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74화 (274/328)

살인의 기억 274화

19. 기억의 편린(18)

이 사람이 내 생물학적 엄마라고?

나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성당 앞에 놓여진 거라고?

평생을 안고 살아온 열등감.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았던 과거.

나는 파르르 떨리는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어떤 분야에서나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은 불가능하다. 노력하지 않고 가치 있는 어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열등감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나의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읽었던 수많은 명언들. 나에게는 그것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몸부림쳤다.

사상 최연소 총경 타이틀. 경대 수석에 국가수사본부 과장을 해도 채워지지 않던 나의 열등감이란 단단한 벽. 그것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것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목 과장님이 내 어깨를 감싸주신다.

“유감이다, 도경아.”

나는 보고 있던 보고서를 다시 봉투에 넣으며 말했다.

“뭐가 유감이십니까?”

“…….”

네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셔서. 편하게 영면하지 못하시고 이렇듯 사인도 밝히지 못한 백골 사체가 된 걸 발견하게 된 것을. 그의 눈 속에 그러한 말이 담겨 있다.

하지만 목 과장님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하신다. 나는 슬픈 미소를 입에 걸었지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그래도 도경아…….”

“기뻐요.”

“응?”

갑작스러운 말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과장님. 나는 빙긋 웃으며 봉투를 들었다.

“적어도 엄마가 생활고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 고의로 날 버린 게 아니란 건 알게 됐으니까.”

“…….”

목 과장님의 눈빛에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 라는 질문이 들어 있다.

과장님은 기억을 읽는 내 능력에 대해 자세히 모르신다. 단순히 변질된 기억의 한 부분을 최면 치료를 통해 읽었다고 생각하시니 부모가 날 버린 이유를 명확히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거면 됐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과장님.”

“…….”

“당분간 강혁 아저씨에겐 비밀로 해주세요. 때가 되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꼭…… 늦게라도 말씀드려라. 널 자식같이 생각하시는 분이니.”

“네, 가보겠습니다.”

나는 빤히 날 바라보고 계신 과장님을 뒤로하고 KCSI를 나섰다.

어두워진 밤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어둡다. 하지만 난 괜찮다. 부모님이 보고 싶은 마음 따위의 감상적인 이야기를 하기엔 난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고,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추모하기엔 애초부터 정이 들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내 부모님은 수녀님들과 아저씨이니까. 그렇죠?”

어두운 밤하늘.

혹시라도 날 보고 싶어 할지 모르는 어머니께 모진 말을 뱉은 나는 주차된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 조수석에 서류 봉투를 던져두고 시동을 걸던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오진규에게서 온 전화이다.

“예, 선배님.”

-과장님, 접니다.

“예, 말씀하세요.”

-찾았습니다.

“…….”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머릿속에 온통 엄마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 장진수.”

-예, 아지트 찾아냈습니다.

역시 오 선배님이다. 그가 백 명이나 되는 형사를 이끌고 수색에 임한다고 했을 때 분명 어떤 결과를 낼 거라 생각했다.

“어딥니까?”

-절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이다.

“절이요?”

-예, 이곳에 묵고 있었습니다.

“어딥니까, 바로 가죠.”

-보광사. 거기로 오세요.

전화가 끊어졌다. 하지만 나는 전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다.

‘보광사…….’

엄마의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던 바로 그곳. 물론 절에서 5㎞ 떨어진 산에서 발견되었지만 서류상으로 해당 위치를 설명하기 쉽게 하려 보광사 뒤편 5㎞ 지점이라고 기록된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나는 다시 머릿속을 헤집는 엄마에 대한 생각에 잠시 핸들에 머리를 박고 눈을 감았다.

“이미 지난 일이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일부터.”

엄마가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또 내게 아빠는 없었는지. 다 알아낼 거다.

그리고 그 정보들 속에서 나는 조금 전처럼 또 다른 삶의 희망을 얻을 것이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열등의식들을 모조리 쓸어내 버릴 수 있도록.

* * *

절 앞에 도착하자, 이상한 광경이 보인다. 폴리스 라인의 설치 장소가 절이 아니라, 절 입구에 있는 주차장 옆 식당들이 모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형사들이 날 알아보고 경례를 해온다. 나는 대충 고개를 까딱인 후 물었다.

“오진규 경감님 어디 계십니까?”

“저 건물 2층에 계십니다.”

형사가 가리키는 건물. 1층에는 도토리묵과 파전을 파는 식당이 있다. 총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상위 두 개 층은 겉으로 보기에 용도를 알 수 없다.

건물은 조금 특별하게 생겼다. 우리가 건물이라 부르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정, 혹은 직사각형 형태이다. 하지만 저 건물은 삼각형 모양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지어진 모퉁이 건물이라 그런 모양이다.

식당 앞에 도착하자, 초조한 얼굴로 오가는 형사들을 살피는 중년 남성이 보인다. 나는 계단을 찾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한숨을 푹푹 쉬는 걸 보니 아마 이 건물 주인이나 식당 주인인 모양이다.

“식당 주인 되십니까?”

갑자기 말을 걸자 멈칫하는 남자. 사방이 폴리스 라인이니 여기 들어온 사람은 당연히 경찰이란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예.”

“건물주는 어디 있습니까?”

“제가 건물주입니다.”

남자가 한숨을 쉬며 2층을 올려 본다.

“젠장, 3개월 단기 임대로 내놓는 게 아니었는데. 그런 새끼가 기어들어 올 줄 내가 알았나.”

3개월 단기 임대. 음, 그런 임대 방법도 있긴 하지. 보통 전입 신고도 안 되고, 보증금도 없다. 부동산 수익이 일정 이상일 경우 때려 맞는 세금을 피하려 공실로 신고하고 따로 불법적인 단기 임대를 하는 건물주들이 부지기수이다.

물론 지금처럼 어떤 놈이 들어올지 몰라 위험부담이 따른다.

그때 식당 옆문이 열리며 오진규가 모습을 드러낸다. 문 열릴 때 보니 저 문 안쪽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인 모양이다.

“어, 과장님 오셨습니까?”

오진규가 건물주를 힐끔 보고는 내게 인사를 건넨다. 나는 마주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다시 건물주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여기 묵었습니까?”

“어…… 한 보름 정도 된 것 같은데.”

“부동산 계약서 있죠?”

“…….”

“없어요?”

“죄송합니다, 하.”

불법적 임대업이라 증거를 남기지 않고 싶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임대업자는 상대를 겁주기 위해서라도 법적 효력이 없는 계약서를 만들고 거기 사인을 받으려 한다. 자신의 불법 임대업이 불거지지 않기 위해 계약서를 숨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오진규도 그 사실을 아는지 눈짓을 한다. 나는 전화와 신분증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저희 일반 경찰서 강력계 아닙니다.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에서 나왔습니다.”

“…….”

“이름 들으면 대충 어떤 곳인지 아시겠죠?”

“예…….”

“어떻게 할까요? 전화해서 압수수색영장 청구할까요? 아니면 곱게 계약서 가져오실래요?”

“……가져오겠습니다.”

오진규가 실소를 짓는다. 건물주는 민망했는지 얼른 자리를 뜬다. 나는 2층을 올려 보며 물었다.

“어떻게 찾은 겁니까?”

오진규가 담배를 물며 멀리 보이는 절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숙박업소를 위주로 뒤졌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이곳은 숙박업소가 아니다. 오진규가 불을 붙이며 말했다.

“주변에 공사하는 현장이 있는 숙박업소가 일 순위였고. 장진수 이 새끼가 총격을 당한 날부터 숙소에 못 들어갔을 테니 업주들 협조 얻어서 장기 숙박하는 놈 중에 요즘 안 들어오는 놈 위주로 찾았죠. 백 명의 형사가 2인 1조로 나뉘어 한 번에 50개씩 모든 숙박업소를 뒤졌습니다. 하지만 안 나왔죠.”

엄청 무식한 방법이다. 80년대에나 썼을 만한 방법. 하지만 가끔은 아날로그 방식이 현대의 수사 방식보다 빠를 때가 있다.

오진규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이걸 어째야 되나. 이 방법으로는 어느 세월에 찾을지 장담 못 하겠는데…… 낙담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 형사 놈들 중 한 명이 예전에 도주하던 범인이 숙박업소가 아니라 불법 단기임대하는 가정 주택에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수사 범위를 좁히지는 못할망정 넓히고 있으니.”

“그래서 어떻게 하신 겁니까?”

오진규가 씩 웃으며 말했다.

“형사 백 명 전원. 부동산에 위장 손님으로 투입시켰습니다.”

“예?”

“사정이 있어 단기 임대를 해야 되는데. 혹시 전입신고 없고 현금 박치기로 해결할 수 있는 곳 없냐 하는 질문을 온 동네 부동산에 퍼붓고 다녔죠.”

“하하.”

“부동산 주인들은 의외로 겁이 많아요. 그래서 처음엔 없다고들 하죠. 하지만 엄살을 부리며 거리로 나앉기 직전이란 하소연이 계속되면 슬그머니 카드를 꺼냅니다. 정식 중개 비용은 못 받아도 뒤에서 따로 챙겨주는 세금 없는 수익이 생기니까.”

“그중에 여기를 찾아내신 겁니까?”

오진규가 검지를 까딱인다.

“여기서 또 하나 걸러야 하겠죠. 건물이 공사장 인근일 것.”

오진규가 까딱이던 검지로 절 근처를 가리킨다. 절의 오른쪽 편에 무슨 공사인지 모를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기념품 상점을 짓는 거랍니다. 공사가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고.”

장진수 놈의 편지지에 묻은 미세 증거. 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재료들은 바로 이곳에서 열린 창문을 통해 놈의 방으로 들어간 것이다.

오진규가 절 입구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기서 109번 버스 타면 종로 경찰서까지 한 번에 갑니다. 한 시간 남짓 걸리고요.”

장진수가 움직였던 동선에도 매우 손쉽게 접근이 가능한 곳. 아마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미리 확인한 뒤 움직였을 확률이 높다. 물론 이미 병원에 있는 범인이 도주할 위험은 없으니 수색은 좀 난폭했겠지만.

오진규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는다.

“수색 중에 건물주와 시비가 좀 있었는데…… 대충 무마해 주시죠. 수색영장 받았는데 안 가져왔다고 했더니 안 비켜줘서 몸싸움도 좀 일어났는데.”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까 건물주 태도를 보니 탈옥수가 자기 건물에 묵었고, 그게 불법 임대업으로 인한 것이란 사실을 알고 무척 겁먹고 있는 것 같으니.

“네, 제가 알아서 하죠.”

자, 이제 제일 중요한 것이 남았다. 나는 약간 긴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우리가 찾는 거. 나왔습니까?”

오진규가 아랫입술을 살짝 내민다.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 설마 여기 없는 걸까? 오진규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반만 나왔습니다.”

“예?”

“성경만 나왔어요. 일기장은 없고.”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나왔다. 한 번에 찾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찾은 게 어디냐. 하나씩 퍼즐을 찾아 맞추어가는 것이 수사다.

“어디 있습니까?”

“일단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과장님께 제일 먼저 전화드리고 난 뒤에 KCSI에 연락했는데 아직 도착을 안 해서. 근데 뭐 이리 늦는 거야?”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오진규. 멀리서 그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KCSI의 승합차가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기 오네요.”

“에이씨, 기어서 왔나 저것들이.”

짜증이 난 표정으로 승합차를 향해 마구 손짓하는 오진규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장진수가 숨어 있던 2층을 올려 보았다.

놈이 가져갔던 성경. 그 안에 뭐가 있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