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91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15)
관우와 나는 연주의 이야기에 크게 놀랐다. 연주와 함께 오며 미리 브리핑을 들었던 오진규가 말을 보탠다.
“당시 미카엘 신부는 대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이 나의 신앙이라 할 수 없지만 성당에 딸린 보육원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사제 과정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예비 신학교 1년, 대 신학교 4년과 대학원 3년. 예비 신학교까지 합쳐 총 8년의 교육과정을 거쳐야 사제가 될 수 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사건 어떻게 끝났어? 살인?”
연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어요.”
관우가 놀라며 물었다.
“말이 돼? 자살로 끝났다는 거야, 그럼?”
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난감한 얼굴이 된다.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 자료도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아. 알아보는 데 한참 걸렸어. 당시 경찰의 보고서에는 아버지 구혁수가 사회적으로 단절된 삶을 살았다고 나와 있어. 친구도, 선후배 간이나 이웃 간의 교류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어. 심지어 딸은 학교도 보내지 않고 홈 스쿨링을 했대.”
홈 스쿨링.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1980년대이다. 전쟁이 끝나고 개발 도상국으로 나아가던 시기.
아무리 땅을 파도 자원이 나오지 않는 이 나라가 국제 경쟁력으로 삼은 것은 교육이다.
너도 나도 공부만이 살길이라 외치던 시기에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는 건 부모 쪽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구혁수 직장은?”
“장사꾼이었습니다.”
“가게는 어디고?”
“특정한 가게는 없고 트럭을 타고 전국을 떠돌며 사과를 팔았답니다. 사과는 대구 평광 사과를 떼서 팔았고.”
관우가 물었다.
“평광 사과가 뭐야? 처음 들어보는데.”
“2000년대 들어서 사라졌어. 예전엔 대구 사과 하면 평광 사과였다고 하더라.”
“음…… 사과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혼자 일했을 확률이 높네. 사회성이 매우 떨어지는 사람이겠구나.”
“당시 경찰들도 이 사실을 들어 자살을 택한 것으로 결론 내렸어.”
“CCTV 자료 없지?”
“있어.”
“어? 1980년대인데?”
“도로 쪽 CCTV에서 찍혔어.”
연주가 수첩 사이에 끼워둔 사진을 꺼내 내게 내민다. 사진 속, 우측에 강을 두고 도로변을 걷고 있는 구혁수가 보이고, 딸이 그의 손을 잡고 있다. 둘 다 고개를 푹 숙인 상태이다.
연주가 말을 잇는다.
“경찰은 이 CCTV 화면과 시신으로 발견된 딸의 몸에 완력으로 제압해 익사시킨 흔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동반자살로 결론 내렸습니다.”
관우가 인상을 찡그린다.
“모르겠으니까 대충 뭉개 버린 거지 뭘. 그럼 엄마는? 3년이나 베란다 붙박이장 박스 안에 갇혀서 백골이 된 엄마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연주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한숨을 쉰다.
“경찰이 어머니의 병원 진료 기록을 찾아냈는데 암 환자였다고 해.”
나는 연주 말을 가만히 듣다가 말했다.
“암 환자인 아내. 사회적 교류가 적은 남편. 사과 장사를 하며 연명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 중에 병원비가 많이 드는 암 환자가 나오자 치료를 거부하고 집에서 요양하도록 했다. 그리고 사망 후 장례를 치를 비용이 없어 집에 시신을 보관했지만 악취가 나 붙박이장을 봉인하고 그 안에 두었다. 맞나?”
연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 경찰이 그렇게 결론 내리고 공소권 없음으로 끝냈어요.”
지금 저런 사건을 저렇게 끝내면 자손만대가 욕을 먹겠지만 당시는 그랬다.
지금처럼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하지 않아 두 다리로 뛰기만 하던 경찰들은 엉뚱한 사람을 잡아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거나 도저히 알 수 없는 사건은 대충 자살로 마무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카엘은 대 신학교 재학 중이었고?”
“네, 3학년 과정이었고 예비 신학교 시절부터 기숙사를 이용했습니다. 당시 경찰의 조사 결과 미카엘 신부는 예비 신학교에 들어간 후에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답니다. 신학교 교직원들과 기숙사 관리인의 증언도 있었기에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았습니다.”
관우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그냥 아버지와 딸은 자살이고, 엄마는 병사한 걸로 끝났다고? 아니, 아들 빼고 일가족이 몰살당했는데 그게 말이 돼?”
연주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시는 보건소에서 검시를 대신하던 때야. 다 썩어버린 시신이나 백골이 된 시신에서 살인의 증거를 발견하기는 요원한 시절이었으니 할 수 없었겠지.”
나는 연주에게 사진을 돌려주며 물었다.
“어머니 쪽은 그렇다 치고, 아버지와 딸이 사망한 시점은 나왔지?”
“네, 아버지 시신이 발견되기 일주일 전입니다. 지금 보신 CCTV 사진도 그날 찍힌 것이고요.”
“당시 미카엘 신부가 학교에 있었다는 건 확실하고?”
“예, 당일 제출한 리포트가 증거자료로 남았습니다. 당시는 PC로 리포트를 쓰는 게 아니라 자필로 쓴 리포트를 제출하던 시절이라 학생 본인이 직접 내야 했답니다. 낸 날짜와 받은 교수가 확인 도장을 찍은 날짜까지 보고서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긴 할 거다. 당시 경찰들은 지금과 달리 과격했다. 일가족이 몰살당했는데 아들만 살았다? 득달같이 아들에게 달려가 쥐 잡듯이 잡았겠지.
웬만큼 확실한 증거가 아니고서는 경찰들에게 지독한 구타를 당하고 없는 증거까지 만들어 범인으로 지목되었을 것이다.
남편의 시신이 발견되고 집으로 찾아간 경찰이 아내의 시신을 찾아낸 것은 1983년 9월. 악취에 의한 민원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 그렇다는 것은 아내가 사망한 시점이 최소 3년 전에서 4년 전이란 뜻이다.
“당시 미카엘 신부 증언 중에 어머니 병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나?”
아무리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사제라도 어머니의 존재는 소중하다. 암 걸린 어머니가 있는데 4년이나 집을 찾지 않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연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누락되었을 수도 있고요. 워낙 주먹구구식 수사를 하던 시기이니.”
나는 시간을 힐끔 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인이 올 시간이니 직접 물으면 되겠지. 경비 인력 어떻게 됐어?”
연주에게 물었는데 답은 오진규가 한다.
“열둘 깔아놨습니다. 수녀님께서 좀 과하지 않냐 하시던데 괜히 걱정하실 것 같아 장진수가 다시 감옥에 가기 전까지만 경호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삼 교대로 24시간 경비 예정이고 수녀님과 아이들이 있는 보육원에 넷, 미카엘 신부의 숙소 앞에 둘입니다. 나머지는 반경 50미터 내의 순찰 경비이고. 총 서른여섯 명의 순경이 담당으로 배치됐습니다.”
음, 매우 강한 경호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다.
오진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저 오늘부터 보육원에서 먹고 잘 겁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오진규를 바라보았다.
“예?”
오진규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 과장님이 편하게 수사하실 것 같아서. 당분간만 그렇게 하는 걸로 수녀님과 합의 봤고요.”
보육원에 빈방이 몇 있긴 하지만 불편할 텐데. 게다가 애들이 처음에는 경계해도 나중에 친해지면 귀찮게 들러붙어 쉬지도 못하게 할 게 뻔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오진규가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과장님께 어머니 같은 분들인데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스스로를 용서 못 할 것 같습니다. 하게 해주세요.”
“…….”
고마웠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조용히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자, 그럼 갑시다.”
* * *
쌍문 성당 앞.
제복을 입은 열두 명의 순경과 중대범죄 수사과 넷까지 총 열여섯 명이나 되는 경찰이 서 있다.
잠시 후 검은색 승합차가 성당 앞에 서고, 맨 먼저 현중이 녀석이 내려 경례를 해오는 것이 보인다.
뒤이어 차에서 내린 미카엘 신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경찰들을 보다 날 발견하고는 빠르게 걸어온다.
“과장님 아니십니까?”
“…….”
이 사람. 분명히 이상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사람에게 매우 강한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어설프게 자극하는 건 바보짓이다.
“아이들은 잘 보고 오셨습니까?”
미카엘 신부는 자기 스케줄을 어떻게 알고 있냐는 표정을 지었다가, 자신이 대구에 내려갈 때 현중이와 동행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예, 아주 귀여운 천사들이었습니다. 질병을 가지고 있어 안타까운 아이들이기도 하고.”
미카엘 신부가 성당 앞에 깔린 경찰 인력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다 뭐 하고 계신 거죠?”
“경호 인력입니다.”
“아…… 좀 과한 것 아닙니까?”
“과하지 않습니다. 상대는 사람을 아홉 명이나 죽인 살인범이니까.”
“…….”
미카엘 신부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열하나…… 아닙니까?”
“아, 그렇네요. 제가 실수했습니다.”
실수가 아니다. 일부러 흘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찰나의 순간 미카엘 신부의 얼굴에 스쳐 가는 의구심을 보았다.
나처럼 범인 프로파일을 달달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러한 내용의 잘못된 점을 바로 캐치하고 정정하는 일반인은 흔치 않다.
미카엘 신부는 장진수에게 매우 관심이 많거나, 혹은 그가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해 다시 한번 체크한 것일 확률이 높다.
나는 미카엘 신부를 데리고 경호 인력 배치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뒤 그와 함께 숙소로 들어갔다.
중대범죄 수사과 식구들만 데리고 들어온 숙소.
장진수가 수녀님들과 미카엘 신부를 덮쳤던 작은 응접실에 앉은 나는 차를 내오는 미카엘 신부를 빤히 보았다.
우리들에게 수녀님들이 만든 쿠키와 차를 나눠준 미카엘 신부는 내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시다 자신을 빤히 보는 날 보곤 민망하게 웃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형제님?”
“…….”
나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숨이 막힐 듯한 적막이 흐르고, 주변의 공기가 어색해진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내 옆구리에 연주의 손길이 느껴진다.
“과장님.”
“…….”
나는 이 사람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아무 증거가 없다. 섣불리 사건에 대해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알려줘야 한다.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면 지금처럼 마음 편히 발 뻗고 자게 둘 수는 없다.
누군가는 그 사건을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이 사람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자리 잡고, 그 불안감은 실수를 하게 만들 것이니까.
“미카엘 신부님.”
오랜 침묵을 깨고 그를 부르자, 얼굴이 약간 붉어진 그가 답했다.
“예, 형제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 신부님에 대해서도 알아봤습니다.”
“…….”
“1983년의 일가족 변사 사건. 그 피해자 가족 중 한 분이시라고.”
내 말이 떨어진 직후, 나는 보았다. 그토록 인자해 보이던 미카엘 신부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