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83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7)
다음 날 국가수사본부.
아침에 출근을 하니 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해 있는 관우가 커피를 타고 있다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과장님.”
“어, 그래. 별일 없었지?”
“별일이라. 아주 많았죠.”
“음?”
관우는 어제 있었던 성경 관련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만히 관우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자리에 가방과 옷을 둔 후 물었다.
“그래서 부산 교도소 측 신부님 연락처는?”
“받아놨습니다.”
“줘, 내가 해볼 테니.”
“예.”
관우가 자기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메모지에 옮겨 적는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생각에 빠졌다.
‘놈은 부산 교도소에서 만난 신부님에게 진짜 성경의 의미에 대해 배웠고, 그것이 잘못된 목자의 가르침에 의한 오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에 탈옥을 해 신부님을 죽이러 갔다는 건 놈의 입장에서 미카엘 신부가 단순히 잘못된 종교의식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살인범이 되도록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는 것인데.’
관우가 메모지를 가지고 와 내민다.
“미카엘 신부 현재 위치는?”
“대구에 있는 소아 전문 병원에 있습니다. 이틀 전에 내려갔고 오늘 행사 끝낸 뒤에 내일 올라올 거랍니다.”
“누가 경호 중이지?”
“종로 경찰서 강력 3반 김현중 경장입니다.”
김현중?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 그 짐승 같은 의사 놈이 만삭의 아내를 죽였던 사건에서 날 도와줬던 막내 형사 이름이구나. 아마 핸드폰에 녀석 전화번호가 있을 거다.
나는 메모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사전 정보나 질문의 정리도 없이 대뜸 전화부터 하면 나중에 반드시 다시 전화하게 된다. 그건 상대에게 예의가 아니다.
나는 머릿속으로 현재 사건을 다시 되짚어 보고 이 통화가 꼭 필요한 것인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관우야.”
“예.”
“이걸 발견한 게 연주라고?”
“네, 맞습니다.”
“KCSI 필적 감정 결과는?”
“아직 안 나왔습니다만 오전 중에 나올 겁니다. 연주가 대기 중이고요.”
“음.”
관우는 고심하는 날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생각하시는지 압니다. 이게 과연 수사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보시는 거죠?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연주 말이 최소한 또 다른 살인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 움직이는 거랍니다. 이젠 저도 동의하고요.”
“…….”
옳은 말이다. 또다시 미카엘 신부의 잘못된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이 제2의 살인자가 되는 건 막아야 된다. 물론 그건 미카엘 신부가 잘못된 신앙을 심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의 이야기다.
“그래, 그건 네 말이 옳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다른 건데.”
“예, 말씀하세요.”
“성경 가져와 봐.”
“예, 여기요.”
나는 연주가 끼워둔 책갈피를 열어 잘못된 성경 주석이 적힌 곳들을 살펴보았다.
“여기 주석이 달려 있는 곳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사제를 숭배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관우가 징그러운 벌레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저도 봤습니다, 와, 사이비 종교도 아니고 그게 뭔 소리인지. 진짜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어요?”
“성경책에 있으니 구절은 있겠지. 하지만 주석에 달린 뜻과는 다를 거다. 이런 소리가 성경에 있을 리가 없으니까.”
“후, 하여간. 성서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조금만 잘못 해석해도 저런 미친놈이 나오니까.”
“바로 그게 내 질문이다.”
“예?”
나는 성경을 눈짓하며 말했다.
“만약 장진수 놈에게 미카엘 신부가 자신을 숭배하도록 가르쳤다고 치자. 너희들이 알아낸 것이 모두 진실이고 명백히 잘못된 신앙심을 심어줬다고 가정하자고.”
“예.”
“부산 교도소에서 제대로 된 신부님을 만난 놈이 지가 믿고 있었던 부분이 잘못된 신앙이란 걸 깨달았다고 가정해 본다면.”
“예.”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그걸 알았는데? 그래서 뭐?”
관우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 머리에 전구가 들어오는 표정으로 눈을 번쩍 뜬다.
“아! 그걸 깨달은 것이 살인마가 된 자신의 현재와 무슨 관련이 있냐 이거군요?”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성경을 보았다.
“만약 여기에 살인에 관한 암시가 있거나, 살인하는 행위를 신성시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거야. 여기 주석이 달린 부분은 온통 사제를 숭배하고, 그의 허물을 덮으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있다. 살인과는 전혀 동떨어진 내용이지. 물론 미카엘 신부를 증오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탈옥까지 해서 그를 죽이러 갈 이유가 되었을까?”
관우가 코를 비빈다.
“음, 그건 그러네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거나, 오랜 살인 행위로 판단력이 희미해져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다시 만난 장진수는 너무나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총을 맞기 전에 했던 통화에서도 그랬고, 잠시 의식을 차렸을 때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에게 뚜렷하게 드러난 정신적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이 썩어 문드러져 그랬다면 할 말 없지만.
나는 잠시 더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일단 눈앞에 있는 신부님 전화번호로 전화부터 해보는 것이 좋겠다.
일반인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기에 핸드폰 대신 사무실 전화를 들었다. 요즘 보이스 피싱이 하도 많아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경찰이라고 하면 장난치지 말라고 하며 끊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할 수 없다.
나는 상대의 액정에 경찰청 대표 번호가 찍힐 수 있는 전화기로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요셉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 현도경 과장이라고 합니다.”
-예?
상대는 예상치 못한 전화에 조금 놀란 것 같다. 그에게 액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시간을 준 나는 말을 이었다.
“갑작스럽게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혹시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
“필요하시다면 대표 번호 확인하시고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재확인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될까요?
“예, 확실하게 하시려면 경찰청 대표번호로 전화하시고, 중대범죄 수사과 연결을 부탁하시면 됩니다.”
-네, 바로 전화해 보겠습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의심 많은 성격 같아 보이겠지만 사실 이게 정답이다.
신부님들은 아주 오랫동안 공부하시는 분들인 만큼 똑똑한 분이 많다.
물론 공부 많이 한다고 세상 일에 다 해박한 건 아니다. 나만 해도 경대 수석 졸업을 했지만 현장에 나가서는 똘똘하지 못하게 굴 때가 많았다. 단지 공부를 잘하는 것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는 것은 간극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한 만큼 이치와 상황 판단이 남보다 뛰어날 확률은 높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니까.
약 오 분쯤 기다리자 전화 벨이 울린다.
“예, 중대범죄 수사과입니다.”
외부 전화가 다이렉트로 연결될 리가 없다. 여긴 일반 형사계가 아니라 국가수사본부다. 당연한 말이지만 경찰청 내부에 전화 연결을 담당하는 센터의 직원 목소리가 들린다.
-현 과장님. 중앙 신고센터입니다. 중대범죄 수사과 연결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요셉 신부님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연결해 주세요.”
-네, 수고하십시오.
다시 전화 벨 소리가 들리고 연결음이 들린다.
“방금 전화드렸던 현도경 과장입니다, 신부님.”
-아, 정말이군요. 이거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세상이 험해서 저 같은 사제에게 이상한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여러 번 당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실례지만 부산 교도소에서 일요일 미사를 주관하고 계시죠?”
-지금은 아닙니다. 얼마 전에 경기도 부천으로 올라왔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언제 올라오셨죠?”
-4개월 전입니다.
4개월 전이라. 그럼 이 신부님은 장진수 놈이 탈옥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 것이다.
신부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뉴스에 나온 탈옥수 때문에 전화하신 겁니까?
아, 공개수사로 전환했었지 참.
“예, 맞습니다.”
-토마스는 좀 어떻습니까?
탈옥에 관한 것도 그렇고 총에 맞고 잡힌 것까지 모두가 뉴스로 보도된 사실이니 신부님이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할 건 없다.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걸로 보입니다.”
“휴,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단지 사제로서 선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하는 걸까, 아니면 놈과 어떤 유대가 있어 저리 말하는 걸까?
“토마스. 장진수를 그 이름으로 부르시는군요.”
-세례명이니까요.
“신부님들은 다 그렇게 부르시나 봅니다.”
-…….
“여보세요?”
-그 미카엘 신부라는 사람 말입니까?
“…….”
신부님의 말투가 바뀌었다.
“예, 맞습니다.”
-…….
요셉 신부는 미카엘 신부에게 대해 뭔가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것 같다. 말투가 매우 적대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혹시 미카엘 신부님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상하군요, 감정이 좋지 않게 느껴지는데.”
-…….
잠시 머뭇거리던 요셉 신부님이 어렵게 말을 꺼낸다.
-하느님을 모시는 사제로서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기 힘듭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 보고했으니 이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종교집단은 매우 폐쇄적이다. 그것이 가톨릭이든 불교나 기독교이든 모두가 비슷하다. 종교인 내부에서 일어난 일은 내부에서 해결한다. 이와 같은 방식이 인간이 만든 법과 항상 충돌을 일으킨다.
“미카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비밀 유지를 할 의무는 없으실 텐데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토마스의 고해성사를 통해 들었습니다.
젠장,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장진수 놈의 고해성사로 들었으니 비밀 유지의 의무가 있다는 거네. 하, 골치 아프게 됐다. 어떻게든 설득을 해볼까 했지만 나는 사제들을 잘 안다. 그들은 반드시 비밀을 지킬 거다.
“하나 확실하게 하죠.”
-제가 답할 수 있는 문제라면 성실하게 답변드리겠습니다.
“장진수, 아니, 토마스가 한 고해성사 내용 중 미카엘 신부를 죽일 거란 범죄 계획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고해성사 중 범죄 계획이 나왔을 경우는 비밀 유지의 의무가 사라지므로 있었다면 말씀드렸을 겁니다.
“고해성사의 내용 중 미카엘 신부가 잘못된 신앙심을 심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것으로 압니다. 그에 관한 처벌은 신부님 말씀대로 주교회의 내부에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알고 싶은 것은 또 다른 범죄 계획이나, 뉴스에서 이미 보셨을 놈의 범행 외에 또 다른 범행 사실을 고백한 것이 있었느냐입니다.”
-…….
대답할 리가 없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 그가 바로 부정하는지, 혹은 말을 아끼려 하는지. 그것으로 나는 놈과 요셉 신부님 간에 오간 이야기를 유추해 나갈 힌트를 얻을 것이다.
나는 보채지 않고 기다렸다. 요셉 신부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이 반응이 나타내는 사실은 하나이다. ‘과연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 그것은 즉 그가 아는 것이 있다는 뜻이고 내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니 그가 아는 것은 범죄 계획이나 우리가 모르는 범죄 사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그를 더 압박하지 않을 것이다.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신부님께도 나름의 교회 법이 있을 테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제게 해주실 말씀이 없습니까?”
-…….
나는 당신을 배려했다. 이제 당신의 차례이다. 약간이라도 좋으니 단서를 달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다행히 요셉 신부님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요셉 신부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예, 편히 말씀해 주세요.”
-열하나가 아니라 아홉입니다.
“예?”
-이미 제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했습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눈알을 굴렸다.
“열하나가 아니라 아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