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305화 (305/328)

살인의 기억 305화

21. 40년 그리고 35년(5)

영권은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일가족은 네 명. 그중 미아라 상태로 붙박이장에서 발견된 것이 엄마, 낙동강에서 낚시꾼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된 쪽이 아빠. 그럼 아들과 딸이 남아. 그렇지?”

“예.”

“아들 이름은 구종식. 당시 사제 과정을 밟느라 서울에 있었어. 스물네 살이었고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바로 학교에 전화를 해 학생을 바꿔달라고 했지. 생존해 있었어. 가족이지만 이런 사건에서는 제1의 용의자이니 일단 신병 확보.”

구종식. 그가 바로 현재의 미카엘 신부이다. 영권이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 열여덟 살이었던 딸. 우리는 조사 중에 딸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집에서 홈 스쿨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아냈어. 자료에 의무교육 과정만 이수한 뒤 본인이 선택했다고 쓰여 있었지. 뭐, 당연히 본인이 아니라 부모가 원한 거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학교에 가지 않아 주변에 친구가 없어 어디 물어볼 곳이 없다는 거였지. 그러다 사망한 아버지가 CCTV에 찍힐 당시 딸의 손을 잡고 함께 국도변을 걷고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어.”

영권이 자리에서 일어나 캐비닛을 열고 아주 오래돼 보이는 파일을 꺼내 내밀었다. 노란색 파일은 모서리 부분이 뭉그러질 만큼 너덜너덜하다. 나는 파일을 열며 물었다.

“함께 있던 아버지가 익사했으니 딸도 익사했을 거라고 판단하신 겁니까?”

“음, 동반 자살로 봤지. 아버지 쪽에서 타살 의혹이 있었다면 함께 살해된 걸로 봤겠지만. 한 오백 명 동원됐을 거야. 낙동강을 통째로 뒤졌다고 보면 돼. 결국 심각한 부패가 진행된 딸의 시신을 찾았고, 검시 결과 자살로 결론 났어.”

“두 사람은 자살. 어머니 쪽은 어떻게 결론 났습니까?”

“타살 흔적 없음. 결정적인 사인은 신장 암.”

“음.”

“유일하게 생존한 아들의 알리바이가 밝혀지며 결국 병사한 아내의 장례 치를 비용이 없어 집에 방치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어.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아버지와 딸이 동반 자살을 했다는 식으로 마무리됐지.”

“그렇군요.”

나는 서류를 넘겨보며 물었다.

“아까 후회로 남은 사건이라고 하신 이유는 뭡니까? 말씀하신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는 의심할 점이 없어 보이는데.”

영권의 눈빛이 심각해진다.

“아들 때문이야.”

“…….”

나는 서류를 넘겨보던 움직임을 멈추고 영권을 바라보았다. 그가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그때 아들을 취조하러 학교에 찾아간 적이 있었어. 물론 아들을 만나기 전에 담당 교수를 만나 그놈이 언제 학교에 들어왔는지 알아봤지. 엄마 쪽 사망 추정 일자보다 1년 전에 학교에 들어왔어. 또 아버지와 여동생의 사망 추정 시각에는 학교에 있었고.”

“그런데 뭐가 이상하셨던 겁니까?”

영권이 천천히 나를 바라본다.

“그놈 눈빛.”

“…….”

“자네도 형사 생활하며 느꼈을 거야. 살인자 놈들의 눈빛이 어떤지. 어떤 놈은 포악해서 짐승 같고, 어떤 놈은 옆에 있기만 해도 맹수와 함께 있는 느낌이 들지. 그런데 그놈은 달랐어. 내가 만나봤던 어떤 짐승 새끼들도 그런 느낌을 주진 못했거든.”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영권이 자기 눈가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텅…… 비어 있었다.”

“…….”

“지 부모가 죽었다는데. 지 동생이 강에서 반쯤 썩어서 발견됐다는데. 눈이 텅 비어 있었다.”

“울지도 않던가요?”

“아니, 울었어.”

영권은 소름이 끼치는지 자기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혹시 가식적으로 웃는 사람들의 특징 알아?”

“가식적이라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다는 뭐 그런 거 말입니까?”

영권이 고개를 끄덕였다.

“울었어. 지 교수가 함께 동석한 자리에서 분명히 울었어. 하지만 텅 빈 눈으로 우는 시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놈을 내보내고 담당 교수와 독대했지. 하지만 교수는 당일 제출된 리포트를 알리바이로 내놓았어. 아들놈의 필적으로 당일 날짜가 기재된 자필 리포트였고 본인이 직접 받았다고 주장했지.”

“당시는 교내에 CCTV가 없었으니 교수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겠군요.”

“맞아, 하지만 그래도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기숙사에 직접 가서 거기서 생활하는 애들을 찾아다녔지. 일일이 물었어. 사건 당일에 그놈을 봤냐고.”

“뭐라고 했습니까?”

영권이 담배를 물며 길게 한숨을 쉰다.

“우리들이 제일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는 진술이 나왔지.”

“…….”

“알지? 확실히 봤다, 혹은 못 봤다가 아니라. 모른다, 그런 것 같다는 진술.”

“그렇군요.”

“아무도 놈을 본 사람이 없어. 하지만 증거로 제출된 리포트는 있어. 문제는 이놈이 친구도 사귀지 않고 같이 몰려다니는 놈들도 없던 놈이란 거야.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놈. 평소에도 기숙사에 틀어박혀 있는지 어디 가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놈이란 거야. 그러니 당일 행적을 알 수가 없었지. 하다못해 몰래 지방에 내려간 게 아닌가 버스 터미널까지 다 뒤지고 다녔지만 증거는 없었어.”

영권이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손가락에 끼고 말했다.

“내가 더 수사했어야 했어. 거기서 멈추면 안 되는 거였어.”

“수사를 멈추고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 종결하신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아웅산? 그런 산이 있었나? 영권은 실소를 지으며 물었다.

“자네 올해 몇 살이지?”

“89년생입니다.”

“음, 그럼 모를 만도 하지. 1983년 10월이었어. 미얀마 순방을 간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이 테러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었지. 미얀마 수도에 있는 묘소 묘역에서 북한 새끼들이 폭탄 테러를 한 사건이야. 한국인 17명을 포함해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어. 대한민국 부총리와 외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포함한 각료와 수행원들이 사망했어. 사건 직후 당시 대통령은 공식 순방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했고.”

북한. 그래, 당시 북한에 관련된 사건이 터지면 군과 경찰은 모두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녔다. 살인마 잡는 것보다 국가 원수의 보호가 시급하다 생각했던 때이니까.

“선배님도 그때 차출되신 겁니까?”

“음, 물론 중요한 사건 물고 있던 형사들은 그냥 수사하라고 두고 나같이 지지부진한 사건 맡고 있던 놈들은 그냥 대충 종결짓고 대통령 경호에 투입하라는 지시를 받았어. 난 반대했어. 이 사건 뭔가 이상하다고. 하지만 난 아무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괜히 차출당하기 싫어 핑계 대는 놈이 되어버렸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경찰 내부의 알력으로 무마된 사건은 아니니까.

“그럼 그 이후에는 사건을 안 보신 건가요?”

“그럴 리가. 3년 후에 다시 사건을 확인하려고 학교를 찾아갔어. 그런데 그때 알리바이를 증명해 줬던 교수가 외국으로 발령을 받았다고 하더군.”

“어디로 간 겁니까?”

“독일. 3년 뒤에 온다고 했어.”

“돌아왔습니까?”

“음, 돌아왔을 거야. 여기서부터 내 잘못이 시작되는 거지. 6년 전에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 난 사건을 이제 와 휘젓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하는 마음이 들었어. 그때 맡고 있던 사건들도 눈코 뜰 새 없었고 말이지. 그래서 그때 그냥 그렇게 포기해 버렸지.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15년이 지나도 이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낀 것처럼 자꾸만 그 사건이 생각나.”

“…….”

“미안하네. 내가 그때 좀 더 끈질기게 수사했더라면 나도 그 긴 시간 후회하지 않고 자네 같은 젊은 형사가 수고할 일도 없을 텐데. 남이 싼 똥 치우게 한 꼴이 되니 미안할 뿐이야.”

“아닙니다, 선배님.”

말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그래서 나는 영권의 눈빛을 피해 버렸다.

만약 당신이 그때 끈질기게 수사해서 범인을 잡아냈다면. 혹시 그 범인이 아들이란 걸 밝혀내 징역을 보냈다면. 어쩌면 이 세상에는 장진수라는 살인마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더 큰 범죄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후회하고 있는 선배의 얼굴을 보니 그런 말이 밖으로 나오진 않는다.

“그 교수.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은퇴했어. 독일에서 더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나라에서 다시 교수를 하다 몇 년 전에 퇴임하고 지금은 쉬고 있는 걸로 알아.”

“정보 아십니까?”

영권이 주머니를 뒤져 접어둔 메모지를 꺼내 내민다.

“진원이가 자네가 이 사건에 대해 물으러 온다고 하길래 미리 준비했네.”

영권이 준 메모를 열어보니 교수 이름과 주소, 연락처가 써 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큰 도움이 됐습니다.”

“도움은 무슨. 방해만 잔뜩 했는데. 거듭 말하지만 미안하네.”

나는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드려도 될까요?”

“물론 당연하지. 내 명함도 가져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냐, 내가 고맙지. 꼭 해결하게.”

“예, 선배님.”

나는 선배에게 인사를 드린 후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제일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던 당시 사건을 맡은 선배님 인터뷰가 쉽게 끝났다. 이게 다 목 과장님 덕분이다.

* * *

쌍문동 한성 종합병원.

나는 이제 익숙해진 병실의 문을 열었다.

상태가 호전되어 이제 중환자실 신세를 벗어났지만 연쇄살인범을 일반 환자와 함께 둘 수 없어 1인실에 갇혀 있는 장진수.

무려 네 명이나 되는 순경들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병실 문을 열자, 침대에 앉아 아래로 발을 내리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장진수의 뒷모습이 보인다.

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말했다.

“살 만한가 보지?”

“…….”

녀석은 말없이 뒤를 돌아본다. 나를 가만히 주시하며 내 표정을 관찰하던 놈이 입을 연다.

“찾으셨군요.”

“…….”

이 자식은 어떻게 내 생각을 읽는 걸까? 신기한 놈이다. 나는 의자를 끌고 와 침대 앞에 두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 찾았다.”

“…….”

“거짓말 같아?”

“…….”

“네 본가 앞 언덕에 있는 떡갈나무 구덩이 속.”

“그렇군요.”

용의주도한 놈. 내가 그걸 찾은 것을 눈치챘음에도 내가 일기장을 찾았다고 거짓말을 한 뒤 자신에게 뭔가 캐낼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해 일단 입을 닫은 것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놈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장진수 놈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아직 창백한 안색을 한 녀석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인다.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일기장을 발견하셨으니 질문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 아직도 게임 타령이냐?”

“…….”

나는 입을 다물고 질문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는 놈의 눈을 직시하며 물었다.

“살인. 미카엘 신부에게 배운 거냐?”

“일기장을 찾으셨다고 하셨습니다만.”

“거기 적힌 내용이 사실이냐 묻는 거야.”

“사실입니다.”

“네 부모. 미카엘 신부가 죽였어?”

“아닙니다.”

“아니라고?”

“예.”

“그럼?”

“제가 죽였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열하나가 아니라 아홉이라며. 그럼 부모는 지가 죽인 게 아닌 거 아닌가? 나는 몸을 내밀며 물었다.

“네 손으로 죽인 거 확실해?”

장진수가 자기 손을 바라본다. 놈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다. 자기 손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내 손으로 죽였습니다.”

나는 녀석의 반응을 주시하다 말했다.

“질문을 바꾸지.”

“예.”

“네가 부모를 죽였을 때, 부모를 죽인 네 손을 움직인 건 너 스스로의 의지였었냐?”

“…….”

“대답해.”

자기 손을 바라보고 있던 녀석의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온다. 그리고 곧 놈의 고개가 저어진다.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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