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310화
21. 40년 그리고 35년(10)
이틀 후 KCSI.
중대범죄 수사과 팀원들은 아침에 온 목 과장님의 전화에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
목 과장님은 밤을 새워서 부검을 했는지 퀭하고 푸석푸석한 얼굴로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힘없이 손을 드신다.
“여기.”
지난 이틀간 우리 수사는 진전이 없었다. 미카엘 신부는 여전히 천주교 주교회의에 구금되어 있고, 두 시간에 한 번씩 주교회의 주변에서 경계를 서는 형사들에게 그의 신변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 외에는 그저 KCSI가 뭔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며 초조해하고 있었을 뿐이다.
아침에 과장님 전화를 받고 정말 바람처럼 달려왔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뭔가 발견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고생의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남은 과장님을 보니 그런 마음이 싹 달아난다.
함께 온 오진규가 목 과장의 몰골을 보고 묻는다.
“얼마나 못 주무신 겁니까?”
목 과장님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한…… 50시간쯤?”
관우가 놀라며 감탄을 내뱉는다.
“헐, 50시간이나 못 주무셨다고요? 사람이 그렇게 안 자고 버틸 수 있습니까?”
연주가 목 과장님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말했다.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과장님?”
목 과장님은 연주의 손을 빼며 말했다.
“안마는 됐어. 마음만 받지.”
연주는 물러났지만 내 마음은 다르다. 과장님이 나 때문에 고생하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연주 대신 목 과장님의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과장님은 다시 자기 어깨를 주무르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상대가 나인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목을 돌린다.
“어, 시원하다.”
“이제 좀 자요.”
“어, 안 그래도 더 못 버텨. 전달 사항만 말하고 가서 잘 거다.”
“어디가 제일 아파요?”
“지금 거기. 아야, 아아…… 어, 시원하다.”
“아프다는 겁니까, 시원하다는 겁니까?”
“너도 내 나이 되면 안다.”
“강혁 아저씨도 그렇고, 과장님도 그렇고 나이 먹은 남자들은 다 왜 그 말을 입에 달고 사나 모르겠네요.”
“어, 너도 나이 먹으면 알아. 그때 가면 우리가 이해될 거다. 이제 됐어, 그만해도 된다.”
내가 손을 떼자 어깨를 빙빙 돌리고, 목을 꺾어 풀어준 과장님이 씩 웃는다.
“우리 도경이 손이 약손이네.”
처음 안마를 했다가 거절당한 연주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하지만 그녀도 안다. 목 과장님이 자신을 배려했음을. 그는 그녀를 여성이 아닌 형사로 인정하기에 거절한 것이다.
목 과장님이 옆에 둔 서류를 내민다.
“사인 밝혀냈다.”
1989년 사건이지만 백골이 발견된 건 2023년 11월. 4년 전 현대 과학수사 기법으로 밝혀내지 못한 사인이 목 과장님 손에서 밝혀졌다.
관우가 제일 먼저 서류를 받아 봉투에서 꺼내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역시 과장님! 어떻게 밝혀내신 겁니까?”
“안에 있어. 직접 읽어봐.”
관우가 서류를 꺼내 사인 부문만 읽어본 뒤 어리둥절한 얼굴이 된다.
“suffocation? 이게 뭐예요?”
목 과장님이 손가락을 튕겼다.
“결핍성 질식사다.”
연주가 아리송한 얼굴로 서류를 받아 들고 읽어본 뒤 물었다.
“그게 뭔데요? 경부 압박 질식사나 기계적 질식사, 익사는 많이 들어봤는데 그건 처음 들어보는데요.”
경험 많은 오진규가 내 눈치를 살핀 뒤 조용히 말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산소 결핍으로 사망한 거다.”
오진규의 말에 모두가 조용해지며 날 바라본다. 나는 가만히 서류를 응시하다 말했다.
“매장될 때 살아 있었다는 뜻입니까?”
목 과장님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사인 규명이 제대로 안 된 거였어. 이 사인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비구폐색성 질식사(smothering), 기도폐색성 질식사(choking), 결핍성 질식사(confined spaces/entrapment/vitiated atmosphere)로 분류한다. 이 피해자의 경우 세 번째에 해당하고 산소 결핍이 원인이다.”
“어떻게 밝혀내신 겁니까?”
“광주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와 KCSI 중앙법의학 센터, 법의조사과에 도움을 받았다. 2012년도에 질식사의 새로운 분류에 따른 법의부검의 질식사 분류라는 논문을 낸 대원을 찾아내 유골 내의 이산화탄소 함유량을 확인했고, 약 500구의 시신을 대상으로 한 실험 데이터와 비교 분석 결과 결핍성 질식사일 확률이 80% 이상이라는 결과다.”
엄청난 조직 이름들이 나온다. 우리의 단독 수사였다면 그들의 공조를 얻기까지 몇 달은 걸렸을 것을 목 과장님은 인맥으로 간단히 해결해 버렸다.
나는 다시 서류를 보다 이를 갈았다.
“산 채로 생매장을 했다는 뜻입니까?”
모두가 조용히 나를 주시한다. 피해자가 내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어머니가 아닌 무고하게 생매장당한 피해자를 떠올리며 분노를 느낄 뿐이다.
목 과장님이 고개를 저었다.
“결과적으로는 생매장이지만, 당시 피해자의 의식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 검시 보고서 봐서 알겠지만 끔찍한 폭행을 당했다. 미세 골절만 열아홉 군데야. 보통 사람은 그렇게 맞으면 기절하고도 남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부디 기절했기를 바랐다. 그 끔찍한 고통을 생생하게 느껴가며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기를 바랐다. 차라리 기절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죽는 쪽이 낫다.
나는 잠시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고 있었다. 주변이 조용한 걸 보니 다들 내 눈치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마음이 어지러웠지만 분위기가 이러니 슬퍼하는 것은 나중에. 지금은 수사를 할 때이다.
“미카엘 신부 부모의 사건과 다르게 이 사건은 육안으로 봐도 살인사건이 분명했던 사건이라 수사 지시서 받는 건 금방 될 겁니다. 동시 수사로 가죠.”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찌 보면 개별 사건으로 보고 따로 수사하는 게 맞지만 내 지시라면 두말없이 따라주는 팀원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그때, 목 과장님이 손을 슬쩍 들며 끼어든다.
“동시 수사해야 돼.”
나는 과장님을 돌아보았다. 과장님께 사건 공유는 모두 마쳤는데. 과장님도 이 두 사건이 개별 사건일 수 있다는 건 알고 계실 텐데 왜 단정적으로 동의하시는 걸까? 과장님도 맹목적으로 날 믿어주시는 걸까?
아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증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 물론 나에 대한 호감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동의를 할 사람은 아니다. 그가 알아낸 것이 뭔가 더 있는 거다.
나는 목 과장님 방향으로 몸을 돌린 후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피곤에 절어 있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는 과장님이 나직하게 말했다.
“폭행 흉기. 뭔지 알아냈다.”
나는 눈을 꿈틀거렸다. 폭행의 흉기. 직접적인 사인을 만들어낸 것은 흉기에 의한 폭행이 아니라 산소 결핍으로 인한 질식사이지만 흉기를 알아낸다는 건 범인의 프로파일을 작성할 수 있는 중요한 힌트를 얻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폭행의 흉기.
나는 예전에 강혁 아저씨에게 들었던 검시 보고서를 떠올렸다.
끝이 사각형인 나무 둔기. 매장지에서 흉기로 추정되는 나뭇조각이 증거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산딸나무 조각이었고, 니스 칠이 되어 있었다고 했으며 자생지는 충청도와 경기도. 엄마 시신이 나온 산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나무라고 했었다.
“흉기가…… 뭡니까?”
목 과장님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니스 칠이 된 나무 흉기. 그리고 미카엘 부모의 수사와 내 부모님 수사를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조합해 이 흉기가 무엇인지 예상했다. 하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심정이 되었다.
나는 눈을 감고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십자가……입니까?”
관우와 연주가 대경실색하며 끼어들었다.
“사, 사, 사람을 십자가로 때려죽였다고요?”
“말도 안 돼! 하필이면 왜 십자가로 자, 잠깐만 그럼…… 같이 수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침묵. 다섯 명이나 자리한 로비에 침묵이 흐른다. 팔짱을 끼고 조금 물러나 있던 오진규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게 직접적 사인은 아니니 때려죽였다는 말은 오류이고. 십자가로 폭행했다는 이야기는 맞습니까, 과장님?”
과장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니 확실히 확인을 받으려 질문하는 오진규.
목 과장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나뭇조각으로 3D 스캔을 돌려 실제 흉기를 추정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주교 주교회의에 확인했다. 십자가가 맞아.”
목 과장님이 목을 풀며 말했다.
“주교회의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군. 교인들 사이에서 산딸나무는 Dog Wood. 즉, 개 같은 나무라고 불린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쓰인 나무가 바로 이 산딸나무였기 때문이란다. 꽃잎도 공교롭게 십자가 모양이고, 꽃잎 끝 휜 모양은 손바닥에 박힌 못을, 붉은 열매는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고 한다.”
관우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린다.
“그래서 개 같은 나무라고 불리는 겁니까?”
목 과장님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라고 하더군.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교인들 사이에서 그 나무는 성스러운 나무로 취급받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하니까. 담당자 말로는 고대 유럽에서 이 나무껍질로 개의 피부병을 치료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해.”
목 과장님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건 중요치 않고. 피의자의 흉기가 십자가라는 게 중요하다. 일반인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작은 십자가로 사람을 폭행하는 건 어렵다. 꽤 큰 십자가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했겠지. 그걸 몸에 지닐 만한 사람이 누구일까?”
연주가 중얼거리며 답한다.
“사제…….”
오진규가 손가락을 튕겼다.
“피의자가 사제일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합니다. 동시 수사가 가능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오진규는 냉정하고 차분하게 말했지만 그의 눈길은 계속 나를 살피고 있다. 꼭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우리. 하지만 피해자가 내 어머니라는 사실이 자꾸 그를 눈치 보게 만드는 것 같다.
물론 아까부터 나는 토할 것같이 속이 거북하고 쓰린 상태이다. 하지만 나 때문에 수사해야 할 형사들이 눈치 보며 말을 가려 하는 건 내 쪽에서 사양한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경찰이니까.
나는 목 과장님께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과장님. 수고해 주신 노력은 수사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목 과장님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신다.
“그래.”
위로의 말은 없다. 하지만 어떤 위로보다 더 큰 힘이 전해진다. 나는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미카엘 신부 부모의 수사는 오 선배가 지휘해 주세요. 오래된 사건을 재조사한다는 것만으로, 또 당시 검, 경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한 사건이 살인사건으로 규명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비밀유지에 각별히 신경 써주세요.”
오진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차라리 제가 백골 사체…… 아니, 과장님 어머님 사건을 수사하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직접 수사하시며 냉정 유지하시기가…….”
그의 걱정이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검지로 내 머리를 톡톡 쳤다.
“제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올 겁니다. 그리고, 미카엘이 자기 부모를 살해한 것은 장진수 일기장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첫 살인일 확률이 높고, 제 부모님 사건은 연쇄살인 사건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사건을 파고들면 다른 연쇄살인사건의 빌미도 잡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오진규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내 주장에 반박하지 못하고 물러난다.
나는 관우에게 말했다.
“관우가 나와 함께 간다. 연주는 오 선배님 도와드려.”
“예, 과장님.”
“알겠습니다, 과장님.”
나는 팀원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늦게라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늦은 만큼 빠르게 움직입시다.”