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304화 (304/328)

살인의 기억 304화

21. 40년 그리고 35년(4)

영권이 팔짱을 끼고 소파에 눕듯이 등을 기대자, 불룩 튀어나온 배 위에 팔을 걸치고 앉은 듯한 형국이 된다. 팔까지 짧아 무척 우스운 포즈였지만 지금 나는 그런 시각적인 것 따위에 웃음이 날 여유가 없다.

가만히 그의 말을 기다리자, 영권은 날 힐끔 본 뒤 긴 한숨을 쉰다.

“후…….”

담배 생각이 나는지, 주머니를 뒤지던 그가 물었다.

“아, 담배 하나?”

“안 합니다.”

“음, 그럼 태우면 안 되겠군.”

설마, 이 사람. 요즘 같은 시대에 사무실에서 담배를 태우나? 어쩐지 사무실 들어올 때 담배 냄새가 나더라.

“블라인드 내려두신 것 같은데 그냥 피우셔도 됩니다.”

“에이, 자네 담배 안 태우는데 그럼 쓰나.”

“괜찮습니다, 선배님들 중에 담배 태우시는 분들이 많아 익숙합니다.”

“오, 그래? 그럼 한 대만.”

이 사람은 분명히 협조적으로 나올 거다. 괜히 협조적인 사람과 척을 질 이유는 없다. 솔직히 담배 냄새는 좀 괴롭지만 그깟 거 참을 수 있다.

영권은 바깥 눈치가 보이는지 블라인드를 다시 점검 후 반대쪽 창문을 연다. 정수기 옆의 종이컵에 물을 받고 휴지 한 장을 깐 그가 담뱃불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끊어야 되는데 쉽지가 않네. 자네 담배 안 태우면 애초부터 태울 생각 하지 마. 이건 기호식품이 아니라 족쇄야, 족쇄. 이놈 때문에 여행을 가도 마누라 눈치 봐가며 숨어서 담배 태울 궁리만 하게 된다니까.”

“예, 조언 감사합니다.”

영권은 창가에 서서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사건이 일어난 건 내가 강력계 신입이 되고 얼마 후였어.”

드디어 나온다. 그것도 당시 담당 팀의 일원에게 듣는 당시의 사건 이야기다. 영권은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나는 순경 생활을 하다 얼결에 강력계에 갔지. 당시 파출소장이 상부에서 인원 충원한다고 하니 덜컥 날 추천해 버렸거든. 이제 와 말하지만 난 강력계 형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 공무원 생활하면서 그저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지. 시골 파출소에서 일하다가 강력계에 오고 나니 정말 눈 뜨고 못 볼 사건들이 잔뜩 있었어. 온몸에 문신 칠갑을 한 깡패 새끼들 상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고.”

누군가는 강력계 형사를 꿈꾸지만 누군가는 싫어한다. 그건 예전보다 요즘이 더 심하다.

90년대에 한국 영화 주인공은 깡패 아니면 형사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경찰 이야기는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고 영화를 보고 환상을 가진 젊은이들이 현실도 모르고 강력계 형사에 지원해 형사 인력이 남아돌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요즘 젊은이들은 똑똑하다.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강력계 형사보다 공부해서 경찰 간부가 되거나, 아니면 아예 순경 생활을 하며 철밥통 끼고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걸 아는 젊은 층들이 강력계 지원을 기피해 요즘은 반대로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영권의 젊은 시절도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다시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인 그가 말했다.

“그래도 그 시절에 살인사건은 많지 않았어. 시신을 보는 건 보통 혼자 살던 노인들이 자연사했을 때지. 동네 사람이 발견해 출동해 보면 난리도 아냐. 오랫동안 아무도 발견 못 한 시체 본 적 있지? 지하 단칸방에 방치된 노인의 시신이 쥐에 물어뜯기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구토를 했던지.”

영권은 자신의 경찰 인생을 되돌아보며 필터 끝까지 담배를 태우다 종이컵에 꽁초를 비벼 끈 후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그러다 그 사건을 만났어.”

나는 처음으로 사건에 대해 질문했다.

“당시 어디서 근무하셨습니까?”

“울산서 강력계. 사건을 맡았던 건 강력 2반이었고. 난 거기 막내라 허드렛일이나 하던 시절이었지.”

“첫 출동은 어디였습니까? 낙동강입니까?”

처음 미카엘 신부의 아버지 시신이 떠오른 곳. 그곳이 사건의 처음이다. 하지만 영권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가긴 갔지. 한데 최초 출동은 내가 아니었어. 관할 파출소 소속 순경들이었지. 신고한 자는 낚시꾼이었고 말이야.”

“현장에 가 보긴 하셨죠?”

“물론이지. 물에 불어 터진 시신을 그때 처음 보는 바람에 하루 종일 토했지만.”

“시신 상태는 어땠습니까?”

“음…… 외상이 있긴 있는데 폭행을 당했거나 싸움을 한 흔적은 아니었어. 강은 물이 흐르니까 시신이 물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지 않나? 그래서 생긴 생채기 같은 건 보였지만 목이나 손, 주먹이나 얼굴이 전부 깨끗했지. 지금이야 과학수사대가 현장에 나오지만 그때는 그냥 감식반이 나왔는데 그 인간들 말로도 익사한 시신이라고 했어. 그래서 자살이라고 생각했지.”

“시신에서 신분증을 발견하셨다고 하던데.”

“맞아, 우리 선배가 발견했지. 울산 약사동이라고 약수가 좋은 동네 있어. 거기 빌라 주소가 찍혀 있더라고. 자살로 마무리한다손 쳐도 유가족에게 알려야 되고, 기본 조사도 하긴 해야 되니까 선배와 주소지로 갔지.”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혹시, 빌라에서 아내 쪽 시신을 처음 발견한 게 선배님이었습니까?”

영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쓴다.

“내 평생 그런 냄새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군.”

그는 지금도 그 냄새를 기억한다는 듯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그때가 초가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해. 아마 9월쯤일 거야. 빌라 앞에 도착을 했는데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야. 그 시절엔 음식물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기도 해서 그런 냄새가 별로 이상하진 않았지. 근데 그 집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하여간 3층인가 4층인가 그래. 복도 따라 올라가는데 냄새가 점점 심해지는 거야. 9월에도 이러면 한여름에는 엄청 심했겠다 싶었지. 어느 집에서 가자미를 말리나 싶기도 했고.”

“3년 전부터 악취 관련 민원이 있었다고 하던데.”

“맞아, 나중에 알았지. 악취 민원이 강력계까지 오진 않으니까. 현장 갔더니 경찰이 왔다고 동네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더군. 신고를 언제부터 했는데 이제야 오냐고 계란을 던지는 아줌마까지 있었어.”

“당황하셨겠군요.”

“그랬지, 망할 구청 새끼들. 악취가 그 정도로 났으면 문 따고 들어가 볼 것이지, 그걸 사람 없다고 그냥 놔두다니. 요즘 같은 세상에 그랬으면 싹 다 모가지 날아갔을 거야.”

“문은 어떻게 여셨습니까?”

“일단 벨을 눌렀고, 아무도 없길래 기다렸어. 그랬더니 아랫집 아주머니가 그러더군. 그 집에서 하도 냄새가 나서 거의 매일 찾아가 벨을 눌러봤는데 답이 없다고. 사람 안 사는 거 같다고 했어. 그래서 동네 열쇠 수리공을 불러서 강제로 열었어.”

“처음 집 안 상황이 어땠습니까? 최대한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영권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신발장 앞에 신발이 하나도 없었어. 이상하지 않아? 일반 가정집이 아무리 며칠 비어 있었다고 신발장 앞에 신발 하나 없다는 게 좀 이상한 거야. 같이 갔던 선배가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바로 발에 발싸개를 하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거실 바닥을 봤는데 하얀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어. 적어도 몇 개월은 비어 있었던 것 같았지.”

“낙동강에서 발견된 시신의 사망 추정 시각 기억나십니까?”

“음, 시신 발견 3일 전이야. 확실히 기억해, 당시 딸과 낙동강 근처 CCTV에 찍힌 걸 확인했거든. 그게 딱 3일 전이었고, 감식반 말도 비슷했기에 정확히 기억해.”

나는 영권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권은 잠시 내 필기를 기다려 준 후 말을 이었다.

“방이 세 개 있는 집인데 거실과 주방이 붙어 있고, 현관문 오른쪽에 방 하나, 거실 지나서 방 하나, 주방 옆에 하나가 있었어. 전부 열어봤지만 비어 있었어.”

“방은 누가 쓴 것 같아 보였습니까?”

“안방은 부부가 쓰는 것 같았어. 침대는 없었고, 이불장에 화장대가 있었지. 방 하나는 아들이 쓰는 방이었는데 침대와 책상이 있었고, 그게 현관문 바로 옆 방이야. 딸 방은 주방 옆에 딸린 방이었는데 보자마자 딸이 있을 거란 걸 알았지. 알록달록한 스티커들이 벽지에 붙어 있고 침대가 작고 핑크색 이불이 깔려 있었거든.”

“딸 방도 오래 비어 있었던 것 같았습니까?”

“맞아.”

“그리고 베란다로 가신 겁니까?”

“음, 사실 악취가 집 전체에서 풀풀 나고 있어서 근원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어. 보통 베란다에 두고 잊어버린 음식물 쓰레기 통에서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아서 일단 나갔지. 그런데 거기 이상한 게 있는 거야.”

영권이 턱을 괴고 미간을 좁힌다.

“베란다 문을 열고 처음 보였던 건 널어놓은 빨래들이었는데 안쪽에 세탁기가 있었어. 빨래에서 냄새가 나나 하고 맡아봤지. 하도 냄새에 찌들어서 이게 원인인지 아닌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반대편을 딱 봤는데 붙박이장 알지? 벽에 붙어 있는 장.”

“예, 선배님.”

“다른 집 조사해 보니까 원래 집 지을 때부터 옵션으로 나오는 장롱이더군. 다른 집도 같은 위치에 그런 장이 있었어. 그런데 청 테이프 있지? 그걸로 붙박이장을 칭칭 감아놓은 거야. 그냥 테이프 질을 해놓은 게 아니고 마치 봉인을 하듯이 테이프를 둘둘 말아서 꽁꽁 묶어뒀다고 할까?”

“냄새를 막기 위한 것이었나 봅니다.”

“맞아, 가까이 가니까 아주 그냥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지. 선배와 칼로 테이프 다 떼는 데 삼십 분은 걸렸을 거야. 얼마나 꽁꽁 붙여놨는지 말이야.”

영권은 그때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개고생을 해서 문을 딱 열었는데 말이야. 삼 단으로 나눠진 장이 나왔는데 다른 곳은 다 비어 있고, 가운데 딱 큰 상자가 있는 거야.”

상자. 시신이 들어 있던 바로 그 상자 이야기다.

“무슨 상자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사과 상자였어. 겉면에 평광 사과라고 써 있었고.”

평광 사과는 미카엘의 아버지, 구혁수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팔던 그 사과다. 영권이 말을 이었다.

“박스 밑바닥이 시커멓게 뭔가에 물들어 있었어. 박스를 여니 백 만년은 썩은 냄새가 풍겨 나왔지. 구토가 나와서 난 물러났어. 선배가 열었지.”

“시신이 들어 있었군요.”

“그래, 미이라 된 시신 본 적 있어?”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 나도 그때 이후로 본 적 없으니 지금껏 사건을 못 잊고 있었던 거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 미이라였는데 차라리 백골이 됐으면 그보다는 덜 징그러웠을 거야.”

“시신의 모양은 어땠습니까?”

영권은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모양인지 고민하다 소파 위에 다리를 올렸다. 무릎을 모으고 양팔로 무릎을 감싼 후 고개를 박고 앉은 자세를 취한 영권이 말했다.

“이런 자세였는데 발목이 양쪽 다 안으로 꺾여 있었어.”

무릎을 모은 자세에서 발목이 안쪽으로 꺾여 있다. 그건 누군가 시신을 박스 안에 억지로 욱여넣었다는 뜻이다.

들어가지 않는 발목을 억지로 안쪽으로 틀어넣은 후 장시간이 지나면 발목이 기형적으로 꺾이게 된다.

영권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시신 신원을 확인해 보니 죽은 구혁수의 마누라였어. 난리가 났지. 단순 자살 사건인 줄 알았는데 집에서 미이라가 나왔으니 경찰서가 발칵 뒤집어진 거야. 서장은 뛰어나와서 당장 애들부터 찾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말이야…… 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