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309화 (309/328)

살인의 기억 309화

21. 40년 그리고 35년(9)

목 과장님 손에 밝혀진 타살 가능성.

1983년에 일어나 40년이 넘게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 난 사건.

형사소송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다. 2007년 12월 형소법이 개정되면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어났지만, 이는 개정법 시행 전 저지른 범죄에는 소급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7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즉, 해당 사건이 지금이라도 살인으로 판명 났으니 다시 조사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강혁 아저씨가 수사 지시서를 반으로 접어 손가락 사이에 끼고 내밀며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친다.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결국엔 네가 해내는구나.”

나는 수사 지시서를 받은 후 실소를 지었다.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목 과장님이 수고해 주신 덕분이지.”

“목 과장이 네놈 일이 아니면 직접 움직였겠냐?”

“그런가요?”

강혁 아저씨가 지시서를 눈짓하며 한숨을 쉰다.

“검사 설득하느라 힘들었다. 40년도 넘은 사건을 지금 어떻게 수사할 거냐고. 괜히 들쑤시다 언론이 냄새 맡고 덤벼들면 나중에 해결 못 해 힘들어지는 건 경찰이 될 거라고. 괜한 짓 하지 말라고 안 해주려는 거 경찰 단독 수사하겠다는 소리까지 해가며 정식 수사로 허가받은 거니까. 제대로 해.”

나는 아저씨를 째려보며 말했다.

“어차피 수사만 하는 건데 검찰 허가가 왜 필요해요?”

“새끼야, 수사만 하다 끝낼 거냐? 나중에 영장도 받고 하려면 당연히 한 몸으로 움직여야지. 넌 새끼야,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맨날 경찰, 검찰이 편 나눠서 싸우는 드라마만 보니 그 모양이지. 우리 두 조직은 한 몸처럼 움직여야 시너지가 나는 거다.”

나는 말없이 빙긋 웃었다.

아저씨는 항상 이랬다. 사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경찰 우습게 보는 검찰에서도 강혁 아저씨만은 논외의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검찰 중에도 아저씨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리 엄살떨며 말하고 있지만 아저씨 말이라면 두말없이 따라주는 검사가 조금 툴툴거린 것 정도로 저러는 거다.

물론 검찰의 그런 존경은 30년이 넘는 경찰 생활로 증명해 보인 아저씨의 능력과 인성 때문이지만.

나에게 아저씨는 존경하는 경찰이라고 하기보다 존경하면서도 편하게 장난칠 수 있는 부모님 같은 느낌이다.

“엄살은.”

“엄살? 이 자식이 지금 엄살이라고 했냐? 하! 이 자식아. 차라리 발로 뛰면서 수사하는 게 편하지, 이 자리 앉아봐. 매번 여기 가서 이놈 설득하고, 저기 가서 저놈 설득하고. 아랫사람들 눈치 보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이 와중에도 윗사람이 아니라 아랫사람 눈치를 본다고 말하는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정말 좋다.

“알았어요, 수고하셨어요.”

수사 지시서를 들어 보이며 노고를 치하했지만 아저씨는 더욱 도끼눈이 된다.

“이 자식이! 그런 소리는 윗사람이 하는 거다, 네가 내 위야?”

“하하.”

“네가 수고해! 네가 수고하라고!”

“하하, 알았어요. 수고 많이 하고 올 테니 진지 자시고 커피나 한잔하면서 쉬세요. 이건 제게 맡기시고.”

강혁 아저씨는 뒷방 노인네 취급이 싫은지 여전히 가자미눈을 하고 날 째려봤지만 다시 수사 관련 질문을 던진다.

“목 과장이 다른 말은 안 해? 살인인 거 증명했으면 단서도 찾아야지.”

“그게 어디 쉽나요?”

“뭐 다른 거 없어?”

“아직은 없어요.”

“후, 그럼 이제 뭐 할 거래?”

“어제 동의서 받아갔어요.”

강혁 아저씨가 의문스러운 얼굴이 된다.

“동의서?”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가 법적인 아들인 거 확인했으니까, 제게 동의받아야죠.”

“그러니까 무슨 동의를 받았냐고?”

나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보다 퉁명스럽게 말했다.

“엄마 시신. 다시 부검하는 데 동의서가 필요하니까.”

“…….”

강혁 아저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저씨는 내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무덤…… 다시 파낸다는 거냐?”

“죄송해요, 아저씨가 장례 치러주신 거라던데. 부검 끝나고 원위치 해주시기로 했으니 걱정 마시고요.”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괜찮냐 너?”

“…….”

죽은 부모님을 무덤에서 다시 파내 재부검을 한다는데 기분 좋을 아들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다. 죽어서라도 편하게 두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유가족들을 나도 많이 보았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물론 나라고 속이 편한 건 아니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살며 많은 추억을 남긴 유가족들에 비해 추억 없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들의 슬픔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잡아야 되니까.”

“…….”

“나는 경찰이니까요.”

“…….”

“경찰이기 전에 엄마 아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잡겠다는 겁니다.”

“후.”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속으로 아마 ‘이 차가운 새끼’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으신다. 어쩌면 엄마 얼굴도 모르는 나보다 함께 지낸 세월이 있는 아저씨의 속이 더 쓰릴지도 모르겠다.

“아저씨도 동의하시죠?”

“…….”

물론 아저씨 동의는 필요 없다. 내가 법적인 아들이니까.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묻고 싶었다. 그리고 아저씨는 내 예상과 같은 답을 내놓으셨다. 물론 괴로운 얼굴로 주먹을 꽉 쥐고서.

“해야지. 선배 억울한 죽음. 반드시 밝혀내라. 영면을 취하고 있던 분을 방해한 대가. 반드시 치르게 해줘.”

역시 이래야 나의 강혁 아저씨지.

“예, 가 보겠습니다.”

“목 과장 쪽에서 뭔가 단서 될 만한 거 나오면 나한테 알려줘라. 그래도 오랫동안 수사해 온 건데 내가 들으면 뭔가 연결점이 잡힐지도 모르니.”

“예, 아저씨.”

“가 봐.”

두 시간 뒤, 묘산 추모공원 5-438.

“거기 조심! 우리 선배님이다. 최대한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발굴해, 이 새끼들아! 거기, 이 쌍놈의 새끼야, 그렇게 삽질하면 관 부서진다고, 이 개새끼가, 그분이 누군지 알고!”

호랑이 같은 눈을 번들거리며 묘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인 목 과장님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출동한 KCSI 대원들은 한 삽을 뜰 때마다 눈치를 보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땅을 파 관을 꺼내고 있다.

삽질을 하던 KCSI 대원 한 명이 조그맣게 툴툴거린다.

“아니, 사건 현장도 아니고 보존해야 될 현장 증거가 없는데 왜 조심하라는 거야, 베테랑 대원들만 지원하라고 해서 왔더니 이게 베테랑이 할 일이냐, 젠장.”

툴툴거리는 대원의 옆에서 삽질을 하던 나이 지긋한 대원이 화들짝 놀라 팔꿈치로 그의 복부를 강하게 친다.

“이 새끼가, 입 안 다물어?”

“아! 아파요, 선배님.”

“조용히 하라고, 이 새끼야.”

“하, 선배님은 안 이상해요? 부검 다시 하는 건 알겠는데 관 파내는 데 뭐 이렇게 조심스럽게 하냐 이 말입니다. 아니, 솔직히 무덤에서 관 하나 꺼내는 데 두 시간이나 걸리는 게 말이 됩니까?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조직이 어디 있어요?”

나이 많은 대원이 번쩍 고개를 들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시 중인 목 과장의 눈치를 본 후 젊은 대원의 뒷목을 잡고 강하게 누른다.

“대가리 박고 삽질하면서 들어. 목 과장님 아시면 네가 대신 묏자리에 들어가게 될 테니까.”

“…….”

목 과장은 KCSI 내에서 소장에 버금가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사람이다. 더욱 무서운 건 이 사람의 힘이 권력이 아니라 실력에서 나오는 주변의 존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젊은 대원은 찔끔한 얼굴로 삽질을 하며 속삭였다.

“이 사람. 경찰 선배라면서요. 높은 사람이었습니까?”

“경사였다고 들었어.”

“에? 그럼 말단인데. 왜 이렇게 조심하는 겁니까? 진짜 선배라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후. 잔말 말고 삽이나 떠 새끼야.”

“아니,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나이 많은 대원이 잠시 허리를 펴고 쉬며 땀을 닦는 척 다시 목 과장의 눈치를 본 뒤 속삭였다.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 알지?”

“알죠, 요즘 거기 모르면 간첩인데. 펄펄 날아다니는 부서 아닙니까?”

“거기 이끄는 사람. 누군지 알아?”

“장 본부장님 아닌가요?”

“대가리 말고, 그 조직이 날아다니게 만든 실세.”

“아, 소문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연소 총경 아닙니까?”

나이 많은 대원이 고개를 끄덕인 후 관을 눈짓하며 말했다.

“그분 어머니야.”

“…….”

젊은 대원이 놀란 얼굴로 반쯤 나온 관을 바라본다. 나이 많은 대원이 덧붙였다.

“게다가 현 경찰청장님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였다.”

“헉.”

“살인사건으로 희생되신 분이 35년이나 억울함을 못 풀었다. 우리가 죄송하게 생각해야 되겠냐, 안 되겠냐?”

“…….”

“단지 선배라고 존경심을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경찰 밥 먹고 있는 놈들이라면 이분 억울한 죽음을 밝혀 드리지 못한 걸 죄송하게 생각해야 되는 거다. 알겠냐?”

“…….”

젊은 대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관을 바라보다 잠시 후 다시 삽을 뜨기 시작했다. 그의 몸짓은 전에 없이 조심스러워졌다.

약 30분이 더 지난 후 대원들이 관을 밧줄로 꽁꽁 묶은 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지면 위에 올려놓자, 목 과장은 옷 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관 앞에 선다.

그의 행동을 보고 있던 KCSI 대원들이 그의 뒤로 도열한다.

목 과장이 관을 앞에 두고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자, 대원 전체가 관을 향해 허리를 숙인다.

허리를 편 목 과장이 진지한 얼굴로 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님의 억울한 죽음. 35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반드시 밝히겠습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추모 공원 위.

예전 여기서 벌어진 사건 때 피가 튄 피해자의 차가 발견되었던 그 주차장에 선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내려 보고 있었다.

강혁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 직후에 내려온 공원. 어찌나 조심스럽게 팠는지 아침에 시작했다는 일이 내가 도착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끝났다.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저 모습을 본다고 눈물이 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괜히 울컥해 저 많은 사람 앞에서 울면 창피하니까 그냥 여기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처럼 펑펑 울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관을 보니 울컥한 마음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진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천륜이란 게 이런 것인가 보다.

나는 깊게 허리를 숙이고 사죄하는 목 과장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허리를 숙였다.

“미안해요, 엄마. 어린 날 지키려고 했던 당신을 혼자 외롭게 너무 오래 방치했네요. 늦게 와서 미안해요.”

나는 한참 허리를 숙이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 엄마가 계신지는 모르겠다. 그저 계시다고 상상하며 사진으로 본 얼굴을 떠올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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