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307화 (307/328)

살인의 기억 307화

21. 40년 그리고 35년(7)

확실하다. 미카엘 신부가 장진수 녀석을 세뇌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법정에서 어떻게 증명하느냐, 이것이 문제이다.

상대는 존경받는 가톨릭 신부. 반면에 그에게 피해를 입은 자는 희대의 연쇄살인마. 누가 이 녀석의 말을 믿어줄 것인가?

시뻘겋게 충혈되어 핏빛이 된 눈을 번들거리는 장진수. 나는 놈이 진정할 수 있도록 더 말을 걸지 않고 물러났다.

몇 분이 지나고, 가슴을 들썩거릴 만큼 흥분했던 녀석은 차츰 호흡이 안정되며 본래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

팔짱을 끼고 물러나 있던 나는 놈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걸 타이밍을 보았다.

녀석은 그런 나를 힐끔 본 뒤 어색한 표정으로 환자복 매무새를 만지며 말했다.

“추한 꼴을 보였습니다.”

“어, 좀 그렇더라.”

“미안합니다.”

“미안할 것까지는 없고. 아니, 미안하면 질문에 계속 답을 해주면 좋겠어.”

“…….”

장진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추한 꼴을 보인 만큼 질문 하나 정도는 더 답해 드리죠.”

“겨우 하나?”

“부족합니까?”

“좀 심하던데.”

“피해드린 것은 없습니다만.”

“그래, 뭐.”

겉으로는 완벽히 차분한 연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속이 타들어간다. 질문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을 해야 지지부진한 수사에 급물살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바로 그때, 품에서 전화가 울렸다.

순간적으로 병실을 나가서 받을까 고민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위급한 상황이라 볼 수 없으니 일단 내용을 들어보고 결정해도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잠시 나가 있는 동안 장진수 이 자식이 딴마음이라도 먹으면 곤란하니까.

액정을 보니 오 선배의 이름이 떠 있다.

나는 핸드폰을 슬쩍 들어 보이며 물었다.

“전화 잠깐 받아도 되냐?”

녀석이 말없이 고개를 까딱한다. 나는 녀석의 눈을 마주 보며 전화를 받았다.

“예, 선배님.”

-과장님, 어디십니까?

“쌍문동 병원입니다.”

-아, 예. 다름이 아니라 성당 경호 나간 녀석들에게 연락이 왔는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미카엘 신부를 데려가겠다고 왔답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왜요?”

-자세한 건 말해주지 않습니다만, 종교재판 관련된 일인 것 같답니다.

나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요셉 신부가 가톨릭 협회에 미카엘 신부를 고발했다는 이야기가 이제 생각났다.

미카엘 신부는 중요 참고인이었고, 현재는 용의자다. 협회가 그를 데려가는 것을 막아야 하나, 명분이 없다. 그의 신병을 우리 쪽에서 관장할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디로 데려간다는 겁니까?”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에 데려간다는 걸 봐서는 광진구로 가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목적지는 말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형사 동행 가능합니까?”

-주교 회의장까지는 경호를 빌미로 동행 가능하지만 회의 석상에는 참석 불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회의장까지 형사들 동행시켜 주세요. 회의 도중에는 밖에서 대기해 주시고.”

-제가 직접 움직일까 합니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그럼 중간에 보고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장진수 놈을 바라보니, 내 통화를 엿듣고 있었는지 눈길이 내게 와 있다.

“남 전화 엿듣는 건 매너가 아닌데.”

“…….”

전화기를 품에 넣고 놈을 바라보니 한참 날 관찰하던 녀석이 말한다.

“미카엘이…… 주교 회의에 소환된 겁니까?”

미카엘 신부에게 원한을 가진 놈. 타인의 개인정보라 말해줄 수 없지만 궁금해하는 건 이해가 된다.

“나 경찰이다. 그런 건 말해줄 수 없어. 게다가 넌 미카엘 신부를 죽이려고 했던 놈인데 피해자 동선을 알려줄 리가 없지 않나?”

“…….”

“이해해라. 내가 경찰이라.”

슬쩍 놈의 눈치를 살폈다. 괜히 이런 걸로 기분을 상하게 해 내 질문에 답하지 않게 만들 생각은 없기에 기분을 맞춰줘야 할 필요가 있다. 안 되는 걸 편법으로 되게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니 다른 쪽으로 기분을 풀어줘야지.”

“여기 음식 맛없지?”

“…….”

“병원 밥이 그렇지 뭐. 너 보광사 쪽에 마련한 아지트에 가 보니 라면만 먹었던데. 돈이 없어서 그랬냐?”

“…….”

“탈옥까지 했는데 고작 라면 같은 거 먹으려고 나온 건 아닐 거 아냐?”

장진수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연다.

“누가 차곡차곡 모은 돈이 든 계좌를 동결해 버려 그렇죠.”

아, 그거 내가 그랬지 참. 나는 실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하게 됐네. 이해해라, 너 잡는 게 내 일이라.”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 병실 문을 열고 밖에 있는 순경들에게 신용카드를 주며 말했다.

“미안한데, 치킨 한 마리만 사다 줄래요? 이런 심부름 시켜 미안합니다. 두 마리 더 사서 여기 계신 분들도 좀 드시고. 아, 저희 거는 후라이드로 부탁드립니다.”

순경 중 한 명이 자기들은 괜찮다며 얼른 사오겠다 말하고 자리를 비운다.

나는 다시 병실 문을 닫고 녀석을 돌아보았다.

“치킨 좋아하지?”

“…….”

“난 어릴 때부터 양념보다 후라이드가 더 좋던데. 넌 어때?”

“취향이 비슷하네요.”

“그래? 다행이네.”

나는 의자를 끌어 녀석에게 조금 더 가까이 앉으며 넉살을 부렸다.

“치킨도 쐈는데 질문 두 개 안 되냐?”

“게임과 관계없는 소비였습니다.”

“빡빡한 새끼.”

“하시죠.”

일부러 시간을 끌며 질문을 고르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나는 지금 무척 고민이 된다. 해야 할 질문과 하고 싶은 질문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해야 할 질문은 미카엘 신부가 널 세뇌한 증거가 있는가? 첫 살인을 할 때 미카엘이 네 손을 잡고 살인하게 했다는 것을 법정에서 증명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하고 싶은 질문은 좀 망설여진다. 나는 부모님 사건과 미카엘 간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의심만 가지고 질문을 했다가 소중한 기회를 허무하게 잃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나는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이성의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장진수 녀석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카엘 신부가 널 세뇌한 증거. 가지고 있어?”

녀석이 고개를 젓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겨우 욕망을 이겨내고 이성을 붙잡았는데 그마저 허무하게 그냥 날려 버리고 만 것이다.

“젠장.”

상대는 자기 원한보다 나와 하는 게임을 더 재미있어하는 미친놈이다. 여기서 더 매달려 봐야 나만 추한 꼴이 될 뿐이다.

나는 잔뜩 미련이 남았지만 안 그런 척하며 옷을 털고 일어났다.

“시간 낭비만 했군. 치킨 맛있게 먹어라.”

몸에 힘이 쭉 빠진다. 나는 등을 돌리고 녀석에게 내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며 대충 손을 들었다.

“나 간다.”

“형사님.”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는 표정을 숨기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왜, 또?”

“질문이 틀린 것 같아서.”

나는 눈을 번쩍 뜨고 놈을 돌아보았다. 장진수는 침대에 앉아 여전히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방금 그건 질문으로 치지 않겠습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새끼. 지금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그걸 물어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른 질문을 해 당황한 건 이놈 쪽이 아닐까?

나는 짐짓 태연한 척하며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내가 할 질문은 그거 맞아. 증거가 제일 중요하니까.”

“확실합니까?”

“…….”

“다시 묻겠습니다, 제게 할 질문이 그것뿐입니까?”

“답이 정해진 느낌인데.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는 거냐?”

“…….”

놈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됐다, 주도권을 가져왔다.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 아쉽지만 상관없다.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니까.

나는 몸을 돌리고 의자 옆에 섰지만 앉지 않고 등받이에 손을 올린 후 기대기만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해. 들어줄 테니까.”

“…….”

“아, 이렇게 말하면 자존심 상하겠군.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방금 한 질문을 질문으로 치지 않겠다고 했지? 그럼 네가 하고 싶은 말을 듣고 그걸 내가 질문해서 답했다고 생각하자고. 더 묻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됐지?”

“…….”

장진수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본다.

“많이 변하셨군요.”

“음?”

“처음 형사님을 만났을 때와 지금. 사람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음, 난 그대로인데. 뭐가 달라졌다는 말이지?”

장진수가 내 쪽으로 발을 내리며 약간 가까이 온다. 놈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에 형사님은 날카로운 칼 같았습니다. 예리한 칼날이 내 목을 겨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죠.”

“지금은 다른가?”

“예, 내 앞에 쿠션이 있는 것 같네요.”

“쿠션? 소파에 있는 저거?”

“예.”

무슨 뜻일까? 장진수가 슬쩍 미소를 짓는다. 놈이 웃는 걸 처음 보는 건가? 왜 이리 생소한 거지?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이 웃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다.

“푹신한 쿠션 속에 여전히 날이 선 칼이 들어 있는 것 같네요.”

“뭔 소리야?”

“칭찬입니다.”

그게 뭔 칭찬이냐? 생전 처음 들어보는 비유다. 하지만 대강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겠다. 예리한 칼 같아 마주하면 마음이 쪼그라들던 예전과 달리 유들유들해 보여 말을 꺼내기 쉬워졌지만 여전히 칼날은 살아 있다는 뜻일 거다. 결과적으로 칭찬은 맞네, 비유가 황당해서 그렇지.

나는 팔짱을 끼고 녀석을 내려 보며 말했다.

“할 이야기 해. 내가 질문한 걸로 하고.”

“내가 왜 그토록 미카엘을 두려워했는지. 안 궁금하십니까?”

“그게 하고 싶은 말이야? 당연한 거 아니냐? 네 손 잡고 부모 죽이게 했다면서.”

말은 이리해도 나는 속으로 수만 가지 계산을 하고 있다.

이놈은 다른 놈들과 다르다. 말과 행동 모두를 계산해서 하는 놈이다. 저렇게 말한다는 건 미카엘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날 빤히 보고 있는 녀석에게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놈에게 내 속을 들킬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하지만 두 번 실수할 순 없다. 여기서 거짓을 숨기려 시선을 피하면 이놈은 바로 알아챌 것이다.

눈을 피하지 않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표정으로 고갯짓을 하며 계속해 보라는 신호를 주자 녀석이 말했다.

“저를 어떻게 잡았는지 기억하십니까?”

순간 동네 떠돌이 개의 기억을 읽고 널 추적했다고 말할 뻔했지만 간신히 참아낸 나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 말했다.

“단양의 네 본가에서 부모님 시신이 나와 체포. 이후 네 살인 아지트에서 발견한 시신을 추가 증거물로 기소했다. 그건 왜?”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설마 거기 미카엘 신부가 살인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나? 하지만 아까 분명히 증거를 안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내 시선을 마주하던 장진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신은 증거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살해 도구를 모두 폐기했습니다. 법정에서도 검사가 흉기를 제시하지는 못했죠. 그런데 왜 유일한 증거인 시신을 없애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당연히 생각해 봤지. 그건 네가 시신을 훼손하는 것도 모자라 물고기에게 하는 단백질 표본화 작업을 한 걸 보고 좋아하는 변태 미친 새끼라서 그런 거야, 이 짐승 같은 새끼야.

나는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참고 차분하게 말했다.

“살인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한 거 아닌가?”

장진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그게 뭐? 이 타이밍에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야?”

놈이 날 바라본다. 한참 말없이 내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살인의 추억. 그게 저에게만 있으란 법이 있습니까?”

“……뭐?”

“내가 미카엘에게 공포심을 가지고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지금 한 말. 두 가지를 조합해 보시면 답이 나올 겁니다. 그럼 그만 가 보세요. 제가 드릴 힌트는 이게 끝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