
“눈이 안 무서웠어.”
“…….”
연쇄살인범의 눈이 무섭지 않았다고? 나는 머릿속에 놈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놈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마음속에 고정관념이 생긴 터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일반인의 눈빛과는 다르게 생각된다.
“그 아저씨 말이야. 처음부터 울고 있었니?”
“아니.”
“그럼?”
새별이가 쿠키를 소중하게 옆에 두고 쪼르르 달려가 사잇길에 선다.
“손님. 수녀님이 손님은 대접하라고 했어.”
손님? 아, 놈이 손님인 줄 알았다는 뜻이구나. 새별이가 장진수가 서 있던 자리에 서서 한쪽 어깨를 벽에 기댄다.
“여기 이렇게. 나는 이렇게.”
새별이가 다시 쪼르르 달려와 주방으로 달려간 뒤 물 한 컵을 들고 와 울상을 짓는다.
“과자 없어.”
“무슨 말이야?”
“어제는 과자 있었는데.”
“어제는 물과 과자를 가져와서 줬다는 뜻이야?”
“응.”
살인자에게 물과 과자를 주었다. 순수한 아이는 그저 보육원을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수녀님을 소꿉장난하듯 따라 한 것이다.
“그랬더니?”
새별이가 다시 달려가 물컵을 내미는 시늉을 한다.
“아저씨 어서 오세요, 했어. 그러니까 아저씨가 과자는 주머니에 넣고 물은 마셨어. 그리고 울었어.”
물을 마신 후에 울었다?
“울면서 뭐라고 말은 안 했어?”
“고맙다고 했어.”
“끝이야?”
“어서 오세요 라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했어. 왜 그런지는 몰라.”
“…….”
아무도 반기지 않는 탈옥수. 놈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어서 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 설움이 폭발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아이의 그런 순수한 행동이 놈을 감동시켜 보육원 식구들을 해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고.
‘뭔가 이상하다.’
내가 아는 놈은 희대의 연쇄살인마다. 힘없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 그중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없었다.
또 비교적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제는 늙은 수녀님 두 분과 아이들만 있는 이 보육원은 놈이 노릴 만한 사냥감이 없는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진리를 꿰뚫어 본다.
‘눈이 무섭지 않다고 했다.’
단순히 무서운 생김새를 말한 것이 아니다. 눈빛 속에 담긴 감정. 아이들은 귀신같이 그 감정을 읽어낸다. 아무리 거짓으로 웃어도 아이들은 속일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주어도 날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내 눈빛 속에 진실된 호감이 담겨 있는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챈다.
나는 다시 새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밤에 또 쿠키를 먹을 생각에 행복한 얼굴로 바닥에 놓아둔 쿠키를 보며 턱을 괴고 웃는다.
‘놈이 아이를 호감에 찬 눈빛으로 봤다고?’
뭘까? 내가 아는 놈이 아니다. 언제나 혼자 있던 장진수. 친구도, 가족도 없이 모두를 멀리하며 혼자 지내던 놈. 내가 아는 놈은 그런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 괴리감은 도대체 뭘까?
* * *
다음 날 중대범죄 수사과.
관우가 모니터를 보여주며 말했다.
“신부님 숙소에서 30미터 떨어진 전봇대 근처에 있던 방범 카메라 영상입니다. 확인하시죠.”
관우가 놈을 찾아냈다.
“어디 보자.”
연주가 순찰 상황을 체크하다 얼른 달려와 찰싹 달라붙는다. 셋이 함께 확인하는 영상이 시작된다.
어두운 밤에서 시작할 줄 알았던 영상은 의외로 늦은 오후. 그러니까 아직 해가 떠 있을 때부터 시작되고 있다. 행인들이 드문드문 지나고 있는 성당 앞 골목길.
관우가 영상을 멈추며 한 부분을 가리킨다.
“여기.”
관우가 가리키는 곳. 모자챙의 끝이 살짝 보인다.
“정확히 오후 다섯 시 사십오 분. 여기서 처음 목격됩니다.”
대단한 놈. 모자챙 끝이 골목길 앞 주택가 사이로 슬쩍 비치는 걸 찾아냈다. 이 녀석은 눈이 두 개가 아닌 모양이다. 적어도 눈이 백 개는 있어야 찾아낼 수 있어 보이는 것을 너무 쉽게 찾아낸다.
나는 관우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오케이, 계속해.”
관우가 영상을 빠르게 돌리며 말했다.
“자, 여기 보시면. 여기서 한 번 고개가 나오고, 다음 여기. 그리고 여기 나옵니다. 점점 성당 쪽으로 오고 있는데 성당 앞 골목길에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죠.”
연주가 화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성당 맞은편에 있는 주택들을 일부러 빙 돌아서 한 집씩 옆으로 이동하고 있는 거지?”
“응, CCTV를 의식한 것 같지는 않아. 계속 성당 쪽을 주시하고 있어. 아마 신부님의 위치를 파악 중이겠지. 자, 그리고 여기.”
관우가 다시 영상을 빠르게 돌린다. 시간이 빠르게 가는 만큼 사위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다.
“해가 지고, 시간은 여덟 시. 성당에 있던 미카엘 신부님이 숙소로 들어가고 있어.”
미카엘 신부라는 건 확인되지 않지만 사제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 영상 오른쪽 끝부분을 스쳐 지나간다. 그는 성당 쪽에서 나와 CCTV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진다.
“사라지는 방향에 숙소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놈의 모습이 처음으로 완전히 보인다. SOU 대원의 CAM 영상에서 보던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새별이 말처럼 모자를 쓰고 있다.
관우가 영상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상한 건 이놈이 숙소로 바로 안 가고, 보육원으로 갔다는 겁니다.”
“아,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예?”
나는 두 사람에게 새별이에게 들었던 내용을 말해주었다. 연주는 이해가 안 가는지 인상을 쓰며 되묻는다.
“연쇄살인마가 보육원에 문 열린 거 알고도 아무도 안 죽였다고요?”
“놈은 탈옥 후에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그걸 어떻게 믿어요?”
“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있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 놈이야.”
“음.”
관우가 다시 영상을 재생하자, 잠시 후 수녀님들이 쟁반에 떡과 차를 가지고 보육원을 나서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를 장진수가 따르고 있다.
관우가 영상을 멈추며 턱을 쓰다듬는다.
“이 새끼 이거 워낙 지능범이니까 맞은편에서 숙소 현관문 잠금장치가 자동이란 걸 알고 있었을 수도 있어요. 숙소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건 신부님 본인이나 수녀님들일 테니 기다렸다 뒤따른 거네요.”
영상의 각도에서 사라지는 장진수. 관우가 말했다.
“일단 영상 분석상으로는 소지품 중에 일기장과 성경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연주가 끼어든다.
“성당 주변 순찰 인력과 경호 인력 충원했습니다. 24시간 감시 체제로 돌리고 있어요. 언제까지 유지할까요?”
“일단 내가 다시 지시할 때까지 유지해.”
“네, 과장님.”
다시 놈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항상 억울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걸었는데 형사님은 아무것도 걸지 않았으니까. 이제…… 게임이 공평해진 것 같군요.’
나는 입술을 깨물며 화면 속 놈을 노려보았다.
‘내 소중한 사람들을 건드리면 그때는 정말 죽인다,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