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300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24)
나는 어두운 주택 마당에 앉아 침을 꿀꺽 삼켰다. 하마터면 일기장을 놓칠 뻔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일기장을 노려본 나는 중얼거렸다.
“아동학대를 당하던 녀석은 새로 동네에 부임해 온 신부에게 자신의 사정을 알렸다……. 그리고 신부가 그것을 해결해 주었다. 부모를 죽임으로 아이에게 자유를 주었다.”
미카엘 신부에게서 놈을 처음 만났던 때에 대한 진술을 들은 것이 기억난다.
단양에 부임 후 가톨릭 천주교 성지에 들렀다 어린 장진수를 만났다고 했다. 이 일기장에 적힌 것을 신뢰한다면 이때 장진수는 신부에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일기장에 플래시를 비췄다. 10월 13일 목요일의 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내가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치는 동안,
내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오랜 침묵으로 인해 희미해 보였다.
무척이나 황량한 곳에서 그를 본 나는 외쳤다.
‘그대 그림자이든, 진짜 사람이든, 여하간 나를 좀 도와주시오!’
검은 옷의 한 가운데 주님의 상징인 하얀 빛을 숨긴 그가 말했다.
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정의는 지고하신 주를 움직이시어,
신의 권능과 최고 의지와
원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다.
그는 내 아픔의 원천과 고통의 근원을 땅에 묻고, 그들을 봉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나도 모르게 힘껏 쥔 주먹에서 식은땀이 고여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급히 핸드폰을 들어 오진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과장님.
“오 선배님. 어디십니까?”
-아직 퇴근 전입니다만.
“보육원에 언제 들어가세요?”
-음, 두어 시간 있다 들어갈 것 같습니다. 관우가 그러던데 일기장 나왔다면서요?
“예, 그보다 바로 보육원에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과장님?
“미카엘이 장진수의 부모를 죽인 것 같습니다.”
-…….
오진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노련한 형사답게 곧 정신을 차리고 묻는다.
-일기장에 있는 내용입니까?
“예.”
-바로 보육원으로 가겠습니다. 걱정은 하지 마세요. 경비 인력들의 보고가 없던 걸로 봐서 괜찮을 겁니다. 제가 직접 들어가서 수녀님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겠습니다, 그런데 과장님.
“예.”
-아시죠? 증거 없다는 거.
“…….”
-하다못해 구속수사를 할 증거라도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수녀님과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살인마 놈이 쓴 일기장을 증거라고 들이밀면 상대 변호사가 할 말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심신미약 상태에서 쓴 정신병자의 일기를 증거물로 채택할 수 없다고 주장하겠지. 그리고 그 주장은 법정에서 먹힐 거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놈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고 증거를 찾는 것과 모르고 헛다리 짚는 건 차이가 있겠죠.”
-물론입니다, 빨리 찾아야 된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예, 보육원 쪽은 믿고 맡기겠습니다.”
-예, 잠도 안 자고 지키죠. 아, 혹시 읽으셨습니까?
“예? 아, 기억이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남에게 기억에 대해 말하는 건 강혁 아저씨가 유일했는데 이제 팀원들도 묻는다. 언젠가는 이런 상황도 적응이 되겠지.
나는 일기장을 힐끔 보며 말했다.
“아직 못 읽었습니다.”
-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게 재촉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 보죠. 일기장에서 추가로 알아야 될 정보가 나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예, 선배님. 그럼.”
전화를 끊은 나는 다시 한번 울대를 꿀렁거렸다. 오 선배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내 부모, 내 가족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 곁에 있다 하더라도 내 눈으로 직접 그들의 무사함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아는 장진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놈이다. 물론 이 일기장은 진술이 아니므로 어쩌면 혼자 한 망상일 수도 있다. 상대 변호사도 분명 그 부분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장진수와 싸웠던 형사다. 놈은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또한 요셉 신부가 말해준 ‘열하나가 아니라 아홉이다’라는 말 덕분에 어렴풋이 장진수가 죽였다고 주장한 열한 명 중 두 명을 다른 사람이 죽였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확신이 든다.
나는 플래시 불빛을 일기장에 바로 쏘며 중얼거렸다.
“어리고 힘이 없던 장진수에게 미카엘 신부는 하느님이 보낸 대천사와 같아 보였겠지. 개새끼가 어린아이를 살인이란 개 같은 방법으로 세뇌시켜?”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든다. 그의 선해 보이는 얼굴과 미소. 그 모든 것이 가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그의 본질을 모르는 우리 수녀님들이 놈을 위해 쿠키를 굽고, 야밤에 간식을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에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증거…… 증거가 필요해.”
이 가죽 수첩. 장진수의 일기장 안에 꼭 증거를 찾아낼 단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총을 들고 성당에 가 미카엘 신부를 쏘아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잘게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다음 장을 넘겼다.
2011년 10월 20일 목요일.
지난 며칠, 나는 영혼을 잃은 허수아비처럼 멍하게
아무도 없는 거실에 주저 앉아 있었다.
나를 때리러 오는 악마의 고함 소리도, 귀머거리의 철저한 무시도 없는
완벽한 평화. 그런데 왜일까?
더 완벽할 수 없는 평화를 손에 쥐었는데
왜 나는 이토록 공허한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날 때면 바닥에 얼굴을 박고
울음이 멈출 때까지 오열했다. 나는 왜 울고 있는 걸까?
고지식한 사람들은 부모가 자식을 훈육하기 위해 매를 들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아이를 때리냐 물으면 맞을 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맞을 짓이 도대체 무엇일까? 아이가 사람을 죽였는가? 남의 물건을 훔쳤는가? 이웃의 여자를 탐했는가? 맞을 짓이라는 것은 지극히 부모 개인의 주관에 의해 기준이 달라지는 가치이다.
그러한 폭력이 허락되는 순간 이 사회는 아동학대로 얼룩질 것이다.
또한, 인간이 인간에게 맞을 짓이 존재하지 않듯, 인간이 인간을 죽일 짓 또한 없다.
본인 손으로 한 것은 아니더라도 부모가 죽었다. 어린 마음에 혼란스러워 그것이 잠시간 구원이라 느낄 수 있겠지만, 곧 회의가 느껴졌을 것이다.
의부는 몰라도 어머니는 친모였으니 그녀와 좋은 기억, 추억들도 떠올랐을 것이다. 이제 천애 고아라는 생각에,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이 밀려올 것이다. 놈은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다음 장을 넘겼다.
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천사가 나를 위로하러 찾아왔다.
그는 혼자 울고 있는 내 손을 잡고 하느님의 집에 데려가
나를 무릎 꿇리고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나를 위한 짧은 기도를 마친 그가 말했다.
처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고.
그의 말이 옳다. 그것은 내게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한다.
천사에게 물었다.
당신은 처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지 않았습니까?
천사가 답했다.
나도 가장 처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이 답이 아님을 안다.
내가 물었다.
답이 아님을 알지만 실천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천사가 답했다.
너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한 행위를 계속 하라.
누군가 말한다. 절망의 끝에 행복이 있다고. 하지만 세상은 돌고 돈다.
행복의 끝에도 절망이 있다. 절망과 행복이 돌고 도는 것이 하느님이 만든 세상이다.
그러므로 너는 네가 행복한 행위를 계속해서 하라.
천사가 내게 답을 주었다.
일기를 읽던 나는 당장에라도 수첩을 저 멀리 던져 버리고, 발로 밟고, 불태우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직 머리가 굳지 않은 어린놈에게 행복을 유지하는 행위로 살인을 제시한 것이 미카엘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살인이 단순히 행복한 생각만 하기 위한 도구가 될 행위이냐 말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음 장을 넘겼다. 정신력 소모가 커서 읽는 것을 중단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나는 형사다. 여기서 물러나면 악마들을 잡을 수 없다.
내 눈에 몇 개월이나 건너뛴 날짜가 보인다.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다시 앞장을 넘겨 날짜를 확인해 보니 무려 4개월간이나 일기를 쓰지 않았다. 이래서 20년간의 일기가 한 수첩에 담겨 있던 모양이다.
나는 다시 일기장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눈이 내리면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나의 행위는 눈과 같다. 그것은 모든 것을 덮어 아름답게 한다.
나는 눈사람을 만들었고, 천사가 나를 도왔다.
비록 내 손에 그녀가 만든 죄가 묻어
하얀 눈사람이 붉어졌지만 괜찮다. 천사가 빨간 눈사람을 보고 웃어줬으니까.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첫 살인에 대한 기록이란 것을 눈치챘다. 나는 입에 문 플래시를 고쳐 잡고 다시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눈사람을 만드는 이치와 같다.
깨끗한 원통 안에 투명한 눈을 쏟아 붓고
죄를 담아 정갈하게 만든다.
세상 모든 죄가 씻겨 나가는 듯 점점 투명해 지고
소녀의 읽기 쉬운 마음처럼 몸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면
내 마음의 죄도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천사가 이 모든 과정을 도와주었고, 나는 첫 경험이 무척 황홀했다.
몸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했지만
아주 오랜 시간 이어진 의식은 나를 침착하게 만들었다.
장인이 공을 들여 만든 예술 작품처럼 나는 그것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이 모든 과정을 천사가 도와주었다. 그는 하느님이 내게 보낸 사자이니까.
내가 물었다.
당신은 언제부터 정화를 시행하셨습니까?
천사가 답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다시 물었다.
당신이 처음 정화한 이는 누구였습니까?
천사가 답했다.
너와 같다.
나는 일기장을 읽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입에 물고 있던 플래시가 마구 떨려 일기장을 비추고 있던 동그란 불빛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플래시를 쥔 후 중얼거렸다.
“너와…… 같다?”
미카엘 신부는 울산 일가족 몰살 사건의 생존자다. 장진수 놈의 질문에 나온 ‘정화’라는 것은 살인 후 단백질 투명화 표본을 만드는 행위일 것이다.
두 사람은 시신의 단백질이 투명화되는 것을 죄를 씻는 행위로 규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말이다.
너와 같다.
장진수 본인이 직접 하지 않았지만 그가 눈으로 본 첫 살인은 자신의 부모였다. 그런데 미카엘이 자신의 첫 정화가 너와 같다고 했다.
미카엘이 자신의 부모와 여동생을 죽였다.
나는 천천히 핸드폰을 들어 연주에게 연락했다.
“연주야, 잘 들어. 지금부터 울산 일가족 몰살사건부터 다시 본다. 당시 미카엘 신부가 가톨릭 신학대학 기숙사에 있었다는 증거로 제출한 리포트부터 시작해서 알리바이 전체를 재검증할 거다. 바로 올라갈 테니 준비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