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73화 (273/328)

살인의 기억 273화

19. 기억의 편린(17)

KCSI.

목 과장님이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질문을 되풀이한다.

“뭘 해달라고?”

나는 미리 잘라 증거물 봉투에 넣어온 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2023년 11월 10일에 발견된 백골 사체와 제 DNA를 대조해 주시면 됩니다.”

“…….”

목 과장님은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그가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왜?”

“확인해 보고 싶은 점이 있어서요.”

목 과장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컸는지 안다. 내가 보육원 앞에 언제 버려졌는지 아는 건 아니지만 내가 고아라는 것은 알고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백골 사체와 관계된 사건이 있다고 생각해 허락했는데 내 DNA와 비교해 달라는 부탁을 하니 꽤나 놀란 얼굴이다.

나는 과장님 손에 봉투를 쥐여주며 말했다.

“절 중심으로 모계 혈족도 나올 수 있죠?”

“…….”

“더 필요한 거 없습니까?”

목 과장님은 가만히 머리카락이 든 봉투를 바라보다 물었다.

“모계 혈족도…… 그 백골 사체가 네 친모일 수 있다는 뜻이냐?”

“그걸 확인해 보려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

목 과장님이 한숨을 쉰다. 그의 눈빛 속에 지금에 와서 그걸 알아서 뭣 하겠냐는 질문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건 제3자의 입장. 본인의 입장이라면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속 깊은 과장님은 더는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목 과장님이 봉투를 주머니에 넣은 후 눈짓한다.

“따라와, 몇 가지 더 채취해야 정확해.”

“예.”

과장님을 따라 검사실로 가 의자에 앉자, 맨 먼저 면봉을 가져와 내 앞에 앉으신다.

“입 벌려.”

입안 외벽을 면봉으로 긁어내는 과장님. 시료 채취가 끝나고 면봉을 플라스틱 비커에 담은 과장님이 말했다.

“머리카락 다시.”

“아까 드렸는데.”

“가위로 자른 거 말고. 모근이 붙어 있어야 된다.”

“아.”

과장님은 핀셋으로 내 머리카락을 두어 올 뽑아 다시 봉투에 넣고 말했다.

“손톱깎이 줄 테니까 손, 발톱 잘라서 봉투에 넣어. 팔부터 걷어라, 혈액 샘플 채취하게.”

“예.”

혈액을 소량 뽑고 손톱과 발톱을 잘라 봉투에 넣고 나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날 지켜보던 과장님이 약한 한숨을 쉰다.

“청장님도 아시냐?”

“…….”

“몰라?”

“예.”

“무심한 새끼. 청장님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서.”

“…….”

나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때 읽었던 아저씨의 기억이 마음에 걸린다.

아저씨는 그녀의 무덤에 가 울었다. 아저씨는 어떤 식으로든 그녀와 관계가 있다. 그리고 난 그 관계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아직 섣불리 말할 단계가 아닌 것이다.

“조사 끝나고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과장님 부탁 좀.”

목 과장님이 혀를 차며 내 샘플을 걷어간다.

“알아, 인마. 비밀로 하라 이거 아니냐?”

“하하, 예.”

“알았다.”

“얼마나 걸려요?”

“음, 백골 사체 DNA 분석 구조화가 다 끝난 데이터를 보유 중이니 두 시간쯤.”

“기다리겠습니다.”

“뭘 기다려. 검사원에게 맡겨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요 앞에 순두부찌개 기가 막히게 하는 집 있다.”

그러고 보니 목 과장님과 단둘이 밥을 먹어본 적은 없구나. 그래, 마침 잘됐다. 이럴 때 식사하며 유대 관계 쌓는 거지 뭐.

과장님이 샘플을 전달하시기를 기다렸다 함께 순두부찌개집에 와 주문을 마치고 나자, 물을 한 모금 마신 과장님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그 백골 사체 말인데. 2023년 11월에 발견된 시신을 왜 2년이나 지나 검사한다는 거야? 뭔가 잡아낸 거냐?”

나는 과장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내가 경찰 내, 외부를 통틀어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다른 무언가를 마주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 특히나 나 같은 능력을 가진 이는 다른 이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점이 있고, 스스로 원치 않는데 알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읽히는 건 거북할 것이다.

“과장님은 인간의 기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에 대한 답을 또 다른 질문으로 돌려주는 나. 어찌 보면 버릇없는 태도이지만 과장님은 개의치 않으시는지 잠시 고민하다 대답하신다.

“음, 기억해 내는 힘이 아닌 잊는 힘이야말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더 필요한 것이지.”

“…….”

과장님 마음이 이해된다. 그는 겨우 찾아낸 나의 가족이 백골이 되어 발견되었다는 걸 이제 와 안다 해도 슬픔만 더 커질 뿐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목 과장님이 몸을 내밀며 말했다.

“판도라의 상자. 알지?”

판도라의 상자. 당시 번역이 잘못되어 이렇게 알려져 있지만 실은 판도라의 항아리가 맞다. 제우스가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고 봉하여 판도라를 시켜 인간계에 내려보냈다는 상자.

판도라가 열어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호기심을 못 참아 이것을 열었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불행이 쏟아져 나왔는데, 놀란 그녀가 급히 닫는 통에 ‘희망’만이 상자 속에 남았다는 신화 속 이야기다.

“예, 압니다.”

“판도라. 그 이름은 그리스어로 ‘모든 선물을 받은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너는. 네 주변의 인물들에게 모자람을 느끼고 있니?”

“…….”

“너는 어쩌면 이미 모든 선물을 받은 녀석일지 모른다. 네가 알려 하는 진실은 어쩌면 열지 말아야 할 상자를 여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목 과장님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제우스가 상자를 선물로 주며 이리 말했다. ‘이 상자를 받아서 안전한 곳에 고이 간직하거라. 하지만, 미리 일러두건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것을 열어보면 안 된다.’라고. 하지만 그녀는 기어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었지.”

나는 과장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그래서 온갖 재앙들이 튀어나왔죠. 증오, 질투, 잔인성, 분노, 굶주림, 가난, 고통, 질병, 노화 등 장차 인간이 겪게 될 온갖 재앙들이 세상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판도라가 급히 뚜껑을 닫았지.”

“네, 그때 상자 안에 단 하나의 단어만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희망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과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을 마신다.

“그래, 그렇기에 인간은 어떤 고난을 맞이해도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말이다, 도경아. 제우스가 세상에 풀어놓은 온갖 재난 중에 유일한 한 가지. 겉으로 보기에는 재앙이나, 그 실상을 열어보면 희망보다 더 좋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게 뭔지 아니?”

안다. 학창 시절에 신화를 좋아해서 책을 여러 권이나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장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정설이 아니라, 떠도는 소문일 뿐이다. 어떤 책에서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 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압니다.”

“뭐지?”

“망각입니다.”

목 과장님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래, 망각이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크나큰 선물이지. 인간은 망각이 있기에 어떤 큰 슬픔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잊어갈 수 있는 거다.”

“…….”

“니체가 이렇게 말했어. ‘잘 잊는 자들은 복 받은 것인데, 그들은 그들의 바보 같은 짓도 망각으로 극복해 내기 때문이다.’라고 말이야.”

목 과장님은 내게 과거를 잊으면 어떻겠냐 제안을 하고 계신다.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쉽게 잊고 살라 하시는 것이 아닌 에둘러 빙빙 말을 꼬아 하고 계신다. 그것이 내게 보여주시는 배려임을 잘 안다.

그때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우리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식탁 위에 반찬과 순두부찌개를 내려놓고 계시는 아주머니를 기다렸다.

세팅을 마친 아주머니가 돌아가시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찌개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릴 때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목 과장님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뭐?”

“제가 어떻게 보육원 앞에 버려졌는지. 생각이 났습니다.”

목 과장님의 눈이 가늘어진다.

“강혁 청장님께 듣기로 갓난아기 때 혼자 된 걸로 아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맞습니다.”

“갓난아기 때의 기억이 났다고 말하는 거냐, 지금?”

“…….”

“맞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황당해하는 얼굴이지만 나라는 놈을 지금껏 지켜봐 온 과장님은 내 말을 허투루 듣지 않으려 노력하고 계신다. 과장님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번쩍 뜨신다.

“그래! 너 청장님 지시로 정신의학과에 다닌다고 했지?”

“예? 아, 예.”

“거기서 최면 치료 같은 걸 받은 거냐?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어?”

“…….”

명백한 오해. 하지만 그것은 내게 좋은 변명거리가 된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거짓말도 아니다. 내가 이 기억을 처음 읽은 것은 정신의학과 상담 중이 맞으니까.

“예, 맞습니다.”

목 과장님은 신기한 얼굴로 물었다.

“이야, 그게 진짜 되는 거였어? 그 병원 어디냐? 의사 선생 이름은 뭐고? 나도 한번 가보게.”

“과장님도 찾고 싶은 기억이 있으세요?”

목 과장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반대.”

“…….”

“너도 나이 꽤 먹었으니 이제 슬슬 알 나이지. 이 나이가 되면 말이다. 찾고 싶은 기억보다 잊고 싶은 기억이 더 많은 법이다. 기억을 찾게 해줄 수 있는 병원이라면 그 반대도 가능하겠지.”

“글쎄요, 그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병원 이름과 의사 선생님 연락처는 문자로 넣어드릴게요.”

“좋아, 어떤 기억이 났는지 말해봐.”

나는 엄마로 추측되는 여성이 쫓기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뒤를 쫓던 누군가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리한 목 과장님은 바로 기억을 꿰뚫어 보았다.

“네가 버려진 쌍문 성당과 백골 사체가 발견된 곳은 약 8㎞ 떨어진 곳이다. 뭔가에 쫓겼다는 건 쫓는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지. 그녀가 스스로 8㎞나 도주한 뒤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고, 동시에 살해된 뒤 이동되어 매장되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백골 사체 사인이 뭡니까?”

“사인 불명이다.”

“불명 판정에 이유가 있습니까?”

“백골 사체도 언제 발견되느냐, 어떤 사인으로 사망했는지에 따라 사인 규명 유무가 결정된다. 같은 경부압박질식사도 경추에 골절이 발견되면 사인이 규명되는 것이고, 조직과 혈관 압력만으로 사망하면 백골로 발견되었을 때 사인을 규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음.”

과장님은 시간을 힐끔 본 뒤 음식을 눈짓한다.

“일단 먹자. 여기까지 샘플 들고 온 네놈을 포기하게 만드는 건 글렀지. 밥이나 먹고 들어가서 결과 확인하자. 어떻게 될지 몰라도 가는 데까지 가 봐야지.”

첫 숟갈은 참 안 넘어갔다. 머리가 복잡해 그런지 돌을 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과장님 말처럼 솜씨 좋은 곳이라 그런지 금세 폭풍 숟가락질을 하며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자, 내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빙긋 웃는 과장님이 이를 쑤시며 말했다.

“죽이지?”

“네, 맛있네요.”

“킬킬, 자주 밥 먹자, 이놈아. 우리 안 지 벌써 몇 년인데. 너 나랑 둘이 밥 먹는 거 처음 아니냐?”

“그러네요.”

“정 없는 놈. 이제 자주 밥 먹으러 와, 인마. 사건 때만 찾지 말고.”

“하하, 예.”

“이제 슬슬 시간 됐네. 가자.”

잠시 후 KCSI.

검사 결과가 프린트된 종이를 내게 내미는 과장님. 그는 다른 한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 쥐고 있다.

과장님 얼굴을 보니 결과가 대충 예상이 된다. 긴장하지 않으려 했지만 할 수 없이 손이 떨린다. 나는 필사적으로 떨림을 억제하며 과장님이 내민 서류를 받아 눈높이로 들었다.

백열등의 빛이 통과되고 있는 한 장짜리 서류. 그리고 그 속의 검은 글씨들이 뱀처럼 눈 속을 파고든다.

[0.000488/(0.000488+5.70501 X 10)X99.9 = 99.8%]

의뢰인1 (현도경) & 의뢰인2(하나은)는

생물학적으로 친자 관계임을

반영하는 근거를 제공함.

누군가…….

내 가슴을 날이 녹슨 흉기로 마구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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